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칠진(北七眞) 2 - 여선(女仙) 손불이(孫不二)
손불이(孫不二, 1119∼1182)는 금(金)나라 때 신선의 반열에 오른 여선(女仙, 여성선인 )이며, 유명한 '북칠진(北七眞)' 중의 한 분이다. 본명은 부춘(富春), 호는 청정산인(淸淨山人), 도호는 불이(不二)이며, 일명 손선고(孫仙姑)라고도 불려진다. 산동성 모평(牟平) 출신이고, 지방호족인 손충익의 딸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남다른 자질이 있었으며, 특히 미모가 매우 출중하였다고한다. 왕중양(王重陽) 선인(仙人)의 수석제자인 마단양(馬丹陽)과는 원래 부부 사이였으며, 이들 부부간에는 금슬이 좋은 것으로 당대에 유명했다.
그녀는 48세 때(1167년) 왕중양 선인에게 제도되어 출가(出家)하여 수진비결(修道秘訣)을 전수 받았다. 손불이는 홀로 조용한 곳에 거처하면서 면벽(面壁)하여 마음을 닦은 지 7년 만에 마침내 대공(大功)을 이루었다. 도(道)를 이룬 후 그는 낙양(洛陽) 일대와 남방(南方)을 두루 유람하면서 많은 사람을 제도하였다.
특히 그의 일화 중에 그녀 스스로 자신의 미모를 손상시켰다고 하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천하절색이었던 손불이는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 때문에 수도에 큰 방해가 된다 여기고는, 스스로 얼굴을 끓는 기름솥에 담가 용모를 크게 훼손하였다. 이에 남편 마단양이 크게 놀라서, 스승 왕중양에게 "아내가 미쳤습니다."라고 하자, 왕중양은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생사(生死)를 벗어나겠느냐?"라고 했다고 한다.
그 후 그녀는 집을 나가서 혹독한 정진수행 끝에 마침내 진인(眞人)이 되었다. 그 후 그녀로부터 크게 자극을 받은 남편 마단양 또한 집을 나가 부단히 정진하여 역시 진인의 반열에 올랐다.
이들 부부는 함께 도를 이룬 후 도가의 가정수련법인 ‘방중술(房中術)’을 체계화한 것으로 또한 유명하다. 원래 방중술은 일반에 알려진 것과 달리, 도가의 인생학(人生學)이다. 인생을 연구하고 인간관계를 조절하는 체계적 학문이자 수련법이었다.
원래의 방중술은 도덕편, 태허편(太虛篇), 인생편, 부모편, 부처편(夫妻篇), 형제편, 자녀편 등 총 12편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부처편'에선 부부간에 감정을 다스려 무언의 융합을 이루는 방법, 부부가 함께 수련하는 방법, 성(性)을 활용한 수련법 등을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성(性)과 관련된 부분은 방중술의 극히 일부였는데, 후대에 와서 이 부분이 세인의 관심을 끌고 크게 부각되면서 심히 왜곡된 바가 크다.
아무튼 이 때문에 도교 일파에선 손불이를 고대 방중술에 나오는 전설적 인물인 소녀, 채녀나 서왕모의 화신으로 여겨 숭앙하기도 한다.
손불이는 대정 22년(1182) 2월19일, 63세에 낙양(洛陽)에서 만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화등선(羽化登仙)하였다고 전한다.
그녀는 특히 여성수행자를 위한 수련법인 여단공(女丹功)을 완성하였다. 여단공에서는 여성의 유방과도 관련이 깊은 가슴의 장력선(壯力線, 2중단전인 전중과 협척관을 관통하는 내공선內功線) 수련을 특히 중요시 한다.
손불이 선인을 따르던 일단의 사람들을 그의 호를 따라 전진교(全眞敎) '청정파(淸淨派)'라고 부른다. 청정파의 도맥은 이후 오래 이어져 왔다.
손불이 선인은 원나라 지원(至元) 6년(1269년)에 황실에서 '청정연정순덕진인(淸淨淵靜順德眞人)'으로 봉해졌다. 그의 저작에는 <불이원군법어>, <손불이여단시> 등이 전한다.
글; 무애(한국 선도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