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실험소학교를 소개합니다. 중국실험소학교 / 나라사랑, 민족사랑
조선족 실험소학교는 김좌진 장군이 설립한 학교다.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 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김을동은 이 학교와의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장군의 얼을 현재에 다시 되살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국의 조선족 학교여서 향후 한국과 중국, 두 나라간의 우호를 증진하는데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좌진 장군이 가장 먼저 시도했던 민족운동은 교육이었다. 1907년 충남 홍성에 있는 80간짜리 자신의 집을 개방해 호명학교를 설립한 것이 시작이었다. 장군은 자신의 전답을 팔아 경비로 사용하고, 일가를 찾아다니며 운영경비를 모금했다. 이듬해까지 인근 각지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교육을 제창한다. 장군은 고종황제가 퇴위한 원년인 1907년 안창호, 이갑 등과 더불어 서북학회를 세우고 산하기관인 오성학교의 교감으로도 활약했었다.
이는 장군이 항일무장투쟁 외에 애국계몽운동으로서 교육에 남다른 애착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국내에서의 독립활동이 여의치 않아 만주로 건너간 1917년 이후에도 한결같았다.
중국 곳곳에도 학교를 설립했는데 1926년 10월 마지막으로 현지에 세운 조선족 학교인 신창소학교가 바로 현재의 조선족 실험소학교로 이어지고 있다.
기념사업회는 민족의 동량을 육성하는 일에 앞장섰던 장군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중국 흑룡강성 해림시의 조선족 실험소학교에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1999년 20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한 것을 필두로, 2000년에 역시 20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2001년에는 조선족 실험소학교 외에 실험중학교까지 대상을 확대, 30명의 학생과 6명의 교원에게 각각 장학금과 격려금을 전달했다.
조선족 실험소학교는 중국 56개 소수민족의 학교들이 벌이는 학생예술경진대회에서 6년 연속 최우수상을 받는 등 예술단으로 유명한 학교. 2000년 9월 2일부터 이틀간 기념사업회는 청산리 독립전쟁 승전 8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이 학교 예술단을 초청, 여의도 한강고수부지 LG무대에서 공연의 장을 마련했다.
흑룡강성 내의 유일한 조선족 학교인 이 학교는 설립 당시인 신창학교 시절 60여명의 학생에 2명의 교원으로 신학문을 전수했다. 이후 동성학교, 계명우급학교, 신합조선족소학교 등으로 교명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1년 현재 학생 540여명과 교원 57명 규모. 지금까지 졸업생 수는 3,812명이다.
이 학교는 장군이 고향인 홍성에 설립해 현존하고 있는 홍성 갈산중고등학교와 2003년 11월 자매결연을 맺었다.
갈산중고등학교는 장군이 1907년 생가에서 처음 개교했던 호명학교를 이어 1952년 그 자리에 세워진 학교다.
두 학교측은 "민족이 어렵던 시절 모진 풍파를 이겨내고 민족혼을 가르치려 학교를 세운 장군의 뜻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자매결연을 맺게 됐다"고 말했다.
[출처] 중국실험소학교를 소개합니다.|작성자 김을동 국회의원
첫댓글 우리말 우리글 우리 노래를 가르치는 유일한 조선족 실험소학교입니다.
김좌진 장군의 설립하신 마지막 남은 유일한 소학교 라고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