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항거> , 유관순(고아성 분)
1919년, 일본제국 경찰이 서대문감옥으로 한 여자 죄수를 이송해 오고, 형무소의 여옥사 간수(이수연 분)가 죄수를 인수 받아 남자 간수와 함께 여자 죄수의 기록을 남긴다. 수인번호 371번, 폭행을 당했는지 얼굴이 퉁퉁 부은 여자 죄수의 이름은 바로 유관순이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개봉했던 영화 <항거>를 보면 만세시위 후 유관순이 서대문형무소에 입감되는 장면에서 유관순을 수감번호 ‘371’로 부른다.
그러나 ‘371’은 사실은 수감번호가 아니다 단지 아래의 유명한 사진에서 비롯된 잘못이다.
신문이나 온라인의 정보가 모두 사실은 아니다. 사실을 알고 싶으면 우선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 아마 이 사진군을 가장 많이 들여다본 연구자는 이애숙과 박경목일 것이다.
두 전문가는 이 자료군에 거꾸로 찍힌 숫자를 ‘보존원판번호’로 보았다.
이를 직관할 수 있는 사진이 3월 1일 개성 만세시위에 참여했다 붙잡힌 아래 어윤희 사진이다.
유관순 사진처럼 거꾸로 찍힌 숫자가 ‘三七○’인데, 아래 칸에 ‘보존원판(소) 제370번’이라 적혀있다.
‘보존원판’이란 카드에 부착된 사진을 인화하는 데 쓰인 원판을 의미하는 것 같다.
따라서 유관순의 ‘371’도 수인번호가 아니라 보존원판번호(이하 ‘보존번호’)이다.
그렇다면 대체 유관순의 수인번호는 몇 번인가?
규정이나 다른 예에 따르면 <그림 2>의 왼쪽 옷깃에 부착된 번호가 수인번호일 것이다. 다만 잘 보이지 않는다. 당시 유관순이 수감된 감방을 찾았던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즉 석호필을 다룬 전기에 따르면 그가 본 유관순의 수인번호는 ‘1933’이었다(⑨ 97쪽).
이는 삼일운동 전문가 이정은이 쓰고 류관순열사기념사업회가 펴낸 유관순 전기에도 인용되었다(⑫ 407쪽)
왼쪽 류관순(정상적인 얼굴)
▲ 보존원판번호 371이 뚜렷히 보이는 유관순 열사의 옥중 사진. 만세운동 후 일제의 폭행으로 인해 얼굴 전체가 부어 오른 비정상적 모습이다.
조선감옥령시행규칙(朝鮮監獄令施行規則, 1912.3 總令34호)
제18조 입감자에게 번호를 부여하고 재감 중 그 번호표를 상의 옷깃(襟) 또는 흉부에 부착하게 한다……
제20조 전옥典獄에서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는 입감자를 촬영할 수 있다. 재감자에 대해서도 같다(⑦ 3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