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의경, 불요의경 뜻/의미. 초기경전과 대승경전, 뭐가 요의경[了義經]인가?
요의[了義]란 명료한 뜻이란 의미다.
그러므로 요의경[了義經]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명료히 밝힌 경전을 의미한다.
요의경[了義經]이란 부처님 가르침의 궁극이 담긴 경전이란 뜻이다. 빙 둘러서 말하는 것이 아닌, 군더더기 없이 그냥 부처님의 직설이 담긴 경전을 말한다.
불요의경[不了義經]이란, 방편의 가르침을 뜻한다. 즉, 궁극으로 가게 하기 위한 건널목인 셈이다.
비유하자면, 대학에서의 가르침이 요의경[了義經]이다. 그러나 단박에 대학가서 배울 수는 없다. 그래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먼저 배워야 한다. 초중고에서의 가르침이 바로 방편이며, 불요의경[不了義經]에 해당한다.
초기불교 신봉자들은 초기경전이 요의경[了義經]이며, 대승경전은 불요의경[不了義經]이라고 말한다. 또 대승비불설이라는 망언을 하는 부류도 있다. 대승불교 신봉자들은 당연히 이와 반대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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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자기가 믿고 따르는 경전을 요의경[了義經]이라 믿어야 한다. 믿지 않으면 어찌 따를 수 있겠는가? 각자 자기 수준에 맞는 것을 요의경[了義經]으로 삼는 것은 뭐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초기경전과 대승경전 중에서 어느게 요의경[了義經]인가?
이걸 정확히 알려면, 깨달음의 차원에서 따져봐야 한다.
어떤게 궁극적인 깨달음인가?
당연히 부처님의 깨달음이 궁극이다.
아라한들의 깨달음은 궁극이 아니다.
초기경전에 많이 나오는 것, 아라한들이 아라한과를 성취하고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그러나 저 말은 아라한과 성취가 목적인 자들에게만 적용될 뿐이다. 부처님의 깨달음 앞에서는 할 일을 다 마친게 아니고, 아직 더 할 일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이 내용이 법화경에 아주 명확히 잘 나와 있다.
아라한들의 깨달음은 완전하지 않다. 그래서 그 지혜도, 능력도 부처님에 비해 너무나도 떨어진다. 오로지 부처님의 깨달음만이 궁극이며, 완전한 것이다.
초기경전엔 주로 아라한들의 깨달음 위주이며, 대승경전은 부처님의 깨달음 위주이며, 성불이 목적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대승경전이 궁극인 것이다.
초기경전(소승경전)과 대승경전의 내용을 살펴보자. 어느게 과연 궁극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가? 이걸 정확히 따져보려면, 당연히 진제와 속제로써 헤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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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경전엔 주로 속제의 가르침이 많다. 그러나 대승경전엔 대다수가 진제의 측면이다.
속제와 진제 중에 어느게 궁극인가?
당연히 진제가 궁극이며, 속제는 방편이다.
그러므로 초기경전은 방편이며, 대승경전이 궁극이다.
대승경전이 요의경[了義經]이요,
초기경전은 불요의경[不了義經]이다.
요의경, 불요의경 뜻/의미. 초기경전과 대승경전, 뭐가 요의경[了義經]인가?
부처님께서는 왜 요의경[了義經]과 불요의경[不了義經]으로 나눠서 설하셨는가?
중생에 대한 자비심 때문이다.
모든 중생을 포섭하여 모두 다 해탈로 이끌기 위함이다.
결국 단계이며 과정인 것이다.
소승, 대승도 결국은 단계이다. 뭐가 잘나고 못나고가 아니다. 소승을 거쳐 대승으로 건너오는 것이다. 단박에 대승이 될 수 있는가??? 없다.
그러므로 소승이란 낮고 하열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저 단계일 뿐이다.
단박에 저 멀리 점프 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단계적으로 가르치셨고, 방편의 가르침을 펴신 것이다.
불자가 되면,
당연히 요의경[了義經]과 불요의경[不了義經], 둘다 배워야 한다.
그러나 먼저 불요의경[不了義經]에 해당하는 초기경전부터 배워야 한다. 초기경전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대승경전을 봐야 허당이기 때문이다. 뭐든 기초가 중요한 법이다.
[출처] 요의경, 불요의경 뜻/의미. 초기경전과 대승경전, 뭐가 요의경[了義經]인가?|작성자 마하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