

스프링 스프링
권기덕
파란시선 0040∣B6(128×208)∣153쪽∣2019년 9월 10일 발간∣정가 10,000원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날아다니는 나무를 추종하는 자가 수거해 간 구름의 흔적들
“착란이 불러오는 불안의 공간은 권기덕 시인의 시 도처에 흩어져 있다. 시인은 불안의 공간을, 형식적 모험을 통해 재현하며 주체를 불안에 빠지게 하여 고립된 자신의 타자성을 목도하게 한다. 이는 스프링의 형태로 회전하며 반복된다. 끝에 다다랐다고 생각할 때,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다시 처음이 된다. 테셀레이션(Tessellation)과 스프링 그리고 뫼비우스의 띠는 서로 통하는 바가 있다. 그것은 반복을 통해 심연을 찾아가는 과정의 지속이라는 측면일 것이다. 완결된 세계를 부정하는 시인의 존재론적 질문이 여기에서 시작된다.” “섬뜩할 수도 있는 세계와의 관계를 부정의 감각으로 사유하는 권기덕 시인의 시가 갖는 테셀레이션은 꽉 짜인 이미지를 통해 개방된 상대성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나’는 언제든 부정될 것이다. 그 부정의 너머에서 ‘나’는 그 무엇으로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재정립될 것이다. 상대적인 시간이 남긴 돌발 흔적(diagramme)을 우리가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최초의 질문에 대답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쩌면 질문 너머, 저 바깥에 대한 믿음인지도 모르겠다. 구심력의 강력한 자장에서 벗어난 ‘나’를 가능하게 하는 불가능한 상상과 함께 말이다.”(이상 이병국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권기덕 시인은 2009년 <서정시학>을 통해, 2017년 <창비어린이>(동시)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P>를 썼다. <스프링 스프링>은 권기덕 시인의 두 번째 신작 시집이다.
추천사
지각기관을 닫는다. 정동의 파고도 잠재운다.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시선이 되고, 맹목의 시각성은 모순을 낳고, 모순은 인간을 창조한다.(「스프링」) 그러고도 세계는 남는다. 만일 세계가 아름답다면 그것은 ‘신의 제작’에 대한 증명이다. 시인은 신의 부재를 증명하고, 부재하는 신이 제작한 대지의 아름다움을 누설한다. 몸에는 천형처럼 “검은 스프링”(「시인의 말」)을 가득 인 채로. 낳고 낳고 또 낳는 ‘스프링’(莊子는 “生生者는 不生”이라 했다!)의 내러티브가 시작된다. ‘스프링’, 그것은 꼬리에 꼬리를 문 반발력으로 지반을 다지는 악무한의 다른 이름. “폐허가 되기 위해 몸을 비운다”(「몬도」), “점을 중심으로 나는 다시 태어난다”, “나, (나), ((나)), ……”(「얼굴로 둘러싸인 방」), “나는 어느새 작은 마을을 덮는 새가 되어 간다”(「세컨드 라이프」). 집요하게, 끈질기게 “무엇과 (무엇)”(「귀로 둘러싸인 귀로」) “나와 (나) 사이”(「드라이플라워」)를 파고드는 ‘스프링’. 겉과 속, 안과 밖에서 유동하는 경계를 저울질하는 움직임, 파동, 떨림이 만들어 내는 무늬가 있다. “부분적 개체”(「도서관」)들 사이에서 자의로 쓰이고 또 지워지는 물질적인 황홀이 있다. 말, 언어, 문장의 거처다. 낳고 또 낳음으로써 의미의 죽음을 증명하는 문장 역시 ‘스프링’이다. 문장은 존재와 이름을, 시선과 감각을 중첩시키기 때문이다. ‘스프링’은 늘어났다 줄어들며 경계를, 틈을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 ‘나’와 ‘(나)’를 마주 세울 때 ‘나’라는 말을 쓸 수 있다. ‘나’라는 개체를 중첩시킨 상태를 ‘우리’라고 한다면, 바로 그 ‘우리’라는 말 속에는 사이가 지워지고 없다. 마치 탄성이 졸아든 스프링처럼. 반발력이 지워진 몸에는 상처처럼 차가운 감정이 고이게 마련이다. ‘우리’라는 말은 자가 증식한 이미지들이 만들어 낸 콜라주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쯤이면 ‘나’ 역시 증강 현실의 소산이다. ‘스프링’은 안에서 바깥으로 바깥에서 안으로 그 모든 틈을, 사이를 헤집는다. 중력에 반발하고, 가해진 힘에 맞서고, 작용점에 맞갖는 대척점을 그려 보인다. “바깥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우리는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싶어 한다”(「마스크」). 이 문장을 반대로 뒤집어서 쓰면 어떻게 될까? 시집을 통독한 다음 A4 용지 5매, 원고지 40매 분량으로 정리해 제출하시오.
―신동옥(시인)
시인의 말
눈이 없는 내가
심장이 없는 나에게
신의 아름다움을 말하자
내 몸은 점점 검은 스프링으로 덮이기 시작했다
거울에 부정의 새들이 날아다녔다
저자 약력
권기덕
2009년 <서정시학>을 통해, 2017년 <창비어린이>(동시)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P> <스프링 스프링>을 썼다.

차례
시인의 말
011 프롤로그
제1부 스프링
015 령
016 스프링
018 아무도 없었다
020 기타리스트와 이상한 가방
022 세컨드 라이프
024 몬도
026 그림자나무
028 식인나무
030 데브리스
031 못 본 척
032 블라인드 윈도우
034 얼굴로 둘러싸인 방
035 나무들
036 명
037 웰컴 투 어글리!
제2부 스프링나무
043 도마뱀
044 도서관
046 옆
048 B컷
050 벽 속의 얼굴
051 눈물
053 스프링나무
054 귀로 둘러싸인 귀로
056 즉흥 음악 수업
058 Jay Coffe
060 숨을 곳 찾기
061 드라이플라워
063 사이와 사이, 사이
064 상자에 들어가기 전 상자에 들어갔다
065 입속의 그림자
066 거울로 된 방에 눈이 내릴 때
068 멀리 있는 방 A를 위해 만든 방 A′
제3부 드라이플라워
073 -3월
074 (새)를 저항하는 새
076 원사이드
078 판다
080 봄의 바깥
082 마스크
084 열한 번째 손가락
086 불투명 바람
088 툴
090 곰팡이
092 13월의 금요일
094 백지
095 날아다니는 나무를 추종하는 자가 수거해 간 구름의 흔적들
제4부 그림자놀이
105 리포토그래피 1
107 리포토그래피 2
108 리포토그래피 3
110 균열된 시공간에서의 마임
112 그림자놀이
114 은하약국 999호
115 춤추는 부조
116 부조의 진화
118 어느 구름의 흡입력
123 내부의 저녁
125 -3일 간 맨홀 위에 허무를 쌓는 자들의 기록
128 광장에 죽은 비둘기들을 쌓아 기울어진 펜스를 설치한 자들의 변명
131 모른 채 변해 가는 장소들은 우리를 과장되게 만든다
133 에필로그
137 해설 이병국 테셀레이션, 그 불가능한 시도와 가능한 모험
시집 속의 시 세 편
세컨드 라이프
귤껍질에서 검은빛이 떠오를 때
나는 하늘을 날 수 있습니까?
하늘을 난다는 건
검은 연기가 몸속에 가득 차는 것
그럼 제 몸을 태우겠습니다
내 몸이 조금씩 떠오르고 있다 나는 혼잡한 자동차들이 보이는 도로를 지나 빌딩을 지나 집으로 간다 내 몸은 일정하지 않다 단지 바람에게 검은 눈동자를 맡긴 채 흐른다 저 투명한 유리창에 당신을 가두고 나는 겨우 작은 어둠이 되었을 뿐,
나는 괴물입니까?
붉은 저녁이 오고 있다 저녁이 저녁의 구름을 물고, 없는 그림자를 저녁에 묻고, 하늘 위 까마득한 어둠에 날개가 점점 커지도록 저녁이 오고 있다
나는 어느새 작은 마을을 덮는 새가 되어 간다 ***
웰컴 투 어글리!
슬리퍼로 벽을 만들었어요
슬리퍼와 슬리퍼 사이
바람이 불고
틈이 생겼지만
슬리퍼는 슬프지 않아요
슬리퍼는 어디론가 늘 맴돌아요
슬리퍼는 비 오는 날, 흘러내려요
슬리퍼슬리퍼슬퍼리퍼슬슬리퍼리슬슬퍼슬리슬퍼슬리리퍼퍼슬리퍼퍼슬리퍼슬슬리퍼슬리슬슬퍼퍼슬퍼슬리퍼퍼슬슬리퍼슬리리리퍼슬슬퍼퍼슬리퍼리퍼슬슬리퍼슬리퍼슬슬퍼슬퍼슬퍼퍼슬리퍼슬슬퍼퍼……
슬리퍼 벽에서 문이 열리면 빨강 모자 쓴 그녀가 슬리퍼를 신고 등장해요
슬리퍼는 얼굴이 없어요 슬리퍼는 가슴이 없어요 슬리퍼는 감정이 없어요 (그런 슬리퍼를 사랑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3초!) 슬리퍼는 진실이 없어요 슬리퍼는 눈물이 없어요 슬리퍼는 할 말이 없어요 슬리퍼는 친구가 없어요 슬리퍼는 돈이 없구요 슬리퍼는 직업도 없어요 (그런 슬리퍼를 사랑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3초!) 슬리퍼는 가족과 애인이 없어요 슬리퍼는 우산이 없구요 슬리퍼는 그림자도 없어요 슬리퍼는 색깔이 없어요 슬리퍼는 음악이 없고 슬리퍼는 담배는 있는데 불은 없죠 슬리퍼는 슬리퍼가 없어요 슬리퍼는 슬퍼가 없어요 (그런 슬리퍼를 사랑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3초!)
벽 너머 당신은, 당신이 아닌 당신
총을 겨누고
거울 밖 겨울을 견디며
슬리퍼들이 걸어가요 벽이 움직여요 벽이 벽을 따라 걸어가요 벽이 아닌 벽을 ***
스프링나무
감정 없는 나라에서 나는 자란다. 개기월식 때 스프링새들이 강물을 건너간다는 풍문, 스프링구름 아래 스프링자전거 타는 피에로를 좀 봐. 채워야 할 여백이 많다는 건 네 심장이 여러 개로 불어난 증거야. 매일매일 스프링심장이 태어나지. 아무리 스프링으로 빚어도 새가 되진 않아. 스프링새만 매달려 있지. 스프링이 스프링 위에 쌓이고 새 문장들이 펼쳐져도 너는 스프링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한낱 스프링일 뿐이지. 물에 젖어도 거울 속 네 얼굴은 계속 전송되고 있지. 몸에서 금 가는 소리가 날 때 시계들이 빠져나가지. 생을 기록하던 타이머는 서로 다른 눈동자처럼 자라다가 심장을 벗어나지. 스프링창문을 벗어날 순 없지. 스프링으로 가득 찬 방에서 사유하고 기록을 남기지. 스프링처럼 튀어 오른 스프링은 네 눈동자를 빼앗지. 달 또한 점점 스프링으로 변해 가고 있어. 달방에서 몸에 색칠하고 나뭇잎을 붙여 봐. 스프링바람이 형식적으로 붙어 있을걸. 어서 그림 속 그림자 지우듯 그림자를 잃어 볼까? 네 내부는 내 외부를 깨뜨리는 것, 스프링꽃에 바람이 불어 꽃잎이 자라고 스프링새들이 날아오면 나는 그곳에서도 뿌리를 내릴 테지. 매일 버려지는 시체처럼, 매일매일 버려지는 거짓 웃음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