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의 발견
언어가 문제다. 사람들이 언어를 잘못 사용하고 있다. 단어에는 뜻이 없다. 뜻은 맥락에 있다. 맥락은 계통을 반영한다. 계통에 따른 분류가 필요하다. 구조론의 아이디어는 처음 분류이론에서 나온 것이다.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 사건을 따라 분류해야 한다.
언어는 사건의 그림자다. 사건 중심의 사유라야 한다. 우리는 사물 중심의 사유에 빠져 있다. 사건은 변화를 반영하고 사물은 불변이다. 변화 중심의 사유라야 한다. 어떤 그것의 의미는 그것에 고유하지 않고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변화의 과정에 유도된다.
사물은 혼자다. 혼자면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사건은 여럿이다. 사건은 만남을 통해 격발된다. 여럿이 만나면 공존하고 공존하면 충돌한다. 충돌의 모순을 해소하여 공존을 유지하려면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다. 공존을 유지하는 조건이 존재의 성질이다.
존재의 성질을 결정하는 것은 어떤 둘이 만나서 공존하는 방식의 차이다. 여럿이 모이면 깨진다. 존재의 성질은 여럿이 공존하여 서로 충돌하는 모순에도 불구하고 깨지지 않는 성질이다. 존재는 곧 변화이며 변화는 깨지지 않고 버티는 방향으로 일어난다.
변화 중심적 사유의 반대편에 원자설이 있다. 원자는 깨지지 않는다고 선언된다. 내부가 없다고 주장된다. 틀렸다. 모든 존재는 깨질 수 있는 내부가 있다. 시간과 공간이 변하므로 불변의 존재는 없다. 시공간과 나란한 결맞음 변화와 결어긋남 변화가 있다.
긍정의 철학
긍정이 아니면 부정이다. 긍정과 부정은 동전의 양면이다. 부정어법으로 할 수 있는 말은 긍정어법으로도 말할 수 있다. 부정어법으로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이유는 모르기 때문이다. 긍정이 먼저다. 빛으로는 그림자를 설명할 수 있지만 그림자로는 빛을 설명할 수 없다.
원자는 쪼갤 수 없는 것이다. 원자설은 부정적 사고다. 석가는 자성이 없다고 했다. 역시 부정적 사고다. 반야심경은 공空, 불不, 무無, 허虛 등 부정의 언어를 남발한다. 노자 도덕경의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은 부정의 언어다. 그들은 그림자를 봤을 뿐 빛을 보지 못했다.
부정적 사고는 방어적 사고다. 약자들에게 인기가 있다. 대중은 약한 존재이므로 부정적 사고를 좋아한다. 무엇을 하라고 긍정어법으로 말하면 싫어하고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부정어법으로 말하면 좋아한다. 부정적 사고는 인간의 심리적 약점을 노리는 상술일 뿐이다.
서구 구조주의 사상은 대중이 전면에 나서는 근대의 성과를 부정하는 방어적 사고다. 정치권력의 미디어를 통한 대중 동원을 반대한다. 정치권력으로부터 지식권력을 방어하는 권력게임에 매몰되어 있다. 구조론은 공격적, 긍정적 사고라는 점에서 구조주의 사상과 다르다.
부정적 사고에 매몰되는 이유는 첫째 외부를 보기 때문이고 둘째 도구가 없기 때문이다. 변화는 내부에서 일어난다. 내부 밸런스를 조절해야 한다. 도구는 외부를 내부로 만든다. 자동차 밖에서 할 수 있는게 없지만 키로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으면 자동차를 통제할 수 있다.
지식혁명의 구조
대중을 대중이라고 하는 이유는 대중을 집단적인 의사결정의 능동적인 주체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대중은 물과 같이 그저 정해진 흐름을 따라갈 뿐이며 어떤 적극적인 의사결정은 하지 않는다. 대중이 태도를 바꿀 때는 의미있는 환경변화가 일어나서 흐름을 바꿀 때다.
대중은 외부요인에 의해 변한다. 대중의 내부요인에 의한 자발적 변화는 없다. 결국 세상은 지식인이 주도하는 것이며 대중은 진짜 지식과 가짜 지식을 구분할 수 있을 뿐이다. 지식이 대중 속으로 스며들면 진짜 지식이고 지식인 사회에 고립되어 대중과 겉돌면 가짜다.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 사건이 증명했다. 서구 인문학 지식 시스템이 통째로 가짜라는 사실을 들켰다. 특히 탈근대 또라이들 개소리는 3류 사기극이다. 역사는 진짜 지식과 가짜 지식의 싸움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확실히 진짜다. 대중에게로 스며들어 삶을 바꾼다.
지식인이 사회를 올바르게 이끌어 나간다면 이런 논의는 불필요 하다. 대중은 능동적인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지식인은 거의 가짜다.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지적 근친상간을 일삼으며 상호보증을 선다. 상호보증이라는게 사기꾼들이 늘 쓰는 수법이 아닌가.
생각하면 갈릴레이도 뉴턴도 그저 하느님을 섬기는 한 명의 종에 지나지 않았다. 갈릴레이가 갑자기 이상한 짓을 한 것은 개신교와 카톨릭의 충돌 때문이다. 신지식의 힘으로 방자하게 날뛰는 개신교를 제압하고 하느님이 내린 사명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사변이 일어나면 지식인이 자다가 벌떡 일어나 무슨 짓을 벌이기도 한다. 김대중 때의 신지식인 운동도 그런 것인데 지식인이 갑자기 대중의 눈치를 본 사건이다. 왜? IT혁명이라는 정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철수가 IT거품론으로 진압해서 없던 일이 되었다.
신지식인 운동은 3일 만에 안철수 사이비 지식 근위대에 진압되었다. 안철수는 정문술이 카이스트 석학 타이틀을 달아준 가짜 지식인이었기 때문에 민중들의 지식혁명을 진압해서 진짜 지식인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지식 사기꾼이 사기치는 방법이 그러하다.
1. 대중이 스스로 변화할 수 있다면 대중이 아니다.
2. 지식인들이 사회를 올바르게 이끌수 있다면 이런 말은 나오지도 않았다.
3. 지식인과 대중의 생각이 바뀔 때는 천하대란이 일어나서 환경이 변할 때 뿐이다.
4. 개인의 생각은 무의미하고 지식인도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한 명의 군중이다.
5. 인간은 생존의 위기에 처하여 자신을 방어할 때만 창의적인 사고를 한다.
젊은이는 부모의 품에서 독립하여 자신만의 세력권을 만들려고 하므로 흥분해서 잠시 창의적인 사고를 하기도 하지만 곧 방어적 태도로 돌변하여 진중권 된다. 노벨상급 아이디어는 서른 살이 넘어서 나온 적이 역사 이래 없다시피 하다. 호르몬이 변하므로 원래 안 된다.
세종대왕도 왕자 시절에 한글을 연구해 뒀다고 봐야 한다. 과거 세기말에 인류는 불안했다. 맬서스의 인구론 위기, 핼리혜성의 충돌 위기, 기관총에 의한 세계대전 위기다. 3가지 불안요소 중에서 하나는 결국 현실화 되었다. 핵무장으로 인류는 멸종의 위기를 겪었다.
서구의 인문학이라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와 나치의 전체주의 재앙을 경험하고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정치적 기동이다. 그들은 진지하지 않다. 서구의 지식인 사회를 지배하는 구조주의 철학의 본질은 대중을 봉쇄하라는 지령이다. 쟤네들 흥분하면 꼭 사고치더라.
마르크스주의와 제국주의는 미디어를 이용하여 대중을 동원하는데 성공했다. 그것이 전체주의다. 모든 것을 해체하고 분해하여 너절한 상태에 두라. 대중이 미디어를 장악하지 못하게 하라. 대중의 권력의지를 차단하라. 이런 교리다. 대중을 파괴하기 위한 자기파괴다.
대중을 깽판치기 위해 지식이 먼저 깽판으로 시범 보인다. 소쉬르니 라캉이니 하는 구조주의 언어학은 한 마디로 단어에 뜻이 없다는 말이다. 이건 2500년 전에 석가모니가 했던 말이잖아. 단어에 뜻이 있을 리가 있나? 사건에 뜻이 있지. 그들은 사건을 보지 못한 것이다.
구조주의 언어학은 통째로 개소리다. 이게 원자론에 빠져서 원자론의 모순을 비판하는 헛소리다. 이들의 목적은 대중의 무장해제시켜 바보로 만드는 것이다. 시범을 보인다며 자신이 먼저 바보가 된다. 지식 허무주의다. 허무주의 용도는 대중의 열망을 파괴하는 것이다.
단어는 뜻이 없지만 맥락에는 뜻이 있다. 맥락은 사건에 있다. 언어는 사건의 그림자다. 사건에는 뜻이 있고 단어는 뜻이 없다. 이게 구조론과 서구 구조주의 철학의 차이다. 구조론은 빛에 입자가 있다고 하고 구조주의는 그림자에 입자가 없다고 한다. 비슷한데 다르다.
구조론은 빛을 따라가라고 가르친다. 구조주의는 그림자에 속지마라고 한다. 어느 쪽이 진짜 지식일까? 거짓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지식이 진짜인가, 진리로 무장하는 지식이 진짜인가? 구조주의는 석가모니가 했던 말 재탕이다. 여전히 주술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들은 한치도 전진하지 못했다. 왜? 대중의 발호를 제압하여 기성질서를 유지하는 정치적 동기에 붙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혀 진지하지 않다. 그들은 지식인이 아니며 사실 지식에는 관심없다. 그들의 목적은 자신이 못 먹는 지식을 대중이 못 먹게 막는 거다.
내가 먹어봤는데 그 떡은 위험해. 독이 들어 있어. 이런 말이다. 그들의 목적은 무엇이든 해체하고 파괴해서 너절한 상태로 두는 것이다. 그들은 대중의 미디어 장악을 경계한다. 자신이 강해지지는 않고 상대를 약화시킨다. 이거 중국이 써먹던 이이제이 수법이 아닌가?
자신의 힘으로 오랑캐를 토벌하지 않고 오랑캐가 서로 싸워 자멸하기를 바라지만 오랑캐가 서로 싸우다가 실력이 늘어 결국 중국을 침략한다. 인간은 환경이 변해야 호르몬이 나오는 존재다. 환경변화가 지식혁명을 촉발한다. 인공지능 등장은 지식 세계의 재앙이다.
언어에는 뜻이 없지만 사건에는 뜻이 있다. 언어는 사건의 운반체다. 언어철학을 버리고 사건철학으로 갈아타야 한다. 언어는 사건을 복제한다. 언어의 구조주의를 버리고 사건의 구조주의로 갈아타야 한다. 방어적 구조주의를 버리고 공격적 구조주의로 갈아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