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환호성과 눈물 Date 2011. 4. 17
Text Lk 19,38-42
(38)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39)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40)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41)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1. 성경이 말하는 말세의 특징들을 요즘 뉴스 화면들을 통하여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민족과 민족들 간의 분쟁, 나라와 나라 간의 전쟁, 이익집단 간의 충돌이 그렇고, 각종 재해들이 그렇습니다. 방사능 물질도 무섭고 지진도 무섭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정말 무서운 것은 혼란이라고 생각합니다. 혼란이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나쁜 것인지를 확실하게 구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믿음을 초석으로 하여 그 위에 든든히 자신을 세우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첫 종려주일에 있었던 일들을 소개하는 대목입니다. 이 말씀에서 2011년의 종려주일을 시온중앙교회에서 맞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성령님께서 친히 역사하시어서 우리 모두가 충만한 은혜 속에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2. 먼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첫 종려주일날 하셨던 일들을 소개하고 있는 이 성경 본문의 내용은 어떤 객관적 정보를 말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자 누가는 이 사건을 묘사하면서 이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퍼포먼스는 ‘메시아 선포식’이라는 것입니다.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신 행동은 당시 유대인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스가랴 예언서 9,9에 예언되어 있던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라는 군중들의 환호도 메시아 찬가였습니다. 39절에, 이 광경에 대하여 바리새인들이 비난하고 있는 것도 바로 예수가 메시아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즉 바리새인들이 당장 그만두게 하라고 요구한 것은 더 이상 메시아 놀음을 하지 말라는 요구였던 것입니다.
한 가지 더 분명히 알아야 할 진실은 예수님께서 이런 퍼포먼스를 행하신 시점에 관한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반대자들에 의해 집 중적으로 사찰을 받고 있었습니다. 조그마한 무슨 꼬투리라도 잡으면 그것을 빌미로 목베어 죽인 세례 요한처럼 처치해버리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주님께서 아예 ‘날 잡으려면 잡아라’라는 듯이 공개적으로 자신의 메시야 되심을 선포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런 위험천만한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당당하고 단호하게 자신의 뜻하신 바를 행동으로 보여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인류를 그 무거운 죄의 멍에에서 해방시키시려는 당신의 구속사역을 완성시킬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최후의 발걸음을 떼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날이 오늘 종려주일입니다.
오늘 2011년 종려주일을 맞는 여러분, 주님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2천 년 전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게 하셨던 것과 꼭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 첫 번째는, ‘나는 너희 인생을 죄와 허물과, 그 죄로 말미암아 생긴 온갖 고통과 슬픔 속에서 온전히 구원하는 메시아, 곧 구원자라는 사실을 너희가 알아라.’는 메시지입니다. 두 번째는 알았으면 그 인생의 심각한 문제들을 다른 데로 가져가지 말고 돌이켜 예수님께로 오라는 것, 즉 회개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셋째는 예수님 앞에 와서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여전히 머뭇거리지 말고 모든 문제들을 주님께 진짜로 턱 믿고 맡기라는 메시지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다 맡겼으면 이제 주님의 인도를 따라 감사하면서, 찬송하면서, 기도하면서, 서로 사랑하면서, 주님과 행복한 동행을 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당신의 확실한 구원자이십니다. 주님께서 할 일 없어서 나귀 새끼를 타고 군중들에게 환호성을 지르게 하는 그런 생쑈를 하셨다고 생각지는 않으시겠지요? 설마 군중들을 현혹하여 자기 이익을 취하려고 그런 생쑈를 벌렸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시죠?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당시 주님은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아시면서도 그리하셨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정말 주님은 당신의 확실한 구원자이십니다. 혹 ‘아무리 주님이시라도 내 인생문제 만큼은 어떻게 하실 수 없을거야?’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겠죠? 주님은 능력도 충분하신 분이십니다. 깨달아 아십시오. 주저하지만 마시고 믿으십시오. 맡기십시오. 아멘.
3. 지금 말씀 드린 것은 누구나 알아야 할 기본 상식 같은 것이라고 했었지요? 이제부터 말씀드리려는 것은 듣는 대상을 오늘의 우리로 구체화하신 메시지요, 꼭 들어야 할 정말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따라 하실까요? “환호하는 사람이 되라.”
당시 주님의 퍼포먼스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환호성을 지른 사람들이 있었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에 대하여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40절)고 분명히 하셨습니다. 주님의 메시아 되심을 적극 환영하고 호응하여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강조하신 말씀이지요. 깨달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믿고 맡겨서 구원을 받으시는 것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선물은 그게 끝이 아닙니다. 구원을 받았으면 주님께서 내미신 손을 굳게 잡고 주님을 따라 나서셔야 합니다.
현대의 딜렘마는 불확실성입니다. 그에 따른 혼란입니다. 모든 분야에 있어서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무엇이 좋은지 무엇이 해로운 것인지 쉽게 결정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4대강 사업을 하는 것이 좋은지 그만둬야 하는지, 대통령은 죽어도 해야 하겠다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죽어도 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방사능 물을 마셔도 괜찮다고 하는데 진짜 괜찮은지, 고리 원전이 진짜 안전한 건지 불안한 건지, 강재섭을 찍어야 하는지 손학규를 찍어야 하는지, 정말 어렵습니다. 아니 어려움을 넘어 지금 국민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전체 젊은이의 80%가 대학졸업장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교육수준을 높여놓았는데 구체적으로 파고들어가 보면 그 교육이라는 것이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수출만이 살 길인 것은 분명한데 같은 제품을 내국인에게는 비싸게 팔고 외국인들에게는 훨씬 더 싸게 팔고 있다니, 열심히 애국심을 발휘하여 국산품을 사용하는 그게 진짜 잘 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혼란스럽습니다. 사탄은 이 시대의 모든 것을 상대화 시켜놓았습니다. 절대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듯이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주님은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단순한 순종을 가르쳐주십니다. 아브라함은 75세나 되었었지만 그냥 주님의 말씀을 따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따라 나섰습니다. 단순히 순종하였더니, 그는 가군 318명을 거느릴 만큼 실력자가 되었고,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정말 아무 대책도 없이 그저 주님의 명령만 따라, 300만 유대인들을 데리고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지난주일 허정우 목사님도 설교하셨듯이 뭐 그리 대단한 호의호식도 아닌 그저 생존을 위한 깨끗한 물 한 모금의 대책도 없이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순종하였더니, 광야 40년 동안 헐벗고 굶주려 죽은 사람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에스겔에게는 해골 골짜기로 데려가서는 그 해골 무더기들 앞에서 생기의 바람이여 불어와 이 죽은 자들로 살아나 하나님의 군대가 되게 하라는 설교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단순히 순종하였더니 그 해골들이 정말 살아나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거기 있는 여섯 개의 돌 항아리에다 맹물을 갖다 부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그 말씀에 순종했더니 물이 변하여 최고급 포도주보다 더 향기롭고 맛좋은 때깔도 고운 맹물표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서 신앙에도 혼란스럽습니까? 정말 주님 말씀을 따라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여지십니까? 판단이 서지 않습니까? 신앙생활은 결과는 모두 주님께 맡기고 주님의 명령과 말씀에 그저 단순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말씀하시는 주님을 따라 돌 항아리에다 물을 갖다 붓고, 해골무더기를 살아나게 하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선언에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지 않으면 돌들이라도 일어나서 환호성을 지릅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4. 마지막입니다. 이 화려한 퍼포먼스의 대미는 뜻밖에도 주님의 눈물입니다. “(41)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주님은 이 환호성 대신, 끝내 회개치 아니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칠 예루살렘 성의 멸망을 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A.D 70년 로마의 티투스 황제의 침공을 받아 예루살렘 성은 지금의 통곡의 벽 한 모퉁이만 남긴 채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여러분, 이 종려주일에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흘리신 눈물의 의미를 알고 주님의 마음으로 우리 곁의 형제자매들을 돌아보며 살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금년 들어 지난 3월까지 석달 내내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라는 말씀으로 정말 어떠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시는지, 그 사랑의 고백을 들었습니다. 그 사랑의 고백을 마음에 받아들이셨다면, 이제 즐거이 주님의 발걸음 머무는 곳에 함께 서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고, 주님이 눈물 흘리시는 곳에 내 눈길도 머물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난 99년도에 성지순례를 갔었습니다. 순례중, 주님이 예루살렘 성을 내려다보시며 우셨던 감람산 언덕에 섰을 때, 저는 왈칵 치밀어 오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 저 성을 보시며, “(37)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마23,37-38> 하시며 통곡하셨는데, 원하오니, 제게도 맡기신 통영 땅을 눈물로 사랑할 심령을 주소서.’라며 기도했었습니다.
여러분, 이 종려주일에 주님의 눈물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그 심령이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죽어가는 영혼, 말라비틀어진 교회, 장차 망할 도성 부산을 위해 흘릴 수 있는 눈물을 흘리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5. “일어나서 함께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