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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오백년가(漢陽五百年歌)
■ 960014 김지훈 ■
슬프다 친구(親舊)님네, 이 가사(歌辭) 들어 보소. 어느 가사(歌辭) 지었는고? 한양가(漢陽歌)를 지었어라. 이 가사(歌辭)를 보시오면, 한양 사적(漢陽 事蹟) 자세(仔細) 알리. 오백년(五百年) 지난 사적(事蹟), 흥망성쇠(興亡盛衰) 여기 있소. 이십팔왕(二十八王) 치국(治國)하신 선(善)․불선(不善)이 모두 있다. 장(壯)할씨고 우리 대왕(大王), 놀랍도다 우리 대왕(大王). 장략(將略)도 장(壯)할씨고, 문필(文筆)도 유여(有餘)하다. 아들이 팔형제(八兄弟)니, 복력(福力)이 더욱 좋다. 이십(二十)에 등과(登科)하사, 삼십(三十)이 못 되어서 처음 벼슬 무엇인고, 총무대장(總撫大將) 하였어라. 이 때가 어느 때뇨, 공양왕(恭讓王)의 말년(末年)이라. 정포은(鄭圃隱)은 정승(政丞)이요, 권양촌(權陽村)은 판서(判書)로다. 황방촌(黃厖村)은 보국(輔國)이요, 길야은(吉冶隱)은 주서(注書)로다. 조정(朝廷)은 씩씩하나 임금이 혼암(昏闇)하니, 그 나라를 보전(保全)하며, 그 사직(社稷)을 지킬손가. 왕건(王建) 태조(太祖) 전(傳)한 사적(社稷), 四百七十五年이라. 퉁두란(佟豆蘭)은 上狀이요, 정삼봉(鄭三峰)은 모사(謀士)로다. 일조(一朝)에 반정(反正)하여 수창궁(壽昌宮)에 등극(登極)하니, 이 때가 어느 때뇨 임신 칠월(壬申 七月) 열엿셋날, 등극(登極)하신 칠일(七日)만에 태평과(太平科)를 보이신들, 포은(圃隱)을 두려하여 어느 누가 과거(科擧) 보리. 칠십이현(七十二賢) 충신(忠臣)들은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고, 야은선생(冶隱先生) 어디가고 금오산성(金烏山城) 찾아가니, 포은선생(圃隱先生) 혼자 있어, 복위(復位)를 어이 하랴. 태조대왕(太祖大王) 거동(擧動) 보소, 선죽교(善竹橋) 다리 위에, 포은선생(圃隱先生) 불러 내어 국사(國事)를 다툴 적에, 들으면 벼슬 주고, 안 들으면 죽이리라. 조영규(趙英珪) 철퇴(鐵槌) 들고 좌편(左便)에 세워 두고, 동정(動靜)을 보는 양(樣)이 주해역사(朱亥力士) 철퇴(鐵槌) 들고, 진비(晉鄙)를 엿보는 듯, 박랑사중(博浪沙中) 창해역사(滄海力士) 진시황(秦始皇)을 맞힌 듯이 이렇듯이 위급(危急)하니, 장(壯)할시고 포은선생(圃隱先生) 태산(泰山)같이 굳게 앉아, 일월(日月)같이 밝은 충성(忠誠), 송죽(松竹)같이 굳은 절개(節槪), 죽는 것도 모르거든 철퇴(鐵槌) 보고 두려하랴.
태조대왕(太祖大王) 거동(擧動) 보소, 포은(圃隱)보고 하는 말이 성황당(城隍堂) 저 대궐(宮闕)이 퇴락(頹落)한 지 오래오니, 중수(重修)함이 어떠하오. 포은선생(圃隱先生) 대답(對答)하되, 백번(白番) 죽고 죽고 죽어 죽고 또한 죽어져서 백골(白骨)이 가루 되어 진토(塵土)가 될지라도 절개(節槪)는 못 변(變)할세. 조영규(趙英珪) 거동(擧動) 보소. 삼십근(三十斤) 쇠방망치 소매 속에 드러내어, 눈 위에 번쩍 들어 포은(圃隱) 머리 한 번 치니, 두골(頭骨)이 파쇄(破碎)하고, 유혈(流血)이 낭자(狼藉)하다. 선죽교(善竹橋) 다리 위엔, 혈흔(血痕)이 점점(點點)하다. 풍마우세(風磨雨洗) 오백년(五百年)에, 지금까지 흔적(痕迹) 있어 충절(忠節)을 전(傳)했으니 장(壯)할씨고 선생 충절(先生 忠節), 천지(天地)로 동포(同胞)하고 일월(日月)로 쟁광(爭光)이라. 태조대왕(太祖大王) 거동(擧動) 보소 정삼봉(鄭三峰)을 분부(吩咐)하고,
무학(無學)을 불러다가 왕도(王都)로 정(定)할 적에, 임진강(臨津江) 얼른 건너 삼각산(三角山) 일지맥(一枝脈)에 대궐(大闕)터를 잡아 노니, 대궐(大闕) 좌향(坐向) 어찌 할꼬. 무학(無學)이는 해좌사향(亥坐巳向), 정삼봉(鄭三峰)은 자좌오향(子坐午向), 둘이 서로 다툴 적에 鄭三峰 하는 말이 네 모른다 이 중놈아, 해좌사향(亥坐巳向) 놓지 마라. 유도(儒道)는 간데 없고, 불도(佛道)만 흥성(興盛)한다. 무학(無學)이 하는 말이 여보시오 서방(書房)님아, 아는 체 너무 마오, 자좌오향(子坐午向) 놓아 보오. 다섯 번 온 난리(亂離)와 열두 번 놀랄 일을 무엇으로 막아내리, 잡(雜)말 말고 이리 하오. 鄭三峰 하는 말이 미련하다 이 無學아, 막는 法 여기 있소. 진방(辰方)이 허(虛)하기로 그 두 가지 있을 줄은 말 안 해도 나도 안다. 東大門 현판(懸板) 쓸 때 날치 한 자 놓았으면 아무 걱정 없으리니, 子坐午向 놓아 보자.
無學이 분(忿)을 내어 東大門 밖 썩 나서서 왕십리(往十里) 찾아가서 大闕터를 돌아 보고,
한 치 깊이 파고 보니, 석함(石函)이 들었거늘, 깨뜨리고 자세(仔細) 보니 석함(石函)에 하였으되, 요망(妖妄)한 중 無學아, 그릇 찾아 예 왔도다. 無學이 자탄(自歎)하고 그 길로 달아나서, 江原道라 金剛山에 토굴(土窟)을 묻어 놓고, 佛道를 숭상(崇尙)하고 歲月을 보내더라. 鄭三峰의 擧動 보소, 대궐(大闕)을 지을 적에 南山 잠두(蠶頭) 주작(朱雀) 되고, 無學재가 현무(玄武)로다. 광한루(廣寒樓)가 수궁(水宮) 되고, 임진강(臨津江)이 인후(咽喉)로다. 南漢山城 靑龍 되고, 龍山 삼개 백호(白虎)ㄹ다. 이렇듯이 향배(向背) 놓고, 東西南北 四大門을 仁義禮智 네 글자로 서로 連해 지어 노니, 東大文은 興仁이요, 西大門은 돈의(敦義)로다. 南大門은 崇禮門, 北大門은 廣智門, 左右 궁장(宮墻) 널리 쌓고 三千 宮闕 지어 노니 東關 大闕 第一 좋다. 영칙궁(令勅宮) 萬壽宮은 雄壯하고 치려(侈麗)하다. 근정전(勤政殿) 신정전(申政殿)은 청아(淸雅)하고 鮮明하다. 德壽宮 長德宮은 황홀(恍惚)하고 정쇄(精灑)하다. 興仁閣 청련각(淸蓮閣)은 농란(綾爛)하고 明朗하다. 壽昌宮 竹東宮은 長遠하고 유벽(幽僻)하다. 계월궁(桂月宮) 景花宮은 놀랍고 壯하도다. 集春門 월근문(月覲門)은 地形이 험구(險嶇)하다. 춘당대(春塘臺) 경무대(景武臺)는 높고도 넓었으니, 科擧 보기 더욱 좋다. 南別宮은 좋거니와, 음침(陰沈)하여 귀궐(鬼闕)이라. 이렇늣이 좋은 宮闕, 太祖大王 등극(登極)하니, 그 王妃는 뉘시던고, 안변(安邊) 韓氏 夫人이오 부원군(府院君)은 뉘시던고, 安邊 사람 한경(韓卿)이라.
둘쨰 王妃 뉘시던고, 谷山 康氏 夫人이오. 府院君은 뉘시던고, 谷山 사람 允成이라. 임금이 어지시와 宮廷을 善治하니, 王妃도 어지시고, 府院君도 착하도다. 治國하신 七年만에 創業功德 壯할씨고, 歲和年豊 太平이오, 국태민안(國泰民安) 이 아닌가. 요지일월(堯之日月) 밝아 오니 순지건곤(舜之乾坤) 이 아닌가. 恭讓王의 모진 政事, 어이 그리 모질던고.
■ 960034 이형노 ■
걸주(桀紂)만 못할손가 요순(堯舜)같다 우리대왕(大王) 연로(年老)하니 어이할고 재위(在位)하신 칠년(七年)만에 정종(定宗)에게 선위(禪位)하고 상왕(上王)위에 계시거늘 십년(十年)을 지낸후에 만수궁(萬壽宮)에 전좌(殿座)하사 정사(政事)를 바리시고 서리추풍(秋風) 백발(白髮)이라 정종대왕(定宗大王) 등극(登極)하니 그왕비(王妃)는 뉘시든고 경주김씨(慶州金氏) 부인(夫人)이오 부원군(府院君)은 뉘시든고 문하시중(門下侍中) 천서(天瑞)로다 등극(登極)하신 십년후(十年後)에 태종(太宗)대왕(大王) 거동(擧動)보소 창업공(創業功)을 의논(議論)컨댄 나의공(功)이 제일(第一)이라 태종(太宗)대왕(大王) 분(忿)을내여 조회(朝會)에 들어갈제 용상(龍床)앞에 엎드려서 눈치가 수상(殊常)하니 정종왕비(定宗王妃) 눈치아라 정종(定宗)을 권(權)한말이 그위(位)를 내어주오 골육상쟁(骨肉相爭) 되오리다 이때에 태종대왕(太宗大王) 골육상쟁(骨肉相爭) 무엇인고 방연(芳衍)방석(芳碩) 죽일때라 정종대왕(定宗大王) 그말듣고 태종(太宗)에게 선위(禪位)하니 태종대왕(太宗大王) 등극(登極)하여 그 왕비(王妃)는 뉘시든고 여주민씨(驪主閔氏) 부인(夫人)이오 부원군(府院君)은 뉘시든고 여주(驪主)사람 민제(閔濟)로다 태종(太宗大王) 등극후(登極後)에 정종대왕(定宗大王) 거동(擧動)보소 완월궁(玩月宮)에 피해앉아 심신(心神)이 불평(不平)하야 아바님께 고(告)한말삼 태종대왕(太宗大王) 마음보면 무삼일을 못하릿가 태조대왕(太祖大王) 분(忿)을내여 옥쇄(玉璽)를 빼서갈새 함흥(咸興)으로 나려가서 탕목궁(湯沐宮)에 홀노앉아 한양소식 영격(永隔)하니 태종대왕(太宗大王) 거동(擧動)보소 등극(登極)은 하였으나 옥쇄(玉璽)가 간대없다 옥쇄(玉璽)없난 임금이니 무삼자미 있을손가 태종대왕(太宗大王) 거동(擧動)보소 부원군(府院君)이 들어가니 태종대왕(太宗大王) 하신말삼 옥쇄(玉璽)없어 어이할고 부원군(府院君) 하신말삼 옥쇄(玉璽)같이 중(重)한물건(物件) 사람마다 보내릿가 함흥(咸興)을 뉘가갈고 조서(詔書)해 이원태(李元泰)를 상소(上疏)하고 보내보소 상소(上疏)를 뉘가쓸고 글잘하난 조순태(趙順泰)가 한림(翰林)으로 있을때라 조순태(趙順泰)로 상소(上疏)지어 이원태(李元泰)를 사자(使者)보내 함흥(咸興)으로 나려가서 상소를 올리오니 태조대왕(太祖大王) 분(忿)을내어 불문곡즉(不問曲直) 덥허놓고 한양(漢陽)서 왓다하니 한양사자(漢陽使者) 목비여라 태종대왕(太宗大王) 거동(擧動)보소 옥쇄(玉璽)를 바래더니 옥쇄(玉璽)난 아니오고 이원태(李元泰)만 주것구나 그후에 또보내니 오난대로 목을비어 함흥(咸興)이 어대던고 한번가면 다시올가 염라(閻羅)국(國)이 여게로다 이런고로 이런말이 한번가고 아니오면 함흥차사(咸興差使) 이것일세 태종대왕(太宗大王) 즉위(卽位)한지 삼년(三年)을 지나도록 옥쇄(玉璽)없이 정치(政治)하니 국사(國事)도 창망(蒼茫)하고 사직(蒼茫)이 자미없네 부원군(府院君)과 의론(議論)하되 옥쇄(玉璽)를 받드자면 몇사람이 죽을넌지 퉁두란(佟豆蘭) 찾아가서 태종대왕(太宗大王) 하신말슴 우리부자(父子) 창업(創業)함은 선생(先生)이 아난바라 이옥쇄(玉璽)를 찾자하면 선생(先生)이 아니시고 다른사람 보낼진댄 무죄(無罪)한 사람목숨 수(數)없이 죽을지니 선생(先生)이 생각(生角)하야 한번 행차(行次) 하여주소 퉁두란(佟豆蘭)이 이말듣고 앙천대소(仰天大笑) 하난말이 전하(殿下)미워 하신일을 소인(小人)간들 주시릿가 태종대왕(太宗大王) 하신말삼 선생(先生)은 한번가면 옥쇄(玉璽)를 가저오리 사양말고 가서보소 퉁두란(佟豆蘭)의 거동보소 좋은말 다버리고 색기가진 저말한필 안장지어 타고가네 함흥으로 나려가서 태조대왕(太祖大王) 찾아가니 태조대왕(太祖大王) 거동(擧動)보소 퉁두란(佟豆蘭)을 얼른보고 손을잡고 들어가며 선생(先生)보기 의외(意外)로다 이번 행차(行次) 어인일고 풍진세게(風塵世界) 마다하고 별유천지(別有天地) 찾아가서 적송자(赤松子)와 논다더니 천태산(天台山)을 자내밨나 무릉도원(武陵桃源) 여게있다 부자불목(父子不睦) 나를찾아 어이이리 와섯난고 노퇴(老退)하야 볼것없난 이사람을 찾아왔나 궁녀(宮女)불러 술부어라 이술먹고 나와노새 서로권(權)해 마실적에 사오배(四五杯) 마신후(後)에 퉁두란(佟豆蘭)의 거동(擧動)보소 태조(太祖)앞에 엎드려서 슬피울며 하난말이 대왕(大王)님 하신일이 어이그리 장(將)하신고 그아니 괴로신가 공양왕(恭讓王)의 모진 정사(政事) 한번들어 소멸(消滅)하고 억조창생(億兆蒼生) 건저내니 이일을 비(比)하건댄 하걸(夏桀)의 모진 정사(政事) 탕(湯)임금이 소멸(消滅)하고 상주(商紂)의 모진 정사(政事) 무왕(武王)이 벌지(伐之)하고 진시황(秦始皇)의 우모가정(牛毛苛政) 한태조(漢太祖)가 소멸(消滅)하고 왕망(王莽)의 모진 정사(政事) 광무황제(光武皇帝) 곤치였고 수양제(隋煬帝)의 망(亡)한 정사(政事) 당(唐)태종(太宗)이 평복(平復)하니 대왕(大王)의 창업(創業)하신 이제와서 생각하면 이에서 못할손가 몇백년(白年) 왕가사업(王家事業) 일조(一朝)에 바리시고 이궁(宮)에 혼자앉아 후세(後世)에 우슴되니 전하(殿下)하심 이를진대 한심(寒心)치 아니하며 애통(哀痛)치 아니실가 부자불목(父子不睦) 고사(姑捨)하고 팔도창생(八道蒼生) 불상하오 슬피울고 일어앉아 다시하난 말삼보소 창업(創業)하심 생각하면 소신(小臣)과 함께나서 사생(死生)을 같이하여 천행(天幸)으로 성사(成事)하여 군신지의(君臣之義) 맺아두고 창업공신(創業功臣) 되잣더니 원통(怨痛)할사 대왕(大王)님은 이것이 왼일인고 옛적에 요(堯)ㅅ임금 만승천자(萬乘天子) 높은위(位)를 사우에게 전(傳)해주고 순(舜)임금의 착한마음 장인(丈人)에게 받은위(位)를 우(禹)님금에 주었거늘 하물며 대왕(大王)님은 대왕(大王)님이 하신위(位)를 아들에게 전(傳)하시고 이다지도 노(怒)하실까 여차등설(如此等設) 말할적에 문(門)박게 매인말이 슬푸게도 우는구나 태조대왕(太祖大王) 들으시고 저말이 무삼일로 저렇타시 슬피우나 퉁두란(佟豆蘭)이 대답(對答)하되 저말우난 그 연고(緣故)를 아뢰거던 들으소서 그말이 색기뗀지 석달을 지낫스되 색기를 생각하야 죽주어도 아니먹고 꼴주어도 아니먹고 밤낮으로 우난말이 오늘날까지 저리우니 저말을 두고보면 아모리 짐생이나
모자간(母子間)의 그린정(情)이 사람만 못할손가
■ 995003 김해은 ■
한(漢)나라 소중랑(蘇中郞)이 북해상(北海上)에 있을 적에 호첩(胡妾)을 정했더니, 아들 둘을 낳아 두고, 십구년(十九年) 고생(苦生)타가 고국(故國)을 돌아올 때 어려서 못 데리고 어미에게 두었더니, 칠년(七年)을 지난 후(後)에 호첩(胡妾)의 거동 보소. 두 아들 앞세우고 한양교(漢陽橋) 저문 날에 이별(離別)하고 우는 눈물 점점(點點)이 떨어져서 아이 이마 다 젖는다. 그 어미 하는 말이 모별자(母別子) 자별모(子別母)는 인간(人間)의 못할노라. 모자간(母子間) 인정(人情)이나 부자간(父子間) 인정(人情)이나 천륜(天倫)은 일반(一般)이라, 어찌하여 전하(殿下) 마님 부자간(父子間) 중(重)한 인정(人情) 사년(四年)을 돈절(頓絶)하오. 태조대왕(太祖大王) 이 말 듣고, 자연(自然)히 회심(回心)되어 흔연(欣然)히 하는 말이, 한양(漢陽) 가는 길 차려라. 치도관(治道官)을 분부(吩咐)하여 칠백칠십(七百七十) 먼먼 길을 곳곳이 닦아 노니, 바르기 터럭 같다. 안성(安城)을 얼른 지나 송도(松都)를 다다르니, 공양왕(恭讓王)의 살던 터에 소슬한풍(蕭瑟寒風) 가련(可憐)하다. 파주(坡州)를 다 지나고, 임진강(臨陣江)을 건너서서 효자원(孝子院)이 어디련고. 무학(無學)재가 여기로다. 경기(京畿) 감영(監營) 들어가니, 연추문(延秋門)이 반갑도다. 태종대왕(太宗大王) 거동(擧動) 보소. 태조(太祖) 오심 소문(所聞) 듣고 무학관(舞鶴館)에 차일(遮日) 치고, 백관(百官)으로 영접(迎接)할 제 태조대왕(太祖大王) 거동(擧動) 보소. 무학관(舞鶴館) 좌정(坐定)하니, 의위(儀威)도 장(壯)할씨고, 국세(國勢)가 자별(自別)하다. 오기는 오셨으나, 태종(太宗)의 하는 일을 좌정후(坐定後)에 생각하니 가련(可憐)코도 절통(切痛)하다. 아우 둘을 죽이고서 형(兄)의 위(位)를 앗았으니, 임금도 좋거니와 골육(骨肉)이 중(重)치 않나. 골육상쟁(骨肉相爭)이러하고 국사(國事)가 장원(長遠)할까. 그 아들 생각하니, 여분(餘憤)이 상존(尙存)이라, 오호궁(烏號弓)에 활을 메어 무릎 위에 얹어 놓고 산악(山岳)같이 앉았으니, 이때에 태종대왕(太宗大王) 태조(太祖) 보러 오시다가 활 메운 거동(擧動) 보고, 태종(太宗) 같은 기량(器量)에도 용포(龍袍)자락 떠는구나. 놀랍도다 권대구(權大求)야, 충성(忠誠)도 장(壯)커니와 간담(肝膽)이 늠름(凜凜)하다. 태종(太宗)을 모시고서 함께 가며 하는 말이, 추호(秋毫)도 전하(殿下) 마음 두려하지 마옵소서. 죽는대도 신(臣)이 죽고, 살을 맞아 상(傷)한대도 신(臣)의 몸이 대신(代身) 가며, 옥체(玉體)에는 안 가리니, 천연(天然)하게 가옵소서. 태조대왕(太祖大王) 거동(擧動) 보소. 깍지손을 한번 떼니, 유성(流星)같이 가는 살이 나는 듯이 나올 적에 권대구(權大求)의 충성(忠誠) 보소. 태종(太宗) 앞에 썩 나서서 그 살을 받고 죽네. 이것을 볼짝시면 군의신충(君義臣忠) 이 아닌가. 태조대왕(太祖大王) 거동(擧動) 보소. 옥새(玉璽)를 내던지며 노기(怒氣)로 하신 말씀, 이것이 놀라우냐. 태종대왕(太宗大王) 거동(擧動) 보소. 용포(龍袍)자락 펼쳐 놓고 옥새(玉璽)를 주워 싸며, 황공(惶恐)하여 하신 말씀 옥새(玉璽) 전수(傳受) 하옵신다. 영덕궁(永德宮)에 태종(太宗) 있고, 만수궁(萬壽宮)에 태조(太祖) 계셔 정사(政事)를 상의(上議)하니, 부자유친(父子有親) 새롭도다. 세월(歲月)이 여류(如流)하여 태조(太祖) 춘추(春秋) 칠십사(七十四)라. 승피백운(乘彼白雲) 구름 타고 무자년(戊子年)에 승하(昇遐)하니, 팔역(八域)의 창생(蒼生)들이 여상고비(如喪考妣) 애통(哀痛)하다. 양주(楊州)땅 십삼리(十三里)에 건원릉(建元陵)이 그 능(陵)이요, 개성(開城)땅 이백리(二百里)에 왕비릉(王妃陵)은 제릉(濟陵)이라. 양주(楊州)땅 십오리(十五里)에 둘째 왕비(王妃) 정릉(貞陵)이라. 기해년(己亥年) 구월(九月)달에 정종대왕(定宗大王) 승하(昇遐)하니, 춘추(春秋)가 얼마신가. 육십삼(六十三)이 분명(分明)하다. 개성(開城)땅 이백리(二百里)에 후릉(厚陵)이 그 아닌가. 왕비릉(王妃陵)은 어디던고. 후릉(厚陵)과 한 능(陵)이라. 태종대왕(太宗大王) 옥새(玉璽) 들고 정치(政治)를 하실 적에 태종(太宗) 역시(亦是) 성군(聖君)이라 만조(滿朝)가 화락(和樂)하고, 백관(百官)이 사양(辭讓)하여 임금을 도우시사, 백성(百姓)은 노래하고, 국사(國事)는 자연(自然)이라. 태종대왕(太宗大王) 후궁(後宮) 처남(妻男) 아마구가 혹독(酷毒)하여, 대신(大臣)을 해(害)케 하고 충신(忠臣)을 살해(殺害)하니, 장(壯)할씨고 맹사성(孟思誠)이 태종(太宗)께 고달(告達)하고, 철퇴(鐵槌)를 둘러메고 아마구를 박살(撲殺)하니, 만조백관(滿朝百官) 어느 누가, 맹사성(孟思誠)을 그릇 알까. 태종대왕(太宗大王) 즉위(卽位) 후(後)에 십필년(十八年)을 정치(政治)하사, 세종(世宗)에게 전위(傳位)하고 상왕위(上王位)에 계시더니, 사(四)․오년(五年)을 지내다가 오십육세(五十六歲) 승하(昇遐)하니, 덕택(德澤)도 높으시고 복력(福力)도 장(壯)하시다. 광주(廣州)땅 사십리(四十里)에 헌릉(獻陵)이 그 능(陵)이오. 왕비능(王妃陵)도 한 능(陵)이라. 세종대왕(世宗大王) 등극(登極)하니, 그 왕비(王妃) 뉘시던고, 청송심씨(靑松沈氏) 부인(夫人)이오. 부원군(府院君)은 누구던고, 청송(靑松) 사람 심온(沈溫)이라. 심왕비(沈王妃) 나실 적에 이상(異常)하고 기이(奇異)하다. 청천백일(靑天白日) 밝은 날에 난데없는 무지개가 한 끝은 대궐(大闕) 있고, 또 한 끝은 청송(請誦) 있어 삼일(三日)이 지나도록 완연(宛然)히 비치거늘, 세종대왕(世宗大王) 거동(擧動) 보소. 무지개가 기이(奇異)하다. 군관(軍官)을 보내시사 무지개를 추종(追從)하니, 청송(靑松)으로 내려가서 호박골을 들어가니, 그 집이 뉘 집인고, 심이방(沈吏房)의 집이로다. 궁관(宮官)을 보내시사 왕비(王妃)로 모셔 오니, 이 아니 천연(天緣)이며 그 아니 이상(異常)한가. 복력(福力) 좋은 세종대왕(世宗大王) 삼십이년(三十二年) 재위(在位)하사, 국가창업(國家創業) 무사(無事)하고, 시화세풍(時和歲豊) 이 때로다. 중원(中原)서 패문(牌文) 나와 문장(文章) 명필(名筆) 부르거늘, 글 잘하는 성삼문(成三問)과 글씨 잘 쓴 광평군(廣平君)이 둘이 함께 들어가서, 천자(天子) 전정(殿庭) 올라가서 배례(拜禮)하고 앉았으니, 천자(天子)께서 하신 말씀, 짐(朕)에게 있는 병풍(屛風) 화제(畵題)가 없었기로, 천하(天下)에 광고(廣告)하여 문장(文章) 명필(名筆) 다 왔으니, 아무라도 이 병풍(屛風)에 화제(畵題)를 써서 내라. 서촉(西蜀) 선비 하는 말이 소인(小人)이 쓰오리다. 저 선비의 거동(擧動) 보소. 붓대 잡아 써서 내니, 천자(天子) 보고 대로(大怒)하사 저 선비를 꾸짖시되, 네 어이 당돌(唐突)하게 그 문필(文筆)을 가지고서 문필(文筆)한다 자랑하고 짐(朕)에게 속이느냐. 즉시(卽時) 추고(推敲)하니, 이 좌석(座席)이 어떠한가. 성삼문(成三問) 거동(擧動) 보소. 화제(畵題)를 지어 내니, 광평군(廣平君) 붓을 잡아, 일필휘지(一筆揮之) 써 올리니, 천자(天子) 보고 탄복(歎服)하여 글과 글씨 칭찬(稱讚)하사, 천금상사(千金賞賜) 후(厚)히 하고, 대찬(大讚)하여 가라사대, 아무래도 조선국(朝鮮國)이 소중화(小中華)가 분명(分明)하다. 이렇고요 문장(文章)이요, 저러해야 명필(名筆)이지. 화제(畵題)를 살펴보니 글씨에 하였으되,
일수개화색부동(一樹開花色不同), 난장차의문동풍(難將此意問東風)
기간앵무능언어(其間鸚鵡能言語), 설도심홍영천홍(舌刀深紅映淺紅)
이 병풍(屛風) 어떠한고. 매화(梅花)를 그렸으되, 한 가지는 매우 붉고, 한 가지는 덜 붉었네. 말 잘하는 앵무(鸚鵡)새는 그 가운데 그렸거늘, 그 격(格)에 맞게 하니, 어이 아니 어려우랴. 이 글 뜻을 들어 보소. 아니 용코 어떠하오. 한 나무가 어찌하여 빛이 같지 아니한고. 이 뜻을 가져다가 동풍(東風) 더러 못 물을다.
■ 970028 이상숙 ■
多幸하다 그 사이에 말 잘하는 鸚鵡새가 깊이 붉은 저 꽃빛이 엷게 붉은 이 꽃빛에 서로 빛이 그러하니 이리하여 그런 거야。이러한 둘의 文筆, 中國까지 이름났네。그 後로 世宗大王 선비를 불러들여, 成均館에 工夫시켜 글공부를 勸하시니,文章도 많거니와 名筆도 많이 난다。科擧를 보이시되, 文筆 보고 科擧 주니, 八域 四方 坊坊曲曲 不撤晝夜 工夫로다。二十八王 諸王中에 福力좋고 便하시기 世宗大王 第一이라。世宗大王 登極後에 國事를 두고 보면 秋毫도 일이 없다。堯舜世界 흡사하며, 夏禹天地 안 부럽네。庚午年 二月달에 五十四에 昇遐하고 驪州땅 百五十里 英陵이 그 陵이요, 王妃陵도 한 陵 이라。文宗大王 登極하니 그 王妃는 누시던고, 安東權氏 夫人이라。府院君은 누구던고, 安東 사람 權專이라。文宗大王 擧動 보소。端宗을 늦게 두고 國事는 滄茫한데, 骨肉相爭 쉬우리라。可憐하다 權王妃는 端宗을 낳으시고, 襁褓의 아들 두고 二十四에 昇遐하니, 楊洲땅 三十里에 顯陵이 그 陵이요。餘恨이 無窮하여 靈魂이 있었구나。文宗大王 擧動 보소。春秋가 높지 않아 患候가 자주 계셔 病寢에 들었도다。時時로 혼자 앉아 國事를 생각하니, 아들은 어리시고 患候는 그러하니, 아무리 생각해도 國事가 危殆하다。朴彭年 成三問 河緯地 兪應孚와 李塏와 柳誠源과 金時習 李孟專과 趙旅와 南孝溫과 成聃壽, 元昊 等을 時時로 불러들여 君臣이 서로 앉아 國事를 議論할 때, 文宗大王 하신 말씀, 열 두 臣下 卿等에게 幼主를 付托하니, 옛적에 周公같이 成王을 保全하소。아마 내가 죽은 後에 저 아들이 危殆하니, 玉枕에 듣는 눈물 點點이 피가 된다。열 두 臣下 그 말 듣고 一時에 일어서서, 임금과 같이 우니 비 온 듯이 흐른 눈물 朝服 소매 다 젖는다。文宗大王 擧動 보소。玉手로 눈물 닦고 可矜케 하신 말씀, 卿等은 여기 앉아 寡人 말씀 들어 보소。萬一 若此하면, 卿等은 어찌하랴。저 臣下들 擧動보소。나중은 모르오나 若此하고 如此하면, 臣等의 마음이야 白骨이 塵土된들, 秋毫나 變하리까。슬프다 죽음이여, 三皇五帝 저 임금도 죽음을 免치못해 宇宙靑山 무덤 되니, 文宗大王 어이 하리。壬申年 五月달에 至于帝鄕 昇遐하니, 春秋가 四十九라。蒼天이 欲暮하고, 白日에 無光하다。楊洲 땅 三十里에 王妃陵과 한 陵이라。端宗大王 擧動 보소。十三歲에 登極하니, 그 王妃는 뉘시던고, 礪山 宋氏 夫人이오。府院君은 누구던고, 礪山 사람 宋玹壽라。열 두 臣下 忠誠 보소。血心으로 임금 섬겨 三年을 지내 오니, 春秋가 十五歲라。어질기는 堯舜이요, 才操는 蒼頡이라。九重宮闕 깊은 집에 餘暇 餘暇 工夫하여 詩書百家 六經 글을 無不通知 알으신다。斷種大王 擧動 보소。雜戱로 詩를 지어 句句이 文章이요, 字字이 珠玉이라。지은 글을 들어 보소。그 글에 하였으되,
山月纖纖下洞房, 房門寒綺織成章
十年鴛別何容易, 千里昭光始在陽
片心隨妾紅羅裳, 長夢隨君紫繡粧
八字眉愁武峽女, 一枝花雨杜家嫏
鬢上誰悲蕭冷霜, 巾中未聞合歡香
陌頭楊柳爭春色, 華谷單衫贈六郞
이 글 뜻을 들어 보소。아니 용코 어떠하오。
山 머리에 돋는 달이 洞房으로 내려온다。房門에 고운 緋緞 짜서 내니 疋이 된다。
十年에 鴛鴦 離別 어이 그리 容易한고, 千里에 맑은 봄이 비로소 빛이 나네。
한 조각 妾의 마음 紅羅裳을 치켜 입고, 길고 긴 그대 꿈은 紫繡粧을 따라간다。
八字 蛾眉 고운 얼굴 巫山仙女 愁心이오。一枝花雨 봄바람에 杜家嫏의 이별이라。
鬢上에 서릿빛을 그 누가 슬퍼한가。手巾안에 合歡香은 향기조차 안들리네。
언덕 위에 버드나무 봄빛을 다투는 듯, 華谷單衫 緋緞 치마 六郞을 주었도다。
成三問이 글을 보고 朴彭年과 하는 말이, 우리 大王 지은 글이 氣像이 凄凉하다。아마도 생각하니, 壽便이 부족하오。朴彭年 하는 말이 그 글 보고 어찌 알리。成三問 하는 말이 슬프다 朴仁叟야。壽夭窮達富貴貧賤, 글월 보고 아느니라。
그 글을 仔細 보소。句句마다 可憐하다。말이야 옳건마는 字字이 凄凉하다。九重宮闕 마다 하고 외로이 계실로다。아마도 생각하니, 十常八九 丁寧하다。朴彭年 이 말 듣고 깜짝 놀라 일어 앉아, 成三問 여보시오。이 말이 웬 말인고。國政이 擾亂하여 萬分이나 危殆거늘 자네 말과 같을진대, 端宗大王 어이 하리。未久에 우리 나라 國事가 말 아닐세。둘이 서로 눈물 흘려 이렇듯이 말하더니, 一朝에 反正하여 乙亥年十二月에, 端宗大王 내쳐다가 寧越이라 淸冷浦에 絶壁에 집을 짓고 거기 앉혀 두었으니, 그 아니 切迫하며, 이 아니 可憐한가。宮奴 하나 宮女 열을 함께 보내 두었도다。十五歲 어린 임금 오죽이 可矜한가。
■ 970015 변영은 ■
淸冷浦 보낸 後에 消息이 頓絶하니, 四百里 寧越까지 어느 누가 찾아 갈까. 위에는 絶壁이요, 아래는 大江이라. 듣기 싫다 저 강물아, 무슨 所懷 그리 깊이 萬頃蒼波 푸른 물이 晝夜不息 흘러가노. 空山落月깊은 밤에 슬피우는 저 杜鵑은, 荒塚에 피를 뿌려 不如歸를 일삼으니, 너의 心思 생각하니, 나와 情形 같을지라. 寂寞江山 絶壁집에 촛불 앞
앞에 홀로 앉아, 顯陵 松柏 바라보니 꿈 가운데 푸르렀다. 杜鵑 소리 슬피 듣고 心懷를 定치 못해, 子規詩를 지어 내니 그 글에 하였으되,
一自寃禽出帝宮, 孤身隻影碧山中
假眠夜夜眠無假, 窮恨年年恨不窮
聲斷曉岑殘月白, 血流春谷落花紅
天聲尙未聞哀訴, 何奈愁人耳獨聰
열두 臣下 忠誠 보소. 서로 앉아 議論하되, 地下에 돌아간들 文宗大王 어이 보리. 病枕에 하신 遺言 귀에 아직 宛然하다. 世祖大王 擧動 보소. 反正하고 들어앉아 滿朝百官 朝會할 제 열 두 臣下 아니 오니, 世祖大王 大怒하여 鞫廳을 排設하고, 차례로 잡아다가 嚴刑 重罰 하는구나. 成三問 朴彭年 河緯地 兪應孚와 李塏와 柳誠源은 죽으러 들어가고, 金時習 李孟專과 趙旅와 南孝溫과 成聃壽 元昊 등은 그 길로 달아나서, 八松亭에 모여 앉아 밤낮으로 議論한들 運數가 當해 오니, 議論해도 쓸데 없다. 成三問을 잡아 내어 世祖大王 하신 말씀, 百官이 朝會하되 너희들은 朝會없니. 成三問 對答하되, 不事二君 忠臣 마음 平生에 지키다가 내 섬기는 그 임금이 死地에 계셨으니, 내 임금을 찾아가서 地下에 섬길 게라, 뉘를 보고 朝會하리, 世祖大王 그 말 듣고, 憤氣가 撐天하여 三問 아들 三兄弟를 一時에 잡아들여 맏아들 베이면서 이러해도 降服않니. 成三問 하는 말이 子息이 놀라우냐. 둘째 아들 죽이면서 이러해도 降服않니. 成三問 하는 말이 三族을 滅한대도 平生에 먹은 마음 秋毫나 變할쏜가. 세 살 먹은 셋째 아들 殿庭 앞에 撲殺하니 成三問 擧動 보소. 눈물을 지우거늘 世祖大王 하는 말이 어린 子息 죽는 데는 네가 이놈 눈물 지니 그것은 무슨 일고. 長成한 두 아들은 죽음직한 일인 줄 제가 알고 죽거니와 세 살 먹은 어린 子息 무슨 일로 죽는 줄을 제가 어찌 알고 죽나. 그러므로 울었노라. 世祖大王 憤을 내어, 成三問 父母들을, 星火같이 잡아들여 殿庭에 꿇여 놓고 至誠으로 이른 말이, 너도 降服 못 하겠나. 成三問 父母 말이 죽이면 죽일 게지 무슨 辱說 그리 하노. 世祖大王 憤을 내어 一時에 다 죽인 後, 四肢를 각각 베어 車裂巡示 하였었네. 朴彭年 잡아 내어 소부쇠 불에 달궈 全身을 단근하니, 朴彭年 하는 말이, 오히려 이 쇠 차니 다시 달궈 가져오라. 世祖大王 하는 말이 宗廟祭祀 그날 밤에 네 毒한 줄 내 알았다. 朴彭年 하는 말이, 香爐쇠 달군 것이 네 짓인 줄 내 알았다. 손톱 밑에 기름 내믄 네 보라고 그리 했다. 朴彭年 子孫 잡아 一時에 죽일 적에, 宮官이 내려가서 眷屬을 射殺하니, 朴彭年 집 종어미 이 말을 얼른 듣고 제 子息을 代身 주고, 上典 아기 데려다가 젖 먹여 길러 내어 上典 뒤를 이어 내니, 壯할씨고 이런 종은 萬古 忠婢 이 아닌가. 死六臣 여섯 집에 朴彭年 그 한집이 血孫으로 내려오니, 종의 德을 입음이라. 河緯地를 잡아들여 말밤쇠를 깔아놓고 버선 벗고 들어오라. 河緯地의 擧動 보소. 두 버선 훨훨 벗고 발을 번쩍 높이 들어 모래같이 밟아 오니, 말밤쇠에 발이 찔려 발등을 뚫고 올라, 찔린 에 피가 흘러 자국마다 듣는구나. 世祖大王 하신 말씀 너도 降服 못 하겠나. 河緯地의 擧動 보소 仰天大笑 하는 말이 忠臣을 辱보임도 그 罪가 안 적으니, 사속히 죽여 다고, 듣기도 나는 싫고, 보기도 나는 싫다. 世祖大王 분을 내어 당장에 破殺하고, 兪應孚를 잡아들여 기름 가마 삶을 적에, 가마 속에 부은 기름 굽이굽이 끓는구나. 世祖大王 하는 말이 네가 한번 降服하면 좋은 벼슬 시킬테니, 降服을 못할쏘냐. 兪應孚 擧動 보소. 두 눈을 부릅뜨고 高聲大叱하는 말이 倫氣 모를 네 소리를 忠臣은 姑捨하고, 凡人들도 듣기 싫다. 世祖大王 擧動 보소. 逆賊놈의 兪應孚야 사속히 저 가마에 옷을 벗고 들어가라. 兪應孚의上下 衣服 얼른 벗고, 끓는 가마 들어 擧動 보소. 가기 三伏 蒸炎 더운 날에 거렁물에 들어가듯, 秋毫나 겁낼쏘냐. 李塏를 잡아들여 世祖大王 하는 말이, 李塏야 들어봐라. 自古及今 두고 보면 忠臣烈士 子孫 있나. 王子 比干 이름 나도 이름은 傳했으되, 子孫은 끊어졌다. 伯夷叔齊 두고 보면, 首陽山 깊은 곳에 採薇하고 죽었으니 그 무엇이 쓸데 있나. 伊尹같이 어진 이도 何事 悲君 섬겼으니, 너 어이 固執하여 伊尹을 본받쟎냐. 端宗이 내 조카니, 三寸되고 못할쏘냐. 社稷을 두고 보면, 不事二君 하랬으나 조카 位를 三寸 하니, 두 임금이 어이 되나.
■ 970001 김근아 ■
한 子孫 한 血肉에 分揀이 별로 없다. 日月 같은 너의 忠誠 나도 亦是 아는 바라. 忠誠 이름 一般이니, 부디 한번 降服하라. 李塏의 擧動 보소. 呼令하여 하는 말이 自古로 두고 보면, 三寸으로 조카 죽여 그 位를 뺏는 임금, 누구누구 보았느냐. 伊尹이 섬긴 임금, 骨肉相爭 임금이냐. 兄의 뒤를 어이 끊고 내 慾心을 생각하니, 禽獸와 같을지라. 더러운 말 다시 마라. 사속히 죽여 다오. 世祖大王 憤을 내어 이 칼로 너 죽어라. 李塏의 擧動 보소. 三尺劍 입에 물고 앞으로 엎어지니, 입에 문 저 칼 보소. 뒤통수로 뚫고 난다. 柳誠源을 잡아들여 世祖大王 하는 말이 다섯 놈은 無禮하여 辱說하고 죽었으니, 너는 辱說 못 하리라. 예전 일을 생각하면 너와 나와 世宜 있어, 人情이 두터워라. 忠臣을 말할진대 孝子門에 求한다니, 네가 丁寧 忠臣이면, 孝誠이 있을지라. 孝誠 있는 그 子息이 父母를 생각하리. 너의 父母 살려 낸 일 너도 丁寧 알 것이라. 柳誠源 對答하되, 나의 父母 살린 일을 나의 先考 생각하고 나의 身命 생각하니, 그 때에 못 죽어서 陋名을 들었으니, 恩惠는 姑捨하고 네가 내게 怨讐로다. 내 先考 죽은 白骨 그 일로 안 썩는다. 世祖大王 憤을 내어 武士를 재촉하여 한 발 넘는 쇠집게로 두 손으로 벌려 들어 柳誠源 살덩이를 點點이 찢어 내니, 柳誠源 하는 말이 아무리 刑罰한들, 怨讐를 怨讐라지 할 말을 못할쏘냐. 네 刑罰을 못 이겨서 父母 怨讐 말 안 할까. 壯하도다 六臣이여. 이렇듯이 말을 하니, 열 두 臣下 곧은 節槪 如此하면 다 그렇지. 죽은 臣下 여섯이요. 산 臣下 여섯이라. 死六臣 生六臣이 이 때에 나셨도다. 生六臣 여섯 中에 다섯 臣下 함께 가서 盤松亭에 모여 앉아, 元昊는 혼자 가서 萬壑江 강물 가에 可憐亭을 지어 놓고, 端宗大王 消息 몰라 便紙 往來 서로 할 제, 下人을 못 부리고, 조그마한 표주박을 萬壑江에 띄워 놓고 便紙 써서 담아 주니, 표주박의 擧動 보소. 강물을 따라 흘러 조그마한 표주박이 君臣 便紙 傳해주네. 淸冷浦 可憐亭에 三十五里 相間이라. 三十五里 江水上에 瓢주박이 往來하니, 내려갈 때 順流로되, 올라갈 때 逆水로다. 順流는 쉽거니와, 逆水는 어렵도다. 다섯 臣下 同胞하고, 한 臣下는 消息 알아 玉體를 問安하니 그 아니 壯할쏜가. 忠誠이 至極하면 하늘이 모르리오. 하늘이 알으시고, 瓢주박이 逆水하네. 世祖大王 擧動 보소. 힘 안 들고 登極하니, 그 王妃는 뉘시던고, 坡平 尹氏 夫人이라. 府院君은 누구던고, 坡平 사람 尹璠이라. 임금이 不仁하여 억지로 登極하니, 府院君의 마음 보소. 世祖를 勸한 말이
달아난 여섯 臣下 復位하자 經營이라. 端宗을 그냥 두면 國事가 奔走하리. 世祖大王 마음 보소. 그 말을 옳게 듣고 藥器를 보내신다. 藥器 가진 使者 보소. 藥器를 가지고서 淸冷浦 강가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端宗大王 可憐하다. 仰天痛哭 슬피 울고 藥器를 번쩍 들어 江물 위에 던지기를 돌같이 던졌구나. 던지고 생각하니 王命으로 내 왔다가 그대로 올라가서 물에 넣고 왔다 하면, 殘虐한 世祖 솜씨 六臣같이 죽이리니, 앗아라 내 목숨을 내 손으로 죽으리라. 옷고름에 차인 칼을 한 손으로 얼른 빼어 목을 찔러 죽었으니, 이 사람도 忠臣이라.
藥器使者 죽은 所聞 時刻에 올라가니, 世祖大王 大怒하여 藥器使者 또 보낸다. 세 번 使者 다 죽으니, 端宗大王 착한 마음 使者 죽은 所聞 듣고, 百爾思之 생각해도 薄福한 나로 하여 無罪한 사람들이 몇 사람이 죽겠는지. 아마도 내가 죽어 黃泉에 돌아가서, 父母님 만나 보자. 아무리 생각해도, 죽을 일이 孟浪하다. 藥을 먹고 죽자 해도 藥 없어서 못 죽겠고, 칼로 찔러 죽자 하니 칼 없어서 못 죽겠다. 中枋 밑을 뚫어 놓고, 明紬 줄 걸어 놓고, 宮奴 福得 부르면서, 福得아 말 들어라. 어젯밤 찬 바람에 感氣가 대단하여 口味가 절로 없어 取汗할 길 생각하니, 개 밖에 또 있느냐. 개 한 마리 求했으되 내가 차마 잡을쏘냐. 明紬 줄에 걸렸으니 밖에 서서 당기다가 그만커던 네 놓아라. 福得이놈 擧動 보소. 두 발길로 문턱 밀고 明紬 줄 손에 들고 힘대로 당기더니, 슬프다 이럴 적에 端宗大王 昇遐하니, 福得놈 擧動 보소. 아무리 당기어도 아무 말씀 안 계시니, 福得이 생각하되, 개는 丁寧 죽었는데 어찌 말씀 없으신고. 怪異하여 門을 여니, 端宗大王 모양 보소. 죽은 모양 말하자니, 애고 차마 말 못 할세. 福得이놈 擧動 보소. 아무리 시켰으되 제 손으로 당겼으니, 제가 어찌 살까 보냐. 언덕 위에 올라서서 一聲長號 痛哭하고, 크게 외쳐 하는 말이 寧越 사람 들어 보소. 端宗大王 昇遐했소. 端宗大王 昇遐했소. 百丈 넘는 언덕 위에 왈칵 뛰어 떨어지니, 福得이 죽은 모양, 돌 한 덩이 구른 듯이 둥글둥글 구을러서 淸冷浦 江가까지 구을러 내려올 제 그 모양이 오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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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골(頭骨)이 깨어지고 수족(手足)이 부러지니, 열 궁녀(宮女)의 거동(擧動) 보소. 단종대왕(端宗大王) 사체(死體) 안고 굿뱀같이 우는 소리 구곡간장(九曲肝腸) 다 녹는다. 명주(明紬) 줄을 벗겨 놓고, 목을 만져 우는 말이 애고 답답 대왕(大王)님요. 이것이 웬일이오 죽을 작정(作定)하신 줄을 우리들이 알았으면, 우리 열이 다 죽어도 대왕(大王)님을 말려 내지.애고 답답 우리 대왕(大王), 이러할 줄 몰랐었소. 어질고 착한 임금, 십칠세(十七歲)에 죽단 말가. 애고 답답 어이 할꼬. 세조대왕(世祖大王) 몹시도다. 이 조카를 이리 하고 무슨 복(福)을 받을쏜가. 거동(擧動)은 참혹(慘酷)하고 경상(景狀)은 가련(可憐)하다. 저 궁녀(宮女)의 거동(擧動)보소. 목이 메어 다 못 울고, 열 궁녀(宮女) 하는 말이 아무리 아녀자(兒女子)나 심장(心腸)이야 다를쏘냐. 어질고도 어진 임금 청랭포(淸冷浦) 오신 후(後)에 이 임금 모시고저 두 해를 지냈으니, 인정(人情)인들 없을쏘냐. 군신지간(君臣之間) 그렇거늘, 남녀(男女)가 다를쏘냐. 슬프도다 우리들도 이럴 적에 함께 죽어 지하(地下)에 돌아가서 단종(端宗大王) 모셨으면, 문종대왕(文宗大王) 뵈옵기가 부끄럽지 아니하리. 열 궁녀(宮女) 같이 나와 바위 위에 올라서서 녹의홍상(綠衣紅裳) 좋은 단장(丹粧) 아주 펄펄 날려지니, 삼월동풍(三月東風) 시냇가에, 낙화분분(洛花紛紛)이 아닌가. 이로 두고 볼작시면, 궁녀(宮女) 열들 궁노(宮奴) 하나 충신열녀(忠臣烈女) 이 아닌가. 그 후(後)로 바위 이름 낙화암(洛花巖) 되었구나. 슬프고 애닯도다. 단종(端宗) 왕비(王妃) 송씨부인(宋氏夫人) 단종(端宗) 소문(所聞) 들었으면, 궁녀(宮女)같이 아니 죽고 무슨 영화 바라고서 팔십세를 산단 말가. 저 궁녀(宮女)를 생각하니, 송왕비(宋王妃)가 부끄럽네. 실낱같은 그 목숨을 알뜰히도 보전(保全)하니, 가엾고도 한심(寒心)하다. 이제야 생각하니, 반송정(盤松亭)에 모인 신하(臣下) 복위(復位)한다 하였으나, 복위(復位)는 못하고서, 다만 몇 해 더 살려고 목숨만 생각하네. 단종대왕(端宗大王) 혼령(魂靈) 보소. 백마(白馬) 한 필(匹) 높이 타고 복득(福得)이를 정마(征馬)들려 영월(寧越) 읍내(邑內) 지나갈 제, 영월(寧越) 백성(百姓) 묻는 말이 대왕(大王) 행차(行次) 어디 가오. 대왕(大王)님 대답(對答)하되, 태백산(太白山) 구경(求景) 간다. 단종(端宗) 승하(昇遐)하신 말씀 한양(漢陽) 성중(城中) 들어가니, 세조대왕(世祖大王) 거동(擧動) 보소. 영월관(寧越官)에 관자(關子)하되, 단종(端宗) 시체(屍體) 거둔 놈은 삼족(三族)을 멸(滅)하리라. 이 말을 들은 후(後)에 어느 누가 거두리오. 제 몸 하나 죽는 것도 범같이 겁(怯)내거든 하물며 삼족(三族)이야 말하여 무엇 하리. 가엽도다 단종대왕(端宗大王), 돌아가신 저 시체(屍體)가 청랭포(淸冷浦) 삼간(三間)집에 사오일(四五日)을 그저 있네. 장(壯)하고도 장(壯)하도다. 엄흥도(嚴興道)의 충성(忠誠)이여. 엄흥도(嚴興道)는 누구던가. 영월(寧越) 호장(戶長) 아전(衙典)이라. 이런 충신(忠臣) 또 있는가. 삼족(三族) 형벌(刑罰) 겁(怯) 안 내고 대담(大膽)하고 나서면서 신민(臣民) 되고 그저 있냐. 염습일복(殮襲一服) 염포(殮布) 등을 낱낱이 갖춰 두고, 관가(官家)에 들어가서 원(員)에게 하는 말이 영월부사(寧越府使) 거동(擧動) 보소. 묵묵부답(黙黙不答) 하고 앉아 눈물만 흘리고서 대답이 없었거늘, 엄충신(嚴忠臣) 하는 말이 소인(小人)이 치러 가오. 구족(九族)을 멸(滅)한대도 신민(臣民) 도리(道理) 어이 하리. 하직(下直)하고 일어서니, 영월(寧越) 부사(寧越) 거동 보소. 버선발로 뛰어 나와 엄호장(嚴戶長)의 손을 잡고, 치사(致辭)하고 하는 말이 장(壯)하도다 엄호장(嚴戶長)아, 자네 어찌 호장(戶長)으로 충신(忠臣) 열사(烈士) 마음 가져 내 못할 일 자네 하나. 놀랍도다 엄충신(嚴忠臣)아, 패인관(佩印官) 된 내 마음에 자네 보기 부끄럽다. 충신(忠臣) 열사(烈士) 효자(孝子) 열녀(烈女), 지체 상관(相關) 없는 거라. 충신(忠臣) 충신(忠臣) 엄충신(嚴忠臣)아, 부디부디 조심(操心)하여 청산일곡(靑山一曲) 아무 데나 안장(安葬)이나 잘 하시오. 엄충신(嚴忠臣) 거동(擧動) 보소. 염습등물(殮襲等物) 등에 지고 청랭포(靑冷浦) 배를 타고 절벽(絶壁)에 올라가서 시체(屍體) 방(房)에 들어가니, 참혹(慘酷)하고 가련(可憐)하다. 엄충신(嚴忠臣) 거동(擧動) 보소.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문턱을 두드리며 애고 애고 대왕(大王)님요, 춘추(春秋)가 십칠세(十七歲)에 구중궁궐(九重宮闕) 어디 두고, 어느 뉘게 전장(傳掌)하고, 청랭포(靑冷浦) 절벽(絶壁) 위에 삼간(三間) 집 혼자 계셔, 두 해를 고생(苦生)타가 이 모양(貌樣) 하였으니, 이것이 웬일이오. 문종대왕(文宗大王) 계실 적에 천하(天下) 없는 귀(貴)한 아들 이 모양 되실 줄을 문종대왕(文宗大王) 몰랐던가. 권왕비(權王妃) 계실 때에 조선(朝鮮)없는 중(重)한 아들 이 지경(地境) 되실 줄을 권왕비(權王妃) 몰랐던가.
애닯도다 세조대왕(世祖大王) 그 형(兄)님을 보더라도 조카 하나 이리 할까. 우리는 아전(衙典)이되 숙질간(叔姪間)에 이렇쟎소. 어허어허 참혹(慘酷)하다. 볼수록 참혹(慘酷)하다. 볼수록 가련(可憐)하다. 구중궁궐(九重宮闕) 대궐(大闕) 안에 편안(便安)히 계시다가 팔(八)․구십(九十)을 산다 해도 돌아갈 때 가련(可憐)커든, 하물며 대왕(大王)님은 사사(事事)를 생각하니, 기막혀서 내 죽겠네, 애고애고 슬프도다. 비온 듯이 흐른 눈물 눈물 가려 염(殮) 못 할세. 임금 옥체(玉體) 염습(殮襲)할 제 용포(龍袍) 없어 어이하리. 용포(龍袍)를 지으려니 법수(法數) 몰라 못 짓겠네. 공단(貢緞) 비단(緋緞) 어디 두고 무명 베로 염(殮)을 하며, 대여(大輿) 소여(小輿) 어디 두고 칠성판(七星板)에 혼자 지네. 금등(金鐙) 옥등(玉鐙) 어디 두고 죽사마(竹駟馬)도 간데 없다. 엄호장(嚴戶長)의 거동(擧動) 보소. 육진(六鎭) 장포(長布) 줄을 걸어 두 어깨에 혼자 메고 청랭포(靑冷浦) 절벽(絶壁)길로 근근(僅僅)히 내려와서, 산곡(山谷)으로 들어가니, 이 때가 어느 때뇨. 정축년(丁丑年) 시월(十月)이라. 적설(積雪)이 만산(滿山)하니 어느 곳에 눈 없으리. 이리 가도 눈 천지(天地)요, 저리 가도 눈 천지(天地)라. 시체(屍體)는 등에 지고 괭이는 손에 들고, 오금이 빠진 눈에 걸음을 지체(遲滯)하랴. 두 자국 옮겨 가니, 엄동설한(嚴冬雪寒) 눈천지(天地)에 등에는 땀이 나고, 이마에는 서리 친다. 이리저리 신고(辛苦)하여 능(陵)골 뒤를 올라가니,
■ 995004 남궁광석 ■
하느님이 도우신가, 산신령(山神靈)이 도우신가. 난데없이 노루 한 필(匹) 그 곳에 누웠다가, 사람 옴을 놀라서 벌떡 일어 피(避)해 가니, 엄흥도(嚴興道)의 거동(擧動) 보소. 지고 오는 대왕(大王) 시체(屍體) 눈 위에 벗어 놓고 노루 있던 터를 보니, 금잔디를 받쳤거늘, 그 터를 의지(依支)하여 괭이로 광중(壙中)하여 시체(屍體)를 모셔 내어 하관(下棺)을 하올 적에 분금(分金) 좌향(坐向) 누가 보리. 봉분(封墳)을 지을 적에 눈으로 어이하리. 눈 밑을 헤치고서 여기 파고 저기 파고, 한 움큼 한 삼치로 개미 묘(墓) 내듯이 근근(僅僅)히 모아다가 사발만큼 묻어 놓고, 천수(天水)나 피(避)케 하니, 한(限)없는 이 설굴(雪窟)에 묻은 일을 생각하니, 그만하기 장(壯)하도다. 엄충신(嚴忠臣) 아녔더면, 어느 누가 하자 하리. 아무려나 놀랍도다. 흙으로 성분(成墳)하니 몇 움큼 긁은 흙을 그 공덕(功德)을 의론(議論)컨대 한줌 한줌 충신(忠臣)이요, 한줌 한줌 고생(苦生)이라. 이리저리 묻은 후(後)에 집으로 돌아와서 젊은 아내 어린 자식(子息) 업고 지고 앞세우고, 부지거처(不知去處) 도망(逃亡)하니, 광대(廣大)한 천지간(天地間)에 어디 간들 못 살리오. 충성(忠誠)이 지극(至極)하니 하느님이 감동(感動)하사 십사대(十四代)를 지내 와서, 숙종대왕(肅宗大王) 등극후(登極後)에 단종사기(端宗史記) 보시다가 탄식(歎息)하고 하는 말이 우리 국가(國家) 큰 폐단(弊端)이 골육상쟁(骨肉相爭) 참혹(慘酷)하다. 영월관(寧越官)에 관자(關子)하자 단종릉(端宗陵)을 다시 하되 건원릉(建元陵)과 같이 하고, 삭망(朔望)마다 참봉(參奉) 내어, 대궐(大闕) 짓고 분향(焚香)하니 영월(寧越)땅 그 능(陵)일세. 장릉(莊陵)이 삼백리(三百里)에 왕비릉(王妃陵)은 어디던고, 양주(楊洲)땅 삼십리(三十里)에 사릉(思陵)이 그 능(陵)이라. 장(壯)할씨고 숙종대왕(肅宗大王) 엄흥도(嚴興道)의 자손(子孫) 찾아 벼슬 시켜 녹(祿)을 주어 엄흥도(嚴興道)의 종손(宗孫)으로 장릉(莊陵) 참봉(參奉) 시켰구나. 좋은 돌 가려다가 거울같이 갈아 내어 주홍(朱紅) 대자(大字) 새겼으니, 조선(朝鮮) 충신(忠臣) 호장공(戶長公)의 엄흥도(嚴興道)의 충절비(忠節碑)라. 영월(寧越) 읍내(邑內) 드가는 데 이렇듯이 세워 놓고 천추(千秋)에 유전(遺傳)하니, 그 후(後)로 엄씨(嚴氏)들이 자자손손(子子孫孫) 양반(兩班) 되어 지금까지 혁혁(赫赫)하니, 이런 일을 볼작시면, 장(壯)하도다 엄호장(嚴戶長)은 충심(忠心) 하나 가졌다가,
그 자손(子孫)의 시조(始祖) 되어 족보(族譜)에 으뜸일세. 슬프다 단종(端宗) 사적(事績) 다 하자니 눈물 나네. 사육신(死六臣)은 죽었으나, 생육신(生六臣)은 어디 갔나. 김시습(金時習)은 중이 되고, 조여(趙旅)는 낚시 들고 거렁물에 고기 잡고, 이맹전(李孟專)은 소를 몰고
심산(深山) 궁곡(窮谷) 들어가서 밭갈기 세월(歲月)이요. 남효온(南孝溫)배를 타고 범범중류(泛泛中流) 높이 떠서 노중련(魯仲連)을 본(本)을 받아 동해(東海)를 밟았는가. 성담수(聖譚壽)는 집에 와서 평생(平生)을 탈망(脫網)으로 두문불출(杜門不出) 들어않아 이웃 출입(出入) 아니 하고, 원호(元號)는 돌아올 때 가련정(可憐亭)에 불지르고, 망혜(芒鞋)를 발에 신고 죽장(竹杖)을 손에 잡고, 압록강(鴨綠江) 건너 서서 부지거처(不知去處) 간 곳 없다. 세상(世上) 사람 공론(公論) 마라. 생육신(生六臣) 여섯 신하(臣下) 사육신(死六臣) 갔다 해도, 이 가사(歌辭) 짓는 나는 지어 놓고 생각하니, 아마도 생육신(生六臣)의 충절(忠節)을 의론(議論)컨대, 사육신(死六臣)과 같을쏜가. 사육신(死六臣)의 사적(事蹟) 보면, 방가위지충신(方可謂之忠臣)이요, 생육신(生六臣)의 사적(事蹟) 보면, 불가위지충신(不可謂之忠臣)이라. 생육신(生六臣)의 허물 보면, 단종(端宗) 복위(復位) 하려다가 단종(端宗)이 승하(昇遐)하면, 단종(端宗) 시체(屍體) 거두어서 인산(因山)은 못할망정 장사(葬事)나 할 것인데, 무슨 마음 다시 먹고 산지사방(散之四方) 흩어지니, 단종(端宗) 시체(屍體) 안장(安葬) 후(後)에, 단단히 여섯 신하(臣下) 일시(一時)에 함께 죽어, 지하(地下)로 좇을 것을 어찌하여 못 죽었나. 그 일을 생각하면 사육신(死六臣)에 비(比)할쏜가, 옛날에 전횡(田橫)이는 한패공(漢沛公)을 마다 하고, 오백인(五百人)을 거느리고 해도중(海島中)에 있다가, 전횡(田橫)이는 오백명(五百名) 그 사람이 일시(一時)에 죽었으니, 이런 사기(史記) 보더라도 생육신(生六臣)이 무엇인가. 장(壯)하도다 권왕비(權王妃)여, 청춘(靑春)에 죽은 혼령(魂靈) 어이 그리 신령(神靈)한가. 세조대왕(世祖大王) 꿈 가운데 현몽(顯夢)하고 하신 말씀, 숙숙숙숙(叔叔叔叔) 이 숙숙(叔叔)아 임금이 무엇이며 나라가 무엇인고. 조카가 임금이면, 임금 삼촌(三寸) 나쁘더냐. 옛적에 무왕(武王)님이 어린 아들 두고 죽어 국사(國史)가 창망(蒼茫)커늘, 주공(周公)이 삼촌(三寸)으로 그 조카를 업고 않아, 제후(諸侯)에게 조회(朝會)마다 국정(國政)을 돌보다가, 어린 조카 장성후(長成後)에 천자위(天子位)에 모셨으니, 주공(周公)은 어찌하여 형(兄)님도 생각하고 조카도 애중(愛重)하여 그 조카를 그랬거든, 숙숙(叔叔)은 무슨 마음 저다지 험악(險惡)하여 그 조카를 죽이어서, 골육상쟁(骨肉相爭) 한다 한들, 그렇게도 상쟁(相爭)할까. 내 아들 네 죽이니, 네 아들 내 죽인다. 일어서서 하신 말씀, 숙숙(叔叔)아 더럽도다. 낮에다가 침 뱉으니, 그 침이 떨어져서 백설(白雪)같이 피어져서, 방울마다 점풍하여, 아무리 약(藥)을 쓴들, 원혼(冤魂)으로 맺힌 침이 약(藥) 쓴다고 고칠쏘냐. 임종(臨終)토록 못 고쳤네. 세조대왕(世祖大王) 깜짝 놀라 깨달으니 꿈이로다. 잠을 깨어 일어 앉아 몽사(夢事)를 생각하니, 꿈하고도 악몽(惡夢)이라. 정신(精神)이 아찔하여 심신(心神)이 불평(不平)하여 등촉(燈燭)을 밝혀 놓고 역력(歷歷)히 생각하니, 권왕비(權王妃)의 모진 혼령(魂靈). 촉하(燭下)에 앉았더니 이윽고 궁문전(宮門前)에, 사자(使者)가 급(急)히 와서 황황(遑遑)하게 알링 말이, 세자(世子) 동궁(東宮) 위급(危急)하오. 창졸간(倉卒間)에 나신 병환(病患) 시각(時刻)이 바쁘외다. 세조대왕(世祖大王) 창황(蒼黃)하여 대로(大奴)하여 하는 말씀, 약(藥) 쓴다고 못 살리라. 악귀(惡鬼)가 침범(侵犯)하니, 살기를 바라리오. 이 때에 세자(世子) 동궁(東宮), 춘추(春秋)가 이십(二十)이라. 아들은 두었으나, 요수(夭壽)하기 원통(怨痛)하다.
■ 970025 이경희 ■
그럭저럭 날이 새니 世祖大王(세조대왕) 憤(분)을 내어 軍兵(군병)을 재촉하여 秋霜(추상)같이 號令(호령)하되, 顯陵(현릉)에 들어가서 權王妃(권왕비)의 능을 파고 屍體(시체) 든 棺(관)을 내어 漢江水(한강수)에 밀쳐 너니, 靈魂烈魄(영혼열백) 놀랍도다. 널이 서서 올라오니 이 擧動(거동) 求景(구경)하고 어느 누가 겁 안 낼까. 世祖大王(세조대왕) 吩咐(분부)하되, 宗廟(종묘)에 들어가서 神主(신주)까지 들어다가 널과 같이 띄어 놓아라. 어느 宮官(궁관) 拒逆(거역)하리. 星火(성화)같이 쫓아가서 宗廟文(종묘문)을 열고 보니 神主(신주)가 돌아 앉네. 壯(장)하도다 權王妃(권왕비)여, 놀랍도다 權王妃(권왕비)여, 어이 그리 猛烈(맹렬)하며 어이 그리 神靈(신령)한고. 生時(생시)에도 그렇더니 死後(사후)에도 無心(무심)챦네. 靑天白日(청천백일) 밝은 날에 雷聲(뇌성) 소리 大端(대단)하다. 아무리 世祖大王(세조대왕) 英傑(영걸)하고 英傑(영걸)한들 幽明(유명)이 懸殊(현수)하니, 王妃(왕비) 魂靈(혼령) 못 이기어 마음에 크게 놀라 다시 下人(하인) 吩咐(분부)하여, 宗廟(종묘) 門(문)을 다시 닫고 棺(관)을 건져 모셔다가 陵墓(능묘)를 還封(환봉)하니, 아마도 權王妃(권왕비)는 生前(생전) 死後(사후) 두고 보면 世上(세상)에 드무시다. 堯(요) 임금 때 나셨더면 娥皇(아황) 女英(여영) 부럽쟎고, 文王(문왕) 世界(세계) 나셨더면 太任(태임) 太姒(태사) 못할쏜가. 世祖大王(세조대왕) 하신 일이 八十(팔십) 鄕愁(향수) 어이 하리. 國事(국사)도 蒼茫(창망)하다. 戊子年(무자년) 九月(구월)달에 世祖大王(세조대왕) 昇遐(승하)하니, 春秋(춘추)가 얼마신고, 五十二(오십이)가 分明(분명)하다. 七十里(칠십리) 楊州(양주) 땅에
光陵(광릉)이 그 陵(능)이오. 王妃陵(왕비능)은 어디던고, 光陵(광릉)과 한 陵(능)이라. 德宗(덕종)은 追崇(추숭)하니, 德宗王妃(덕종왕비) 뉘시던고, 淸州(청주) 韓氏夫人(한씨부인)이오. 府院君(부원군)은 뉘시던고, 淸州(청주) 사람 韓確(한확)이라. 睿宗大王(예종대왕) 登極(등극)하니, 그 王妃(왕비)는 뉘시던고, 淸州韓氏夫人(청주한씨부인)이라. 府院君(부원군)은 누구던고, 淸州(청주) 사람 韓明澮(한명회)라. 둘째 王妃(왕비) 뉘시던고, 淸州韓氏夫人(청주한씨부인)이오. 府院君(부원군)은 뉘시던고, 淸州(청주) 사람 韓伯倫(한백륜)이. 睿宗大王(예종대왕) 史記(사기) 보소. 戊子年(무자년)에 登極(등극)하여. 一年(일년)을 病患(병환)으로, 服藥(복약)만 하시다가, 己丑年(기축년) 十二月(십이월)에 二十(이십)에 昇遐(승하)하니, 靑春(청춘)이 아깝도다. 國事(국사)가 滄茫(창망)하여, 國喪(국상)만 자주 난다. 高陽(고양) 땅 三十里(삼십리)에 昌陵(창릉)이 그 陵(능)이오. 王妃陵(왕비능)은 어디던고, 坡平(파평) 땅 六十里(육십리)에 恭陵(공릉)이 그 陵(능)이오. 둘재 王妃(왕비) 어디던고, 高陽(고양) 땅 三十里(삼십리)에 昌陵(창릉)과 한 陵(능)이라. 成宗大王(성종대왕) 登極(등극)하니, 그 王妃(왕비)는 뉘시던고, 淸州韓氏夫人(청주한씨부인)이오. 府院君(부원군)은 누구던고, 淸州(청주) 사람 韓明澮(한명회)라. 둘째 王妃(왕비) 뉘시던고, 坡平尹氏夫人(파평윤씨부인)이오. 府院君(부원군)은 누구던가, 坡平(파평) 사람 尹壕(윤호)로다. 韓明澮(한명회)의 福力(복력) 보소. 따님 둘을 나았다가 맏따님은 길러 내어 睿宗(예종) 王妃(왕비) 되시었고, 둘째 따님 길러 내어 成宗(성종) 王妃(왕비) 되었으니, 따님 福力(복력) 異常(이상)하다. 따님이 王妃(왕비)되기 하나도 어렵거든, 하물며 韓明澮(한명회)는, 王妃(왕비) 둘을 나았는가. 유히유사 좋은 꿈을 어이 그리 잘 꿨던가. 우리 朝鮮(조선) 두고 보면, 府院君(부원군) 되는 이가 몇몇이 되었는고. 한 임금의 府院君(부원군)도 되기가 어렵거든, 하물며 두 임금의 府院君(부원군)이 되었으니, 그 때 호강 오죽 하리. 睿宗(예종) 成宗(성종) 두 임금이 寸數(촌수)를 헤아리면, 睿宗(예종)은 三寸(삼촌)되고, 成宗(성종)은 조카로다. 德宗(덕종) 子弟(자제) 分明(분명)하니, 德宗(덕종) 成宗(성종) 父子(부자)로다. 德宗(덕종)은 伯氏(백씨) 되고 睿宗(예종)은 季氏(계씨)로다. 睿宗(예종) 王妃(왕비) 成宗(성종) 王妃(왕비) 두 王妃(왕비) 寸數(촌수) 보면, 親家(친가)로 兄弟(형제) 되고, 媤家(시가)로 叔姪(숙질)일세. 國家(국가) 婚事(혼사) 이러하나, 私家(사가) 집은 못 하리라. 國運(국운)이 否塞(비색)하니, 國喪(국상)이 또 나신다. 甲寅年(갑인년) 十二月(십이월)에 成宗大王(성종대왕) 昇遐(승하)하니, 春秋(춘추)가 얼마신고, 三十八歲(삼십팔세) 可憐(가련)하다. 廣州(광주) 땅 三十里(삼십리)에 宣陵(선릉)이 그 陵(능)이라. 坡州(파주) 땅 六十里(육십리)에 王妃陵(왕비능)은 順陵(순릉)이라. 둘째 王妃(왕비) 어디던고, 宣陵(선릉)과 한 陵(능)이라. 成宗(성종) 다음 燕山主(연산주)는 十日年(십일년)을 登極(등극)하니, 淫行(음행)이 不測(불측)키로 喬洞(교동)에 내쳤도다. 燕山主(연산주) 그 配位(배위)는 居昌愼氏夫人(거창신씨부인)이오. 愼承善(신승선)의 딸이로다. 楊州(양주) 땅 海等面(해등면)에 燕山(연산) 무덤 거기 있고, 楊州(양주) 땅 天藏山(천장산)에 夫人(부인) 무덤 거기 있고. 中宗大王(중종대왕) 反正(반정)하여 丙寅年(병인년)에 登極(등극)하니, 그 王妃(왕비)는 뉘시던고, 居昌愼氏夫人(거창신씨부인)이요, 府院君(부원군)은 뉘시던고, 居昌(거창) 사람 愼守勤(신수근)이. 둘째 王妃(왕비) 뉘시던가, 坡平尹氏夫人(파평윤씨부인)이오. 府院君(부원군)은 뉘시던가, 坡平(파평) 사람 尹汝弼(윤여필)이. 셋째 王妃(왕비) 뉘시던고, 坡平尹氏夫人(파평윤씨부인)이오. 府院君(부원군)은 누구던고, 坡平(파평) 사람 之任(지임)이라. 이 때가 어느 땐가, 己卯士禍(기묘사화) 惹端(야단)일세. 名賢烈士(명현열사) 죽일 때라. 趙靜庵(조정암) 李陰崖(이음애)는 鐵網(철망)으로 얽어다가 禁府(금부)에 孤魂(고혼) 되고, 이선봉 조회곡은 鐵槌(철퇴)에 맞아 죽고, 그러자 여러 名賢(명현) 千里遠程(천리원정) 定配(정배) 가서, 配所(배소)에서 죽었도다. 지금까지 伸寃(신원) 못해, 忠魂烈魄(충혼열백) 쌓인 魂(혼)이 泰山(태산)같이 높아 있고, 河海(하해)같이 깊었도다. 이것이 웬일인고. 骨肉相爭(골육상쟁) 우리 나라 父子兄弟(부자형제) 叔姪間(숙질간)에 서로 죽여 慘酷(참혹)커든, 하물며 君臣間(군신간)에 남남끼리 서로 모여, 임금이나 臣下(신하)이나 尊卑貴賤(존비귀천) 차려 놓고, 옳은 말 하는 臣下(신하) 逆律(역률)로 다스리고, 곧은 말 하는 臣下(신하) 削奪官職(삭탈관직) 하는구나. 己卯士禍(기묘사화) 볼작시면, 慘酷(참혹)하고 可憐(가련)하다. 漢(한)나라 桓靈(환령) 때도 士禍(사화)가 일어나서 杜密(두밀), 王壯(왕장), 孟賓(맹빈) 等(등)도 寃痛(원통)하게 죽었으니, 임금이 不明(불명)하여 宦者禍(환자화)가 일어나서, 國家(국가)가 亡(망)케 되니 임금의 탓이로다. 自古及今(자고급금) 두고 보면, 宦者(환자) 小人(소인) 因緣(인연)하여 慘酷(참혹)하게 죽는 것은, 中宗大王(중종대왕) 不敏(불민)하여 宦者(환자)에게 惑(혹)한 일과 小人(소인)에게 속는 일을
■ 970024 윤여선 ■
歷歷(역력)히 생각하니. 八年政事(팔년정사) 하는 것이 名賢(명현)만 죽였도다. 슬프다 歲月(세월)이여 國喪(국상)이 또 나셨다. 甲辰年(갑진년) 十二月에 中宗大王(중종대왕) 昇遐(승하)하니, 春秋(춘추)가 얼마신고, 五十七이 分明(분명)하다. 廣州(광주) 땅 二十里(이십리)에 靖陵(정릉)이 그 陵(능)이오. 그 王妃(왕비) 愼氏陵(신씨능)은 楊州(양주) 땅 삼십리에 溫陵(온릉)이 그 陵(능)이라. 둘째 王妃(왕비) 尹氏陵(윤씨능)은 高陽(고양) 땅 이십리에 禧陵(희릉)이 그 陵(능)이오. 셋째 王妃(왕비) 尹氏陵(윤씨능)은 楊州(양주) 땅 삼십리에 泰陵(태능)이 그 陵(능)이라. 仁宗大王(인종대왕) 登極(등극)하니 그 王妃(왕비)는 뉘시던고. 羅州朴氏夫人(나주박씨부인)이오. 府院君(부원군)은 뉘시던가. 羅州(나주) 사람 朴墉(박용)이라. 슬프다 國家(국가)이여. 仁宗大王(인종대왕) 史記(사기) 보소. 甲辰年(갑진년)에 登極(등극)하여 乙巳年(을사년) 七月(칠월)에 三十一(삼십일)에 昇遐(승하)하니. 政治(정치)는 姑捨(고사)하고 靑春(청춘)이 아깝도다. 高揚(고양) 땅 三十里(삼십리)에 仁宗陵(인종능)은 孝陵(효능)이라. 王妃陵(왕비능)도 한 陵(능)이라. 明宗大王(명종대왕) 登極(등극)하니 그 王妃(왕비)는 뉘시던고. 靑松沈氏夫人(청송심씨부인)이오. 府院君(부원군)은 누구던고, 靑松(청송) 사람 沈鋼(심강)이라 明宗大王(명종대왕) 登極後(등극후)에, 三年(삼년)을 憂患(우환)으로
政事(정사)를 못 하시고 府院君(부원군)이 攝政(섭정)하니, 朝廷(조정)에 稱冤(칭원) 있고, 百姓(백성)은 塗炭(도탄)이라. 國運(국운)이 어떨는지. 國喪(국상)만 자주 난다. 丁卯年(정묘년) 六月(육월)달에 明宗大王(명종대왕) 昇遐(승하)하니, 春秋(춘추)가 얼마신가. 三十四(삼십사)가 分明(분명)하다. 楊洲(양주) 땅 二十里(이십리)에 康陵(강릉)이 그 陵(능)이오. 王妃陵(왕비능)도 한 陵(능)이라. 어찌하여 우리 國家(국가) 嬦(수)하신 이 그리 없소. 宣祖大王(선조대왕) 登極(등극)하니 그 王妃(왕비)는 뉘시던고, 羅州朴氏夫人(나주박씨부인)이오. 府院君(부원군)은 뉘시던고, 羅州(나주) 사람 應順(응순)이라. 둘째 王妃(왕비) 뉘시던고, 延安金氏夫人(연안김씨부인)이오. 府院君(부원군)은 뉘시던고, 延安(연안) 사람 悌男(제남)이라. 國運(국운)은 沈滯(침체)하나 忠臣烈士(충신열사) 極盛(극성)하다. 善治(선치)는 못 하시되 百姓(백성)은 無事(무사)터니, 이 때가 어느 땐가, 壬辰年(임진년) 三月(삼월)이라. 國運(국운)이 衰盡(쇠진)한가, 百姓(백성)이 不幸(불행)턴가, 亂離(난리)가 나는구나. 亂離(난리)는 어디 났나. 日本(일본)서 나온 亂離(난리) 三兆八億(삼조팔억) 다 나온다. 大將軍(대장군)은 누구던가, 小西(소서)와 淸正(청정)이라. 中軍將(중군장)은 누구던가, 漢我服(한아복)과 成終奴(성종노)다. 謀士(모사)는 누구던가, 平秀吉(평수길)이 第一(제일)이라. 成終奴(성종노)와 漢我服(한아복)은 百萬(백만) 軍兵(군병) 거느리고, 東萊(동래)서 下陸(하륙)하여 彦陽(언양) 梁山(양산) 消滅(소멸)하고, 晋州(진주)로 들어가서 丹城(단성) 地境(지경) 屠戮(도륙)하고 矗石樓(촉석루) 坐定(좌정)하니, 朝鮮(조선) 壯士(장사) 三壯士(삼장사)가 누구누구 三壯士(삼장사)ㄴ고. 金誠一(김성일) 柳天日(유천일)과 崔慶會(최경회) 세 사람이 그 때의 三壯士(삼장사)라. 三壯士(삼장사)의 擧動(거동) 보소. 晋州(진주)를 保全(보전)타가 倭陣(왜진)에 싸였거늘 四面(사면)을 돌아 보니, 千兵萬馬(천병만마) 뒤끓는데 무슨 재주 그리 있어 날고 기는 저 將帥(장수)를 셋이 들어 이길손가. 할 수 없이 하는 말이 우리 셋이 壯士(장사)로되, 降服(항복)하기 怨痛(원통)하여 죽기로 作定(작정)하니, 國事(국사)로 죽는 것이 죽어도 堂堂(당당)하다. 술盞(잔)을 서로 들고 한 盞(잔)씩 마신 後(후)에 글 두 句(귀)를 지었으니, 그 글에 하였으되 矗石樓上三壯士(촉석루삼상장사), 一盃笑指長江水(일배소지장강수) 長江萬里流滔滔(장강만리유도도), 波不流兮魂不收(파불류혜혼불수) 그 글을 지어 놓고, 壯士 셋이 죽었었네. 論介(논개)는 누구던가, 晋州(진주) 妓生(기생) 論介(논개)로다. 崔慶會(최경회)의 妾(첩)이 되어 節槪(절개) 있게 섬기더니, 崔慶會(최경회) 죽은 後(후)에 烈氣(열기)만 남았구나. 이 때 마침 倭將(왜장)들이 矗石樓(촉석루)에 모여 앉아, 論介(논개)의 人物(인물) 듣고, 論介(논개)를 불러 들여, 술을 먹고 춤을 출 제, 論介(논개)의 擧動(거동) 보소. 한 손은 終奴(종노) 잡고 한 손은 我服(아복) 잡고, 셋이 서로 손길 잡고 欄干(난간)으로 돌아갈 제, 萬頃蒼波(만경창파) 저 江(강)물에 아주 셋이 풍덩 빠져 내川字(천자)로 누웠으니, 成終奴(성종노)와 漢我服(한아복)이 두 壯士(장사)의 擧動(거동) 보소. 몸을 떨쳐 솟으려고 물결을 밀치고서 머리를 들고 서니, 論介(논개)의 擧動(거동) 보소. 둘이 손길 점점 잡고 이를 갈고 하는 말이 죽기 前(전)에 못 놓리라.
셋이 함께 죽었으니, 忠烈(충렬) 마음 아니오면 범 잡은 저 壯士(장사)를 纖纖弱質(섬섬약질) 兒女子(아녀자)가 두 壯士(장사)를 안고 죽네. 壯(장)하도다 저 妓生(기생)이 一個(일개) 妓生(기생) 한 몸으로 一邊(일변)은 爲國(위국)하고 一邊(일변)은 家長(가장) 위해, 二八靑春(이팔청춘) 좋은 時節(시절) 水中孤魂(수중고혼) 되었으니, 烈女(열녀) 忠臣(충신) 兼(겸)했도다. 郭望憂堂(곽망우당) 將略(장략) 보소. 二萬(이만) 軍兵(군병) 거느리고 火旺山(화왕산)에 陣(진)을 치고 倭陣(왜진)을 막으려고, 성포성에 불을 놓아 數千兵(수천병) 죽였으니, 그 將略(장략)이 오죽한가. 壯(장)할시고 趙重峯(조중봉)은 五十齮(오십기)를 거느리고 錦山臺(금산대)에 陣(진)을 치고 勇猛(용맹) 있는 申壯士(신장사)는 六千(육천) 兵馬(병마) 거느리고 彈琴臺(탄금대)에 陣(진)을 치고, 義士(의사) 많은 權化山(권화산)은 四千兵(사천병)거느리고 치산개에 陣(진)을 치고 忠誠(충성) 있는 鄭經世(정경세)는 六千兵(육천병)을 거느리고 三千(삼천) 兵馬(병마) 거느리고 南漢山城(남한산성) 陣(진)을 치고 忠武大將(충무대장) 李舜臣(이순신)은 거북船(선)을 모아 타고 細柳江(세류강)에 잡아 두고 죽기 모른 金仙原(김선원)은 火藥庫(화약고)에 불 지르고, 六韜三略(육도삼략) 虛封(허봉)이는 吉南將軍(길남장군) 되어있고, 활 잘 쏘는 孫武士(손무사)는 三千(삼천) 兵馬(병마) 거느리고 臨陣(임진)江(강)을 막아 있고 關雲長(관운장) 號令(호령) 보소. 몇 千年(천년)을 지났으되 神兵(신병)을 거느리고 倭兵(왜병)을 짓쳐 내니 倭將(왜장)의 擧動(거동) 보소, 인 보이는 壯士(장사) 나서 人命(인명)을 殺害(살해)하니. 이것이 神兵(신병)이라 卽時(즉시) 白馬(백마) 잡아 軍中(군중)에 피 뿌리니 邪不犯正(사불범정) 이 아닌가. 神兵(신병)이 달아난다 三兆八億(삼조팔억) 많은 軍士(군사) 八道(팔도)에 빈틈 없이 곳곳이 에워싸서 쌈 싸듯이 싸는구나. 敗(패)하느니 朝鮮(조선)이요 죽는 것이 朝鮮(조선)이라.
■ 990142 이동은 ■
아무리 생각한들, 하는 수가 全혀 없다. 漢陽(한양) 城中(성중) 屠戮(도륙)하니, 宣祖大王(선조대왕) 擧動(거동) 보소. 社稷(사직)이 危殆(위태)하고, 玉體(옥체)가 頃刻(경각)이라. 玉璽(옥새)만 품에 품고, 말 탈 餘暇(여가) 全혀 없어, 홑몸으로 달아나니, 大駕播遷(대가파천)이 아닌가. 南漢山城(남한산성) 올라갈 제, 朴漢南(박한남)의 등에 업혀 悵惘(창망)하게 달아날 제, 倭將(왜장)의 擧動(거동) 보소. 활을 메어 들어 쏘니, 朴漢南(박한남)의 귀가 맞아 활촉 끝에 떨어지니, 壯(장)할씨고 漢南(한남) 忠誠(충성) 忠誠(충성) 있는 朴漢南(박한남)아, 勇猛(용맹) 있는 朴漢南(박한남)아, 左右로 오는 화살 빗살같이 들어오니, 한 손으로 임금 업고, 한 손으로 살을 빼어 살을 꺽어 버렸으니, 그 勇猛(용맹)이 오죽할까. 이렇듯이 危急(위급)할 제, 計策(계책)을 누가 낼꼬. 鶴峯先生(학봉선생) 金誠一(김성일)과 鰲城大監(오성대감) 李恒福(이항복)이 두 사람이 서로 앉아, 議論(의론)하여 하는 말이, 이리 해서 아니 될세. 請兵(청병)을 가자스라. 大國으로 請兵(청병) 가세. 둘이 同行 함께 할새, 鴨綠江(압록강)을 건너가서 七百의 遼東(요동) 들에, 悵惘(창망)하게 들어갈 제, 저 倭人(왜인)의 擧動(거동) 보소. 請兵 길을 막으려고 道路(도로)에 羅列(나열)하니, 鶴峯(학봉) 鰲城(오성) 두 사람이 軍器(군기) 하나 없었으니, 赤手空拳(적수공권) 뿐이로다. 살 한 대만 맞았으면 별말 없이 죽겠구나. 낮으로는 山에 숨고 밤으로는 길을 가니,
이 景狀(경상)이 오죽할까. 밤으로 가자 하니, 地形을 分揀(분간)할까. 엿샛밤을 가다가서 하룻밤은 길을 잃고, 갈 곳을 찾지 못해 둘이 서로 마주 서서. 地形을 둘러 보나 피차에 처음이라. 내가 아나 네가 아나. 이렇듯이 애를 쓰니, 침침漆夜(칠야) 어두운데 茫茫大野(망망대야) 아득하다. 月落烏啼霜滿天(월락오제상만천)에 마침 멀리 바라보니, 一點燈火(일점등화) 불이 있어 사람을 引導(인도)하니, 그 불을 바라보고 天方地方 찾아가니. 平沙萬里(평사만리) 언덕 위에 一間 斗屋(두옥) 집이로다. 문 밖에 들어서서 主人을 물어보니, 主人이 문을 열고 내달아 하는 말이 손님네 어디 있소, 房으로 들어오소. 반갑고 즐거워라. 신을 벗고 들어앉아, 四面을 살펴보니, 가도 四壁(사벽) 뿐이로다. 主人을 다시 보니, 白髮(백발) 할미 老嫗(노구)로다. 李鰲城 하는 말이 主人 할미 말좀 묻소. 저 老嫗 對答하되 書房(서방)님네 말 들으오. 金鶴峯 하는 말이 이 곳이 어디메뇨. 萬里平沙 너른 들에 人家 하나 없는 곳에 할미 혼자 계시는가. 主人 老嫗 擧動 보소. 한숨 짓고 하는 말이, 天台山(천태산) 上上峰(상상봉)에 草屋三間(초옥삼간) 집을 짓고, 조그마한 딸 데리고 글공부 시키다가, 孫世(손세)가 不足하여 딸 하나 못 길러서 去年 봄에 죽고 없어, 火症(화증)이 절로 나서 집이나 옮겨 볼까, 이 곳을 새로 와서 이 집을 새로 짓고, 令監(영감) 하나 얻으려니 나의 나이 七十이라. 어느 令監 나를 보고 살자 할 이 뉘 있으리.
할 수 없어 혼자 있소. 내 일은 이러하나 書房님 두 兩班(양반)은 어느 곳에 살으시며, 무슨 所關(소관) 그리 急(급)해 침침 漆夜 깊은 밤에 從某至某(종모지모) 어디 가오. 金鶴峯 하는 말이 여기 온 우리들은 朝鮮國에 사옵던이, 國運이 不幸하여 猝地(졸지)에 亂離(난리)나서, 社稷(사직)이 危殆(위태)하고 國家가 亡케 되어, 헐수할수 全혀 없어 大國으로 請兵가오. 精誠(정성)이 不足한지 가는 길을 찾지 못해 路邊(노변)에서 彷徨(방황)터니, 불만 보고 왔삽더니, 不幸中 多幸으로 할미 같은 主人 만나 하룻밤을 留宿(유숙)하고, 길을 물어 가려니와 저녁 두 床 하여 주오. 主人 老嫗(노구) 이 말 듣고 불 켜 들고 밖에 나가 저녁 두 床 해 왔거늘, 달케 먹고 물러 앉아 主人 老嫗 데리고서 이윽토록 談話(담화)하니, 그 老嫗 하는 말이, 事事이 異常하고 말말이 有利하다. 天文도 能通(능통)하고, 地理도 昭然(소연)하다. 興亡盛衰 古今事를 恍惚(황홀)하게 말씀하니, 料量(요량)컨대 이 老嫗가 天台山에 있었다니, 麻姑仙女(마고선녀) 이 아닌가. 둘이 서로 議論터니, 主人 老嫗 하는 말이 書房님 들으시오. 朝鮮國에 이번 亂離 國運으로 난 것이라. 恨歎을 말으시고 請兵이나 잘 하시오. 일어나 籠門열고 畵像(화상) 하나 내어놓고, 저 老嫗 하는 말이 書房님은 畵像보소. 이 畵像이 어디 있나, 大國에 있는 거요. 大國 名將 李如松(이여송)의 生畵像을 그린 거요. 大國에 들어가서 天子를 보시거든, 畵像을 내어놓고 이 畵像과 같은 將帥(장수) 부디부디 달라 하오. 이 將帥를 못 얻으면 千萬壯士 있다해도 이번 亂離 쓸 데 없소. 畵像 값을 議論컨대, 銀子 三千 주고 가오. 李鰲城(이오성)과 金鶴峯(김학봉)이 둘이 서로 돌아보고, 行裝에 銀子 내어 三千金을 준 후에 畵像 받아 간수하고 木枕(목침) 베고 누웠으니, 여러 날 路毒(노독)으로 홀연히 잠이 온다. 한잠 자고 깨어 보니, 東方이 밝았구나. 자던 집도 간 데 없고 老嫗도 간 데 없다. 언덕 밑에 둘이 앉아 奇異하여 하는 말이, 이것이 무엇인고 鬼神인가 사람인가, 異常하고 奇異하다. 行裝(행장)을 풀고 본즉 畵像이 丁寧(정영)커늘 그제야 생각하니, 우리 誠力(성력) 地極(지극)키로, 天台山 麻姑仙女畵像 주러 예 왔도다. 畵像을 살펴보니 銀子 三千 여기 있고, 行裝을 收拾(수습)하여 遼東을 다 지내고, 瀋陽江(심양강)을 건너가서 燕亭舍(연정사)에 宿所(숙소)하고 長城岩(장성암)을 지내더니, 皇極亭(황극정)이 여기로다. 天子 殿庭(전정) 올라가서 叩頭謝罪(고두사죄) 하는 말이 朝鮮國王 李 아무는
■ 990095 이선영 ■
國運(국운)이 不幸(불행)하여 倭亂(왜란)이 지금 나서, 四百年(사백년) 지낸 社稷(사직) 一朝(일조)에 끊게 되니, 伏願伏望(복원복망) 皇帝(황제)께서, 河海(하해) 같은 德澤(덕택)입어 將帥(장수)하나 주옵시면, 저 亂離(난리)를 消滅(소멸)하고 王命(왕명)을 保全(보전)하고 國運(국운)을 잡사온 後(후) 地下(지하)에 돌아가서, 先大王(선대왕)을 뵈오리다. 皇帝(황제)듣고 하신 말씀 너희 나라 이번 亂離(난리) 國運(국운)뿐 아니로다. 天運(천운)이 그러하니, 아무리 救援(구원)해도 有益(유익)함이 없을 게라. 雜(잡)말 말고 돌아가라. 將帥(장수) 줄 뜻 全(전)혀 없다. 金誠一(김성일) 精誠(정성)보소. 갓 벗고 網巾(망건)벗어 玉階(옥계) 아래 던져두고, 天子前(천자전)에 엎드려서 머리를 두드리어 流血(유혈)이 狼藉(낭자)하여 玉階(옥계)아래 흘러가니, 天子(천자)께서 보시다가 金誠一(김성일)의 精誠(정성)보고, 龍床(용상)을 어루만져 嘆息(탄식)하고 하는 말씀, 朝鮮(조선) 國王(국왕) 李(이) 아무는 저런 忠臣(충신)두었구나. 朕(짐)의 朝廷(조정) 돌아 보면 저런 忠臣(충신) 全(전)혀 없네. 將帥(장수)하나 命(명)하시되 征西將軍(정서장군) 張德鎭(장덕진)을 押領(압령)하여 주시거늘, 金誠一(김성일)의 擧動(거동)보소. 畵像(화상)을 내어 놓고 至誠(지성)으로 비는 말이, 惶恐(황공)하고 惶恐(황공)하나 將帥(장수)하나 주시려면, 이 畵像(화상) 보신 後(후)에 이 畵像(화상)과 같은 얼굴 그 將帥(장수)를 주옵소서. 天子(천자)께서 畵像(화상)보고, 大驚(대경)하여 하신 말씀, 너희들이 이 畵像(화상)을 어디서 구했느냐. 朕(짐)의 名將(명장) 李如松(이여송)이 匈奴(흉노) 치러 갔는지라. 다섯 달을 지내도록 지금까지 아니 왔다. 없어도 못 줄게요, 있어도 못 줄 게라. 저 將帥(장수)를 데려가라. 金誠一(김성일) 擧動(거동)보소. 臣等(신등)이 오는 길에, 銀正沙(은정사)에 길을 잃고, 어찌 할 줄 모르다가 집을 하나 찾아 가니, 老嫗(노구) 하나 앉았거늘 그 老嫗(노구)께 물어보니, 天台山(천태산)에 있다 하고, 이 畵像(화상)을 내어주며 如是如是(여시여시) 하온 後(후)에 因忽不見(인홀불견) 하온지라, 奇異(기이)하여 돌아 보니 집도 없고 사람 없어 다만 畵像(화상)뿐이오니, 臣等(신등)은 생각건대 하늘이 도우신 듯, 神靈(신령)이 도우신 듯. 李如松(이여송) 불러다가 天子(천자)께서 命令(명령)하여, 너의 동생 如栢(여백) 보내 너의 대신 匈奴(흉노)치고, 너는 지금 朝鮮(조선)가서 倭亂(왜란)을 물리치고, 朝鮮(조선) 國王(국왕) 도와 주라. 李如松(이여송)의 擧動(거동)보소. 匈奴(흉노) 친지 다섯 달에, 成功(성공) 못해 憤(분)을 내어 나가기를 꺼리거늘 天子(천자)께서 强勸(강권)하니, 나오기는 나왔으되, 마음에 怏怏(앙앙)하여, 若干(약간)해도 班師(반사)할까, 若干(약간)해도 돌아갈까 大國之境(대국지경) 다 지나고 朝鮮之境(조선지경) 다다르니, 鴨綠江(압록강)이 여기로다. 瞬息間(순식간)에 건너와서 李如松(이여송)의 擧動(거동)보소. 江頭(강두)에 留陣(유진)하고, 트집 내어 하는 말이, 오늘 點心(점심)지을 적에 黃河水(황하수) 길어다가 點心(점심) 진지 지어 놓고, 龍(용)의 肝(간)을 膾(회)를 해서 소담하게 담아 놓고, 石肝炙(석간적)을 구워 노라. 秋霜(추상)같이 號令(호령)하니, 李鰲城(이오성) 金鶴峯(김학봉)이 둘이 서서 議論(의론)할 제 마침 멀리 바라보니, 반가와라 반가와라. 李漢蔭(이한음)은 앞서 오고, 柳西崖(유서애)는 뒤에 온다. 李如松(이여송) 오는 所聞(소문) 어느 便(편)에 들었는지 迎接(영접)하러 오는구나. 넷이 함께 들어가서 李如松(이여송)을 致辭(치사)하되, 惶悚(황송)하오 大都督(대도독)은 朝鮮(조선) 나라 위하시와 萬里(만리) 遠程(원정) 行次(행차)하신 惶恐(황공)하고 感謝(감사)하오. 李如松(이여송) 하는 말이 그 사이에 倭亂(왜란)들려, 어느 地境(지경) 되었었소. 柳西崖(유서애) 對答(대답)하되, 거의 亡(망)케 되었었소. 下直(하직)하고 돌아 나와, 넷이 서로 모여 앉아 點心(점심) 진지 公論(공론)할 제, 黃河水(황하수)를 어이 할꼬. 李漢蔭(이한음) 하는 말이 黃河水(황하수)는 어렵쟎네. 鴨綠江(압록강) 上流(상류) 물이 黃河水(황하수) 源流(원류)오니 이 물 길어 지으소서. 石肝(석간)은 무엇인고. 李鰲城(이오성) 하는 말이 石肝炙(석간적)이 어렵쟎네. 造脯(조포)가 그 炙(적)일세. 龍(용)의 肝(간)은 어디있나. 金鶴峯(김학봉) 하는 말이 龍(용)의 肝(간)은 내 求(구)하지. 그 길고 急(급)히 나와 江(강)가에 꿇어 앉아, 再拜(재배)하여 痛哭(통곡)하며 두 손으로 비는 말이 昭昭(소소)하신 하느님은 下瞰(하감)하여 들어소서. 朝鮮(조선) 國王(국왕) 危殆(위태)함은 朝夕(조석)에 달려 있고, 億兆(억조) 蒼生(창생) 여러 사람 時刻(시각)에 달렸으니, 明明(명명)하신 德澤(덕택)으로 龍(용) 한 마리 주옵시면, 李如松(이여송)을 待接(대접)하여 저 亂離(난리)를 消滅(소멸)하고, 保全(보전)하고 살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四百年(사백년) 지낸 社稷(사직) 一朝(일조)에 顚覆(전복)하고, 國破君亡(국파군망) 하옵시면 그 아니 罔極(망극)하며, 이 아니 寃痛(원통)할까. 放聲痛哭(방성통곡) 크게 우니 異常(이상)하고 奇異(기이)하다. 江(강)물이 뒤끓더니 난데 없는 龍(용) 한 마리, 물결을 헤치면서 기둥같이 굵은 것이 江(강)가에 뒤쳐지니, 金鶴峯(김학봉) 돌아와서, 龍(용)의 肝(간)을 膾(회)를 치고 點心(점심) 진지 들여가니, 李如松(이여송)의 트집 보소. 點心(점심) 床(상)을 돌아보고 또 다시 하는 말이, 龍(용)의 肝(간)을 먹자 하면 다른 箸(저)로 못 먹나니, 瀟湘江(소상강) 斑竹箸(반죽저)로 가져오라. 點心床(점심상)을 물리거늘, 柳西崖(유서애)의 擧動(거동)보소. 行纏(행전) 말에 손을 넣어, 斑竹箸(반죽저)를 빼어 내어 두 손으로 받들어서 진지床(상)에 올려 놓으니, 李如松(이여송) 擧動(거동)보소. 落膽(낙담)하고 歎息(탄식)하며 크게 稱讚(칭찬)하는 말이, 壯(장)하도다 朝鮮(조선) 臣下(신하) 忠誠(충성)도 壯(장)커니와, 재주가 더욱 용타. 石肝炙(석간적)은 例事(예사)로대, 黃河水(황하수)를 어찌 얻나. 龍(용)의 肝(간)은 姑捨(고사)하고, 斑竹箸(반죽저)를 어찌 求(구)해 行纏(행전) 속에 감췄다가 이렇게도 쉽게 내니, 할 말이 다시 없다. 그에재 行軍(행군)하여 義州(의주)에 들어오니, 千門萬戶(천문만호) 어디 간고.
■ 990087 노혜진 ■
불질러 다 탔구나. 한양(漢陽) 성중(城中) 득달(得達)하니 피란(避亂)가고 없는 사람, 물에 빠져 죽은 사람, 총(銃)에 맞아 죽은 사람, 칼에 찔려 죽은 사람, 불에 타서 죽은 사람, 앉아 죽고 서서 죽고, 태반(殆半)이나 죽었으니, 적벽강(赤壁江) 싸움인가. 조조(曹操) 군사(軍士)이게로다. 남은 사람 몇이던고. 백분일(百分一)이 어이 되리. 장안(長安)을 돌아 보니 소조막심(蕭條莫甚) 가련(可憐)하다. 임금은 어디 가고. 남한산성(南漢山城) 피란(避亂) 갔네. 이여송(李如松)의 거동(擧動)보소. 이여송(李如松)의 소문(所聞) 듣고 급(急)히 와서 접대(接待)하니, 이여송(李如松)의 트집 보소. 선조대왕(宣祖大王) 얼굴 보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얼굴 보니 섭섭하오. 아무리 구원(救援)해도 국왕(國王)되지 못할지는 오늘로 반사(班師)하여 나는 정녕(丁寧) 갈지어다. 이오성(李鰲城)이 말 듣고 궐내(闕內)에 들어가서, 대왕(大王)께 여쭈오되, 중원(中原) 대장(大將) 이도독(李都督)이 전하(殿下) 천안(天顔) 아까 보고, 왕자(王者) 기상(氣像) 아니라고 구원(救援)하기 뜻이 없어, 오늘로 반사(班師)하기 결정(決定)하고 일어서니, 어찌 해야 되오리까. 선조대왕(宣祖大王) 이 말 듣고, 크게 근심 하신 말씀, 반사(班師)하기 쉽지, 천생(天生)으로 생긴 얼굴 오늘날 고칠소냐. 국운(國運)이 가지로다. 이오성(李鰲城) 여쭈오되 좋은 도리(道理) 있사오니 대성통곡(大聲痛哭) 하옵소서. 선조대왕(宣祖大王) 이 말 듣고 대궐(大闕) 문(門)을 열어 놓고, 하늘을 우러러서 크게 한번 울으시니 곡성(哭聲)이 웅장(雄壯)커늘, 이여송(李如松)이 놀라 듣고, 이 울음은 누가 우나. 이오성(李鰲城) 하는 말이 선조대왕(宣祖大王) 반사(班師)함을 우리 대왕(大王) 들으시고 국사(國事)를 생각하니, 대성통곡(大聲痛哭) 하나이다. 이여송(李如松) 이 말 듣고 대희(大喜)하여 하는 말이, 얼굴을 잠깐 보니 왕자(王者) 기상(氣像) 못 되더니, 울음 소리 들어 보니 북해상(北海上) 운무중(雲霧中)에 창룡(蒼龍)의 소리로다. 용(龍)의 소리 가졌으니, 조선(朝鮮) 국왕(國王) 넉넉하다. 그제야 대장기(大將旗)를 금자(金字)로 새겼으되, 중원(中原) 명장(名將) 대도독(大都督)에 이여송(李如松)의 대장기(大將旗)라. 장안(長安)에 세워 놓으니, 바람 끝에 펄렁펄렁. 장대(壯臺)에 높이 앉아 천기(天機)를 바라보고, 분부(吩咐)하여 하는 말이 남방(南方)에 장성(將星)하나 고령현(高靈縣)에 떨어졌다. 바삐 가서 데려오라. 이 장수(將帥)는 누구던고, 김덕령(金德齡)이 이 아닌가. 군관(軍官)이 령(令)을 듣고 나는 듯이 날려가서, 덕령(德齡) 집을 찾아 가서 덕령(德齡)을 재촉하여, 한양(漢陽) 성중(城中) 득달(得達)하니, 이여송(李如松)의 거동(擧動) 보소. 덕령(德齡)의 손을 잡고 반가이 하는 말이, 이같은 난세중(亂世中)에 그대 같은 장략(將略)으로, 수간모옥(數間茅屋) 집 가운데 적막(寂寞)하게 누웠는고. 조선(朝鮮)을 나와 보니, 난리(亂離)가 대단(大端)하오. 창생(蒼生)은 고사(姑捨)하고, 사직(社稷)이 말 아닐세. 임금이 파천(播遷)하니, 사직(社稷)이 어렵도다. 일본(日本) 대장(大將) 소서(小西)이는 지모장략(智謀將略) 의론(議論)컨대, 사마양저(司馬穰苴) 무가내(無可奈)요, 손빈(孫臏) 오기(吳起) 가소(可笑)롭다. 이렇듯이 장(壯)한 장수(將帥) 백만(百萬) 군병(軍兵) 거느리고, 평양(平壤)을 도륙(屠戮)하고, 연광정(練光亭)에 좌정하여 부도(府都)를 웅거(雄據)하니, 잡기를 의론(議論)컨대, 그대 장략(將略) 아니오면 어느 누가 잡으리오. 행장(行裝)을 바삐 차려 사속히 내려가서 대사(大事)를 도모(圖謀)하고, 소서(小西)의 목을 베어 나의 앞에 바치어라. 덕령(德齡)이 청명(聽命)하고 필마단창(匹馬單槍) 재촉하여 나는 듯이 내려갈 제, 임진강(臨津江) 얼른 건너 송도(松都)를 지난 후(後)에 말마역(末馬驛) 숙소(宿所)하고, 제주역(諸州驛) 얼른 지나, 청강성(靑江城) 바삐 가서, 백설령(白雪嶺) 급(急)히 넘어, 선양점(善陽店)에 숙소(宿所)하고, 모란봉(牡丹峰)을 잠깐 지나 을밀대(乙密臺)에 잠깐 쉬오, 기린굴(麒麟窟)을 바삐 지나, 패강(浿江)을 얼른 건너 장림(長林) 들을 다 지나니, 부벽루(浮碧樓)가 어디메뇨. 연광정(練光亭)이 여기로다. 김덕령(金德齡)이 십구세(十九歲)에 평양(平壤)감사(監司) 비장(裨將)으로 삼년(三年)을 지낼 적에 누구를 친(親)했던고. 평양(平壤) 기생(妓生) 화월(花月)이와 은밀(隱密)한 정(情)을 매저 두고, 백년(百年)을 기약(期約)하고 맹서(盟誓)를 깊이 하여, 평생(平生)을 잊지 말자. 일구월심(日久月深) 굳은 마음, 전라(全羅) 어사(御史) 이도령(李道令)과 남원(南原) 기생(妓生) 춘향(春香)이와 백년(百年) 기약(期約) 맺은 듯이 둘이 서로 맺었더니, 김덕령(金德齡)의 거동(擧動) 보소. 이런 인정(人情) 생각하고 화월(花月)의 집 찾아 가니, 화월(花月) 어미 춘계(春桂) 말이 반갑도다 내 사위여, 즐겁도다 내 사위여, 이 내 딸 화월(花月)이와 함께 죽자 맹서(盟誓)터니 행차(行次) 한번 하신 후(後)로 소식(消息)조차 돈절(頓絶)하오. 죽자 살자 하던 인정(人情) 그다지도 매몰하오. 사위 나인 십구세(十九歲)요, 화월(花月) 나인 십육세(十六歲)라. 부벽루(浮壁樓) 죽림(竹林) 속에 이별(離別)할 때 뿌린 눈물 지금까지 마르쟎네. 여보 여보 나으리요. 마오 마오 그리 마오. 사람 대접(待接) 그리 마오. 아무리 천첩(賤妾)인들 인정(人情)조차 그리 하오. 비장(裨將) 나리 가신 후(後)로 지금까지 몇 해시오. 을유년(乙酉年)에 맺은 언약(言約) 임진년(壬辰年)에 풀러 왔소. 아무리 언약(言約)인들 제 몸이 기생(妓生)이오. 제 나이 청춘(靑春)이라. 이팔청춘(二八靑春) 젊은 몸이 독숙공방(獨宿空房) 홀로 앉아 지금까지 수절(守節)하니 기생(妓生)되고 장(壯)하쟎소. 칠팔년(七八年)을 수절(守節)타가 금년(今年) 팔월(八月) 보름날에 일본(日本) 대장(大將) 소서(小西)이가 위력(威力)으로 잡아다가 왜장(倭將)의 첩(妾)이 되어 방수(房守) 들려 들어가고, 그 후(後)로는 아니 왔네. 화월(花月) 아비 제사(祭祀)날이 오늘 지나 내일이니, 제사(祭祀)날은 나올 게라, 그 때에나 만나 보소. 덕령(德齡)의 거동(擧動) 보소. 아무리 할미 말도 들은 후(後)에 생각하니, 당연(當然)하고 무식(無識)하다. 화월(花月) 어미 거동(擧動) 보소. 푸닥거리 한참 하고 후회(後悔) 돌아나서, 손길 잡고 들어가서 술 부어 대접(待接)하고, 담뱃대 앞에 놓고 이러하나 저러하나 제잡담(除雜談) 하여 놓고, 아까 하던 할미 말을 노여 말고 분(憤)타 마소.
■ 990007 김태형 ■
이 같은 난세중(亂世中)에 어찌하여 여기 왔소. 칠팔년(七八年) 그린 얼굴 아무려나 반가와라. 김비장(金裨將)하는 말이 장모(丈母)님 내 말 듣소. 나도 예서 올라간 후(後) 천지상(天地喪)을 다 당(當)하니 상신 (喪身)되고 출입(出入)할까. 편지(便紙)를 하려하니 기러기 얻지 못해, 편지(便紙)도 못 부치니, 장모(丈母)님은 고사(姑捨)하고 내 마음은 좋을손가. 그럭저럭 황혼(黃昏)되어 석반상(夕飯床)이 들어온다. 등불을 밝혀 놓고 밥상(床)을 살펴보니 안호의 차진 밥과, 무창의 살진 고기 소담하게 차렸구나 덕령(德齡)의 거동(擧動)보소. 그 밥을 먹은 후(後)에 그날 밤에 혼자 자고, 화월(花月)이 나오기만, 고대(苦待)하고 바라는데, 왜나팔(倭喇叭)부는 소리 창(窓)밖에 들리더니, 왜군사(倭軍士) 수십인(數十人)이 화월(花月)을 얼른 모셔, 춘계(春桂)집을 찾아 온다. 화월(花月)의 거동(擧動)보소. 옥빈홍안(玉鬢紅顔) 고운 얼굴 의구(依舊)하게 어여쁘고. 화월(花月)어미 거동(擧動)보소. 화월(花月) 보고 하는 말이 고령(高靈) 땅 김비장(金裨將)이 어젯날 여기 왔다. 화월(花月)이 이 말 듣고 안색(顔色)이 불평(不平)하여 발연(勃然)하여 대답(對答)하되, 김비장(金裨將)은 누구신지, 나 모르는 그 사람이 나의 집에 어찌 왔소. 가마 타고 들어가며 어미더러 이른 말이, 내일(來日)다시 나오리다. 주육(酒肉)이나 많이 하오. 덕령(德齡)이 생각하니, 계집은 헛 게로다. 저와 나와 맺은 언약(言約), 금석(金石)같이 굳었더니, 왜장(倭將)을 친(親)한 후(後)에 네 마음이 변(變)했구나. 나오기를 기다려서 요년부터 죽이리라. 객창한등(客窓寒燈) 찬 바람에 심신(心神)이 불평(不平)하여, 목침(木枕)을 돋워 베고 삼척검(三尺劍) 어루만져, 경계(警戒)하여 하는 말이, 칼아 칼아 이 내 칼아, 너도 정녕(丁寧) 알 것이라. 이번 걸음 여기 온일 부디부디 성공(成功)하고, 너와 나와 함께 가자. 칼도 또한 신(信)이 있어, 이번 성공(成功)내 못하면 내 목숨은 고사(姑捨)하고 국사(國事)가 말 아닐다. 이렇듯이 경계(警戒)하고 날 새기를 기다리니 오경한창풍우중(五更寒窓風雨中)에 계명성(鷄鳴聲)이 나는구나. 동방(東方)이 밝아 오매 소슬한창(蕭瑟寒窓) 해가 뜨네. 아침상(床)이 들오거늘 밥을 먹고 앉았더니, 창(窓) 밖에 들린 소리 화월(花月)이 또 나온다. 화월(花月)이 들어와서 어미 보고 하는 말이, 술과 고기 어찌 했소. 춘계(春桂)의 거동(擧動)보소. 술병을 손에 들고 고기 그릇 안고 나와, 마당에 포진(鋪陳)하고 왜졸(倭卒)을 대접(待接)하니, 왜졸(倭卒)의 거동(擧動)보소. 서로 앉아 지껄이며, 고기 먹고 배 부르고 술 마시고 취(醉)한 후(後)에, 홍몽천지(鴻濛天地) 이 아니면, 취리건곤(醉裏乾坤)이 아닐까. 홍몽천지(鴻濛天地) 취(醉)한 놈이 무슨 말을 엿들을까. 화월(花月)의 거동(擧動)보소. 방문(房門)열고 뛰어 들어가 덕령(德齡)의 손길 잡고,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말이, 반갑도다 반갑도다, 비장행차(裨將行次)반갑도다. 좋을시고 좋을시고, 낭군행차(郞君行次)좋을시고. 칠년대한(七年大旱) 비가 온들 이에서 좋을손가. 죽은 부모(父母) 살아 온들 이에서 좋을손가. 반갑도다. 반갑도다. 천리행차(千里行次) 반갑도다. 멀고 멀고 먼먼 길에 행차(行次)나 평안(平安)했소. 을유(乙酉)년에 이별(離別)하고 임진(壬辰)년에 만나 보니, 세월(歲月)은 바꿨으되 얼굴은 의구(依舊)하오. 낭군(郞君)이 아니라도 평생(平生)을 혼자 늙어, 첩(妾)의 몸 죽은 후(後)에 지하(地下)에나 만나 볼까. 이렇듯이 마음먹고 사창(紗窓)에 홀로 누워, 눈물로 세월(歲月)보내 팔년(八年)을 지내더니, 뜻밖에도 난리(亂離)나서 왜장(倭將)이 첩(妾)을 불러, 금수관에 가둬 두고, 어머니도 못 보오니, 화월(花月)의 팔자(八字)보소. 청춘(靑春)에 가장(家長) 그려, 독숙공방(獨宿空房) 설운 회포(懷抱) 굽이굽이 맺혔거늘, 가장(家長)을 말할진대, 천리(千里) 밖에 있었으니, 원망(怨望)조차 못 하나마, 곁에 있는 첩(妾) 어미도, 마음대로 못 보지요. 덕령(德齡)의 거동(擧動)보소. 어젯날 하는 일을, 내가 보고 분(憤)이 나서, 네 마음이 변(變)했다고, 오늘날 다시 보면, 죽이기로 작정(作定)하고, 너 나오기 바랐더니, 오늘날 하는 일을 다시 보고 요량(料量)하니, 너 보기가 부끄럽다. 우리 둘이 만날 적에 나의 나인 십구세(十九歲)요, 너의 나인 십육세(十六歲)라. 십육세(十六歲) 아녀자(兒女子)는 장부(丈夫)마음 알건마는, 십구세(十九歲) 대장부(大丈夫)는 여자(女子)마음 몰랐으니, 장부(丈夫)되기 부끄럽고, 여자(女子)되기 아깝도다. 화월(花月)의 손을 잡고, 희희낙락(喜喜樂樂) 희롱(戱弄)하니, 화월(花月)의 하는 말이, 희롱(戱弄)을 말으시고 진담(眞談)으로 하옵시오. 덕령(德齡)이 대답(對答)하되, 이별(離別)한 팔년(八年)만에, 너의 얼굴 생각하면, 눈에 삼삼 어려 있고, 너의 음성(音聲) 생각하면, 귀에 쟁쟁(琤琤) 들리는 듯, 아무리 보자 한들 육년초(六年初)도 지난 후(後)에, 난리(亂離)를 또 당(當)하니, 무슨 여가(餘暇) 있으리오. 이번에 여기 옴은, 월태화용(月態花容) 너의 얼굴, 다시 한번 보러 왔다. 花月이 이 말 듣고 낯빛을 다시 고쳐, 정색(政色)하고 하는 말이, 아직도 장군(將軍)님이, 나의 마음 모르시고, 농담(弄談)으로 희롱(戱弄)하니, 그 아니 원통(寃痛)하오. 장군(將軍)님 이번 걸음 대사(大事)를 도모(圖謀)코자 첩(妾)찾아 왔었으니, 이 일을 하실진대, 첩 아니면 어찌 하리. 덕령(德齡)의 거동(擧動)보소. 이 말을 듣고 대답(對答)하여, 잡은 손을 다시 놓고, 흔연(欣然)히 하는 말이, 이내 마음 네 알았다. 과연정녕(果然丁寧)그러하다. 이번에 내 온 뜻은, 왜장(倭將) 소서(小西)잡으려고 용천검(龍泉劍) 드는 칼을 갈고 갈고 또 갈아서, 금사철갑(金絲鐵甲) 칼집 속에, 깊이 꽂아 차고 왔다. 화월(花月)이 이 말 듣고 덕령(德齡)에게 하는 말이, 장군(將軍)님아, 장군(將軍)님아, 첩(妾)의 밀을 들어 보소. 소서(小西)의 하는 일을, 낱낱이 말하리다. 사방(四方)에 금줄 매고, 칸칸이 방울 달아, 바람이 부는 대로 방울 소리 달랑 하면,잠을 깨어 기침하고, 잠 자는 법(法)을 보면
■ 970037 조상길 ■
사흘씩 크게 잘 제, 첫날 잠은 엷게 들고 이튿날은 깊이 들어, 사람 출입(出入) 모르고서 사흘 밤은 점점 깨어, 약간(若干) 하면 기침하여 기침하는 그 소리에, 방울이 딸랑딸랑. 턱 밑을 만져 보면, 돈짝 같은 그 비늘이 층층(層層)이 붙어 있고, 첩첩(疊疊)이 싸고 있어 구리쇠로 만든 듯이, 시시(時時)로 용맹(勇猛)나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기지개를 쓸 때를 보면 첩첩(疊疊)이 박힌 비늘 낱낱이 일어나서, 비늘 틈에 살이 뵈니, 그럴 때에 칼로 치면 제 아무리 역사(力士)라도, 아니 죽고 어찌 하리. 수잠이 들고 보면, 두 눈을 아주 감고, 잠이 깊이 들고 보면, 두 눈을 번쩍 떠서 사람을 보는 같고, 소서(小西)의 하는 말이, 사람을 의심(疑心)하여, 지금같이 형용(形容) 그려 등신(等神)을 만들어서, 셋이 같이 누웠으니, 어느 것이 소서(小西)인지, 얼른 보면 모르리다. 양편(兩便)에 누운 것은 등신(等神) 소서(小西) 누운 게요, 그 가운데 누운 것이 참 소서(小西)가 분명(分明)하니, 내일(來日)은 이틀째니 큰잠 자는 그 날이라. 부디부디 염려(念慮) 말고, 내일(來日) 밤에 들어오면 장군(將軍)님의 이번 대사(大事), 성공(成功)하고 가오리다. 이렇듯이 약속(約束)하고, 화월(花月)이는 들어가서 바지 솜 빼어 들고, 그 많은 방울 궁호 나갈 때에 틀어막고, 들어오면 다 막으니, 아무리 출입(出入)해도 방울이 소리 없다. 덕령(德齡)의 거동(擧動) 보소. 삼경(三更)을 지난 후(後)에 칼을 잡고 들어가니, 좌우(左右)에 왜졸(倭卒)들은 적적(寂寂)히 잠을 자고, 인적(人跡)이 고요하다. 연광정(練光停) 올라가니 화월(花月)의 거동(擧動) 보소. 덕령(德齡) 온 줄 짐작하고, 문(門)을 열고 내달아서 손길 잡고 인도(引導)하니, 덕령(德齡)이 뒤를 따라 문(門)을 열고 서서 보니, 집동 같은 소서(小西)이가 셋이 같이 누웠으니, 알고 봐도 놀랍도다. 덕령(德齡)의 장략(將略)에도 한번 보매 기가 막혀, 칼을 들고 혼잣말로, 대단(大端)할사 소서(小西)이여 듣던 말과 과연(果然) 같다. 정신(精神)을 다시 차려 자는 눈을 살펴보니, 두 눈빛이 경쇠 같고 불빛과 서로 비쳐, 안광(眼光)이 영롱(玲瓏)하다. 노기(怒氣)가 등등(騰騰)하여, 덕령(德齡)을 보는 같다. 덕령(德齡)의 거동(擧動) 보소. 오른 발을 높이 들어 자는 놈을 코를 차니, 소서(小西)의 용맹(勇猛) 봐라. 두 주먹 불끈 쥐고, 두 팔을 뻗치고서 기지개 한참 쓸 때, 덕령(德齡)이 칼을 들어 비늘 사이 칼을 치니, 칼 맞고 떨어질 때 목 없는 저 장수(將帥)가 설설 기며 칼을 찾아, 덕령(德齡)을 친다는 게 연광정(練光停) 대들보를 칼날로 친 자취가, 지금(至今)까지 완연(完然)하니, 목 없는 저 장수(將帥)가 저렇듯이 장(壯)하거든, 목 있을 때 용맹(勇猛) 보면, 그 용맹(勇猛)이 어떠할까. 화월(花月)이 곁에 서서, 깍지재를 흩였으니 죽은 몸이 요동(搖動) 없네. 덕령(德齡)의 거동(擧動) 보소. 베인 머리 싸서 들고, 화월(花月)을 하직(下直)할 제 측은(惻隱)하게 하는 말이, 장(壯)하도다 화월(花月)이여 팔년(八年) 만에 어제 와서, 이래 가기 섭섭하나, 갈 길이 바빴으니 지체(遲滯)하기 어렵도다. 난리(亂離)가 평정(平正)되면, 다시 한번 볼 것이라. 부디부디 너의 모녀(母女), 잔명(殘命)이나 보전(保全)하라. 화월(花月)이 이 말 듣고 슬피 울며 하는 말이, 장군(將軍)님아 장군(將軍)님아, 첩(妾)의 말씀 들어보소. 살려 두고 못가리라. 첩(妾)의 목을 베어 주오. 장군(將軍)님 드는 칼로 첩(妾)의 목을 베어다가, 첩(妾)의 어미 주고 가오. 덕령(德齡)이 이 말 듣고 탄식(歎息)하고 하는 말이, 너와 나와 동모(同謀)하여 만고(萬古) 없는 대장(大將) 머리 한칼로 베인 것은, 너의 공(功)을 의론(議論)컨대, 천금상(千金賞)을 준다 해도 천금(千金)이 부족(不足)하고, 만금상(萬金賞)을 주더라도 만금(萬金)이 부족(不足)이라. 상(賞)이야 못 줄망정 유공(有功)한 그 사람을 추호(秋毫)도 해(害)할손가. 남남에도 못 하거든 하물며 부부간(夫婦間)에, 내 칼로 너의 목을 어찌 차마 베리오. 마라 마라 그리 마라, 그런 말을 제발 마라. 살처구장(殺妻求將) 하는 사람, 오기(吳起) 밖에 또 있는가. 인정(人情) 박대(薄待) 못 하겠다. 부디부디 잘 있거라. 화월(花月)이 말 듣고 진정(眞情)으로 비는 말이, 오늘날 장군(將軍)님이 첩(妾)과 함께 동모(同謀)하여, 왜장(倭將)을 죽이고서 장군(將軍)님 가고 보면, 저 왜졸(倭卒)의 거동(擧動) 보소. 저의 장수(將帥) 죽였다고 첩(妾)을 먼저 죽일 게니, 오늘 밤에 장군(將軍)님이 첩(妾)의 목을 베어다가, 첩(妾)의 어미 주고 가오. 첩(妾)은 이미 죽더라도, 첩(妾)의 어미 살아나지. 제발 덕분(德分) 장군(將軍)님요. 첩(妾)의 목을 베어다가, 가신 길에 주고 가오. 첩의 원(願)이 이거로다. 덕령(德齡) 거동(擧動) 보소. 한숨 짓고 하는 말이, 사정(私情)은 절박(切迫)하나, 사세(事勢)는 당연(當然)하다. 꼽은 칼은 다시 빼어, 화월(花月)의 목을 베어 나오다가 불러주니, 화월(花月) 어미 거동(擧動) 보소. 호초(胡草) 비단(緋緞) 치마 벌려 딸의 머리 받아 들고, 덕령(德齡)을 붙들고서 슬피 울며 하는 말이, 가련(可憐)하다 화월(花月)이여, 불쌍하다 화월(花月)이여. 어미를 생각하여, 나를 두고 네가 죽나. 이런 일을 생각하니, 화월(花月)이는 기생(妓生)이되 충효열(忠孝烈)을 겸전(兼全)하니, 후세(後世) 사람 본(本)받을세. 덕령(德齡)의 거동(擧動) 보소. 필마단기(匹馬單騎) 가는 행차(行次) 대공(大功)을 이루우니, 천만고(千萬古)에 희한(稀罕)하다. 평양(平壤) 사백(四百) 오십리(五十里)를 사흘만에 득달(得達)하여, 소서(小西)의 끊은 머리 이여송(李如松)의 대장(大將) 앞에 봉(封)한 채로 올리오니, 이여송(李如松)의 거동(擧動) 보소. 대희(大喜)하여 일어서서 함(函)을 열고 헤쳐 보니, 소서(小西)의 죽은 머리 두 눈이 끔적끔적, 함(函) 안에 어린 피가 오히려 마르쟎네. 덕령(德齡)의 손을 잡고 크게 칭찬(稱讚)하는 말이, 장(壯)하도다 김장군(金將軍)아, 놀랍도다 김장군(金將軍)아. 범 같은 이 장수(將帥)를 혼자서 잡아 내니, 그대의 용맹(勇猛) 보니, 중원(中原)에 나셨던들
■ 9519203 조영진 ■
그 용맹과 도략(度略-법을 다스림)이 나에서 모두가 남만 못함이라. 이렇듯이 칭찬하니 덕령이 여쭈오되, 이번에 성공함은 장군님의 덕택이요, 소장(小將)의 공 아니오라. 그 이튿날 행군할 때 이여송은 대장이요, 김덕령은 그에 버금가는 장수라. 십만의 많은 병사를 거느리고 여러 나라를 정벌하니 간 곳마다 피하는 게 일본의 병사들이요, 죽는 것이 일본 병사들이라. 강홍립을 명령하여 삼천(三千)의 병사와 말을 거느리고 황해도로 내려가서, 서홍련은 백천(百千)막고 김옹서를 불러다가, 오천 병사를 거느리고 충청도를 내려가서, 충주읍을 곤란을 면하도록 도와주고, 이여송 김독령이, 금산진을 맞이하니, 조중봉을 전사(戰死)하고, 화왕산을 찾아가니 곽망우당이 전사(戰死)하고, 치산개를 찾아가니 권화산을 전사(戰死)하고, 상주읍을 들어가니 정우복도 전사(戰死)하고, 충청도로 돌아와서 탄금대를 찾아가니 신장사도 간 데 없다. 이여송 김덕령이 도처마다 일본 병사를 치고 일본 진영을 소멸하니, 이 해가 어느 해인고 갑오(甲午)년 7월이라. 영남(嶺南)으로 다시 내려 성주 땅을 다다라서, 무게나룰 얼른 건너 한개 앞을 지나가서, 일본 병사가 모였거늘 한칼에 무찌르고, 현풍 읍내 들어가니 일본 장수의 청정(淸正)이가, 오천명을 거느리고 커다란 진영을 막았거늘, 이여송의 거동 보소. 한 손에 칼을 들고, 또 한 손에 창을 들고 억만 군사중의 적진속으로 나는 듯이 달려들어, 가면 치고 오면 치지, 칼 끝에 죽는 군사 몇 천명이 죽었으며, 창끝에 죽는 군사 몇 백명이 죽었는지, 죽음이 태산(泰山)같고 피 흘러 강물이로다.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전라도로 내려가서, 강진나루 건너가서 십리의 평평한 모래 벌판 넓은 들에, 일본 장수의 평수길(平秀吉)이 백만 군사들이 진을 치니, 진을 치는 법이 장엄하고 숙연하다. 모양의 변함이 이루 헤아릴 수 없어서, 잡기가 몹시 어렵다. 이여송의 거동보소. 덕령을 돌아보아 급하게 물어서 하는 말이, 나는 잠깐 쉴 것이니 김장군이 들어가서 저 진영을 깨뜨려라. 덕령의 용맹보소. 갑옷의 잡도리를 단단히 하고 투구 끝을 졸라매고, 삼척(三尺)검을 손에 들고 말머리를 두드리고, 적진의 한 가운데에 달려들어 삼십여합(三十餘合) 싸웠으나, 승부가 단호히 결정되지 못해 날이 이미 저물거늘, 본진(本陣)으로 돌아와서 이여송과 상의하되, 평수길의 군사를 부리는 재주를 보소. 칼을 들어 목을 치니, 맞은 목은 그저 있고 곁에 있는 군사(軍士) 목이 대신에 떨어지니, 다시 들어 목을 치면 평수길은 간데 없고 말머리 떨어지니 이것이 수상(殊常)하고, 아마도 생각하니, 변화불측(變化不側)이 아닌가. 변화가 무엇이냐, 둔갑장신(遁甲藏身-남의 눈을 현혹시켜 자신의 신체를 감추는 것)이 분명하다. 둔갑장신(遁甲藏身) 저 장수를 어이 하여 잡으리까. 이이여송이 하는 말이, 명일(明日-다음 날)에 다시 싸워 제가 만일 다음 날의 전투에, 둔갑장신(遁甲藏身) 또 하거든 둔갑(遁甲-남의 눈을 현혹시킴)막는 그 법수(法數-법을 헤아림)가 어렵잖고 쉬우리라. 둔갑(遁甲)을 제 하거든, 나는 먼저 비켜 서서 을방(乙方-새 모양의 술법)으로 돌아들어 좌편(左便-왼쪽)을 먼저 치고, 장신(藏身-몸을 숨김)을 제 하거든, 나는 먼저 몸을 피해 서방(西方)으로 돌아들어 우편(右便)을 먼저 치면, 제 아무리 둔갑(遁甲)해도, 둔갑(遁甲)이 쓸 데 없고, 제 아무리 장신(藏身)해도, 장신(藏身)을 못 하나니, 그럴 적에 들이치면, 아니 죽고 어이 하리. 덕령(德齡)이 이 말 듣고, 계교(計巧-여러 모로 생각해 낸 꾀)를 배운 후에 이튿날 접전(接戰-서로 맞부딪쳐 싸움)할새, 덕령이 칼을 들고 을방(乙方)으로 돌아드니, 수길(秀吉)의 거동 보소. 어허 어허 이 장수야, 둔갑 막는 그 방법을 어제는 모르더니, 오늘은 아는구나. 수길이 할 수 없이, 필마(匹馬-한 필의 말)로 달아난다. 덕령의 거동 보소. 장수 없는 저 군사를 한 칼로 소멸하니, 피 흘러 강수(江水)로다. 본진(本陣-총 지휘자가 있는 군영)으로 돌아오니, 이여송이 덕령보고 칭찬하여 하는 말이, 아무려나 장군 용맹 맹분(孟賁-산 소의 뿔을 잡아 뽑았다는 力士) 오확(烏攫) 다시 와도 장군만 못할 게요, 관우 장비 다시 나도 장군만 못할로다. 이 때가 어느 때뇨, 정유년(丁酉年-1597년) 八月이라. 군사를 거느리고, 팔도(八道)를 평정(平定)하니 니 난리(亂離)가 오죽할까. 김해(金海)를 들어가니 수길(秀吉)의 거동(擧動)보소. 다 죽고 남은 군사(軍士) 겨우 모아 오백명을, 둔취(屯聚-여러 사람을 한 곳에 모아 둠)하여 진을 친다. 이여송의 거동 보소. 덕령과 둘이 들어 수길을 찾아 가니, 수길의 재조(才操-재주) 보소. 오백명 저 군사로 오작진을 치고 있네. 이여송과 김덕령이 오작진에 들어가니, 수길의 거동 보소. 반공(半空)에 솟아 올라 운무(雲霧-구름과 안개)로 진을 치고 성신(星辰)으로 군사 삼아 일월(日月)로 대장 삼고, 무지개로 칼을 삼아 이렇듯이 하였거늘, 이여송이 앞에 서고 김덕령은 뒤에 서서, 둘이 서로 칼을 들고 이 장수(將帥)와 저 장수가, 피차(彼此) 서로 분별(分別)못해 이여송은 칼을 들고 김장군아 어디 있소. 김장군은 칼을 들고 이도독(李都督)아 어디 있소. 두 장수 서로 불러 수길만 찾가 가니, 수길이 위급하여 도망하기 어렵도다. 운무(雲霧)가 자욱하니 검광(劍光)도 없어지고, 칼날이 서로 닿아, 실겅실겅 맞는 소리 구름 속에 나는지라, 순식간(瞬息間)을 지날 적에 아래 있는 왜(倭)군사가, 하늘만 바라보고 승부(勝負)를 바라더니, 머리 하나 떨어지니 군사들이 칼을 들고, 머리를 들고 보니 왜장의 수길이라. 저 군사들 거동 보소. 오백명 우는 소리, 천리가 요란하다. 이여송과 김덕령이 수길의 머리 따라, 둘이 함께 내려와서 왜졸(倭卒)을 소멸하고, 팔도에 남은 군사 씨없이 무찌르니, 삼조팔억(三兆八億) 많은 군사, 한 사람도 못 살았다.
■ 970038 채신희 ■
淸正은 어디 가고 죽은 곳이 없었으니, 아마도 淸正이는 故國으로 갔단 말이, 丁寧하고 분명하다. 正이 들어올 때 蚌鷸詩를 지었으니, 그 글에 하였으되, 大蚌隨陽避日寒, 鷸禽何事怒相看 身離窟宅朱態損, 足踏沙場翠翼殘 閉口那期開口害, 入頭惟易出頭難 早知俱落漁人手, 雲水飛潛各自安 이 글 뜻을 들어 보소. 蚌鷸詩가 용하쟎나. 크고 큰 저 조개가 추운 날을 避하여서, 陽地를 따라 나와 물가에 붙었으니, 날아가는 저 황새가 무슨 일로 성을 내어 서로 밉게 보았다고, 可憐하다 저 조개는 窟宅을 떠나올 제 붉은 態가 損傷되고, 어렵도다 저 황새가 沙場을 밟을 적에 푸른 나래 衰殘하다. 불쌍하다 이 조개야 입을 열면 있을 적에, 입을 열면 害될 줄을 어이 그리 몰랐으며, 가엾도다 저 황새야 들어오기 쉽건마는, 나가기가 어려운 줄 네가 어이 몰랐더냐. 漁翁 손에 우리 둘이 한가지로 떨어질 줄 일찌기 알았던들, 나는 너는 구름 가고, 잠긴 너는 물에 가서 彼此 서로 便할 것을, 어찌타 못하여서 後悔한들 쓸 데 있나, 둘의 목숨 그만일다. 己亥年에 平定하니 八年 風塵이 아닌가. 李如松의 마음 보소. 八年 風塵 成功하고 凶한 心思 새로 나서, 朝鮮 山川 바라보니 山川 精氣 有名하여, 人才가 많이 날다. 八道를 두루 돌아, 名山大川 찾아가서 쇠말뚝 치어들고, 곳곳이 穴을 질러 山川穴을 끊어 낼 제, 넉 달을 다녔구나. 넉 달을 穴 지르니, 그 害를 議論컨대 八年 兵禍 더 甚하다. 슬프다 朝鮮 風俗 功臣 待接 虛無하다. 八年 功臣 金德齡을 封候 爵祿 하더라도, 그 공을 다 못할 걸, 封爵은 姑捨하고, 陷穽에 든 병이 되니, 그 伸寃을 누가 할꼬. 德齡이만 죽었구나. 제 江山을 만들려고, 風塵을 消滅하고 數三朔을 遲滯하니, 우리 漢陽 國運 보소. 五百年 지낼 運數, 壬辰年에 마칠소냐. 난데 없는 草笠童이 조그마한 노새 타고,
三尺童子 征馬 들려, 李如松의 陣前으로 忌憚 없이 지나가니, 李如松이 大憤내어 軍士를 재촉하니 號令하여 하는 말이, 唐突하다 어떤 놈이 萬陣中을 凌侮하고, 말을 타고 지나가니, 罪死無釋 놓을소냐. 한 걸음에 바삐 가서, 速速히 잡아 오라. 저 軍士놈 擧動 보소. 쇠털 벙치 제쳐 쓰고 軍服자락 훌쳐 매고, 바라보고 쫓아가며 숨찬 中에 외는 말이, 저기 가는 저 少年아 거기 잠깐 머물러라, 너 잡으러 내가 간다. 그리 소리 急히 가니, 두 발 동안 띄어 놓고 草笠童과 三尺童子, 들은 체도 아니하고 그 대중만 띄어 놓고, 數十里 誘引한 후, 그 少年의 擧動 보소. 盤石 위에 올라앉아 크게 號令 하는 말이, 너부터 죽일 거되 잠깐 참아 두거니와, 지금 당장 바삐 가서 네 將帥를 보내어라. 저 軍士놈 눈치 보니 아마도 鬼神이요, 사람은 아니로다. 軍士가 돌아와서 그 緣由를 알리오니, 李如松이 이 말 듣고, 마음에 大驚하여 匹馬를 타고 가니, 그 少年이 하는 말이, 李如松아 말 들어라. 天子 命令 네 받들고 倭亂을 消滅하고, 東國을 保全하니 大功을 이뤘으면, 國王에게 下直하고 네 國으로 돌아가서, 天子 命令 받는 것이 臣子 道理 堂堂터늘, 쇠말뚝을 치어들고 곳곳이 穴을 질러, 山川 氣運 傷케 하니 무슨 心思 그러하냐. 그 일은 姑捨하고, 天意를 모르고서 氾濫한 뜻을 두니, 너의 罪를 네 아느냐. 五十 斤 鐵槌 들어 李如松의 이마 위에 덩그렇게 걸어 놓으니, 李如松의 거동 보소. 遑遑急急 일어서서 한줄첨배 땀이 나서, 伏地謝罪 하는 말이 오늘 당장 가오리다. 절하고 일어서니, 草笠童이 간 곳 없고, 盤石 하나 남았구나.
草笠童은 누구던고, 三角山 神靈일세. 李如松이 돌아와서, 軍中에 下令하고 宣祖께 下直하니, 宣祖大王 하는 말씀, 大都督의 八年功을 萬分一을 갚으리까, 三萬里 惡한 經道 無恙하게 行次하오. 李如松이 나왔다가, 大功은 이뤘으되 마음 한 번 잘못 먹고, 草笠童에 魂이 났다. 李如松이 들어간 後, 朝鮮이 太平이라. 宣祖大王 平亂하고 治國하신 五年만에, 西山大師 泗溟堂이 上疏하여 하는 말이, 洛山寺 어젯밤에 天機를 잠깐 보니, 壬辰年에 敗한 倭兵, 餘憤을 풀지 못해 열 세 해 지금까지, 軍士 軍器 操鍊하여 未久에 나오기를 밤낮으로 經營하니, 亂離 나기 不遠하니, 미리 막아 보옵소서. 宣祖大王 上疏 보고, 泗溟堂을 불러 보니 泗溟堂 하는 말이, 小僧은 生佛이라, 小僧이 한 걸음에, 日本을 降服 받고 後弊 없이 하오리다. 宣祖大王 대회하여 泗溟堂 보낼 적에, 御筆로 親히 쓰되, 朝鮮國 修信使 泗溟堂이 生佛이라. 이 날 길을 떠날 적에, 各道 列邑 官長들이 使臣 行次 所聞 듣고, 어느 官長 아니 오리. 東萊 邑內 들어가서, 三日을 留連하되 東來 府使 宋璟이는 아니 오고 하는 말이, 許多한 俗人 두고, 일개 小僧 중 보낼까. 泗溟堂 憤을 내어, 東萊 府使 拿入하여 數罪하여 하는 말이, 너 같은 逆臣들은 벼슬만 貪을 내고 國事를 네 모르고,
■ 960025 배명훈 ■
너의목을 하나버혀 천백(千百)을 증계(懲戒)하리 내아모리 중이라도 왕명(王命)을 받들고서 만리타국(萬里他國) 들어감은 사직(社稷)을 받들고서 백성(百姓)을 생각커늘 너소위(所爲) 거만(倨慢)하니 너소위(所爲)를 생각하면 처참(處斬)함이 맛당하니 선참후게(先斬喉啓) 하온후(後)에 배를타고 들어가니 일본국(日本國)이 어디메뇨 중궁대궐(中宮大闕) 이게로다 사명당(泗溟堂) 하는말이 나는조선(朝鮮) 생불(生佛)이라 왜왕(倭王)이 이말듣고 네가정영(丁寧) 생불(生佛)이면 못할것이 없을기라 즉시(卽時)에 분부(吩咐)하야 팔만대장(八萬大藏) 경문(經文)들이 병풍에 써있으니 그앞으로 지나와서 그글을 다외와라 사명당(泗溟堂)의 재조(才操)보소 말을타고 지나와서 대장경(大藏經)을 다외온후(後) 두쪽을 안외오니 왜왕(倭王)이 하난말이 두편(篇)은 안외우나 사명당(泗溟堂) 대답(對答)하되 안본것을 외오리요 병풍(屛風)을 바라보니 바람에 접혓도다 왜왕(倭王)의 거동(擧動)보소 또다시 분부(吩咐)하되 쇠방석을 드러다가 저물에 떤저타고 임의(任意)로 다녀바라 사명당(泗溟堂)의 재조(才操)보소 쇠방석을 잡아타고 임의(任意)로 왕내(往來)하여 지남지북(之南之北) 저리가고 지동지서(之東之西) 이리오며 팔만대장(八萬大藏) 많은경문(經文) 고성대독(高聲大讀) 다외오니 왜왕(倭王)이 생각하되 아마도 생불(生佛)이라 구리쇠로 집을짓고 사명당(泗溟棠)을 들어보내 그가운데 안처놓고 사면(四面)으로 숯을쌓아 불을질러 부처놓고 대풍기(大風機)로 부처낸다 그쇠가 불에녹아 불집이 되었구나 왜왕(倭王)이 하는말이 제아모리 생불(生佛)이나 아니죽고 사라날가 사명당(泗溟堂)의 재조(才操)보소 방(房)에는 어름빙자(氷字) 벽(벽)에는 눈설자(雪字)를 글두자(字)를 써붙이고 그가운데 앉았으니 그이튿날 왜졸(倭卒)들이 사명당(泗溟堂) 녹았는가 아니죽고 사라날까 사명당(泗溟堂)의 재조(才操)보소 이마우에 서리치고 수염(鬚髥)에만 어름달려 안연(晏然)히 홀로앉아 왜졸(倭卒)을 호령(號令)하되 이놈들 불좀여랴 왜왕(倭王)이 크게놀래 황겁(遑急)히 하난말이 이생불(生佛)을 어이하리 쇠말을 만드서 숯불에 달과내여 사명당(泗溟堂)을 타라하니 사명당(泗溟堂) 생각하니 하든중(中)에 처음이라 하늘을 우러러서 지성(至誠)으로 비난말이 소스(昭昭)한 하나님은 조선생불(朝鮮生佛) 위(爲)하시사 일장풍우(一場風雨) 내이소서 시각내(時刻內)로 천동소래 강산(江山)이 뒤눕더니 해천(海天)이 막막(漠漠)하야 주룩주룩 오난비에 가엽도다 일본국(日本國)이 어별(魚鼈)쏘이 되엿고나 왜왕(倭王)의 거동(擧動)보소 황황급급(遑遑急急) 비난말이 무지(無知)한 과인(寡人)몸이 생불(生佛)을 몰라보고 욕설(辱說)로 대접(待接)하니 만사무석(萬死無惜) 죽여주오 분부(吩咐)대로 하오리라 사명당(泗溟堂)의 거동(擧動)보소 왜왕(倭王)다려 하난말이 우리나라 임금님은 어진덕(德)을 닥근고(故)로 하나님이 감동(感動)하야 강원도(江原道) 낙산사(洛山寺)에 생불(生佛)을 점지하니 삼년(三年)에도 하나나고 오년(五年)에도 하나난다 다시한번 생불(生佛)오면 너의나라 멸망(滅亡)한다 삼백장(三百張) 인피(人皮)벗겨 년년(年年)이 조공(朝貢)하라 인피(人皮)를 벗긴대도 죽은사람 가죽말고 산사람 벗겨오라 사명당(泗溟堂) 나온후(後)에 삼백장(三百張) 인피(人皮)벗겨 년년(年年)히 조공(朝貢)하니 하다가 생각하니 사람씨가 없어질세 다시조공(朝貢) 곤처하되 주석동철(朱錫銅鐵) 대신(代身)하니 경면주사(鏡面朱砂) 삼백근(三百斤)과 구리쇠 삼백근(三百斤)을 인피(人皮)대신(代身) 조공(朝貢)하니 국용(國用)이 탕갈(蕩竭)이라 다시비러 하난말이 삼백명(三百名) 군사(軍士)나와 수자리로 사오리다 그리하라 허락(許諾)하니 동내읍내(東萊邑內) 초량(草梁)앞에 조흔집을 지어놓고 그리와서 살림하니 동네왜관(東萊倭館) 그게로다 무진년(戊辰年) 이월(二月)달에 선조대왕(宣祖大王) 승하(昇遐)하니 춘추(春秋)가 얼마신가 오십칠(五十七)이 분명(分明)하다 양주(楊洲)땅 이십리(二十里)에 목능(穆陵)이 그능(陵)이오 두왕비(王妃)도 한능(陵)이라 광해군(光海君)이 등극(登極)하니 그배위(配位)는 누구든고 문화유씨(文化柳氏) 부인(夫人)이오 유자신의(柳自新) 딸이로다 열네해를 지내다가 강화(江華)로 내첫더니 양주땅(楊洲)땅 진건면(眞乾面)에 내웨(內外)무덤 여게로다 원종대왕(元宗大王) 추숭(追崇)하니 그왕비(王妃)는 뉘시든고 능성구씨(綾城具氏) 부인(夫人)이라 부원군(府院君)은 누시든고 능성(綾城)사람 사맹(思孟)이라 김포(金浦)땅 칠십리(七十里)에 원종능(元宗陵)은 장능(章陵)이오 왕비능(王妃陵) 어데든고 장능(章陵)과 한능(陵)이라 게해년(癸亥年) 三월달에 인조대왕(仁祖大王) 등극(登極)하니 그왕비(王妃)는 누시든고 청주한씨(淸州韓氏) 부인(夫人)이요 부원군(府院君)은 누구든고 청주(淸州)사람 준겸(浚謙)이라 둘째왕비(王妃) 누시든고 양주조씨(楊洲趙氏) 부인(夫人)이요 부원군(府院君)은 누구든고 양주(楊洲)사람 창원(昌遠)이라 인조대왕(仁祖大王) 거동(擧動)보소 즉위(卽位)사신 십삼년(十三年)에 병자호란(丙子胡亂) 나난구나 호천자(胡天子) 어사하니 철기오만(鐵騎五萬) 거나리고 다섯길 넘는비(碑)를 전자로(篆字) 비문(碑文)써서 나올적에 실고와 조선(朝鮮)을 항복(降服)받고 송파(松坡)에 세웠으니 아모려나 생각하니 한(汗)이가 영웅(英雄)이라 호천자(胡天子) 들어갈때 인조대왕(仁祖大王) 자제(子弟)서이 누구누구 잡혀갔나 맏자제(子弟)는 인허세자(人許世子) 둘째자제(子弟)는 소현세자(昭顯世子) 셋째자제(子弟) 효종대왕(孝宗大王) 삼형제(三兄弟)를 앞세우고 삼학사(三學士)를 잡아다가 삼학사(三學士)는 누구든고 해주오씨(海州吳氏) 오달제와(吳達濟) 남양홍씨(南陽洪氏) 홍익한(洪翼漢)과 안변윤씨(安邊尹氏) 윤집(尹集)이라 대유녀(待留女) 삼천명(三千名)과 대유마(待留馬) 삼천필(三千匹)을 모두함께 다려다가 구원옥(九原獄)에 가다두고 삼학사(三學士)를 죽일적에 기름가마 쌀맛구나 삼학사(三學士)의 충성(忠誠)보소 기름가마 들어앉아 추상(秋霜)같이 호령(號令)하여 구불절성(口不絶聲) 하는말이 개와같은 호천자(胡天子)야 네가이놈 무엇이냐 누루하치 자손(子孫)으로 대명(大明)을 소멸(消滅)하고 요순우탕(堯舜禹湯) 문무주공(文武周公) 사천년(四千年) 예악문물(禮樂文物) 일조(一朝)에 다없애고 살부대립(殺父代立) 네풍속(風俗)을
■ 960029 설국현 ■
삼천리(三千里) 조선(朝鮮)강산(江山) 네속국(屬國)을 맨들라고 금수(禽獸)같은 네무리를 몇천명(千名)을 거나리고 강포(强暴)로 행악(行惡)하여, 무죄(無罪)한 조선(朝鮮) 인물(人物) 저다지 욕(辱)을뵈니 천지(天地)도 무심하다 망으락이 덮어쓰고 옥쇄(玉璽)를 전수하기 부끄럽도 아니하냐 이렇다시 호령(號令)하고 셋이 함께 죽었으니, 장(壯)하도다 삼학사(三學士)여 충절(忠節)이 충장(充壯)하니, 죽은혼(魂)이 말한같다 호천자(胡天子) 앉아듣고 묵묵(黙黙)히 말이없네 인허세자(仁許世子) 불러들여, 너의원(願)은 무엇이냐. 인허세자(仁許世子) 대답(對答)하되 폐하(陛下)앞에 있는베루(벼루) 그것이 원(願)이로다 胡天子 하는 말이
그리하라 벼루주니 이벼루가 어떠턴고 조화(造化)있는 용연(龍硯)이라 글씨를 쓸라하면 사람의손 아니가도 제입으로 물을 토(吐)해 적도만토 아니하게 마치맛게 토(吐)해노니 용(龍)의조화(造化) 이아닌가 보배는 보배로다 소현세자(昭顯世子) 불러드려 너의원은 무엇이냐 소현세자(昭顯世子) 대답(對答)하되 고국(故國)을 도라가서 부모처자 만나보기 그것이 원(願이)로다 호천자(胡天子) 하는말이 기특하다 그리하라 효종대왕(孝宗大王) 불러드려 너의원은 무엇이냐 효종대왕(孝宗大王) 하신말삼 원(願)대로 하올진댄 원(願)을말삼 하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말하지 못할로다 호천자(胡天子) 하는말이 원대로 할것이니 원(願)을모다 말하여라 효종대왕(孝宗大王) 하신말삼 일구이언((一口二言) 못하기난 범인(凡人)도 못하거든 하물며 천자(天子)께서 호천자(胡天子) 크게웃고 말하여라 그리하마 효종대왕(孝宗大王) 하신말삼 소인(小人)의 삼형제와 죽은신하 세사람과 대유녀(待留女) 삼천명(三千名)과 대유마(待留馬) 삼천필(三千匹)을 다다리고 나갓으면 아모원도 없나이다 호천자(胡天子) 하난말이 일구이언(一口二言) 어이하리 다다리고 나가거라 일시(一時)에 다나오니 죽은신하 원통하다 장하도다 삼학사(三學士)여 삼학사(三學士) 죽은혼이 산것같이 호령하니 호천자 겁이나서 조선인물(人物) 두렵도다 한사람도 두기실타 이일을 생각하니 죽은학사(學士) 덕이로다 단종때 사륙신(死六臣)과 인조때 삼학사(三學士)는 부조배향(不朝配享) 앗갑도다 천추혈식(千秋血食) 맞당하다 인조대왕(仁祖大王) 거동보소 인허세자(仁許世子) 벼루보고 벼루돌을 둘러미고 인허세자(仁許世子) 이마치니 참혹하게 죽난고나 부자간(父子間) 중(重)한 天倫어이참아 이리할까 인조대왕(仁祖大王) 하신말삼 개같은 그놈에게 벼루를 가저오니 네가이놈 사람이냐 한(汗)이만도 못하도다 불공대천(不共戴天) 큰원수(怨讐)를 대보단(大報壇)에 기록하라 인조대왕(仁祖大王) 반정(反正)할제 반정(反正)공신(功臣) 원두표는 도끼를 손에들고 남대문(南大門)을 깨트리니 이럼으로 이른말이 도끼정승(政丞) 이아닌가 서소문밖 이원규(李元奎)는 옥쇄(玉灑)를 도적하야 등극(登極)후(後)에 받친고(故)로 세속에 숨은공(功)은 옥쇄판서(玉灑判書) 이아닌가 골육상쟁(骨肉相爭) 이임금이 벼루가진 그허물로 아들하나 죽엇으니 이일을 볼작시면 인조대왕(仁祖大王) 하신일이 올치가 못하오니 후복(後福)이 장원(長源)할가 슬푸다 국운(國運)이여 국상(國喪)이 또나신다 기축년(己丑年) 오월(五月)달에 인조대왕(仁祖大王) 승하(昇遐)하니 춘추(春秋)가 오십(五十)이요 교하(交河)땅 칠십리(七十里)에 장능(長陵)이 그능(陵)이오 두왕비(王妃)도 한능(陵)이라 효종대왕(孝宗大王) 등극(登極)하니 그왕비(王妃)는 누시든고 덕수장씨(德水張氏) 부인(夫人)이요 부원군(府院君)은 누시든고 덕수(德水)사람 장유(張維)로다 효종대왕(孝宗大王) 등극(登極)후(後)로 대보단(大報壇) 피여들고 병자(丙子)일을 생각하니 한(汗)의일이 어제같다 심중(心中)이 울적(鬱寂)하야 이완(李浣)을 불러들여 군신(君臣)이 서로앉아 복수(復讐)하기 의론(議論)할제 글두귀(句)를 지여내니 드러보소 드러보소 그글에 하였으되 아원장구(我願長驅) 십만병(十萬兵) 추풍웅진(秋風雄鎭) 구련성(九蓮城) 지휘축답(指揮蹴踏) 호노지(胡奴地) 가무귀래(歌舞歸來) 향옥경(向玉京) 자자(子子)마다 유리(有理)하고 귀귀(句句)마다 포한(抱恨)이라 원(願)하나니 장군(將軍)께서 십만대병(十萬大兵) 거나리고 소소(蕭蕭)한 가을날에 구련성(九蓮城)을 쪼차가서 지휘하여 호노지(胡奴地)를 차버리고 발바내고 노래하고 춤을추며 옥제성(玉帝城)에 도라올제 이완(李浣)이 엿자으되 지모장사(智謨壯士) 길러내고 정(定)한군사(軍士) 불러드려 연습(練習)하고 달련(鍛鍊)하며 장군(將軍)의 갑주(甲冑)등속(等屬) 단단히 단속하야 백만병(百萬兵) 거나리고 압록강(鴨綠江) 건너서서 중원(中原)을 들러가면 한(汗)의머리 어대갈까 옥체(玉體)를 보전(保全)하야 근심을 마옵소서 병자년(丙子年) 깊은원수(怨讐) 신등(臣等)이 갚으리다 삼학사(三學士)의 죽은혼령(魂靈) 혼백(魂魄)인들 무심(無心)하리 선대왕(先大王) 욕(辱)하심과 인허세자(仁許世子) 원통(寃痛)함과 소현세자(昭顯世子) 억울함과 전하의 분(憤)하심을 일조(一朝)에 설치(雪恥)하면 국가(國家)뿐만 아니라 팔도(八道)의 창생(蒼生)들이 뉘아니 춤추릿까 효종대왕(孝宗大王) 들으시고 대히(大喜)하야 하신말삼 이완(李浣)의 저장략(將略)은 만고(萬古)에 짝이없어 십삼년(十三年) 싸인분(憤을) 아마다 풀가보다 효종대왕(孝宗大王) 등극(登極)후(後)로 십여년(十餘年)을 지내도록 치국치민(治國治民) 생각않고 일평생(一平生)에 두난마음 북벌(北伐)하기 위주(爲主)하사 조정(朝廷에 모인신하(臣下) 국사강논(國事講論) 전혀없고 북벌(北伐)의론(議論) 너무하네 실상(實狀)으로 생각하면 효종(孝宗)이 망발(妄發)이라 분(憤)하심을 생각하면 당당(堂堂)히 그럴게다 강약(强弱)을 생각하면 북벌(北伐)이 당(當)한말가 통감초권(痛鑑初卷) 모르신가 연(燕)나라 태자단(太子丹)이 일시분(憤)을 못참어서 망발(妄發)되는 마음내서 선광선생(先生) 불러드려 형가(形軻)를 의논하니 번어기(樊於期)의 머리버혀 함(函)안에 담아놓고 서씨(徐氏)에게 비수(匕首)어더 독항도(督亢圖)와 함께싸서 형가(形軻)를 보낼적에 소슬한풍(蕭瑟寒風) 역수상(易水上)에 무양은 짐을지고 형가는 뒤를따라
■ 94311034 임현성 ■
함양咸陽 저사 깉은 밤에 와념명일봉도臥念明日奉圖하여, 아방궁 제비연에 진시황秦始皇을 죽이려고, 아무리 칼을 뺀들, 강약强弱이 현수懸殊하니 만승천자萬乘天子 어찌 하리. 제 다리만 끊었구나. 연燕 태자太子 저도 죽고 연燕나라가 망亡했으니, 이로 두고 볼작시면, 효종대왕孝宗大王 가진 마음 연燕 태자太子와 다를 소냐. 그 때에 북벌北伐터면 북벌北伐 신기神奇챦고, 큰일 나고 말았으리. 지각知覺있는 최명길崔鳴吉이 혼자 들어 간諫했으니, 그러므로 병자호란丙子胡亂, 강화講和 공신功臣 명길鳴吉일세. 국운國運이 장원長遠키로, 효종孝宗이 요수夭壽하여 기해년己亥年 오월五月달에, 효종대왕孝宗大王 승하昇遐하니 춘추春秋가 삼십三十일세. 일백팔십一百八十 여주驪州 땅에 영능寧陵이 그 능陵이요, 왕비능王妃陵도 한 능陵이라. 현종대왕顯宗大王 등극登極하니, 그 왕비王妃는 뉘시던고, 청풍김씨부인淸風金氏夫人이요, 부원군府院君은 뉘시던고. 청주淸州 사람 우명佑明이라. 현종대황顯宗大王 등극후登極後에 환후患候가 태심太甚하여 정사政事를 전폐全廢하고, 궁방宮房에 어의御醫와서 주야晝夜로 복약服藥하니, 어의御醫는 누구던고. 후궁後宮 처남妻男 장만석張萬石 의술醫術이 유리有利하여, 평생平生에 약藥 쓴 법法이 세 첩貼이 넘지 않네. 현종대왕顯宗大王 거동擧動 보소. 효종대왕孝宗大王 국상國喪 나서, 용호龍袍를 아니 입고 제복祭服을 입으시니, 대사간大司諫 조순趙純이가 엎드려 아뢰오되, 자고급금自古及今 제왕帝王들은, 임금의 복제服制에는 흉복凶服이 없사오니, 임금의 복례服禮에는 군례君禮가 아니외다. 현종대왕顯宗大王 하신 말씀, 임금은 부모父母 없나. 요堯․순舜․우禹․탕湯․문文․무왕武王도 용포龍袍를 벗었으니, 임금이 아니던가. 기어이 제복祭服입어 삼년三年을 지낼 적에 옥루玉淚가 마르쟎네. 이십팔왕二十八王 제왕중帝王中에, 정치政治는 의논議論말고 인생人性을 말할진대, 요순堯舜에 가깝도다. 슬프다 세월歲月이여, 십육년十六年 등극登極으로 약藥으로 부지扶持타가, 편便하실 때 얼마 없어 갑인년甲寅年 팔월八月달에 사십사四十四에 승하昇遐하니, 양주楊州 땅 삼십리三十里에 숭릉崇陵이 그 능陵이요, 왕비능王妃陵도 한 능陵이라. 숙종대왕肅宗大王 등극登極하니 그 왕비王妃는 뉘시던고, 광산김씨부인光山金氏夫人이요, 부원군府院君은 뉘시던가, 광산光山 사람 만기萬基로다. 둘째 왕비王妃 뉘시던고, 여주민씨부인驪州閔氏夫人이요, 부원군府院君은 누구던고, 여주驪州 사람 유중維重이라. 셋째 왕비王妃 뉘시던고, 경주김씨부인慶州金氏夫人이요, 부원군府院君은 누구던고, 경주慶州사람 주신柱臣이라. 숙종대왕肅宗大王 등극登極 후後에 정치政治를 선정善政하니, 국태민안國泰民安 한상이요, 세와년풍歲和年豊 이 때로다. 임금은 성군聖君이요, 신하臣下는 충신忠臣이라. 숙종대왕肅宗大王 두고 보면, 성군聖君은 성군聖君이되 중전대접中殿待接 잘못하고, 중첩衆妾에게 혹惑하신가. 혹惑한 첩妾은 누구던고, 장희빈張禧嬪이 이게로다. 장희빈張禧嬪의 거동擧動 보소. 인물人物 좋고 글 잘하고 요악妖惡하고 간사奸邪하여, 이간離間하기 일쑤로다. 희빈禧嬪이 숙종肅宗 보고, 이간離間하여 하는 말이, 중전中殿께서 하신 말씀, 상감上監 입에 악취惡臭 나매 말할 적에 민망憫惘하다. 이러하게 이간離間하고 중전中殿 보고 하는 말이, 상감上監께서 하신 말씀 중전中殿과 말하려니, 입에서 악취惡臭 나매 말하기가 용렬庸劣하다, 요렇게 이간離間하매 요 이간離間이 이상異常하다. 어느 날 숙종肅宗께서 내전內殿에 들어가서, 중전中殿과 말씀할 제, 중전中殿의 하신 말씀, 상감上監께서 하시기를 내 입에 악취惡臭나서, 용렬庸劣타 하시더니 악취惡臭가 황공惶恐하여, 감敢히 앞에 바로 않아 악취惡臭를 보내리오. 이러므로 돌아않아 하신 말씀 대답對答한다. 숙종대왕肅宗大王 생각하니, 희빈禧嬪의 하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로다. 이후以後로 숙종대왕肅宗大王, 중전中殿 대접待接 하시기를 날마다 소박疏薄하사, 인정人情이 쇠衰하기를 구九․시월十月 찬 바람에, 소소작엽蕭蕭落葉이 아닌가. 도도서수일반정滔滔逝水一般情은 중전中殿 신세身勢 이 아닌가. 우리 조선朝鮮 두고 보면, 왕비王妃 되는 그 팔자八字가 부인夫人 몸을 의론議論컨대, 왕비王妃 위에 또 있는가. 이렇게도 권컨마는, 귀貴한 몸도 천賤해지네. 숙종대왕肅宗大王 거동擧動 보소. 밀밀密密하고 깊은 인정人情 장희빈張禧嬪이 제일第一이요, 소소막막蕭蕭寞寞 설운 구박驅迫 민중전閔中殿에 짝이 없네. 무자년戊子年 춘삼월春三月에 편수궁便壽宮에 폐비廢妃하니, 슬프다 중전中殿 신세身勢 적막寂寞하고 가련可憐하다. 어느 궁녀宮女 하나 갈까, 어느 아들 하나 있어, 그 모친母親을 찾아 갈까. 단독일신單獨 一身 중전中殿 신세身勢, 일지화수一枝花樹 분명分明하다. 폐비廢妃할 때 죽은 신하臣下, 누구 누구 죽었는고. 오두인吳斗寅은 상소上疏하여 정배定配 가서 죽어지고, 이시환李時煥은 간諫하다가 장배杖配하여 죽었으니, 박태보朴泰輔는 전정殿庭에서 삼일三日을 다툴 적에 화형火刑으로 다스릴 때, 지성至誠으로 하는 말이, 전하殿下 전일前日 하신 말씀, 부부간夫婦間을 의론議論컨대 생민生民의 시조始祖 되고, 만복萬福의 근원根源이라. 이렇듯이 말씀터니, 오늘날 하신 일은 생민시生民始도 간데 없고, 만복원萬福源도 쓸데없고, 주역周易을 못 보았소, 처지天地 만물萬物 생긴 이치理致, 건곤乾坤 이자二字 따를 소냐, 건곤乾坤이 으뜸이라. 건도乾道는 원기元氣 받고, 곤도坤道는 형기形氣받아 원형이정元亨利貞 천도天道 되고, 인의예지仁義禮智 인도人道 되어 자천자지어서인自天子至於庶人, 건곤乾坤 이치理致 서로 지켜, 부위처강夫爲妻綱 달렸거늘, 편수궁便壽宮에 내쳤으니 국가國家가 장원長遠하며, 복록福祿을 누리리까. 건곤乾坤 이치理致 상합相合할 제, 건乾이 없어 어이 되며, 곤坤이 없어 어이 되리. 군생만물群生萬物 자는 것은 건곤乾坤 이치理致 아니오면, 춘하추동春夏秋冬 사시절四時節에 춘생추살春生秋殺 못할 거니, 만물萬物을 생각해도 폐비廢妃를 마옵시고, 복위復位를 하옵소서. 숙종대왕肅宗大王 거동擧動 보소. 더욱더욱 대노大怒하여 쇠를 달궈 들지지니, 박태보朴泰輔 거동擧動 보소. 박팽년朴彭年을 단근할 제, 이 쇠가 차다더니 박태보朴泰輔의 하는 말이, 박팽년朴彭年과 같이 하니,
■ 95311001 고영진 ■
朴氏들은 어찌하여, 뜨거운 걸 차다 하고, 忠節은 壯하온들, 五臟이 다 탔으니 忠臣은 안 죽을까. 이 때에 金益勳은 上副使로 中原 가서, 廢妃한 줄 몰랐더니, 鴨綠江 건너서서 中殿 내침 듣자옵고, 街頭에 留宿할 제, 아무리 생각해도 肅宗 回心 어렵도다. 燈燭을 밝혀놓고 무슨 冊을 지었는고, 謝氏南征記이로다. 劉翰林은 肅宗되고, 謝夫人은 中殿 되고 喬女는 禧嬪 되고, 譬喩하여 지어 내니, 이 冊 뜻이 무엇인가. 劉翰林은 가장이요, 謝氏는 正室이요, 喬女는 妾이로다. 喬女 마음 妖惡하여 劉翰林의 뜻을 맞춰, 謝夫人을 謀陷하여 禧嬪까지 꾀어내지, 劉翰林의 毒한 마음 謝夫人을 薄待하여, 驅逐하여 내쳤으니 乾坤 理致 各別커든 하느님이 無心할까, 劉翰林의 어진 마음 나날이 後悔로다. 볼품같이 새로 나서 謝夫人을 모셔놓고, 喬女를 죽였으니 神奇하고 異常하다. 이 뜻으로 지어내서 肅宗께 드릴 적에 肅宗大王 擧動 보소. 衾枕을 돋워 베고, 翰林 事緣 들어보니 心身이 不便하여, 謝夫人이 無罪함은 渙然大覺 깨달았다. 벌떡 일어 앉으면서 네가 요년 喬女로다. 做事함을 생각하니 廢妃하다. 寃痛하다. 急急히 일어서서 禧嬪을 잡아 내어 陵遲하라 하옵시니, 벌떼 같은 저 軍卒이, 一時에 달려들어 머리채를 잡아쥐고, 宮廷 앞에 내려서서 輪車에 올려놓고, 鍾路로 끌고 가니, 그 아들은 누구던고, 景宗이 이 아닌가. 景宗의 擧動 보소. 아무리 妖惡한들 어미가 죽는지라, 죽는 어미 아니 볼까. 죽는 거나 보려 하고, 수레 앞에 서서 오니, 죽는 거나 보려 하고, 수레 앞에 서서 오니, 禧嬪의 妖惡 보소. 景宗을 부른 말이 나는 이제 죽어 가니, 母子間에 永訣이라, 永訣하는 오늘날에, 손이나마 만져 보자. 景宗의 擧動 보소. 어미 말은 들어보니 凄凉하고 可憐하다. 가까이 들어서니 禧嬪의 모진 마음, 내 목숨을 죽이면서 내 몸에 나은 子息, 저의 뒤를 잇게 하랴. 손길을 얼른 대어, 男腎을 훔쳐 쥐고 뽀드득 이를 갈며, 마음대로 당기면서 나와 너와 죽자하니, 景宗의 擧動 보소. 精神이 깜짝하여, 失色하고 자빠진다. 大闕로 모셔 와서, 醫員 불러 藥을 쓴들 如前하기 어렵도다. 肅宗大王 聖君일까. 後禍가 滋甚하여, 禧嬪을 죽인 後에 中殿을 復位하고, 吳斗寅 李世華와 朴泰輔 세 臣下를, 忠臣으로 表旌하고 忠烈閣을 지었도다. 庚子年 六月달에 肅宗大王 昇遐하니, 春秋가 六十이라. 高陽 땅 三十里에 明陵이 그 陵이요, 첫째 王妃 翼陵이요, 둘째 王妃 셋째 王妃 明陵과 한 陵이라. 그 아들이 登極하니 이 임금은 景宗이라. 그 왕비는 뉘시던고, 靑松沈氏夫人이요, 府院君은 뉘시던고, 靑松 사람 沈浩로다. 둘째 王妃 뉘시던가, 咸從魚氏夫人이요, 府院君은 누구던고, 咸從 사람 有龜로다. 景宗大王 登極 後로 낫지도 못한 囊腎으로 날마다 服藥하사, 政事하실 餘暇 없어, 登極하신 五年 동안 辛苦만 하시다가, 甲辰年 八月달에 三十七에 昇遐하니, 二十里 楊州 땅에 懿陵이 그 陵이요, 三十里 楊州 땅에 王妃 陵은 惠陵이요, 둘째 王妃 어디던고, 懿陵과 한 陵이라. 英宗大王 登極하니 그 王妃는 뉘시던고, 達城徐氏夫人이요, 府院君은 누구던가, 達城 사람 宗悌로다. 둘째 왕비 뉘시던가 慶州金氏夫人이요, 府院君은 누구던고, 慶州 사람 漢耈로다. 崔後宮에 英宗 나서, 英宗大王 登極하니, 임금은 英傑하나, 亡靈된 趙玉川이 英宗大王 登極後에, 不當한 생각 나서 上疏를 지어노니, 趙玉川의 閤夫人이 죽은 지 七年이되, 靈魂이 神靈하여 사흘 밤을 꿈에 와서, 슬피 울며 하는 말이, 여보시오 玉川先生, 제발 德分 上疏 마오, 子孫이 亡할테니 上疏를 하지 마오. 上疏글이 무엇인가, 그 上疏에 하였으되 鷄不可以爲鳳이요, 蛇不可以爲龍이라. 一夜間에 反正하니, 骨肉相爭 이 아닌가. 上疏 뜻을 들어 보면, 차마 못할 소리로다. 아무리 닭이 큰들 제가 어찌 鳳이 되며, 아무리 뱀이 큰들 제가 어이 龍이 되랴. 하룻밤 그 사이에 猝地에 登極하니, 人倫이 傷치 않나. 이 上疏를 보신 後에 英宗大王 擧動보소. 趙玉川을 목 베이고 逆律로 治罪할 제, 그 子孫을 全滅하니 逆律에서 더 甚하다. 애닯도다 趙玉川은 夫人 말씀 들었던들, 子孫 保全 할 것이요, 自己 身命 穩全하지. 英宗大王 登極 後에 五十二年 政治타가, 八十에 昇遐하니 丙申年 三月이라. 楊州 땅 三十里에 元陵이 그 陵이요, 王妃 陵은 어디던고, 高陽 땅 三十里에 弘陵이 그 陵이라. 둘째 王妃 어디던고, 楊州 땅 三十里에 元陵과 한 陵이라. 眞宗大王 追崇하니, 戊辰年 十二月에 三十日에 昇遐하니, 그 王妃는 뉘시던고, 豊壤趙氏夫人이요, 府院君은 누구던고, 豊壤 사람 文命이라. 眞宗 陵은 어디던가, 坡州 땅 六十里에 永陵이 그 陵이요, 王妃 陵도 한 陵이라. 思悼世子 죽은 일을 이제야 생각하면, 可憐하고 寒心하다. 英宗大王 모진 마음,
■ 94311030 박병규 ■
사도세자(思悼世子) 죽일 적에 뒤주 안에 가둬 두고, 쇠말못을 내리쳐서 참혹(慘酷)하게 죽였구나°부자간(父子間)에 할 것인가° 이 일을 두고 보면 경종대왕(景宗大王) 하룻밤에, 그 사이에 승하(昇遐)하니 영종(英宗)에게 의심(疑心)두면, 조옥천(趙玉川)이 자세(仔細)알세 기어이 상소(上疏)하니, 옥천(玉川) 말이 옳은 게라. 부자간(夫子間)에 살육(殺戮)하니, 그 형(兄)으로 못할쏜가, 사도세자(思悼世子) 추숭(追崇)하니, 장조대왕(蔣祖大王) 분명(分明)하다. 그 왕비(王妃)는 뉘시던고, 풍산홍씨부인(豊山洪氏夫人)이요, 부원군(府院君)은 누구던고, 풍산(豊山) 사람 봉한(鳳漢)이라. 장조(莊祖) 능(陵)은 어디던고, 일백리(一白里) 수원(水原) 땅에 융릉(隆陵)이 그 능(陵)이요, 왕비(王妃) 능(陵)도 한 능(陵)이라. 장조대왕(莊祖大王) 승하(昇遐)하니, 춘추(春秋)가 얼마신가 이십팔세(二十八歲) 분명(分明)하다. 정종대왕(正宗大王) 등극(登極)하니 그 왕비(王妃)는 뉘시던고, 청풍김씨부인(淸風金氏夫人)이요, 부원군(府院君)은 누구던가, 청풍(淸風) 사람 시묵(時黙)이라. 정종대왕(正宗大王) 효성(孝誠) 보소. 아버님의 승하(昇遐)한 일 생각하니 원통(冤痛)하다. 승하(昇遐)할 때 영종(英宗) 말씀 네가 만일 복(服) 입으면, 내 손자(孫子)가 아니리라. 이렇듯이 엄절(嚴切)하니, 정종대왕(正宗大王) 못 입었네. 국초(國初)의 의복법(衣服法)을 말하거든 들으소서, 위의 옷은 푸르렀고, 아래 옷은 누르렀네. 정종대왕(正宗大王) 등극(登極) 후(後)로, 그 아버님 복(服) 못 입어 일평생(一平生) 원통(冤痛)터니, 이제 와서 입는구나. 용포(龍袍)를 벗어 놓고, 위도 희고 알도 희게 소복(素服)으로 입었으니, 조정(朝廷) 대신(大臣) 미안(未安)하여 흰 옷으로 입었으며, 그 지차 수령(守令) 방백(方伯) 흰옷으로 입었으니, 그 풍속(風俗)이 완구(完久)하여 만백성(萬百姓)이 그리 하여, 지금까지 그 법(法)이라. 그 후(後)로 의복(衣服)빛을, 바지는 희게 하나 웃옷은 푸르렀다. 아이들과 부인(婦人)들은 아무라도 의복(衣服)빛을 청홍흑백(靑紅黑白) 다 하여도, 동정빛을 희게 한 줄, 그 연고(緣故)로 알으소서. 기자(箕子) 임금 조선(朝鮮) 나와 평양(平壤)에 도읍(都邑)하사, 팔조목(八條目)을 베풀어서, 사단칠조(四端七條) 닦아 내어 백성(百姓)을 화(和)하게 하니, 만백성(萬百姓)이 감동(感動)하여 기자(箕子) 임금 상사(喪事) 나서, 삼년복(三年服)을 입을 적에 복(服)을 벗고 생각하니, 영히 벗기 원통(寃痛)하다. 천만세(千萬歲) 지나도록 이 복(服)을 입어 보세. 그러므로 동정 달 때, 흰 것으로 달았더니, 그 때 하던 그 풍속(風俗)이 지금까지 내려오니, 모르시는 친구(親舊)님네, 그런 줄로 알으시오. 정종대왕(正宗大王) 효성(孝誠) 보소, 수원(水原) 땅에 능(陵)을 모셔 그 아버님 위한 마음, 수원능(水原陵)에 송추(松楸) 보면 솔 한 포기 심을 적에, 한 포기에 돈 한 냥(兩)씩 포기마다 한 냥(兩) 주어, 물 주어 키워 내고 능장(陵墻) 앞에 절을 지으니, 절 이름 용주사(龍珠寺)라. 용주사(龍珠寺) 그 절 안에 대관전(大觀殿) 놓고, 오금(烏金)으로 향로(香爐) 하고, 은반상기(銀盤床器) 장만하여 중에게 불공(佛供)시켜, 그 아버님 사후(死後) 혼령(魂靈), 극락세계(極樂世界) 돌아가라 밤낮으로 축원(祝願)하니, 그 효성(孝誠)이 오죽할까. 금은자(金銀子) 삼백냥(三白兩)을 옥함(玉函)안에 봉(封)하여서 대관전(大觀殿)에 감춰 두고 오백오십(五百五十) 땅마지기 능(陵) 앞으로 사서 두고, 춘추(春秋)로 거동(擧動)하사 저 송추(松楸)를 돌아보니, 낙랑장송(落落長松) 푸른 솔이, 정종대왕(正宗大王) 효성(孝誠)으로 저렇듯이 무성(茂盛)커늘, 무지(無知)한 저 송충(松蟲)이 송엽(松葉)을 뜯어먹고 소나무 쇠진(衰盡)하니, 정종대왕(正宗大王) 효성(孝誠) 보소, 송충(松蟲)이 잡아다가 용포(龍袍)자락 송충(松蟲)싸서 입으로 씹으시니, 나무마다 많은 송충(松蟲), 일시(一時)에 떨어져서 나무빛이 여전(如前)하니, 효성(孝誠)이 아니시면 저 미물(微物)이 어이 하리. 이렇듯이 많은 송충(松蟲) 일인(日人)들이 발매 보고, 금은자(金銀子) 삼백냥(三白兩)과 은반상기(銀盤床器) 오금향로(烏金香爐) 신해년(辛亥年) 동지(冬至)달에 서울서 내려온 중, 일인(日人)에 등을 대고 그 물건을 팔아 먹나. 아무리 중놈인들 부처 앞에 있는 재물(財物), 중놈 되고 팔아 먹나. 용주사(龍珠寺)에 모인 중놈, 서울 중이 태반(太半)이라. 중마다 계집 두고, 중의 계집 자식(子息) 나서 절이라고 들어가면, 어린아이 우는 소리 이 방(房)에도 소리 나고, 저 방(房)에도 우는구나. 절 망(亡)한 게 용주사(龍珠寺)요, 중 망(亡)한 게 저 중일세. 정종대왕(正宗大王) 하신 자취, 송추(松楸)부터 터가 없네. 경신년(庚申年) 유월(六月)달에, 정종대왕(正宗大王) 승하(昇遐)하니, 춘추(春秋)가 삼십구(三十九)라. 일백리(一白里) 수원(水原) 땅에 건릉(乾陵)이 그 능(陵)이요, 왕비(王妃) 능(陵)도 한 능(陵)이라. 순조대왕(純祖大王) 등극(登極)하니, 그 왕비(王妃)는 뉘시던가, 안동김씨부인(安東金氏夫人)이요, 부원군(府院君)은 뉘시던고, 안동(安東) 사람 조순(祖淳)이라. 순조대왕(純祖大王) 등극(登極) 후(後)에 임신년(壬申年) 서적(西賊) 만나, 국가(國家)가 불안(不安)하니 자중지란(自中之亂)뿐이로다. 부원군(府院君) 김조순(金祖淳)이 부원군(府院君) 안되어서, 시골에 있을 적에 따님은 가년(嫁年)하고, 살림은 철빈(鐵貧)하나 그 종씨(從氏)는 서울 있어, 벼슬은 좋지마는 그 종씨(從氏)가 두호(斗護)할까. 과세(過歲)할 길 전(全)혀 없어 따님을 데리고서, 서울로 이사(移徙)갈 제, 가마 타고 가자 하니, 교군(轎軍) 삯을 어이 줄꼬. 교군(轎軍)더러 이른 말이, 교군(轎軍) 삯은 서울 가서 정(定)한 대로 줄 터이니, 어서 바삐 메고 가자. 교군(轎軍)놈들 이 말 듣고, 둘이 서로 마주 메고 대치원(大治院)을 지나가서, 눈도 오고 비가 와서 여러 날을 유련(留連)하니, 저의 속에 생각하되 서울까지 가고 보면, 객지과세(客地過歲) 하게 됐소. 교군(轎軍) 삯 예서 받고, 집으로 내려가서 집에서 과세(過歲)하고, 조상(祖上) 제사(祭祀) 지내려오. 김조순(金祖淳)이 하는 말이, 너의 말이 당연(當然)하나 내 사정(事情)을 들어 보라. 교군(轎軍) 삯을 서울 가서 주기고 작정(作定)하고, 행차(行次)돈 삼사냥(三四兩)을 근근(僅僅)히도 변통(變通) 이곳까지 겨우 오니, 두 냥(兩) 돈도 못 있거든 교군(轎軍) 삯을 어이 주랴. 당초(當初)에 알았던들, 세후(歲後)에 올라갈 걸, 피차(彼此) 서로 잊은 거라. 교군(轎軍)놈들 거동(擧動) 보소. 서울인지 시골인지, 잔말 말고 얼른 내오. 김조순(金祖淳) 하는 말이, 교군(轎軍)들아 말 들어라
■ 962720 옥지은 ■
예서도 우리 집이, 사백리(四百里)가 더 남았다. 당초에 언약할 때, 이 주막(酒幕)에서 주려더냐. 눈 비 올 줄 모르고서, 며칠이면 올라가서 며칠이면 내려온다. 이렇듯이 하였더니 피차(彼此) 불행(不幸)이 아닌가, 내 생광을 보더라도 서울 가서 나와 같이, 객지과세(客地過歲) 한번 하자. 저 교군(轎軍) 하는 말이, 헛말 두 번 하지 말고, 그 입 뒀다 밥 잡수쇼, 듣기 싫소 어서 주오. 이렇듯이 다툴 적에, 봉놋방에 듣던 사람 게 앉아서 대전(對戰)하니, 그 사정(事情)이 민망(憫惘)하다. 주막 주인 부른 말이, 후객 양반 이리 오라. 김조순(金祖淳)이 얼른 나와, 둘이 서로 인사(人事) 후(後)에 저 양반(兩班) 하는 말이, 교군(轎軍) 삯이 얼마시오. 서울까지 올라가면 三十兩을 결가(決價)하고, 서울까지 올라가면 二十四兩 닷돈이오. 저 양반(兩班) 거동(擧動) 보소, 행장(行裝)을 풀어놓고 교군(轎軍) 삯 내어주니, 김조순(金祖淳) 거동(擧動) 보소, 그 돈 받아 앞에 놓고, 치하(致賀)하여 하는 말이 활인불(活人佛)이 있다더니, 김선달이 활인(活人)이오. 교군(轎軍) 삯 내어주고, 그 주막(酒幕)에 교군(轎軍) 얻어 가마 문(門)에 들어갈 때, 김선달(金先達)이 앉아보니, 불쌍하다 저 처녀(處女)여, 가난도 유다르다. 동지(冬至) 섣달 설한풍(雪寒風)에, 마포류(麻布類)를 입고 가니 가다가 죽겠구나. 김조순(金祖淳)을 다시 불러 양모사(羊毛絲) 두루막을, 행담(行擔) 열고 내어 주며 은근하게 하는 말이, 이것 갖다 따님 주오. 김조순 거동 보소, 두루막을 받아 놓고 百番 치사(致謝) 하는 말이, 金先澾 奉石이는 지금 사람 아니로다. 교자(轎子) 삯도 황공(惶恐)하거든 이같이 중(重)한 옷을 내 안 입고 내어 주니, 1이 은혜(恩惠)를 의논(議論) 하건대, 백골진토(白骨塵土) 잊을소냐. 황공(惶恐)하고 감사(感謝)하오. 이 인정(人情)을 갚으리다. 평안(平安)히 행차(行次)하오. 서울 걸음 계시거든, 창동(創洞)으로 찾아오소. 김선달 하직하고, 두루막을 가져다가 저 따님 입히고서, 서울로 올라가서 석달만에 왕비(王妃) 되니, 사람 복력(福力) 누가 알까. 순조왕비(純祖王妃) 두고 보면 고진감래(苦盡甘來) 이 아니며, 흥진비래(興盡悲來) 예사로다. 왕비(王妃)로 들어앉아, 부원군(府院君)을 불러들여, 대치원(大治院) 주막(酒幕) 집에, 돈 주고 옷 준 사람 게방(揭榜)하고 찾아들여, 불일내(不日內)에 보게 하오. 김해(金海)로 사환(使喚)하여, 김선달(金先達)을 찾아다가 김해부사(金海府使) 제수(除授)하니, 김선달(金先達)을 두고 보면, 아마도 어질여야 자연(自然)히 되나니라. 갑오년(甲午年) 시월(十月)달에, 순조대왕(純祖大王) 승하(昇遐)하니 춘추(春秋) 사십오(四十五)라. 광주(廣州) 땅 칠십리에 익능(翼陵)이 그 능이라. 왕비(王妃) 능(陵)도 한 능(陵)이라. 익종대왕(翼宗大王) 추숭(追崇)하니, 익종대왕(翼宗大王) 분명(分明)하다. 병인년(丙寅年) 오월(五月)달에 익종대왕(翼宗大王) 승하(昇遐)하니 춘추(春秋)가 이십(二十)이라. 그 왕비(王妃)는 뉘시던고, 풍양조씨부인(豊穰趙氏夫人)이요, 부원군(府院君)은 누구던고, 풍양(豊穰) 사람 만영(萬永)이라. 익종(翼宗) 능(陵)은 어디던고, 양주(楊洲) 땅 삼십리(三十里)에 수능(綏陵)이 그 능이라. 왕비(王妃) 능(陵)도 한 능이라. 헌종대왕(憲宗大王) 등극(登極)하니
그 왕비(王妃)는 뉘시던고, 안동김씨부인(安東金氏夫人)이라. 부원군(府院君)은 누구던고, 안동(安東)사람 조근(祖根)이라. 둘째 왕비(王妃) 뉘시던고, 남양홍씨부인(南陽洪氏夫人)이요, 부원군(府院君)은 누구던고, 남양(南陽) 사람 재룡(在龍)이라. 기유년(己酉年) 유월달에 헌종대왕(憲宗大王) 승하(昇遐)하니, 양주(楊洲) 땅 삼십리에, 경릉(景陵)이 그 능(陵)이요, 왕비(王妃) 능(陵)도 한 능(陵)이라. 철종대왕(哲宗大王) 등극(登極)하니, 이 임금은 뉘시던고, 장화도령(壯華道令) 모셔왔네. 그 왕비(王妃)는 뉘시던고, 안동김씨부인(安東金氏夫人)이요, 부원군(府院君)은 뉘시던고, 안동(安東)사람 문근(汶根)이라. 기해년(己亥年) 십이월에 철종대왕(哲宗大王) 승하(昇遐)하니, 고양(高陽) 땅 삼십리에 예릉(睿陵)이 그 능(陵)이요, 왕비(王妃) 능(陵)은 어디던고, 예릉(睿陵)과 한 능(陵)이라. 흥덕궁(興德宮)에 오른 임금 갑자년(甲子年)에 등극(登極)하니, 어리고도 장(壯)할시고, 십삼세에 나신 임금, 지각(知覺)도 놀랍시고, 도략(度略)도 넉넉하다. 그 왕비(王妃)는 뉘시던고, 여주민씨(驪州閔氏) 부인이요, 부원군(府院君)은 누구던고, 여주(驪州)사람 치록(致祿)이라. 상감(上監) 부친(父親) 대원군(大院君)이, 대원군(大院君) 안 될 적에 궁곤(窮困)함이 그지없고, 대원군(大院君) 백씨장(伯氏長)도 흥인군(興寅君) 안될적에 가난하기 유명(有名)터니, 상감(上監)님 등극(登極) 후(後)에 대원군(大院君) 봉(封)하시고, 흥인군(興寅君) 되온 후에 부귀영화(富貴榮華) 극진(極盡)하다. 병인년(丙寅年) 추구월(秋九月) 뜻밖에 난리(亂離)나서, 대륜선(大輪船) 수십척(數十隻)이 인천(仁川)이라 제물포(濟物浦)에, 대완구(大碗口) 놓는 소리 장안(長安)이 경동(驚動)하여, 피난(避難) 가는 사람들과, 경상가(卿相家) 부인(夫人)들이 가마 타고 달아날 제, 임자 없는 저 가마가, 오강(五江)에 뒤끓어서 건너기를 쟁투(爭鬪)하니, 선가(船價)인들 오죽할까, 달라 한 게 한정(限定)일네. 그 때 난(亂)에 서울 사람, 아내 잃고 못 찾는 이 몇백명 되었던가, 그 때 정승(政丞) 누구던가, 김병국(金炳國)이 정승(政丞)이요, 한양(漢陽) 사람 황오(黃五)불러 격서(檄書) 지어 보낼 적에, 대장군(大將軍)에 한성근(韓聖根)은 군사(軍士) 일(一萬) 거느리고 장담(壯談)하고 나가더니, 서양국(西洋國)서 기별(奇別)나와, 대진(大陣)을 거느리고, 급(急)히 오라 하였거늘, 그러므로 양인(洋人)들이 양국(洋國)으로 들어간 줄, 그걸 모른 사람들은 한성근(韓聖根)이 승전(勝戰)했다, 황오(黃五)의 격서(檄書) 보고 양인(洋人)이 놀라 갔다, 이 때에 웃는 소리 곳곳이 흩어지고, 처처(處處)이 편만(遍滿)하여 양인(洋人)같이 강(强)한 군사(軍士) 몇만(萬)명이 나왔다가, 한성근(韓聖根)이 하나 보고 진(陳)을 파(破)해 어이 가며, 황오(黃五)의 격서(檄書) 보고 천병만마(千兵萬馬) 달아날까. 실(實)없는 대원군(大院君)이 한성근(韓聖根)을 자랑하고, 한성근(韓聖根)이 공신(功臣)이요, 황오(黃五)가 인기(人氣)로다. 승전(勝戰)했다 북을 울려, 잔치 끝에 벼슬 주니, 상감(上監)님은 어리시매 시동(侍童)으로 앉혀놓고, 비군비신(非君非臣)이, 양반(兩班)이, 삼천리 이 강산(江山)과 내삼천(內三千) 외팔백(外八百)을 장중(掌中)에 넣어두고, 기탄(忌憚) 없이 놀려 낼 제, 과거(科擧)를 보이자면,
■ 985219 서현주 ■
五天兩에 進士 내고 五萬兩에 及第냇다. 進士及第 뿐일런가 十萬兩에 縣監 내고 百萬兩에 府使내니 縣監府使 뿐일런가 朝士府尹 내는法은 몇萬兩의 決價하며 八道監司 내는法은 千萬兩을 議論할까 國政이 이러하니 百姓되는 그 목숨은 塗炭에 아니들까. 八道의 守令方伯 그 벼슬을 사가지고 큰 골 갈이 큰 골 갈고 小邑 갈이 小邑가고 本밑천을 빼려하니 富者百姓 걸려 죽고 貧한百姓 싸여죽네 죽는 것이 百姓이요 다치는 게 富者로다. 大院君 하온일이 許多한 많은 宮闕 넉넉하고 많건마는 景福宮을 왜 지어, 景福宮 지을 적에 願納令 이 오죽할까. 大院君의 하온 말씀, 願納願字 願納이요, 百姓들이 하는 말은, 怨望願字 怨納이라. 白石 하면 千兩이요, 千石 하면 萬兩일세. 萬石하면 十萬兩이 우리 朝鮮 遍踏 한들, 萬石군이 흔하던가. 歌辭 짓는 이 사람도 蕩敗 하여 가던 살림 富名에 걸렸거늘, 農牛 팔아 願納하니 그 해 農事 廢農했소. 景福宮에 願納한 돈 모아 놓아 볼 같으면 三角山 과 比等하지. 虛名無實 잡힌 富者 어느 날 죽을는지, 鬼神도 모르도다. 大院君 窮困할 때 곳곳이 다니다가, 華陽洞 書院에서 무슨 설움 크게 본지, 몇 해를 품었다가 大院君 되온 後에 八道에 行關 하여 書院毁撤 하였구나. 어떤 秘記 얻어 보고, 殺萬人은 무슨 일고. 萬人을 죽인다니, 萬人이 무엇이냐. 중놈의 鄭萬人이 大藏經 八萬卷을 배에 싣고 南海 간 놈, 이 중놈을 잡으려면 渺滄海之一粟이라, 어느 곳에 잡으리오. 이 놈을 못 잡아서 制煞 한다 하옵시고 萬 사람을 죽여 낼 제, 날마다 죽는 人名 몇萬名이 되었는고. 殺害人名 이리 하고 國家가 長遠할까. 옛적에 秦始皇도 제 혼자 잘난 체로, 阿房宮 지을 적에, 秦나라 百姓 목숨 얼마나 죽었는고. 阿房宮 지은 後에 項羽 손에 불질려서 三月不滅이 아닌가. 阿房宮도 지은 것이 俊民膏澤 지었으니, 子子孫孫 傳할쏜가. 項羽 같은 英雄 나서 萬民雪恥 시켜주니, 그 아니 爽快하며, 이 아니 異常할까. 世上 理致 이러하니 景福宮은 長久 할까. 漢陽 都邑 생각하면, 太祖大王 以後로서 正宗 顯宗 그 시절이, 文治가 놀랍지요. 科擧를 보일 때에 文筆로 보이시니, 八道에 나는 선비 글 工夫 하였다가 文筆이 부족하면 科擧 져도 恨이 없고, 文筆이 有餘하면 科擧 經營 하였으니 이러므로 글 工夫가 불꽃같이 일어나서, 四書三經 通達하고 詩書百家 많은 글을 낮밤으로 熟讀하여, 詩賦 疑心 策問 글을 모두 모두 지어 낼 제, 모르는 게 없었으니 處處이 文章이요, 집집이 經儒 로다. 이러므로 그 때 法이 이렇듯이 좋았으매, 中大臣도 글 못하면 忠臣 노릇 못 하였고, 守令 傍白 官員들도 글 못하고 無識하면, 지체가 쓸데 없고, 家門이 相關없소. 우리 朝鮮 大臣들은 글 못 하는 大臣 없고, 어느 方伯 어느 守令, 글 못 하고 다니던가. 이렇듯이 하여 가니, 다른 緣故 아니로다. 어느 임금 글 안 하리. 二十八王 諸王中에 無識 임금 누구신가, 上監님의 三父子라. 그러므로 漢陽 末年, 可憐코도 寒心하다. 文筆은 뒤가 지고, 財物은 앞에 서서, 科擧에도 財物이요, 벼슬에도 財物이요, 訟事에도 財物이요, 婚姻에도 財物이요, 營門에도 財物이요, 佛庭에도 財物이라. 千萬事 온갖 일이 財物로 爲首하니, 萬百姓이 本을 받아, 惡竦 으로 行勢하니, 法之不行 못하기는 自上犯之 이 아닌가. 大院君의 擧動 보소. 임금의 父母로서, 무엇이 不足하여 簒位 함을 생각하며, 大院君을 몰아다가 天津 으로 보낼 적에 魚鍊珠의 便紙 끝에 大院君이 속아 가서, 天津에 드가다가 임인도로 잡혀가서, 四年을 辛苦 하고, 僅僅히 살아 와서 壬午軍亂 꾸며 내어, 興寅君 은 맞아 죽고, 閔致穆은 칼에 죽고, 閔台鎬는 불에 타고 中殿에게 벼슬한 이 몇몇이나 죽었던고. 上監님 擧動 보소. 옳은 말로 上疏하면 그 臣下들 다 죽이니, 누구누구 죽였던가. 逆律로 다 죽이고, 松竹같은 崔益鉉은 天命이라. 진고개 잡혀 가서 석 달을 苦生타가 日本으로 잡혀 가서, 석 달을 苦生타가 日本으로 잡혀 가서 佰夷 叔濟 本을 받아, 甲辰年 에 亂을 꾸며, 無罪힌 中大臣을 逆律로 죽여 내니, 그것인들 할 것인가. 科擧라 본다 하면, 進士와 及第값을 疑心 없이 알리어라. 富者는 돈 장만코 貧者는 생각 없어, 글 工夫는 全廢하고 이러므로 돈 바치면, 使令輩 도 進士하고 市井輩 도 及第하고, 風憲 놈도 察訪 하니, 衙典 守令 몇이 나며, 白丁 守令 누굴런가. 家家及第 이것이요, 人人進士 이거로다. 虛無하다 우리 漢陽, 이렇고야 안 亡할까. 異常하다 우리 上監, 年紀가 長成하니, 內殿에만 沈惑 하여, 아버님도 내 모른다. 어머님도 내 모른다. 어천 王妃 閔中殿이 舅婦間 에 不睦하여, 서로 마음 두는 것이 죽이기로 爲主하니, 閔中殿의 擧動 보소,
■ 985219 임수영 ■
義不食周粟(의불식주속)으로 七日(칠일)을 주려죽어, 故國(고국)으로 返魂(반혼)하니 죽어도 寃痛(원통)하다. 閔中殿(민중전)의 거동 보소. 세자 東宮(동궁) 기를 적에 壽福多男(수복다남) 長久(장구)하여, 至于萬世(지우만세) 이르러서, 傳之無窮(전지무궁) 보존토록, 指令軍(지령군)을 불러들여, 江原道(강원도) 金剛山(금강산)에 네가 지금 내려가서, 八萬九庵(팔만구암) 많은 절에 어떤 부처 神靈(신령)한고, 자세히 알아본 후, 金銀(금은) 布帛(포백) 얼마라도 아끼잖고 줄 터이니, 發願(발원)하고 네 오너라.
지령군이 분부 듣고, 가마 타고 내려갈 제, 전후 金銀(금은) 布帛(포백) 바리, 길가에 나열하니, 이 재물이 어디 났나, 賣官賣爵(매과매작) 재물이라.
다달이 파는 벼슬, 나날이 파는 벼슬, 億百萬兩(억백만냥) 많은 재물, 동대문 남대문에 連續不絶(연속부절) 들어오니, 백성 재물이 아닌가.
아깝도다 저 재물을, 금강산 중놈 주어 중놈 부자 만들진대, 戶曹庫(호조고)에 감췄다가 흉년을 만나거든, 飢民(기민)이나 주실게지, 중놈을 다 주시니, 이러하고 복을 받나.
五江(오강)에 쌀 풀 적에, 쌀과 돈이 얼마던가, 松坡江(송파강)에 배를 타고 몇백 석을 홑쳤던가, 壽福(수복) 빌어 잘될진대 그 누가 아니할까.
어진 마음 지켰으면, 자연히 되는 줄을 그 이치는 모르고서 악한 일만 숭상하니, 당나라가 망할 적에 後庭花(후정화)를 부르더라. 그 곡조를 부르다가 安祿山(안녹산)의 난을 만나, 양귀비의 고운 얼굴 馬嵬坡(마외파)에 죽어지고, 唐明皇(당명황)의 바쁜 걸음 마리교를 지날 적에, 일생사를 탄식하고 밤 짧다 하던 명황, 蜀中(촉중)에 홀로 앉아, 밤 긴 줄을 애닯으니, 애닯도다 우리 상감 이런 史蹟(사적) 보았으면, 응당히 알으실걸 어찌타 모르신가.
居士(거사)놈과 寺黨(사당)놈을 대궐 안에 불러 들여, 아리랑타령 시켜, 밤낮으로 노닐 적에, 춤 잘 추면 상을 주고, 至愚者(지우자) 수건으로 노래하면 잘 한다고 돈 백냥씩 불러 주고, 오입장이 민중전이 왕비 오입 첫째로다.
季宮(계궁)은 무슨 죄로 독 안에 가둬 두고, 모자 목숨 다 죽이니 그것인들 할 짓인가.
슬프고도 가련하다 민중전의 거동 보소. 칠촌인지 팔촌인지, 閔(민)망나니 불러 들여, 三南(삼남) 富者(부자) 잡아 들여, 有罪(유죄) 無罪(무죄) 돈 바치라. 저 부자 거동 보소. 천냥소록 만냥소록 不日內(불일내)로 다 바치니, 돈을 받아 쌓아 두고 밤낮으로 저 짓 하니, 백성이 어이 살리. 백성이 원망하니 그 국가가 長遠(장원)할까. 우리 나라 지방 보면, 삼천리가 넉넉하니, 그 지방이 부족턴가. 武王(무왕)政事(정사) 못하시며 湯(탕)의 政事(정사) 못하실까. 善政(선정)을 못하기로 災變(재변)이 자주 난다. 壬午年(임오년) 軍亂(군란)통에 민중전이 도망하여 觀海(관해) 구경 가셨던가, 船遊(선유)하러 가셨는가, 어디로 가셨는가.
오입하러 가신 길에 長湖院(장호원)을 내려가서, 석 달을 숨었으니 國喪(국상) 났다 소동 나서, 어리석은 백성들이 석 달을 白笠(백립) 쓰니, 백성 道理(도리) 그렇던가.
팔월 달에 還宮(환궁)하여 넝치러운 저 경사로 사흘을 잔치하니, 그 광경을 누가 봤나, 閔氏(민씨)들이 모두 봤네. 頑惡(완악)하다 진주 백성, 헛 백립 썼다 하고 每戶(매호)에 한 냥 돈을 구슬돈에 제쳤구나.
이런 일로 말할 진댄, 국가 災變(재변)이 아닌가. 갑오년에 東學(동학) 나서 팔도가 驚動(경동)하여, 處處(처처)이 接主(접주) 내고 곳곳이 入道(입도)하니, 천 명도 모여 앉고 만 명도 모여 앉아 侍天主(시천주) 造化經(조화경)을 사람마다 공부하여, 밤낮으로 들썩거려, 잠들기가 어려우네. 상놈이 接主(접주) 되면 士夫(사부) 잡아 주리 틀고, 종놈이 接主(접주) 되면 上典(상전) 잡아 주리 틀고, 前日(전일)에 못 판 묘를 잡아다가 묘 파주기, 前日(전일)에 못 받은 돈 잡아다가 받아 주니, 그 때를 두고 보면 東學(동학) 밖에 또 있는가.
班常(반상)이 分別(분별) 없고 奴主(노주)가 분별 없어, 入道(입도)만 하고 보면 수령을 겁을 낼까. 眼下(안하)에 無人(무인)이라, 그 중에도 안 든 사람, 동학 보고 겁내기를 범같이 두려하네.
東學軍(동학군)의 거동 보소. 斥倭(척왜) 斥洋(척양) 大膽(대담)하고, 수만 명 모였더니, 스물 다섯 왜놈들이 총을 메고 들어가며, 放砲(방포) 一聲(일성) 놓고 가니, 정신 없이 달아날 제 칼 놓고 달아나고, 총 들고 달아나고 신 벗고 달아나니, 총 끝에 한물 난 才操(재조) 어떠한 데 쓰려는지. 그런 재조 왜 못 쓰고 벌살같이 헤어지니, 이것이 天運(천운)이라 人力(인력)으로 어이 하리.
丙戌年(병술년) 民亂(민란) 보면, 백성들이 員(원) 죽이고 東軒(동헌)에 불 지르니, 吏戶長(이호장) 아전들이 몇몇이 죽었는가, 골골이 난리로다.
병술년 민란 남은, 수령들이 不測(불측)하여 받은 公錢(공전) 再徵(재징)하고, 재징한 그 공전을 세 번 공전 받아 내니, 백성들이 당치 못해 塗炭(도탄)중에 들어가서, 死生(사생)을 不顧(불고)하고 일시에 通文(통문) 내어, 민란을 꾸몄으니, 이것을 의론컨댄, 哲宗大王(철종대왕) 不敏(불민)하여 守令(수령) 方伯(방백) 잘못 내어, 生民(생민) 塗炭(도탄) 加甚(가심)하니, 우리 한양 국운 보면, 철종부터 始初(시초)했네. 슬프다 우리 상감, 그 代(대)를 이어 앉아 雪上(설상)에 加霜(가상)하니, 아니 亡(망)코 어이 하리.
周(주)ㅅ나라이 盛國(성국)이되, 幽王(유왕) 厲王(여왕) 두 임금이 그 나라를 亡(망)치었고, 진시황이 영웅이되 子嬰(자영)이 昏迷(혼미)하여 그 나라를 망치었고, 당나라의 삼백년에 唐(당) 明皇(명황)이 망치었고, 五季(오계)六朝(육조) 다 지나고, 고구려 百濟城(백제성)도 庸君(용군) 暗主(암주) 망치었고, 경주 서울 일천년에 敬順王(경순왕) 때 망하였고, 고려 사백칠십년에 恭讓王(공양왕)이 망치었고, 한양 사백이십년에 수월챦고 놀랍도다.
骨肉相爭(골육상쟁) 李王家(이왕가)에
■ 985220 정순덕 ■
傳하기 많이 했소. 國運이 다했거든 聖君이 날 수 있나, 恨을 한들 쓸데 있소. 이 때에 나선 누구시며 누구신가. 己未年에 義兵이라, 國事를 생각하니 斥倭함이 道理 없다. 義兵을 꾸며 내니, 江原道 義兵將은 그 누가 大將인고, 壯하도다 徐相烈이 三四百 名 거느리고, 곳곳이 다닐 적에 風雨를 不避하고, 軍兵이 적거니와 兵器가 全혀 없어, 倭人과 接戰하면, 行伍를 定치 못해 强弱이 不同하니, 天運만 嘆息한다. 徐相烈이 敗했으니, 죽은 사람 적을쏜가, 옛 일을 보더라도, 天運이 할 수 없다. 力拔山 項羽라도 漢 高祖에 敗하였고, 諸葛亮의 度略인들 曹操를 잡을쏜가. 處處에 義兵大將 이렇듯이 大敗하니, 슬프다 우리 上監, 義兵이 일어나서, 幸여나 斥洋할까 幸여나 斥倭할까, 慇懃히 바라신들, 天道가 宛然커든, 임금이 不明함에 어느 일이 그리 되리. 임금은 父母 없나, 天子도 父母 있고, 諸侯도 父母 있지. 天皇 地皇 人皇 後에 父母 없이 어이 나오. 옛적에 舜임금은 萬乘天子 되기 前에, 歷山에 밭을 갈아
父母 奉養 하시거든, 어찌하여 우리 上監 中殿 말씀 들으시고, 어머님 殞命할 제 어찌 아니 보셨으며, 大院君의 臨終時에 趙哥 臣下 말만 듣고, 어찌 아니 보셨는고. 中殿이 그렇기로, 喪事날 때 擧動 보면, 骸骨을 保全 못해, 중의 죽음 本을 받아, 施主하던 金剛山에 어느 부처 데려가서, 極樂世界 가셨는가. 痕迹 없는 中殿 屍體 因山한다 하옵시고, 洪陵을 묻어 놓고 지금까지 上食터니, 이제는 어찌 한지 興德宮에 홀로 앉아, 父母를 생각던가 中殿을 생각는가, 嚴尙宮을 생각는가 英親王을 생각는가. 그 마음을 옮겨다가 父母님께 하셨으면, 孝子 임금 안 되리까. 驪興 閔氏 姓만 타면 鷄卵 같은 宕巾 쓰고, 完山 李氏 姓만 타면 宗親科에 科擧하니, 閔氏와 李氏들은 나던 날에 벼슬하네. 돌科인지 무엇인지 해마다 보인 돌科, 甲戌年에 났다 하면 덮어놓고 進士 주니, 그러한 科擧法이 漢陽 밖에 또 있는가. 굽이굽이 생각하니, 애닯고도 寒心하다. 世子 東宮 기를 적에, 해마다 절에 가서 佛前에다 施主하고, 五江에 쌀을 풀어 壽․福․多男 빌었으나, 上監의 不孝함과 中殿의 惡한 허물, 世子에게 맺혔구나. 下焦에 病이 나서, 春秋가 四十이되 用色을 못 하시고, 尹澤榮의 따님 보소, 二八 靑春 좋은 時節, 獨宿空房 늙어 가니, 몹쓸 녀석 尹澤榮이 府院君을 慾心내어, 불쌍하다 저 따님이 父親 보고 우는 말이, 府院君이 되었으니, 아버지는 좋소마는 내 身勢는 볼 것 없소, 이렇듯이 怨望하고. 八字 좋은 嚴尙宮은, 內人으로 賤턴 몸이 魚變成龍 王妃 되어, 호강도 無窮하고, 아들도 잘 낳더니, 父母를 다 버리고 머리 깍고 日本 가서, 좋은 벼슬 한다더니, 嚴尙宮 죽은 後에, 王妃 禮로 葬事하고, 王妃 이름 들었으니, 死後 福力 議論컨대
中殿에게 比할쏜가. 슬프다 우리 漢陽 五百年이 限定이라. 太祖大王 하신 일이 長遠하고 無窮터니, 庚戌年 七月달에 合邦 文字 들어오니, 누가 能히 막아 낼까. 五百年 禮儀國이, 小日本이 되단 말가. 壯하도다 閔泳煥은, 合邦 擧動 아니 보고 圖章찍고 그 때 죽어, 죽은 後에 忠烈 맺쳐 대남이 솟아나서 마루 틈을 뚫었으니, 이 대나무 모양 보소, 네 가지는 조금 적고, 세 가지는 조금 굵어, 草綠 같은 푸른 대가 忠節이 빛나도다. 閔泳煥의 父子 둘이 開化는 시켰으되, 죽은 뒤에 態를 보면 아마도 無心하다. 合邦 文字 두어 말에 壯한 일이 또 있구나. 錦山 郡守 洪範植이 結項하여 죽었으니, 그 일도 壯할씨고. 萬古 逆賊 尹澤榮이, 府院君 名色 되고 임금의 玉璽 뺏어, 日本 統監 갖다 주고 저의 빚을 갖다 주고, 處斬 마땅 이 놈이오. 나라 일은 어찌 되나, 三千里 좋은 江山 金布緞에 圖章 찍어, 文書째로 남을 주고, 可憐하다 우리 上監, 龍袍 玉璽 다 뺏기고, 興德宮 저 房 안에 寂寞히 홀로 앉아,
還甲이 언제든지, 進甲이 무엇인가, 歲月 없이 다 지내니, 白首 君王 可憐하다. 內三千 外八百에, 어느 臣下 찾아 가며, 三千 宮女 內人들은 散之四方 흩어지고, 萬里 他國 있는 아들 日本 皇帝 臣下 되고, 德壽宮에 있는 아들 菽麥 되어 앉았으니, 무슨 議論 하여 보며, 무슨 政談 하여 볼까. 슬프다 우리 漢陽, 獨立門 만들 적에 小人놈의 말을 듣고 中原 救援 끊었으니, 誰怨誰咎 할 것 없다. 自古 及今 두고 보면, 亡한 나라 임금마다 忠臣은 다 없애고, 宦者놈 아니며는 外戚 臣下 잘못 두고, 國破 君亡 아주 쉽네. 그러므로 임금 되기難於上天 이 아닌가. 漢陽 史蹟 닦고 보니, 太定太世文端世, 德睿成中仁明宣 元仁孝顯肅景英, 眞正純翼憲哲光 二十八王 諸王 中에 우리 上監 可憐하다. 辛亥年 九月달에 長安을 돌아보니, 左右 城을 헤쳐 내고 鐵路길을 닦아 놓고, 電車 汽車 自動車가 銃살같이 往來하니, 옛일을 생각하면, 寒心 끝에 눈물이라.
■ 970017 박경아 ■
昌德宮을 뜯어 내고, 기둥과 서까래는 鐘路 百姓 사다가서 장작으로 팔아 먹고, 그 안을 치워 내고 온갖 짐승 길러 내니, 大院君이 살았더면 그 짐승을 구경하지. 國家이나 私家이나, 父子間에 不睦하고 舊婦間에 不和하면, 亡치 않고 무엇되며, 子孫 난들 무엇 하리. 五百年 重한 史蹟 傳할 곳 全혀 없어. 上監 身勢 이리 될 줄 미리 料量하였으면, 壬午年 軍亂 後에 忠臣 上疏 살펴보고, 情神을 다시 차려 改過遷善 하셨으면, 이 地境이 안 될 것을, 人必自悔 하온 後에 사람이 凌之하고, 家必自毁 하온 後에 저 사람이 害케 하고, 國必自伐 하온 後에 저 나라이 滅之하니, 上監님이 이 나라를 上監님이 먼저 쳐서, 日本이 와서 치니 옛 말씀 그르던가. 亡할 줄 모르고서, 한결같이 操心 없이 내 나라를 亡케 하니, 어이 그리 애달픈고. 漢江 물에 흩친 쌀과, 저 江물에 던진 돈을 남의 料는 안 지실걸, 지금까지 寃痛하다. 漢陽 城中 돌아 보면 예전 漢陽 아니외다. 四十里를 周回삼아, 鐵瓮같이 굳은 城이 오랜 방천 壯觀이요, 천장만장 壯觀이요, 三角山 바라보니 覆政山이 分明하다. 五間水 흐른 물은 소리조차 凄凉하다. 漢陽城 下直하고 西海로 照會 간다. 國破君亡 우리 나라, 君臣 有義 간데 없다. 柱石之臣 어디 가고 다 없는고. 四方으로 흩어져서 머리 깎고 觀察하며, 各處로 내려가서 사포 쓰고 郡守 되니, 禮義 東方 우리 나라 君臣有義 이렇던가. 忠臣 烈士 있었더면 저 임금이 이리 될까. 오늘같이 추운 날에 宮房이나 따시던가, 異常하다 우리 임금 忠臣 烈士 恨을 마오. 松都가 亡할 적에 忠臣이 七十二이요, 漢陽이 亡할 적에 小人이 七十이라. 忠臣 烈士 相關 없소 임금에게 말인 게라. 우리 나라 임금님이 都合하니 三十이라. 玉璽 놓고 登極한 이, 스물 여섯 임금이요, 追崇하신 그 임금이 누구누구 追崇인가, 德宗, 元宗, 追崇이요, 眞宗, 翼宗, 追崇이라. 내친 임금 누구던가 燕山主와 光海主라. 王妃를 合해 보면, 三十二王 王妃로다. 安邊 韓氏 王妃 하나, 谷山 康氏 王妃 하나, 慶州 金氏 王妃 둘과, 驪州 閔氏 王妃 너히, 靑松 沈氏 王妃 서히, 安東 權氏 王妃 하나, 廬山 宋氏 王妃 하나, 坡平 尹氏 王妃 하나, 淸州 韓氏 王妃 하나, 居昌 愼氏 王妃 하나, 羅州 朴氏 王妃 둘과, 廬山 金氏 王妃 하나, 綾州 具氏 王妃 하나, 楊洲 趙氏 王妃 하나, 德水 張氏 王妃 하나, 淸州 金氏 王妃 둘과, 光山 金氏 王妃 둘과, 咸從 魚氏 王妃 하나, 達城 徐氏 王妃 하나, 豊壤 趙氏 王妃 둘과, 安東 金氏 王妃 하나, 南陽 洪氏 王妃 하나, 豊山 洪氏 王妃 하나, 燕山 光海 王妃까지 四十四 王妃로다. 燕山 配位 愼夫人과 光海 配位 柳夫人과 두 夫人을 함께 모아, 後錄에 記錄함은 내친 임금 탓이로다. 우리 朝鮮 이 나라에 四色이 서로 나서, 四色이 무엇인가, 老論인지 南人인지, 少論인지 小北인지, 이것이 四色일세. 尤庵先生 老論 되고, 眉叟先生 南人 되고, 明齋先生 少論이요, 경암先生 小北이라. 以後로 風俗이 되어 南人 老論 斥이 지고, 少論 小北 是非 나서 벼슬에도 斥이 지고, 婚姻에도 分揀 있어 南道 通婚 아니 하고, 少論 小北 갈랐으니 이것 亦是 弊端이라. 婚姻 일을 말한대도, 南人 집 좋은 婚姻 老論 집 絶痛하고, 老論 집 좋은 혼인 南人 집 絶痛하다. 後生으로 두고 보면, 老論이라 稱託하고 南人先生 誹謗하니, 色目조차 是非남은 後生行實 無廉하다. 南老 色目 일어날 제, 嫡庶 分揀 是非 난다. 妻의 所生 嫡子되고, 妾의 所生 庶子로다. 상놈 딸에 장가 가서 아들 나도 嫡子 되고, 兩班 寡婦 데려다가 아들 나도 庶子 되니, 嫡庶 分揀 大端하여, 嫡家는 嫡家대로 庶派는 庶派대로, 서로 찾아 婚姻하니, 世上 物理 두고 보면 天地도 變하나니, 五月 六月 너무 더워 견디지 못하다가, 冬至 섣달 너무 추워 추워서 못견디니, 사람 亦是 一體로다. 우리 朝鮮 風俗 보소, 兩班이라 하는 사람 지체 좋은 그걸 믿고, 상놈 잡아 討索할 제, 상놈은 죽어난다. 名賢 子孫 깔딱양반 八月 秋夕 섣달 名日, 가만히 앉았다가, 상놈에게 나온 돈을 제 돈같이 받아 쓰니, 그것이 웬일인가. 그러므로 이 世上에 兩班 分揀이 없어진다. 萬物이 極盛하면 畢竟에 衰해지고, 兩班도 極盛하면 상놈이 도로 되니, 兩班이라 하는 말이 兩班으로 말한 대로, 前朝 兩班 姑捨하고, 我朝 兩班 두고 보면, 五百年 지내도록 班常 分揀 定한 後로, 兩班은 兩班이요, 衙前이라. 中人 상놈 百姓 分揀 하늘같이 높았으나, 지금 世上 두고 보면 대패로 민 듯하니, 兩班分揀 보자 하면 後世에나 다시 볼까. 可憐하고 可憐하다, 漢陽歌를 짓고 보니, 슬픈 心懷 나는 것이 測量치 못할로다.
첫댓글 우리가 아는 '한오백년'이라는 노래는 결국 '한양오백년'의 준말인것 같군요.
한 많은 이세상 야속한 님아 / 정을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구 / 한 오백년 살자는데 웬 성화요
백사장 새 모래밭에 칠성단을 보고 / 님 생겨 단하고 비나이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구 / 한 오백년 살자는데 웬 성화요
청춘에 짓밟힌 애끊는 사랑 / 눈물을 흘리며 어디로 가나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구 / 한 오백년 살자는데 웬 성화요
한 많은 이세상 냉정한 세상 / 동정심 없어서 나는 못 살겠네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구 / 한 오백년 살자는데 웬 성화요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구 / 한 오백년 살자는데 웬 성화요
- 조용필 [한오백년]
한(恨)인줄 알았는데 말씀듣고 보니 중의(衆意)군요.
@왕소군 오랜만에 조용필의 한오백년 가사를 읽어보니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한양오백년가(민족문화대백과) ~ 1913년 사공 수(司空檖)가 지은 영사가사(詠史歌辭). 1책. 활자본. 원래는 작자·연대 미상의 <한양가>이었다. 그런데, 이를 최강현(崔康賢)이 고증하여 작자·연대를 밝히고, 조선의 도읍지인 한양을 노래한 ‘향토한양가’와 구별하여 이 작품은 ‘왕조한양가(王朝漢陽歌)’라고 하였다. 내용은 한양에 도읍을 정한 조선왕조의 흥망성쇠를 노래한 조선왕조의 역사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