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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4-95편
시편 94편은 모두 23개 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질문을 하나 드려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신가요, 복수의 하나님이신가요? 보통 '용서의 하나님'이라고 너무나 쉽게 대답하게 되고, 이것이 우리에게 깊이 각인된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하나님을 '복수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두 번 연속으로 부르는 유일한 구절이 시편 94편입니다. 그래서 이 시는 우리에게 굉장히 도전적인 시입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할 질문을 던져 주는 깊고 의미 있는 시입니다.
시편 94편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추어 주소서.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소서. 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 그들이 마구 지껄이며 오만하게 떠들며 죄악을 행하는 자들이 다 자만하나이다.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백성을 짓밟으며 주의 소유를 곤고하게 하며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들을 살해하며 말하기를 여호와가 보지 못하며 야곱의 하나님이 알아차리지 못하리라 하나이다."
여기까지가 시편 94편의 제1문단입니다. 총 23절로 이루어진 이 시는 1절부터 7절, 8절부터 15절, 16절부터 마지막 절까지 이렇게 세 개의 문단으로 주제와 사상이 구분되면서 전개됩니다.
보시는 대로 94편 1절부터 7절은 하나님을 향해 1절, 3절, 5절에서 연이어 세 번이나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를 부르며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러다가 8절부터 15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무시하며 거절하는 사람들을 향해 외치는 말입니다. 7절까지는 "여호와여"라고 부르다가 8절에서는 "백성 중에 어리석은 자들아"라고 대상을 바꾸어 부르며 15절까지 이어집니다.
그러다 16절에서는 새로운 질문이 시작됩니다.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행악자들을 치며,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악행하는 자들을 칠꼬?"라는 일종의 의문문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탄원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내용으로 마지막 절까지 이어집니다. 정리하면 1절부터 7절은 여호와를 부르며 드리는 기도, 8절부터 15절은 여호와를 부정하는 어리석은 자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선언하는 내용, 16절부터 23절은 시인의 신앙 고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체 내용은 1절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시편 94편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갈립니다.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추어 주옵소서." 어떻게 하나님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복수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이 '하나님의 복수'라는 개념을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2절을 보면 '복수하시는 하나님'이라는 호칭이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지 바로 나옵니다.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여." 즉, 1절의 '복수하시는 하나님'은 2절의 '세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뜻합니다. 그 심판의 사역을 '복수'라는 단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복수는 개인적인 원한을 갚는 일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복수는 철저히 감정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 억울한 감정을 그대로 되갚아 주는 것이 인간의 복수입니다. 영화에서 흔히 보듯, 어린아이가 마루 밑에 숨어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이 칼에 맞아 쓰러지는 것을 보고 자라나 무술을 배운 뒤 "아버지의 원수, 내 칼을 받아라" 하며 앙갚음하는 정서적 한풀이가 인간의 복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수는 2절에 나타나듯 공의로운 '심판'과 직결됩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대상에 대해 세 가지 단어를 사용합니다. 2절의 '교만한 자', 4절의 '오만하게 떠드는 자', '자만하는 자'입니다. 히브리어 원어로 보면 게에(교만), 아타크(오만), 아마르(자만) 등으로 조금씩 다릅니다. 새번역 성경에서는 '자만하나이다'를 '거드름을 피웁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5절, 6절, 7절에는 교만하고 오만하고 자만하여 행하는 일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5절에 보면 주의 백성을 짓밟고 주의 소유를 곤고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우습게 여기고 괴롭히며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합니다. 6절을 보면 과부, 나그네, 고아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박해하고 살해합니다. 자기가 가진 권력으로 연약한 자들을 억압합니다. 그리고 7절에서 그들의 본질적인 죄가 드러납니다. "말하기를 여호와가 보지 못하며 야곱의 하나님이 알아차리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통치와 역사를 완전히 부정해 버리는 태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복수하신다는 것은 감정적인 보복이 아니라, 무너진 의를 회복하고 모든 것을 바르게 바로잡는 사법적 공의를 뜻합니다. 1절의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는 2절에 비추어 보면 "공의롭게 재판해 주옵소서"라는 간구입니다.
그렇다면 시편 94편 1절부터 7절의 교훈을 우리 삶에 적용하면 무슨 뜻이 될까요? 신약 성경 로마서 12장 19절이 그 답을 줍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복수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내가 직접 원수를 갚으려 하지 말고, 공의의 하나님께 모든 판단을 맡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기 위해서는 평소 삶에서 세 가지를 하나님께 맡기는 훈련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여호와께 맡기라고 명령하는 대표적인 세 구절이 있습니다.
첫째, 시편 55편 22절입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일상에서 삶의 무게와 고단한 짐을 여호와께 맡기지 못하면, 결국 내 힘으로 원수를 갚으려 들게 됩니다.
둘째, 잠언 16장 3절입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일과 계획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셋째, 베드로전서 5장 7절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마음속에 일어나는 모든 염려와 불안을 주께 내어맡겨야 합니다.
일(행사)을 맡기고, 삶의 짐을 맡기고, 내면의 염려를 맡기는 훈련이 되어 있을 때 비로소 억울한 일이나 원수 갚는 일 앞에서도 친히 갚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길 수 있게 됩니다.
8절부터 시인은 하나님을 무시하며 "보지 못하고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말하는 어리석은 자들을 향해 외칩니다.
"백성 중의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보고 알고 계십니다. 10절과 11절에서는 뭇 백성을 징벌하시며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신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간의 잔꾀는 허무할 뿐입니다.
그래서 제2문단의 핵심은 12절입니다.
"여호와여 주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여기서 징벌은 파멸이 아니라 주의 법을 배우게 하시는 교육적 연단, 즉 고난입니다. 시편 119편 67절의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그리고 71절의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는 고백과 일맥상통합니다. 교만과 오만에 빠져 살던 인생이 고난의 징벌을 통해 주의 법도를 깨닫고 바른길로 돌아서는 것이 복입니다.
16절부터 시작되는 제3문단에서 시인은 악인들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자기 자신을 돌아봅니다. 핵심은 17절부터 19절, 그리고 23절입니다.
17절: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영혼이 벌써 침묵 속에 잠겼으리로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나 역시 벌써 무덤에 들어갔을 연약한 존재임을 자각합니다.
18절과 19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두 가지 은혜를 찬양합니다.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내가 실족할 때 붙들어 주신 언약적 사랑(헤세드), 그리고 마음에 근심이 가득할 때 채워 주신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마침내 시인은 22절과 23절에서 모든 심판을 온전히 하나님께 의탁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하나님은 내가 피할 반석이시라. 그들의 죄악을 그들에게로 되돌리시며 그들의 악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끊으시리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그들을 끊으시리로다."
내가 불평을 나 자신에게 하면 실망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쏟아내면 비난이 되지만, 하나님께 쏟아놓으면 기도가 됩니다. 시인은 자신의 억울함과 탄식을 사람에게 푸는 대신 하나님 앞에 그대로 토해 냄으로써 탄원을 가장 숭고한 신앙고백과 기도로 승화시켰습니다.
이어서 시편 95편을 살펴보겠습니다.
시편 95편은 시편 중에서도 독특한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시가 "여호와여", "주여" 하고 하나님을 부르며 시작하는 반면, 95편은 "오라 우리가 … 하자"라며 신앙공동체 구성원들을 향해 서로 권면하는 노래로 시작합니다.
1절의 "즐거이 외치자", 2절의 "즐거이 노래하자", 6절의 "무릎을 꿇자"처럼 공동체의 예배를 독려합니다. 95편은 크게 두 문단으로 나뉘는데, 기준점은 7절의 중간입니다.
7절 상반절("그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까지가 제1문단이고, 7절 하반절("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부터 11절 끝까지가 제2문단입니다.
제1문단은 하나님을 향해 '찬양하고 경배하자'는 권면인 반면, 제2문단은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와 순종의 촉구입니다.
1절부터 7절 상반절까지는 '찬양하자, 왜냐하면 ~ 때문이다'라는 구조가 두 번 반복됩니다.
첫 번째는 1절부터 5절입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그 이유는 3절에 나옵니다.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기 때문이로다." 땅의 깊은 곳과 높은 산,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위대하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온 마음으로 기뻐하며 찬양하자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6절과 7절 상반절입니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그 이유는 7절 상반절에 나옵니다.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우리의 예배에는 두 가지 요소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크신 하나님을 향한 '기쁨과 찬양', 그리고 우리를 돌보시는 목자 되신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한 엎드림과 경배'입니다.
그런데 7절 하반절부터 분위기가 급변합니다.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출애굽기 17장에 나오는 맛사와 므리바 사건을 상기시킵니다. 르비딤에서 마실 물이 없자 백성들은 모세와 다투며 불평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일강을 쳐서 피로 물들였던 심판의 지팡이를 들고 호렙산 반석 위로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친히 반석 위에 서시고 그 반석을 침으로써 생수를 내어 백성을 살리셨습니다.
그럼에도 백성들이 지은 본질적인 죄는 출애굽기 17장 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며 하나님의 임재와 신실하심을 의심하고 시험한 것입니다. 이 맛사와 므리바 사건은 신명기 33장 8절에 모세의 고별사에서도 다시 언급되며, 시편 95편에서 세 번째로 다루어집니다.
시편 95편이 기쁨의 찬양을 노래하다가 맛사와 므리바 사건을 경고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참된 찬양과 경배는 반드시 삶의 '순종'과 연결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크신 왕이라 찬양하고 무릎 꿇어 경배하면서도, 삶의 광야에서 결핍을 만났을 때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하며 시험한다면 그 찬양은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만이 온전한 기쁨과 진정한 경배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핵심 요약 정리
1. 시편 94편: 공의를 맡기는 신앙
복수하시는 하나님의 참뜻:인간적인 감정 보복이 아닌, 무너진 공의를 바로잡고 세상을 다스리시는 '심판자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성도에게 요구되는 태도:억울함과 원수를 직접 갚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겨야 합니다(로마서 12:19).
맡김의 영적 선행 훈련:
삶의 무게를 맡김: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시 55:22)
일과 계획을 맡김: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잠 16:3)
마음의 염려를 맡김: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벧전 5:7)
징벌과 고난의 유익:하나님의 징벌은 택한 백성을 주의 법도로 가르치시는 은혜로운 훈련입니다(시 94:12, 시 119:71).
기도로 승화된 탄원:상처와 억울함을 사람에게 쏟아내면 비난이 되지만, 하나님께 쏟아내면 온전한 기도가 됩니다.
2. 시편 95편: 찬양·경배와 순종의 일치
예배의 두 가지 본질:크신 왕이신 창조주를 향한 '기쁨과 환호'(시 95:1~5)와, 양을 돌보시는 목자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한 엎드림과 경배'(시 95:6~7a)가 공존해야 합니다.
맛사와 므리바의 경고: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고도 현실의 결핍 앞에서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의심하며 시험했던 광야 세대의 완악함을 경계해야 합니다.
예배와 순종의 결합:참된 찬양과 경배는 감정적인 노래로 끝나지 않으며,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으로 완성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