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받는
통계학과 여론조사
오창혁 / 통계학과
빠르게 변화하는 데이터 중심 사회에서 통계적 방법은 과학적 사실을 밝히고 객관적 판단을 내리는 데 필수적인 도구이다. 특히, 여론조사는 사회의 흐름을 파악하고 집단적 의식과 행동의 변화를 파악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정치 관련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이 점점 커지고 있다. 여론조사나 통계적 방법을 이용하여 얻은 연구 결과가 자신의 생각과 다를 때, 개인은 의심이 생기고 불편하게 된다. 이러한 불신은 여론조사가 조작되었다는 언론의 논쟁으로 인해 더욱 심화되었으며, 이는 통계적 방법 자체에 대한 전반적인 의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통계학은 인류 문명 발전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통계학은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올바르게 활용되어야 한다. 특히, 모든 국민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선거의 공정성을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통계학이 잘못 사용되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악용되어 국가 발전을 저해하거나 국가가 존폐의 위기에 처하는 일이 없도록 모두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최근 10여 년간 선거와 관련된 여론조사에서 조작이 있었다는 논쟁이 지속되어 왔다. 이는 빠르게 해결되어야 할 문제다. 이를 위해, 여론조사의 기초가 되는 통계학이 어떤 학문인지 먼저 이해해야 한다. 또한, 통계적 여론조사에서 가장 심각한 조작 방법 중 하나인 모집단 바꿔치기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람은 장벽 뒤에 숨겨져 있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만, 직접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가 많다. 시간 너머 미래는 예측할 수 없고, 집단 속의 사람 마음은 읽어낼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신에게 묻거나 몇 가지 단서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상하고 이를 진실로 믿는 방법으로 숨겨져 있는 것을 본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미신적이며 주관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극복하는 객관성을 가진다고 믿어지는 상상의 방법은 19세기 중반에 출판된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시작되었다. 다윈은 갈라파고스 섬에서 관측된 핀치새 등에 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진화론을 발표하였으며, 이 이론은 현재 대다수가 진리로 받아 들이고 있다. 증거 자료로 상상하고 이를 믿는 이 방법은, 신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기독교의 배척을 받았다.
진화론의 패러다임을 이어받은 실용주의는 19세기 말에 태동되어 20세기 초에 완성되었다. 실용주의 학자들은 실험에서 얻은 들쭉날쭉한 관측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하고 결론을 내려야 타당한지를, 이익에 기초한 인간의 사고와 믿음의 방식을 모방하여 연구하였다. 실용주의에서의 진리는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이다.
이러한 실용주의의 철학을 바탕으로 피셔 등은 20세기 중반에 확률을 이용한 통계학의 가설검정의 이론을 완성하였다. 그 이후 통계적 방법으로 얻은 결론은 객관적 진리 즉,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여져 왔다. 인류 문명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과학 발전의 토대는 통계학이다.
통계적 방법에 기초한 여론조사는 사용에 있어 여러 전제조건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주어진 모집단에 대하여 표본을 무작위로 추출해야 하고, 설문 문항은 특정한 답을 유도하지 않도록 작성되어야 한다. 많은 조건 중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해당 여론조사는 신뢰할 수 없게 되며, 그 결과는 객관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여론조사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떤 집단을 대상으로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대상 모집단이 아닌 다른 모집단에서 표본을 얻었다면 그 조사결과를 대상 모집단에 적용할 수 없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여론조사를 가장하여 국민을 속이는 행위가 된다.
대선의 여론조사에서는 전국의 유권자가 모집단이 된다. 대상 모집단에서 표본을 추출하는 대신, 조작된 모집단을 만들고 거기서 표본을 추출해서는 안 된다. 여론조사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QR코드를 통해 얻어진 유권자의 개인 정보와 투표 정보가 조작된 모집단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고 의심하고 있다. 사전투표를 한 천만 명이 넘는 유권자의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면, 천 명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에서 원하는 지지율을 가진 모집단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작 주장이 진실로 드러날지, 단순한 공상으로 판명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모집단 바꿔치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의혹이 조속히 해소되어 국가적 대가를 치르는 소모적 논쟁이 마감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여론조사는 중요한 사회적 결정을 내리는 데 귀중한 참고자료가 되며, 민주적 통치에 크게 기여한다. 그러므로 여론조사에서 내리는 결과에 대하여 신뢰를 가지되, 조작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항상 경계해야 한다. 우리 모두 통계학과 여론조사가 국가 발전과 사회적 안녕 증진에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첫댓글 교수님, 고맙습니다. 궁금해 하던 문제를 다루어주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시국에, 말하기 쉽지 않은 때에, 필요한 원칙만을 제시하셔서 각자에게 판단을 맡기는 글을 완성하시느라 애 많이 쓰셨습니다. 이 원칙을 잣대로 현상을 진단할 수 있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