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1권 2-11
2 기행紀行 11 기석령祈石嶺
산천석설족山泉石囓足 산골짜기 泉石이 발에 부딪치는데
초로첨인의草露沾人衣 풀 이슬 사람의 옷을 적신다.
장가행로난長歌行路難 행로난行路難을 길게 노래 부르며
욕채서산미欲采西山薇 서산西山의 고사리나 캐어 보리라.
세고하핍측世故何偪側 세상일 어찌 그리 기구할까?
운림무시비雲林無是非 운림雲林에는 是非가 없을 것이네.
하여불수거何如拂袖去 어떠하리? 소매 훌훌 떨치고 가서
온와청산비穩臥靑山扉 푸른 산 속에 편안하게 누워 있은들
산의 샘, 돌은 발에 걸리고
풀잎 이슬이 사람 옷을 적신다
<행로난>을 길게 부르며
서산 고사리를 캐어보련다
세상일 어찌 그리도 각박한지
구름 낀 숲엔 시비가 없도다
어떠한가, 소매 떨쳐버리고
푸른 산 작은 집에 편히 누워 사는 삶
►기석령祈石嶺 기석령에서
기석령祈石嶺 경기도 議政府의 낙양동樂陽洞 짝박굴 고개.
기석祈石 짝박굴에 있는 독바위.
인근주민들이 神靈에게 소원을 비는 돌이었는데
金時習의 이 詩가 지어진 뒤 祈石으로 불렸고 짝박굴 고개도 祈石嶺이라 불리고 있음
산속 옹달샘, 돌 뿌리가 발에 치이고
풀잎에 맺힌 이슬에 옷이 젖네.
행로난 시를 길게 읊으며
서산의 고사리나 캐어보려네.
세상이 왜 이리 야박하고 매몰찬지
구름 낀 숲속 내 집에서는 시비가릴 일이 하나 없는데 말이오.
어떻소, 옷소매 한번 툴툴 털고
푸른 산속 오두막집에 누워 조용히 사는 삶이.
►석설石囓 돌무더기 ‘깨물 설囓’ 깨물다. 씹다
►행로난行路難 길 가기가 어렵다 함이니 세상 살아가는 길이 어렵다는 뜻.
험난한 인생살이를 노래한 漢代의 전래민요로 후대의 많은 詩人이 읊었고
특히 李白의 ‘行路難 3首’ 연작시連作詩가 유명
►서산西山 수양산首陽山. 山西省 영제현永濟縣 남쪽에 있다.
옛날에 백이伯夷·숙제叔齊가 굶어 죽었다는 곳.
►핍측偪側 야박하고 매몰참
►하여何如 어떠한가. 어찌 ~만 하겠나.
►비扉 집. 가옥家屋
●행로난行路難/李白(701-762)
其一
금준청주두십천金樽淸酒斗十千 금술잔, 청주는 가득하고
옥반진수직만전玉盤珍羞直萬錢 옥쟁반의 맛난 안주는 비쌌지
정배투저불능식停杯投箸不能食 술잔 놓고 젓가락 던진 채 먹지 못했다
발검사고심망연拔劒四顧心茫然 칼을 뽑아 주위를 둘러보나 마음은 아득할 뿐
욕도황하빙새천欲渡黃河氷塞川 황하를 건너자니 얼음이 길을 막고
장등태행설만산將登太行雪滿山 태행산을 오르려 했더니 눈이 산을 가득 채웠다네.
한래수조벽계상閑來垂釣碧溪上 한가히 돌아와 시냇가에 낚싯대나 드리웠었지.
홀부승주몽일변忽復乘舟夢日邊 어쩌다 또 배에 올라 저 먼 곳을 꿈꾸려네
행로난行路難 행로난行路難 길 가기 어렵다, 길 가기 어려워
다기로多岐路 금안재今安在 수많은 갈림길, 지금은 어디쯤인가
장풍파랑회유시長風破浪會有時 큰 바람이 일어 파도를 헤치면 기회가 있으리니
직괘운범제창해直掛雲帆濟滄海 흰 돛만 걸고 창해를 건너네
其二
대도여청천大道如靑天 큰 길은 푸른 하늘과 같건만
아독부득출我獨不得出 나 홀로 그 길 나서지 못하네
수축장안사중아羞逐長安社中兒 부끄럽게 장안의 귀족 자제들을 쫓아다니며
적계백구도리률赤雞白狗賭梨栗 닭싸움과 개 경주 도박에 배와 밤을 걸까보냐
탄검작가주고성彈劍作歌奏苦聲 검을 두드리며 노래짓고 괴로운 소리를 내며
예거왕문불칭정曳裾王門不稱情 왕문 앞에 옷자락 끄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네
회음시정소한신淮陰市井笑韓信 회음의 시정잡배들은 한신 장군을 비웃었고
한조공경기가생漢朝公卿忌賈生 한 나라의 고관대작들은 가생을 꺼려했었지
군불견君不見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석시연가중곽외昔時燕家重郭隗 옛날 연왕이 곽외를 존중하여
옹수절절무혐시擁篲折節無嫌猜 빗자루 들고 허리 굽힘에도 거리낌이 없었지
극신악의감은분劇辛樂毅感恩分 극신과 악의는 임금의 은혜에 감격한 나머지
수간부담효영재輸肝剖膽效英才 간 빼내고 쓸개까지 쪼개 빼어난 재능 받쳤네
소왕백골영만초昭王白骨縈蔓草 소왕은 이미 백골 되어 덩굴 속에 엉켜 있으니
수인갱소황금대誰人更掃黃金臺 누가 다시금 그의 황금대를 쓸려고 하겠는가
행로난行路難 가는 길 험난하니
귀거래歸去來 돌아서 가려 하네
其三
유이막세영천수有耳莫洗潁川水 귀가 있다고 해서 영천 물에 귀를 씻지 말고
유구막식수양궐有口莫食首陽蕨 입이 있다고 수양산 고사리를 캐 먹지 말라
함광혼세귀무명含光混世貴無名 빛 숨기고 세상과 섞여 무명을 귀히 여기니
하용고고비운월何用孤高比雲月 어찌 그 고고함을 구름과 달에 비기겠는가
오관자고현달인吾觀自古賢達人 나는 옛날부터 현달한 사람들을 봐 왔었는데
공성불퇴개운신功成不退皆殞身 공 이루고 물러나지 않은 자 모두 망신했네
자서기기오강상子胥旣棄吳江上 오자서는 죽어 오 나라 강물 위에 버려졌고
굴원종투상수빈屈原終投湘水濱 굴원은 끝내 상수의 물속으로 몸을 던졌지
륙기웅재기자보陸機雄才豈自保 육기의 뛰어난 재주, 어찌 스스로 지키겠나
리사세가고부조李斯稅駕苦不早 이사가 고통을 벗고 쉬려 하나 이미 늦으니
화정학려거가문華亭鶴唳詎可聞 화정의 학 울음소리를 어찌 들을 수 있으며
상채창응하족도上蔡蒼鷹何足道 상채의 푸른 매인들 감히 무슨 말을 할건가
군불견君不見 그대는 보지 못했나
오중장한칭달생吳中張翰稱達生 오나라 장한이 삶을 달관해 이르길
추풍홀억강동행秋風忽憶江東行 가을바람에 문득 생각나서 강동으로 떠나네
차락생전일배주且樂生前一杯酒 단지 살아생전 한 잔의 술을 즐기는 것이지
하수신후천재명何須身後千載名 죽은 후에 천년의 이름을 남긴들 무엇 하리
►영천수潁川水 영천潁川은 지금의 河南省에 있다.
요堯 임금 때의 高士인 허유許由가 出仕를 원치 않아
자신을 부른다는 말을 들은 후 이곳에서 귀를 씻었다고 전해진다.
►수양궐首陽蕨
수양산은 伯夷, 叔齊가 굶주리며 은거하던 곳인데 그들은 고사리를 캐 먹으면서 굶어 죽었다고 전한다.
►함광혼세含光混世
함광含光은 혼탁한 세상에는 재주와 지혜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품속에 간직하고 있음을 말한다.
►자서기기오강상子胥旣棄吳江上
오자서伍子胥가 충직하게 諫言하였지만 吳王 부차夫差가 듣지 않았고
도리어 오나라 왕에게 사사賜死 당하여 그 시신이 吳江에 던져졌다.
►굴원종투상수빈屈原終投湘水濱
굴원屈原은 楚나라 大夫로 회왕懷王이 그의 재주를 중히 여겼으나
훗날 근상靳尙‧자란子蘭 같은 무리에게 참소와 비방을 당해 결국 쫓겨나게 되었다.
이에 굴원은 <離騷> <漁父> 같은 글을 지어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회왕의 아들인 경양왕頃襄王 때 굴원은 또다시 멀리 내침을 당하였고
자신의 忠君憂國하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등용되지 못하자 5월 5일에 멱라강汨羅江에 몸을 던져 죽었다.
►륙기웅재기자보陸機雄才豈自保
육기陸機는 吳나라 사람으로 오나라가 멸망한 후
晉나라로 들어가 洛陽에 이르렀고 장화張華에게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晉나라 혜제惠帝 太安2년(303) 成都王 사마영司馬潁 등이
長沙王 사마예司馬乂를 치는데 육기를 後將軍 河北大都督으로 삼았다.
육기는 여러 군대를 이끌고 녹원鹿苑에서 싸웠는데 그의 군대가 대패하였다.
환관宦官 맹구孟玖가 나서 육기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고 참소하니
사마영은 화가 나서 견수로 하여금 육기를 잡아들이도록 하였다.
육기는 사형에 임하여 태연자약한 얼굴로
“화정華亭의 학이 우는 소리를 어찌 다시 들을 수 있으랴?”고 탄식하였는데
당시 그의 나이 43세였다.
화정은 지금의 江蘇省 松江縣 서쪽의 平原村으로 육기 형제가 일찍이 함께 놀던 곳이다.
►리사세가고부조李斯稅駕苦不早
이사李斯는 楚나라 사람으로 순경荀卿을 좇아 배우다가 공부를 끝마치자
서쪽 秦나라에 들어가 여불위呂不韋의 舍人이 되었다.
훗날 秦나라 왕에게 등용되었는데
진나라 왕이 천하를 평정한 뒤에 丞相으로 삼으니 법령이 대부분 그의 손에서 나왔다.
이사의 장남인 由는 三川의 太守가 되었고
여러 아들들은 모두 공주와 결혼하였으며 딸들은 모두 공자들에게 시집갔다.
李由가 휴가를 얻어 함양咸陽으로 돌아가니 百官들이 모두 나와 축수祝壽하였다.
대문과 뜰에 있는 거기車騎를 千으로 헤아릴 정도였는데 이때 이사는 깊이 탄식하면서
“나는 상제上蔡에서 태어난 평민일 뿐인데 지금 다른 사람의 신하된 자로서
나보다 윗자리에 있는 자가 없고 부귀도 극에 달했다고 할 수 있다.
만물은 극에 이르면 쇠하는 법인데
나는 언제 어디에서 말의 멍에를 풀고 휴식하게 될지 모르겠다.”라고 하였다.
훗날 秦始皇이 병들어 죽자 이사는 조고趙高에게 무고誣告를 당하였는데
이사의 父子가 도적들과 내통하였다는 것이었다.
이사는 함양의 저자에서 허리가 잘려 죽는 형벌을 받았다.
형벌을 받기에 앞서 이사는 둘째 아들을 돌아보며
“내 너 와 함께 다시 한 번 누런 개를 끌고 매를 팔뚝에 얹고서 상제上蔡 동문 쪽으로 나가
토끼사냥을 하려고 했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겠구나!”라고 한탄하였다.
‘세가稅駕’는 말의 멍에를 풀고 수레를 멈춘다는 뜻으로 휴식함을 이른다.
►장한張翰은 吳나라 사람이다.
齊나라 왕 경冏이 그를 불러 大司馬 동조연東曹掾을 삼았다.
훗날 가을바람이 이는 것을 보고 吳땅의 고수나물, 순채국, 농어회가 생각나 결국 고향으로 돌아갔다.
장한은 마음 내키는 대로 유유자적하게 살면서 세상에서 이름을 구하지 않았는데 일찍이 말하기를
“나 죽은 뒤에 이름이 남도록 하느니 차라리 지금 당장 한 잔 술을 마시겠다."고 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그의 광달曠達함을 높이 평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