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다'는 거짓말
2024. 7. 18. 최정화 소설가
쿠팡은 지난 1년간 가장 높은 고용증가율을 보이며 올해 노동자 7만1370명을 고용해 삼성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노동자들의 사고·질병 건수도 2015년 29건에서, 2020년 758건으로, 2022년엔 2300건으로 급증했다. 쿠팡의 산재율은 동종업계인 CJ대한통운, 로젠, 한진의 산재를 합한 것보다 25~28배가량 높다. 지난 9일 새벽 폭우가 내릴 때 배송을 강행하던 쿠팡 노동자가 또다시 사망했다.
쿠팡은 불안정고용, 야간노동, 장시간노동, 로켓배송, 시간당 물품처리개수를 측정하는 uph(unit per hour) 시스템 등으로 노동자를 압박한다. 이는 자동화로 인한 전 세계 노동자들이 처한 난관인데, 이 중 로켓배송제도는 오직 한국에만 존재한다. 쿠팡의 모델이 된 아마존에도 로켓배송제도는 없다. 소비자들이 그렇게까지 빨리 상품을 받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일터, 쿠팡을 해지합니다>의 저자 전주희는 "한국사회에서 새벽까지 배송이 필요한 이유는 장시간노동과 야간노동에 따른 시간빈곤이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로켓배송을 받아 일상용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 또한 시간에 쫓기는 장시간노동자로, 퇴근시간부터 잠들기 전까지의 저녁시간에 이루어지는 야간소비가 야간노동과 한 쌍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소득의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노동시간은 길어진다. 노동자들이 장시간노동을 하는 이유는 시간당 기본임금이 아주 낮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오직 일만 하고, 쇼핑할 시간조차 부족해 온라인으로 대체한다. 온라인 쇼핑은 편리함이 아니라 저임금과 휴식 없는 삶을 상징한다. 우리는 주택 대출금과 카드빚을 메우기 위해 다시 혹독한 노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일중독과 소비중독의 악순환을 가까스로 버티고 있다.
한국은 스마트폰 보급률과 인터넷 속도 세계 1위다. 속도가 빨라져 더 편리한가? 더 행복한가? 아니, 우리는 더 바빠지고 단절되었다. 지쳐 있고 숨가쁘다. 인터넷과 가전제품, 인공지능을 동원해 더 빨리, 더 오래, 더 많이 일해야 하니까.
우리나라의 야간작업 종사자는 127만~197만명, 주당 52시간 이상 일하는 장시간노동자는 170만~410만명으로 추정된다. 야간노동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규정한 2급 발암물질이다. 수명을 10년 이상 줄이고, 수면장애와 소화기 질환, 뇌·심혈관계 질환과 우울증을 발병시키며, 가족과 동료와의 관계를 단절시킨다. 고(古) 장덕준씨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63시간이었다. 그는 오후 8시 반에서 다음날 오전 7시까지, 하루 10시간 이상 쉬지 못하고 일했다.
왜 쿠팡은 직원들을 죽음으로 몰고가면서까지 로켓배송을 하고 싶어 할까? 피라미드식 비정규직 체제를 유지하며 사람을 일회용으로 쓰고 버릴까? 물량혁신, 유통혁신이라는 이름이 무색한 자본주의의 병적 욕심일 뿐이다.
우리가 일상을 꾸려나갈 상품을 살 수 있도록 오프라인 매장에서 쇼핑할 시간을 되돌려달라. 가족들과 둘러앉아 저녁을 먹을 수 있게 해달라. 퇴근 후에 한잔할 동료를 되돌려달라. 소중한 이들의 얼굴을 마주보며 하루 일과를 나눌 수 있는 소박한 저녁시간을 되돌려달라. 온라인이 편하다는 거짓말을 이제 그만 멈추라.
유경선 에디터
쿠팡이 멤버십 무료 체험 기간을 1년 넘게 연장해 주고 있는 데서 자신감이 읽힙니다.
지난 6월 19일 보내드린 점선면Lite <🦖 이 공룡 누가 키웠는데> 에서 소개해 드렸듯, 쿠팡은 자체 PB상품을 먼저 노출시키는 등 불공정 시장행위를 했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에 따라 14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어요.
이때 쿠팡은 '더 이상 지금과 같은 로켓배송 서비스를 유지하기 어렵고, 결국 소비자들의 막대한 불편과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엄포처럼 보이는 입장문을 냈습니다. 로켓배송을 볼모 삼으면 여론이 쿠팡을 지지할 거라는 믿음이 보여요. 무료 체험 기간을 너그럽게 제공해주는 것과 같은 자신감이겠죠.
최정화 소설가는 로켓배송 이용자들에게서 일상용품을 살 시간조차 내기 어려운 지친 '시간빈곤' 노동자들의 얼굴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포기하기 어려운 서비스이기도 할 거예요. 집에 편안히 누워서 소비재의 바다를 헤엄치고, 즉각적인 응답을 받는 경험. 서비스 측면으로만 보자면 쿠팡의 배송체계에 '혁신'의 면이 있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편리함을 포기하고 불편한 과거로 돌아가자는 말을 하는 데는 용기와 각오가 필요합니다. 얄팍한 소신이나 정의감으로 주장했다가는 손가락질을 당하기 십상이고요. 그런데 이제 이 편의성만 취하기에는 쿠팡의 너무 많은 모습을 알게 돼버렸습니다.
지난 7월 9일 오전 5시12분, 자차로 쿠팡과 배송 위탁계약을 맺고 일하는 '쿠팡 카플렉서' 40대 여성이 폭우가 쏟아지던 중 배송을 하다가 급류에 휩쓸려 숨졌습니다. 5월 28일에는 40대 쿠팡 퀵플렉스 새벽배송 노동자가 갑자기 사망했어요. 사망 원인은 과로사의 대표적 증상인 뇌심혈관계 질환이었습니다. '달려주십쇼'란 관리자의 재촉에 고인이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라고 남긴 메시지가 알려졌죠. 쿠팡의 물류 자회사인 쿠팡CLS 대리점은 이 노동자의 유가족에게 "제가 유가족이면 산재 안 한다"며 산업재해 신청을 하지 않도록 회유한 정황이 나왔습니다.
지난해 10월 경기 군포에서는 새벽배송 중이던 60대 퀵플렉스 노동자가 빌라 4층 복도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배송 업무 중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 그의 옆에는 쿠팡 로고가 찍힌 택배상자 3개가 놓여 있었어요. 이 죽음이 '과로사'라는 비판에 쿠팡이 내놓은 반박자료에 자사 산재사망자 통계가 실제보다 적게 나타난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이밖에 쿠팡 물류창고 위탁운영 업체에서 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 포기각서'를 받거나, 노동자들의 고용보험·산재보험이 누락된 일들이 잇따라 알려졌습니다. 쿠팡 배송기사들의 죽음에서 '노동자의 죽음'이라는 사회적 의미를 지워내고, 죽음을 개별적인 것으로 머무르게 하는 현장들입니다. 문제가 된 위탁업체들에서 임금체불이나 퇴직자 금품 미지급 등 노동관계법 위반도 다수 적발됐어요.
무료 멤버십 체험이라는 쿠팡의 손짓 뒤에 이런 사건들이 쌓여갑니다. 폭우로 차가 잠기는데도 일을 멈추지 못한 배송기사, 집에서 돌연사한 배송기사, 택배상자를 옆에 두고 사망한 배송기사. 이 죽음들이 로켓배송·새벽배송과 얼마나 무관할까요? 이 죽음들이 자사와 무관하다고 최고급 법률 서비스를 동원해 설명하는 쿠팡과는요?
돌아보면 로켓배송 없이도 우리는 그럭저럭 살았습니다. 공급이 창출한 수요라고 믿어요. 서비스가 긴요한 사람에게 의미 있게 쓰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쿠팡이 1년 넘게 건네는 유혹의 손은 끝까지 잡지 않으려고 합니다.
최정화 소설가는 장시간·야간노동이 로켓배송·새벽배송과 맞물려 돌아가는 사회를 보며 "지쳐 있고 숨가쁘다"며 "소박한 저녁시간을 되돌려달라"고 호소합니다. 물류 공룡이 빚어낸 장면들과 대비되는 한 직장의 모습을 소개하며 오늘 레터를 맺습니다. 주4일제를 도입했더니 직장과 노동자 모두의 이익이 확인됐다는 소식입니다.
출처: [점선면] [Lite] 📦 편하면 다야? - 경향신문 (kh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