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산강 스케치
손진숙
‘2019 포항예술인한마당’ 도록을 펼쳐본다. 화가의 <내 고향 형산 길>이라는 유화 작품이 낯익다. 반원처럼 돌아가는 황톳길. 적어도 내 눈에는 포장되지 않은 도로로 보인다. 양쪽 길가에 초록빛 풀과 나무들, 키 큰 가로수 두어 그루가 물빛이 그리운 걸까? 가지와 잎이 형산강 쪽으로 쏠려 있다.
외팔교, 저 다리가 형산(兄山)으로 통할 것이다. 맞은편에 제산(弟山)이 있다. 단맥(斷脈)되기 전에는 형제산(兄弟山)이었다고 한다. 강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는 교각이 한번 끊어진 형제의 맥을 잇기에는 부족하고 위태롭다. 다리 아래는 하늘빛을 닮은 강물이 흐르는 듯 멈춘 듯 남실댄다. 다리 너머로 완만한 능선의 산이 엎디어 있고, 그 위에 온 하늘을 덮은 흰 구름이 설경 같다.
길 오른쪽에는 붉은 꽃 몇 송이가 피어 있다. 형산강을 끼고 둥글게 휘어지는, 저 부드러운 흙길을 걷거나 달려보고 싶다. ‘작가의 노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30년간 형산길(1986년~2016)을 지나며 - 직장과 학교를 오가며 4계절(봄, 여름, 가을, 겨울)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다. 1992년 5월의 출근길에 봄이 완연히 햇볕을 품을 때… 휴일 다시금 그 장소를 찾아 스케치하고 제작한 작품이 있었다. 지금의 나는 시간의 연속 속에 60순의 세월 속에 인간이지만 그때 그 장소를 지나는 사람들…”
<내 고향 형산 길>은 나에게도 고향길이나 다름없다. 인동에서 안강은 여중 때, 인동에서 포항은 여고 때 통학하던 길이었다. 화가가 근무한 직장이 내가 졸업한 안강여중이라는 사실이 우연치고는 신기하게 여겨진다.
수필 동인지를 잘 만들고 싶은 생각에서 표지그림을 부탁드렸고, 동인회 회장과 화실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돌아올 때 포장한 물건을 건네기에 사양했으나 재차 권하기에 받아오고 말았다.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보름쯤 지나 “제가 받기에는 부담스러워 풀어보지 않고 보관하고 있어요. 돌려드릴 생각입니다.”라고 카톡을 보냈더니 “그 그림의 주인은 손진숙님입니다. 좋은 인연, 선물로 드립니다.”라는 답을 받고도 벽장에 넣어둔 채로다. 그러고 1년 5개월의 시간이 흐른 지금, 형산강 추억이 신선한 물을 만난 송사리 떼처럼 몰려온다.
형산강 줄기가 흐르는 옆에 하천부지를 개간한 우리 밭이 있었다. 그 밭에 땅콩도 심고 당근도 심었다. 밭에서 수확한 땅콩은 맷돌에 갈아서 죽을 쑤어 먹었다. 어찌나 고소했는지 모른다. 당근은 뽑아서 단을 묶고 뿌리의 흙을 씻어 두었다. 이튿날 새벽 엄마는 양자동역 첫 열차에 싣고 포항 역전 장에 가서 팔았다. 돌아오자마자 또 일터인 형산 강변 밭으로 갔다.
농번기에는 집에서 꽤 먼 거리였지만 힘든 줄 모르고 거의 매일같이 오가던 엄마. 나는 시간이 나면 밭고랑에 파묻혀 땀범벅이 된 엄마를 돕겠다고 밭에 나갔지만 얼마 견디지 못하고 강으로 내빼기 일쑤였다. 밭에서 몇 발짝만 걸으면 강이었다. 강물은 장딴지가 잠길 정도로 얕았다. 고운 모래와 잔자갈이 깔려 있어 발바닥에 전해오는 감촉이 신선했다. 모래를 디디고 있는 내 발밑에 기어들어 꼼지락거리는 미꾸라지를 느끼기도 했다.
강가 물풀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많았다. 가만가만 다가가 두 손으로 물풀을 싸안으면 피라미, 모래무지, 각시붕어가 잡혔다. 잡힌 물고기를 넣을 어항이 없었다. 벗어둔 검정 고무신에 넣고 남은 신 한 짝으로 강물을 떠서 담았다. 물을 만난 고기는 살랑살랑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세상모르는 듯 유영했다.
해거름에 귀가할 때는 물고기의 고향인 형산강에 놓아주었다. 어류의 고향과 나의 고향이 다른 것 같아도 알고 보니 동향(同鄕)이었다. 어차피 형산강의 흐름 안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어린 시절 여름날, 형산강은 동무들과 어울려 물놀이를 맘껏 즐기던 곳이었다. 나 혼자일 때도 심심하면 첨벙 뛰어들어 멱감던 생명의 젖줄 같은 강이었다. 내 몸의 70% 이상인 물이 그때 형산강 물로 채워지지 않았나 싶다. 마을의 개울이나 우물도 형산강에서 발원하였을 테니까.
벽장에서 포장된 그림을 꺼내 풀어본다. 소리 없이 흐르는 형산강 물줄기가 메마른 내 가슴을 적신다. 화가의 <내 고향 형산 길>이 내게로 와서 멎은 듯하다. 풀어보았던 그림을 원래대로 포장하여 벽장에 보관한다. 아직 그림을 벽에 걸어놓고 감상하기가 조심스러워서다. 화폭으로 바라보지 않더라도 내 마음에 스케치된 형산강 물비늘이 맑고 푸르게 반짝거린다.
《계간수필》 2023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