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와 보살 숭배
4. 보살들(미륵)
붓다가 발견하고 가르친 진리는 붓다만의 유일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존재들의
진리이며, “여래가 오거나 오지 않았거나 여전히 진리로 남아 있는 것이다”. 석가모니 이전에
붓다가 존재했다는 생각은 아주 오래 전부터 혹은 석가모니가 생존해 있던 초창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미래에 더많은 붓다들이 존재할 것이라고 극적인 추론도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만약 미래불이 존재한다면 바로 그 다음 붓다가 될 존재가 이미 있어야 하며, 그는
수승한 보살도를 닦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존재가 바로 미륵(彌勒, Maitreya; 팔리어:
Metteyya)보살이다. 미륵보살은 대승불교와 비대승불교 모두가 받아들인 ‘천상세계’에
현존하는 유일한 보살이다.
미륵보살의 이야기는 『미륵수기경(彌勒授記經, Maitreyavy?kara?a)』 이라는 산스크리트어
경전 속에 포함되어 있다. 이 경전은 미륵보살에 대한 대승불교의 숭배의식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경전이다. 미륵불아래서의 삶은 불교의 두 번째 천년기로 나타날 것이다. 이 시기는
일반적으로 (결코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주 먼 미래에 이루어질 것 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때 신, 인간, 그리고 다른 중생들은 미륵보살을 숭배할 것이며,
모든 의혹이 사라지고, 급류와 같은 욕망을 끊을 것이다. 모든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운
중생들은 생존의 바다를 건널 것이다. 그리고 미륵 보살의 가르침을 받아 성스러운 삶에
도달할 것이다. 그들은 어느 것도 자기 소유로 생각하지 않으며, 금·은·집·친인척 등을 전혀
소유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미륵보살의 인도 아래 순수함이라는 성스러운 삶에
도달할 것이다. 그들은 갈애의 그물을 끊고 무아지 경에 들어갈 것이다. 그들은 환희와
행복으로 충만한 삶을 살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미륵보살의 인도 아래 성스러운 삶에
도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Conze 1959: 241)
상좌부 문헌에서 오늘날까지 이 땅에 미륵이 하생 하였을 때 승려가 되어 그의 지도 아래
깨달음을 얻는 그곳에 다시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것은 보편적이다. 미륵 경전들은 적어도
4세기 초에 중국에서 번역되었고, 이후에 미륵보살의 이야기는 중국 나아가 동아시아에서
자신이 미륵보살의 대변자이거나 화신이라고 주장하는 지도자들과 결합되어 ‘메시아적
운동’ 혹은 천년왕국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 의미는 심지어 혁명적인 행동도 포함하는 적절한 행동을 통해 미륵의 출현은 극적으로
빨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5세기와 6세기에만 이러한 운동이 아홉 차례나
있었다. 그들의 역사, 즉 종종 극히 폭력적이고 미륵에 영감을 얻은 운동은 14세기 중반
중국에서 원나라 제국을 멸망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일본에서 진언종 설립자인 공해(空海, K?kai)대사, 즉 고보대사[弘法大師, K?b? Daishi]는
고야산(高野山) 정상에서 여전히 선정 속에서 미륵이 도래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공해 대사를
따르는 다른 진언 수행자들은 등신불(等身佛)의 과정을 통해 죽었다―혹은 그 경우에는 죽지
않을지도 모른다―. 등신불은 미륵이 도래하기를 기다리며 산에서 살아 있는 그들의 몸을
성상(聖像) 혹은 동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대승의 자료들(예를 들면 한국과 티베트)에서 이미
미륵을 미륵불 또는 미륵여래로 말한 것은 흔히 발견된다.
석가모니처럼 미륵보살은 마지막으로 태어나기 전에 현재 도솔천에서 하생할 시기를
기다리며 머물고 있다. 도솔천은 천상세계이고 정토가 아니기 때문에 대승불교와
비대승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 선정 속에서 찾아가거나 그곳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자 그대로 미륵보살은 세상과 아주 가까이 존재한다. 도솔천은 정토보다
훨씬 가깝다고 말해지기 때문이다.
미륵보살은 중생들을 구제하고 법을 가르치기 위해 여러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마 가장
잘 알려진 경우가 무착(無着)의 이야기일 것이다. 티베트 전설에서 미륵보살은 무착을
도솔천으로 인도하여 그에게 보살이 해야 하는 행위들과 유식(唯識)에 대한 가르침을 상세히
전해주었다. 이러한 이유로 미륵보살에 대한 숭배는 유식학을 추종하는 불교도들이 특히
관심을 기울인다.
예를 들어 현장은 미륵보살의 도솔천에 다시 태어날 것을 기원했으며, 그가 유식경론들을
한역하고 일반화시켰기 때문에 중국에서 미륵보살 숭배가 성행하게 되었다. 어떤 승려는
명상 속에서 도솔천에 도달했으며 거기에서 보살의 수기를 받았다고 한다. 선정의 관법을
통해 그 승려는 대승의 정체성을 완전하게 깨달았다.
법현은 인도와 스리랑카의 여행기에서, 어떤 아라한이 신통력으로 조각가를 업고 도솔천으로
데리고 갔다고 한다. 그 조각가는 미륵보살을 친견하고 지상으로 돌아와 카슈미르 북부에
빛나는 거대한 조각상을 만들었고, 그 조각상은 미륵재일(彌勒齋日)에 빛을 내뿜었다고
전해진다.
미륵보살은 관법의 대상으로서 카슈미르의 명상학파와 깊은 연관을 맺은 것 같다. 이미
보았듯이 관법은 선정 수행을 동반한다. 카슈미르는 대승불교와 복잡하지 않은 주류 불교
가르침 둘다의 중심지였다. 미륵보살은 대승과 비대승의 두 불교 전통에서 모두 수용할 수
있었던 보살이다. 따라서 미륵보살이 카슈미르 선정 수행자들의 ‘수호신’ 이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또한 미륵보살을 추종하면서 요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유식학이 바로
카슈미르에서 발전할 수 있었다 (Demieville 1954: 376 이하).
바샴은 비문에 근거하여, 위대한(혹은 천상의) 보살이라는 현상이 아마 북인도에서 발생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1세기경 간다라(카슈미 르가 포함된 지역) 예술에서는 석가모니와
미륵보살이 가장 보편적으로 묘사되는 인물이었다. 미륵보살에 대한 숭배는 카슈미르에서
부터 중앙 아시아와 중국으로 전파되었다. 이 전래는 중앙아시아에 거대한 영토를 지니고
있던 쿠샨왕조에서 시작되었다.
미륵보살은 중앙아시아 불교에서 특히 예경의 대상이 되었다. 미륵 경전 가운데 적어도 한
권은 투르판(Turfan)의 오아시스 지역에서 편찬되었던 것 같다. 또한 미륵보살은 전법승들의
보호자였던 것 같다. 중앙아시아에서 불교는 다양한 숭배의식과 접촉하였으며, 일부
학자들은 미륵보살의 모습을 미트라 (Mithra)신과 연관시키거나 조로아스터교
(Zoroastrianism)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가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앙아시아의 불상의 모습에 도 불구하고, 불교에서 미륵의 역할과 조각상의 모습을
인도 불교사상의 발전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중앙아시아의 예술에서 미륵보살상이
중앙아시아인의 복장으로 묘사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중국에서 미륵보살 숭배는 아미타불 숭배보다 먼저 발전하였으며, 한동안은 서로 경쟁했던
것으로 보인다. 혜원의 스승인 도안(道安, Dao’an, Taoan, 312-85)은 불교 경전들에 편견을
가졌다는 두려움으로 계속 미륵숭배를 수행했던 것 같다. 카슈미르의 영적 지도자인 미륵
보살은 논서들의 수호성자가 되었으며, 도안은 제자 몇몇과 함께 도솔천에 다시 태어나서
자신들이 지닌 의심과 불확실성을 완전히 정화하기 위해 미륵보살상 앞에서 기도했다고
한다(Zürcher 1972: 194; Soper 1959: 219 참조).
츠카모토(Tsukamoto)는 석가모니 후계자로서의 미 륵보살의 의미를 족보와 혈통의 계승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 때문이라고 지적한다(Tsukamoto 1985: 755). 도안과 그의
제자들도 역시 미륵보살에 집중하는 염불을 수행했던 것 같다. 385년에 도안과 제자들은
생전에 도솔천을 보았다고 전해진다.
예술적으로 미륵보살은 전통적인 연꽃이 아니라 ‘서양식’ 대좌(臺座) 위에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도솔천 중앙의 궁전에 있는 미륵보살에 대한 묘사가
역사적으로 정토의 묘사보다 앞섰던 것 같고, 정토의 묘사에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중앙아시아 에는 미륵보살상과 그림들이 많이 남아있다. 이들은 주불(主佛)과 마주하고
있는 사찰문의 윗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미륵보살은 종종 꽃병이나 병을 들고 있다.
그러므로 신자는 석가모니에게 귀의하는 것에서 벗어나 불상 주변을 돌거나 혹은
엎드리면서 미래불 세상에서의 마지막 탄생을 기다린다고 기원한다.
거대한 미륵보살상이 아프가니스탄과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이르는 무역로와 순례의
여행로에 세워졌다. 불교를 전파할 새로운 나라의 국경에 미륵의 천년을 기원하는 거대한
조각상을 세우는 것은 하나의 관례임이 분명하다(Gaulier et al. 1976: 11).
산스크리트어 경전과 팔리어 경전에는 미륵상이 36미터였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것을
근거로 하면 그런 거대한 조각상을 세우는 것은 관례였던 듯하다(Soper 1959: 214, 216을
참조하라). 이러한 사실은 법현의 여행기에서 날아다니는 조각가에 대한 기록으로
입증된다.
아시아의 예술에서 보살은 일반적으로 보석으로 치장한 옷을 입은 왕자나 공주로 묘사된다.
이들은 붓다를 계승하여 법왕(法王)이 될 것 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 대부분 서양 가정에서
볼 수 있는 뚱뚱하고 땅딸막한 ‘웃고 있는 붓다’가 있다. 이것도 미륵보살의 중국식
형태이다.
중앙아시아처럼 중국의 동굴 사원들에도 많은 미륵 보살상들이 있다. 예를 들어 돈황에는
진흙으로 만든 거대한 채색불상이 있는데 ‘서방’을 향해 앉아 있는 자세를 보면 그가 어떤
보살인지 즉시 알 수 있다. 또한 영국 박물관에는 돈황에서 (9세기 또는 10세기경에)
출토된 비단에 그린 그림이 있는데, 미륵보살이 붓다가 되었을 때 세상의 환희를 묘사하는
인상적인 그림이다.
왕과 여왕이 미륵보살의 가르침으로 깨달음을 얻어 세상을 등지면서 머리를 깎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결혼식, 경작과 수확은 참된 풍요의 시대, 아직 새로 다가오지 않은 과거의
황금시대를 의미하는 오랜 불교 이전의 풍습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