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20.
- 이번엔 SK케미칼 상대로 특별배당(特別配當) 조르는 헤지펀드
- 일단 먹고보자는 속셈
- 기업 장기투자 바란다면 정부가 나서 교통정리를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또다시 한국 기업을 공격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헤지펀드 메트리카파트너스는 최근 SK케미칼에 주주서한을 보내 SK바이오사이언스 지분을 50.1%만 남기고 나머지를 판 뒤 그 수익금으로 특별배당을 하거나,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라고 요구했다. 3조6000억원가량 되는 금액이다. '주주 가치'라는 허울로 이 큰돈을 주주에게 단번에 뿌리거나 태워 없애라는 얘기다.
소수 지분밖에 갖고 있지 않은 헤지펀드가 어떻게 이런 요구를 할 수 있는가? 단기 이익을 매개로 금융투자자들이 폭넓게 연대할 가능성 때문이다. 상장기업은 대부분 금융투자자들이 집합적 최대주주다. SK케미칼의 경우도 대주주 지분은 36%가량이고 나머지를 금융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다.
금융투자자는 기관이건 개인이건 투기가 주목적이다. 그 회사가 나중에 어떻게 되든 간에 주식으로 지금 수익을 올릴 수 있으면 그만이다. 만약 헤지펀드의 요구를 받아들여 대규모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을 하게 되면 큰돈을 번다.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실랑이를 하는 동안 주가가 오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적당히 이익을 챙기고 '먹튀'할 수도 있다. 파생상품을 활용하면 주가가 요동치는 동안 이익을 더 많이 올릴 수도 있다.
뭔가 약점이 보이는 기업이면 헤지펀드에 더 좋은 타깃이다. 주가가 지지부진해 주주들의 불만이 쌓여 있거나, 정치적 문제 등에 봉착해 있으면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적당히 타협하기 때문이다. 2016년 엘리엇이 삼성전자를 공격했을 때가 대표적 케이스이다.
당시 삼성은 소위 '국정 농단' 사태에 휘말려 이재용 부회장 등 최고경영진이 정치권과 검찰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엘리엇은 삼성전자에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를 분리하고 30조원의 특별배당을 하라고 압박했다. 삼성은 20조원에 달하는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이라는 타협안으로 대결을 회피했다. 이번 SK케미칼 건은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수도 있다. 삼성의 경우와 비슷하게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공정위 조사를 받는 상황 등을 감안해서 적당히 타협안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헤지펀드의 요구에 타협하는 것은 기업이나 경제에 절대 좋은 일이 아니다. 주식회사는 장기 투자를 하도록 만들어져 있고 경영자의 책무는 장기 경영이다. 헤지펀드의 요구는 경영진에게 배임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금융투자자의 힘이 워낙 세지고 국민연금조차 동조하는 경향을 보이니 경영진이 이를 완전히 무시하기 어렵다.
필자는 따라서 정부가 적극 개입해 기업이 장기 투자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중 하나는 주주 제안을 할 때 장기 기업 가치 상승 합리화를 의무화하는 금융 규제다. 그러면 무작정 '주주 환원'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가 차단될 수 있다. 이 원칙은 경영진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돼야 한다. 경영진이 내놓는 주총 안건이나 보유 자산에 대해 그것이 왜 장기 가치 상승에 필요한지 합리화하는 의무를 지게 하면 전반적 시각이 장기화되고 장기 성장에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경영 능력을 투입하게 될 것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20조원에 달하는 돈을 시설 투자나 기업 인수 등에 적극 활용했으면 지금의 위기론이 나올 여지를 일찍 차단할 수 있었고 '초격차 전략'은 더욱 빛을 발했을 것이다. SK케미칼에도 3조6000억원은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커다란 돈이다.
헤지펀드와 타협하는 것이 국가 경제에 좋을 이유는 하나도 없다. 반면 기업이 번 돈을 재투자하는 것은 국가 경제에 모든 면에서 좋다. 경제가 성장하고 좋은 일자리가 창출되기를 바라는 정부라면 장기 투자를 북돋는 '기업-기관 규준'을 만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