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생들은 한자를 너무 모른다. 그러니 조금 어려운 한자가 나오면 아예 책을 덮어 버리는 것 같다. 한글 전용 정책이 결국 우리말에 대한 이해도를 낮춘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용어가 등장할 경우 아예 당연하다는 듯 영어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이 사회의 풍조가 된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 없다. 한류가 세계를 풍미하고 있는데, 우리말을 망치는데 공공기관과 언론이 앞장서고 있는 형상이다. TV를 볼 때 한글로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말들이 무수히 나온다. 이런 현상을 보고서도 한글전용이 바른 길이라고 주장할 것인가.
오래 전“ 리컴번트 바이크”라는 동호회가 결성된 것을 본 적이 있다. 누워 타는 자전거라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recumbent라는 단어는 쉬운 단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말로 만들어 보려는 노력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고 그냥 영어를 가져다 쓴 것이다. 얼마든지 우리말로 만들 수 있을텐데, 영어를 쓰는 것이 멋스럽다고 해서 별 생각 없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요즘 새로 등장하는 용어는 별 생각없이 영어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경우는 일일이 예를 들 필요도 없이 많다. 숫자를 셀 경우 ‘하나, 들, 셋, 넷’ 대신 ‘원, 투 쓰리, 퍼’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쓴다. 젊은이들이 노래할 때 그리고 체조 등을 할 때를 보면 알 수 있다. 회사 이름도 영어로 바꾸거나 아예 영어로 짓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학교 이름 마저도 영어로 바꾸고 있다. 연예인들 중 영어 이름을 가지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영어를 쓰는 것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사고방식이 문제인 것이다. 자기 우월감 같은 것이 그 속에 숨어있는 것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 KBS로 우리나라와의 외국팀이 경기를 하고 있는데, 자막에 대한민국Vs미국이라는 것이 보였다. 필자가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서 그 자막을 한번 읽어 보라고 했다. 방송국 직원이 얼떨떨한지 대답을 않아서 필자가 “대한민국 versus 미국이라고 읽을 것인가, 대한민국 Vs 미국이라고 읽을 것인가, 대한민국 대 미국으로 읽을 것인가”라고 물었더니 대답을 못하는 것이었다. 우리말이 없거나 복잡한 경우 외국어를 쓸 수 있다. 그런데 간단하고 훌륭한 우리말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우리말을 버리고 영어를 쓰는 태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십여년 전 한강변에 플로팅 아일랜드를 서울시에서 만든다고 하기에 필자가 서울시에 민원을 낸 적이 있다. 우리말로 ‘뜬섬’ 등으로 해도 될 텐데 굳이 영어를 쓰는 것은 사대주의가 아니냐고 했다. 그래서 나온 용어가 새빛둥둥섬이다. 왜 공공기관까지 나서서 우리말을 망치는 일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90년대 중반 쯤으로 기억한다. 서울 내부순환고속도로에 램프라는 말이 등장했다. 그래서 필자가 서울시 담당 서기관한테 전화를 걸어서 왜 그런 말을 쓰는지를 물었다. 그랬더니 그 서기관이 말하길, “램프라는 말은 특별히 우리말이 없어서, 램프라는 영어를 그대로 쓰는 것이 낫다”고 하는 것이었다. 시험삼아 많은 사람들에게 램프의 뜻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거의가 "lamp"로 알고 있었다. 정확한 스펠링는 “ramp"이다. 그 후에 나온 말이 나들목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그 외에도 시프트, 스쿨폴리스 등 예는 얼마든지 있다. 공적 조직인 서울시에서 앞장 서서 우리말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 뿐 만 아니다. 요즘은 지방자치단체 명칭 앞에 영어를 가져다 쓰는 것이 하나의 풍조가 되었다.
작년에 손주들과 함께 아동방송을 본적이 있다. 그런데 방송 진행자가 무언가를 만드는데 핑요한 ‘반죽’을 반죽이라고 하지 않고 ‘도우(dough)’라고 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잘못 말한건가 의심했는데, 계속 도우라고 하는 것이었다. 일부러 영어를 쓰는 것이었다. 사실 dough라는 단어는 그리 쉬운 단어는 아니다.
한자를 쓰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져 보인다는 풍조가 만연한 것 같다. 한자를 쓰지 않고 한글전용을 주장하다 보니 영어가 우리말을 망치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경제학, 법학 등 전공 관련 책을 보면 학생들이 한자를 모른다고 생각해서인지 한글 용어를 쓴 뒤 괄호 안에 영어를 쓰는 경우가 엄청난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일본말을 쓰면 일제 잔재라고 하여 난리를 치는데, 영어가 우리말을 망치는 것에 대해서는 둔감하다. 이게 사대주의가 아니고 무엇인가.
예를 들어 보자. 수요(demand), 공급(supply), 인식론(epistemology) 등으로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 그냥 需要, 供給, 認識論이라고 한자로 써 넣으면 굳이 영어를 가져다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글 만으로는 뜻이 통하지 않으니까 영어를 괄호 속에 넣는 현상이 나오게 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한글전용정책이 한글을 파괴하는 현상을 초래한 것이다.
2007년 한글 새번역 성경이 나와서 한자를 괄호 속에 넣어 쓰는 성경을 구입했다. 그런데 괄호 속에 한자를 넣어 쓴 것의 기준이 모호했다.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데 그냥 한글로만 나타낸 경우가 많았고, 굳이 한글로만 써도 뜻이 통하는 경우에도 괄호 속에 한자를 넣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을 한자로 써야 하는지에 대한 감이 부족한 것 같았다. 예를 들면 창조, 배회, 처소, 사망 등은 한글로 써도 뜻이 통하는데도 불구하고 괄호 속에 한자를 병기했다. 반면, 설정(泄精)같은 경우는 한자를 병기하지 않았다.
한글 전용론자들은 한자를 쓰지 않아도 한글로만 써도 문제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한글전용으로 해서 한글이 무너지고 있는 현상을 우리는 수시로 목격하고 있다. 한자교육을 제대로 시킨다면 앞에서 문제점으로 열거한 많은 것들이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한글은 우수한 글자임에는 틀림없지만, 우리말의 70%가 한자에서 왔기 때문에 한자를 무시하고는 한글전용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우리가 영어에 들이는 노력의 10분의 1만 한자교육에 투입했더라도 오늘날과 같은 혼란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한글로만 쓰면 뜻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결국 한자교육을 하지 않으면 한글로는 뜻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언어생활의 혼란을 초래하고 학문발전의 저해를 가져오게 된다. 한자교육과 함께 반드시 시행되어야 할 것은 영어를 함부로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용어가 나올 경우 이를 한글로 만들어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한자도 결국 우리말이므로 한자를 이용하면 우리말의 造語力은 한층 더 힘을 발하리라 생각된다. 스쿨폴리스 대신에 학교경찰, 플로팅 아일랜드 대신에 새빛둥둥섬을 쓰면 얼마나 좋은가.
오늘날 세계화를 영어의 세계화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즉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영어를 될 수 있는대로 많이 써야 하고 그것을 세계화의 일환으로 보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등 많은 국가들이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그들이 세계화에 성공하였는가. 물론 우리나라는 경제성장이 무역에 의존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영어를 발판으로 삼아 우리나라의 외연을 넓힐 필요는 있다. 그러나, 영어를 잘 하는 것과 영어를 남용하는 것은 구별돼야 한다. 세계화란 그 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정신자세에 달려 있는 것이지 영어 사용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한자교육은 단순한 문자운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한자 교육의 부활로 우리말을 갈고 닦아 우리말의 쓰임새를 넓히고 우리의 자존심을 넓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한자 교육을 충실히 한다면 우리 국민들의 어휘 능력의 향상, 한자를 이용한 조어 능력의 향상, 영어의 우리말 파괴 현상 저지 등 많은 효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첫댓글 장현덕 주간님을 교육부총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