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와 피해자, 누가 더 고통을 받는가?
한국인 최초로 미국에서 범죄학 박사 학위(1987년, 미시간주립대학교)를 받은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이윤호 교수가 의정부 교도소의 운영 행태를 꼬집었습니다.(2020.8)
의정부교도소는 전국 교도소에서 외국어 시험을 치러 선발된 재소자들을 모아 영어와 일본어를 공부할 수 있는 외국어 공부교실을 운영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범죄자는 편안히 영어공부 하는데, 피해자는 평생 고통을 받다니…”
한밤중에도 매우 안전한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곳보다 범죄로부터 안전한 치안 선진국으로 손꼽힙니다. 인구 1000만 명 이상이 사는 곳에서 새벽 두세 씨까지 술을 마신 후 시내를 활보해도 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인구 10만 명당 살인범죄 건수를 분석한 결과, 미국은 5건, 프랑스는 1.2건, 독일은 0.9건인데, 우리나라는 0.6건에 불과합니다. 물론 범죄발생 건수가 적다고 하여 그것이 곧 강력 범죄가 적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완벽한 치안 체제를 구축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우리나라가 방범과 치안 분야에서 선진국가인 것만큼은 틀림없습니다.
다만, 범죄로 인한 피해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에는 상당히 소극적이고 매우 소홀합니다. 가해자는 교도소에서 형기(刑期) 만료로 출소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피해자의 고통에는 만기가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자신만의 고통을 껴안은 채 살아가야 합니다. 분명히 뭔가는 불공평합니다.
피해자의 고통은 영혼의 구속입니다. 끝이 없는 고통스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기를 반복하는 시시포스처럼 ‘이제는 끝났겠지’라고 생각하면 다시 반복되는 그 아픔을 평생 짊어진 채 몸부림쳐야 합니다.
가해자도 피해자만큼 고통 받게 할 수는 없을까요? 고대 바빌로니아 시절의 함무라비 법전을 부활한다면 가능할 수는 있습니다. 살인을 저지른 자는 사형에 처하고, 타인의 팔을 부러뜨린 자는 그의 팔을 부러뜨리면 됩니다. 그러나 현행 법률은 보복 처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가해자에게는 불편과 고통을, 피해자에게는 치유와 돌봄을”, 범죄학 이론의 첫 번째 원칙입니다. 하지만 이는 학문적으로 포장된 그럴듯한 구호에 불과합니다. 가해자에게는 어느 정도 불편을 주는 것이 맞을 수 있지만, 피해자를 향한 돌봄은 거의 방치 수준입니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겪는 영혼의 피폐함을 절대로 느낄 수 없습니다.
가해자는 형기 만료로 모든 것을 용서받고, 새 출발합니다. 그런 그에게 피해자의 아픔은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남의 일일 뿐입니다. 그것은 오로지 피해자의 몫일 따름입니다. 가해자는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은 적이 없는데도 용서받았다고 확신합니다. 그를 용서한 것은 법이지, 피해자가 아닙니다. 피해자의 아픔은 지극히 현실적임에도 그에 대한 치유는 딴 세상의 일입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세상을 비틀어보는 75가지 질문
Chapter 3.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데, 왜 변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