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법은 현자들만 이해할 수 있는 것
법은 미묘한(nipuṇo)한 것이며 오직 현자만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paṇḍitavedaniyo).
여기서 말하는 현자는 위빠사나와 도과와 관련된 지혜(paññā)를 가진 사람만을 뜻합니다.
세계적인 철학자, 종교의 창시자, 작가 또는 원자(原子)를 분해할 수 있는 대과학자가 지닌 세속적인 지식과
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하지만 법은 성별, 나이, 교육에 상관없이 위빠사나 통찰로 점진적으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정신과 물질을 관찰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깨달을 수 있고 성스러운 도와 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모든 중생들의 본성을 찬찬히 살펴본 부처님은 대부분 중생들이 감각적 쾌락에 빠져있음을 아셨습니다.
물론 싯다르타 태자가 숲속에서 정진할 때 수행 도반이었던 다섯 비구나 나중에 부처님의 상수제자가 된
두 명의 바라문과 같은 약간의 예외는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쾌락을 누리는 것을 인생 최대 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하루종일 장난감을 갖고 놀며 즐거워하는 아이와 같습니다.
아이의 장난감과 놀이는 어른들에게 의미가 없지만 어른들도 감각적세계의 장난감,
즉 아이와 손자들 속에게 즐거움을 누립니다.
부처님과 아라한에겐 이러한 감각적 즐거움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선(jhāna),
위빠사나(vipassanā),
열반(nibbāna)과 같은 숭고한 가치에 대한 개념이 없는
범부와 천신들이 감각적 쾌락을 대단하게 생각합니다.
감각적 즐거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외딴 벽지에 사는 농사꾼에 비유될 수 있을 것 입니다.
도회지 사람에게 이런 곳은 삶의 쾌적한 설비가 없고
나쁜 음식, 나쁜 옷, 더러운 주거지, 진흙길 등의 삶의 편의시설이 결여된 곳입니다.
하지만 촌사람들은 행복해할 뿐더러 그들의 고향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일반 범부들과 천신들은 감각적 대상을 좋아합니다.
부처님과 아라한의 가르침이 무엇이건 간에 즐거움을 좋아하고 그 즐거움에
탐닉하는데 모든 시간을 보냅니다. 감각적 대상이 없게 되면 그들은 쉽사리 불안해집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족과 시종들과 소유재산을 너무나도 즐거워하기 때문에
감각적 쾌락보다 더 수승한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쾌락에 대한 뿌리 깊은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그들이 미묘하고 심오한
12연기와 열반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