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 신화의 주인공들
창세기 4:16-24
들어가는 말
지난 주간 우리는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인 추석을 보냈습니다.
추석은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 보면 민족 고유의 명절이지만, 하나님을 믿고 있는 성도 된 입장에서 보면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추석을 보내는 가정들의 분위기가 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가족들이 오순도순 모여서 추석을 보냈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렇게 달라진 추석을 보내면서 불현듯 한 가지 생각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전에 제가 하나님의 소명에 응하여 신학을 결심하던 때입니다.
그때 저는 어머님과 마주 앉아서, 그간 못난 자식을 사랑으로 보살펴 주신 것을 감사하면서, 자녀된 입장에서는 마땅히 받은 부모님의 사랑을 보답하며 살아야겠지만, 목회자가 된다는 것은 구약에 나오는 나실 인처럼 하나님께 바쳐지는 행위라고 설명하면서, ‘이제부터 어머니는 아들 하나 하나님께 바쳤다.’라고 생각하시고, ‘아무것도 바라거나 기대하시지 말고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라고 말씀을 드리던 그때 일이 생각났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저는 하나님께 ‘하나님! 저의 아버지 어머니 잘 계시지요.’라는 기도를 하였었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을 보면 그 사람이 가진 믿음의 유무에 따라 그 삶이 달라집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들은 그 부모님이 생각날 때 추모원으로 가고 산소로 가지만, 영에 속한 사람들은 부모님이 생각날 때 곧장 하나님께로 나아갑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 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믿음이 있는 성도들은 그 받은 소명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래서 ‘열매로 알게 된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 살아가는 삶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2024년도를 함께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과 성도들의의 차이점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가진 믿음의 유무가 그 살아가는 삶을 어떻게 달라지게 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과 성도들의 삶은 어떻게 다릅니까?
1. 먼저는 성공을 위해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의 삶입니다.
21세기 성공 신화의 주역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자신만의 성공 신화를 이루어 낸 주역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급속한 산업화를 이룬 사회에서는 특히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대기업인 삼성과 현대, LG와 SK 같은 기업들이 이런 성공 신화를 이루어 온 대표적인 기업일 것입니다. 이 기업의 오너들은 변변한 기업 하나 없었던 우리나라에서, 세계 굴지의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세계적인 기업들을 이루어 낸 것입니다.
경제계에만 이런 사람들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 각 분야에는 그 나름의 성공 신화를 이루어 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함께 이루어 낸 사회가 바로 선진국 문턱까지 와있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의 성공은 어느 한 사람이 이루어 낸 것이 아닙니다. 사회 각 분야에 포진하고 있는 성공 신화의 주인공들이 함께 이루어 온 사회입니다.
이런 성공 신화는 우리 사회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교회 안에도 성공을 이루어 낸 주역들이 있습니다. 지금 대 교회를 이루고 있는 교회들은 다 나름의 성공 신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시대 대표적인 성공 신화는 IT산업에서 많이 나왔습니다.
그 대표주자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이크로 소프트 사’의 빌 게이츠,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스페이스 엑스’의 일론 머스크, 최근 부상하고 있는 AI 분야의 선두 주자인 ‘엔비디아’의 젠슨 황 등이 바로 그 주인공들일 것입니다.
빌 게이츠는 20세에 사장이 되었고, 31세에 백만장자가 되었으며, 37세에 미국에서 가장 돈이 많은 부자가 되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 아이폰, 아이페드’라는 혁신적인 제품을 계속 내놓으면서 애플을 초일류 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이 사람들의 성공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도 이런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되어보겠다고 미국 실리콘밸리에 모여 지금도 밤낮 없이 연구에 몰두하고 있지 않습니까?
창세기 4장의 성공 신화의 주역들
그런데 이런 성공 신화는 21세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4장을 보면 라멕의 시대에도 벌써 이런 성공 신화가 있었습니다. 이 두 성공 신화를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공통점은 이 사람들이 이룬 성공은 세속 문화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속적인 문화가 성공 신화의 배경이라는 것입니다.
첫째, 가인에게서 기원한 세상 문화
성경은 이 세상의 문화가 가인에게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아담의 아들 가인과 아벨이 장성한 후에, 그 아버지 아담에게서 보고, 듣고, 배운 대로 각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가인은 믿음이 없어서 더 못한 제사를 드렸다는 말이 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아벨’은 믿음으로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제사,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를 드렸다면, ‘가인’은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이 인정해 주지 않으시는 제사, 하나님이 받으실 수 없는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유무가 이 두 사람의 운명을 갈라놓았습니다.
그 결과 믿음으로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제사를 드렸던 아벨은 예배에 성공한 사람이 되었고,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이 인정해 주지 않는 제사를 드렸던 가인은 예배에 실패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는 예배는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성도들은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성공해야 합니다. 예배에 성공하지 못하고는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성경은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예배의 중요성을 이렇게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날이 가까울수록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과 같이 하지 말고, 열심으로 모여 예배드리기를 힘쓰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예배의 성공과 실패가 우리의 신앙의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아벨과 같이 믿음으로 늘 예배에 성공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예배에 실패한 가인이 한 일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창세기 4:17절입니다.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가인은 성(城)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을 따라 ‘에녹 성’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가인은 왜 성(城)을 쌓았겠습니까?
① 성(城)에는 보호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이고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 가인은 죄책감과 보복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맞은 사람은 발을 뻗고 자지만 때린 사람은 발을 오그리고 잔다.’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가인은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려고 높은 성을 쌓았던 것입니다.
② 성(城)에는 도시와 문명의 기능이 있습니다.
가인이 그 동생 아벨을 죽임으로 땅이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땅의 저주는 농사 군이었던 가인에게는 아주 치명적이었습니다. 가인은 이제 땅이 주는 복을 기대하며 살아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인은 땅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을 포기하고, 자기가 환경을 조정하고 상황을 조정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곳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런 의도로 건설한 것이 바로 성(城) 즉 도시의 건설이었습니다.
도시 문명은 이렇게 예배에 실패한 가인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도시 문명이 가인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것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세상 모든 문명과 문화의 배후에는 무신론적 불신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성경은 이 세상의 신이 누구라고 합니까? 마귀라고 하지 않습니까?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마귀가 바로 이 세상의 신입니다.
의사들의 윤리강령인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의사는 자신의 능력을 다하여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치료만 행하고, 환자에게 해가 되거나 상처를 주는 일은 하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어떻습니까?
지금 의사들이 의료파업을 하면서 응급실에 의사가 부족하여 환자들이 죽음에 내몰리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도 전공의들은 자기 근무처인 응급실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소수의 전공의들만 의료 현장으로 돌아가서 힘들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 중 일부는 양심적인 전공의들이겠지만, 거의 대부분은 ‘예수 믿고 있는 전공의들일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요.
기독교인인 전공의들은 의사단체의 회원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님 앞에서 그 신앙 그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성도들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 속에 살고 있는 의사라면 그 의사는 ‘이번 추석에 환자가 많이 죽어서 문제가 생겼으면 좋겠다.’ ‘감히 정부가 우리 의사들과 대적해 보겠다고 그래 한번 당해 봐라.’라는 생각을 하는 의사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을 가진 의사들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의사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하여, 지금도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병원에 가시게 되거든 한 번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병원에 남아 있는 의사들은 양심적인 의사이거나 신앙을 가진 의사들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정치뿐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의 배후에는, 이 세상의 모든 학문, 의학, 철학의 배후에는 무엇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까? 무신론적 불신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배후에서는 이 세상의 신인 사단 마귀가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인이 그렇게 무자비하고, 의사들이 그렇게 무정한 것입니다.
둘째, 가인의 후예들이 이룬 성공 신화들
창세기 4장에서는 가인의 자손에 대해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가인이 에녹을 낳고, 에녹은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다,’고 합니다. 이 가인의 자손들을 통해 지금과 같은 이 세상 문명과 문화가 발전 되어왔습니다.
라멕의 때
아담의 6대손 라멕 때 어떤 일이 있었다고 합니까?
4:19절입니다.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이 라멕에 의해서 일부다처제가 세상에 처음 들어왔다고 합니다.
23절입니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라멕은 자신과 적대적이었던 세력과의 세력 투쟁에서 승리하고, 오늘날로 말하면 국가에 준하는 권력을 힘을 손에 넣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라멕은 세상 권력을 잡은 첫 사람이 되었습니다. 라멕은 오늘날의 왕에 버금가는 권력과 힘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라멕의 자녀 들의 때
라멕은 두 아내는 각각 자녀를 낳았는데, ‘아다는 야발과 유발을 낳고’, ‘씰라는 두발가인과 두발가인의 누이 나아마를 낳았다.’라고 합니다. 이들은 그 아버지 라멕의 후광을 업고 자기 나름의 성공 신화를 이루어 나가게 됩니다.
이들이 이룬 성공 신화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4:20-22절입니다.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첫째, 장남 야발입니다.
20절입니다.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야발은 장막에 머물면서 가축을 기르고, 가축을 방목하는 등 거대한 목장을 경영하는 첫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야발은 이것을 배경 삼아 어떤 성공을 이루어 나갔습니까?
① 의류 산업을 장악하게 됩니다.
당시 사람들이 입었던 여러 가지 옷감 중에 가죽을 부드럽게 가공한 옷감은 아주 고급 옷감이었습니다. 야발은 가축들을 이용하여 이 옷감을 대량 생산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의복들을 직접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야발은 정장뿐 아니라 각종 패션 의류와 내의까지도 생산하였으며, 상류층 사람들을 위해서 오늘날로 말하면 유명 브랜드 로고가 찍힌 최고급 옷도 만들었습니다.
야발이 시작한 의류 사업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점점 확장되어 갔습니다.
나중에는 의류 시장을 거의 독점하는 큰 손이 되었습니다. 야발은 이렇게 거대 의류기업을 이루어 갔습니다.
② 교통 운수업을 장악하게 됩니다.
야발 당시 사람들이 이동할 때는 걷거나, 가축을 사용하였습니다. 야발은 그 키우고 있던 많은 가축을 가지고 사람을 수송하고, 물자를 운송하는 운수업에도 뛰어들었습니다. 야발은 당시 운영하던 운송 노선은 오늘 우리말로 하면 영남 선, 호남선, 충청 선, 강원 선 등등을 거의 전 노선을 점유하고 있었습니다. 또 화물 운송과 같은 물류 운송 분야에까지 그 사업영역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이렇게 해서 야발은 거대 물류 운송기업을 이루어 갔습니다.
③ 주거산업을 장악하게 됩니다.
야발 당시 사람들에게는 인기 있었던 집은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천막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토지 소유의 개념이 없었습니다. 목동들은 초장을 따라 이동하며 살았고, 농부들도 기름진 땅을 찾아 이동하면서 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야발은 가축에서 얻은 다양한 가죽으로 천막을 만들어서 팔았습니다.
야발은 소비자들의 기호를 분석하고 연구하여서, 설치가 간편하면서도 튼튼한 천막을 만들어 내었고, 이 천막들은 불티나게 팔려 나갔습니다.
④ 제사용품을 거의 독점하게 됩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거나, 자신들의 신을 섬길 때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사에는 반드시 제물이 있어야 합니다. 야발은 많은 가축의 소유주로서 제사 제물을 공급하는 큰 손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제사에서 쓰일 제물은 흠이 없는 제물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야발은 흠이 없는 가축을 아주 높은 값을 받고 팔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야발은 엄청난 부를 소유한 거부가 되었습니다.
야발은 아버지 라멕의 권력을 의지하여 상업적인 목축을 시작한 최초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상업적인 목축을 통해 남긴 이익금으로 그 사업영역을 계속 확장해 나갔습니다. 사업이 확장되는 만큼 거둬들이는 재물도 늘었습니다. 그 결과 야발은 거의 천문학적인 재산가가 되었습니다.
야발이 세운 기업들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대기업으로, 대 기업에서 대그룹으로 성장해 갔습니다. 그 결과 야발의 오늘날 다국적 기업들과 같은 거대기업을 소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얻은 부는 야발의 사회적인 영향력까지 키워주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성공들을 우리 시대에서도 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의 대기업인 삼성, 현대, LG, SK 등등의 기업들은 다 나름의 성공 신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개발 도상 국인 중국, 베트남, 인도, 남미 등에서는 이런 성공 신화를 창출해 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야발의 시대도 같았습니다.
야발은 그 아버지 라멕의 정치권력의 후광을 입고, 의류, 운수 교통, 주거, 제사 등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야발은 그 사업적인 성공을 통해 아주 독보적인 지위를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둘째, 야발의 아우 유발입니다.
21절입니다.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유발은 음악과 악기를 다루는 예술 분야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유발은 오늘날로 말하면 예능적인 재능이 탁월했으며 그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① 이벤트 기획과 공연의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예술은 인간의 정서를 순화시키는 기능도 하지만, 사람들을 타락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었던 유발은 음악을 통해 젊은이들을 매료시켰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은 유발과 같은 스타가 되는 꿈을 꾸며 유발이 세운 기획사로 몰려들었습니다. 인기스타가 되기만 하면 명예와 재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발은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그 인기를 이용하여 기획과 공연과 각종 행사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해 나갔습니다.
② 악기 제조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유발은 예능 분야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악기제조업에 손을 뻗쳤습니다. 유발의 인기 때문에 유발이 세운 음향 전문 회사는 인기 있는 유명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유발이 제조한 악기는 가격이 비쌌으나 날개 돋친 듯 판매되었습니다.
③ 예술적인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유발이 각종 행사와 공연에서 관능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열광하였습니다. 유발이 이벤트를 기획하고 리사이틀을 기획하게 되면 곧바로 그 입장권은 매진되었습니다. 유발의 인기가 올라가면 갈수록 그 입장료 또한 올라갔습니다. 유발이 기획한 이벤트에서는 그 입장권이 아무리 고가여도 언제나 매진되었습니다.
예술은 사람의 감성을 자극합니다.
그래서 예술계에서는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라멕에 아들 유발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이를 통해 큰 성공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당시 세상에서는 이 유발보다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셋째, 두발가인입니다.
22절입니다.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두발가인은 동철로 각종 기구를 만들었던 사람입니다. 이 기구들은 척박한 땅을 개간하며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인 도구였습니다. 두발가인이 만든 이 철제 농기구들은 높은 가격에 불티나게 팔려 나갔습니다.
이렇게 부를 축적한 그는 대규모 농기구 제작 공장을 세우게 됩니다.
이렇게 세운 공장은 점점 성장하여서 오늘날 세계 최초로 파이넥스 고로를 세운 포스코 그룹과 같이, 두발가인은 당대 제철산업의 선두 주자가 되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포항제철의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바로 두발가인이 된 것입니다.
이 당시 인류가 이룩한 문명은 굉장히 높은 수준이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수명이 짧습니다. 아무리 아인슈타인 같은 위대한 과학자라도 수명의 한계 때문에 많은 연구 업적을 남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라멕 당시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900세가 넘었습니다. 이들이 900년 이상을 살면서 문명을 발전시켰으니 그 문명이 얼마나 발달했겠습니까?
수명이 짧은 오늘날도, 과학 문명이 극도로 발달하여서 인간이 상상하고 꿈꾸는 것들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얼마 있지 않으면 다 현실로 이루어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인간이 머릿속에 꿈꾸며 생각한 것들이 얼마 지나지 않으면 현실로 우리 앞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유전공학은 이제 창조주가 심어 놓은 인간 유전정보인 DNA를 다 해독해 냅니다.
이제 인간 복제는 얼마 있지 않으면 황우석 교수의 말과 같이, 줄기세포를 통해 맞춤 치료를 하는 시대가 열릴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암도 수술칼로 수술하지 않고, 아주 미세한 컴퓨터 칩을 혈관 속에 넣어서, 그것을 암세포 주변으로 보내어 치료하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로봇산업은 어떻습니까? 이제 인간과 같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독자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행동하는 지능형 로봇 개발도 눈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인공 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추월한 지가 이미 오래전입니다.
지금도 로봇의 지능은 급속도 향상되고 있습니다. 잘못하면 앞으로는 공상 소설에서와 같이, 인간이 인간보다 더 머리가 좋은 로봇에게 지배당하고 이용당하며 살아가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오늘날은 로봇 기술을 응용해 만든 무인기가 인간을 대신해서 전쟁하는 시대입니다.
무인기의 조정은 미국에서 하고, 전쟁은 아프카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 하는 것입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이 무인기를 응용해 만든 자폭 드론의 활약이 돋보이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자폭 드론으로 인해 전쟁의 양상까지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현대전쟁에서 드론이 얼마나 유용하면 전쟁 중인 푸틴은 올해 드론 생산량을 10배까지 늘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전쟁에서 피해를 줄이려면, 성능이 좋은 자폭 드론을 개발하고, 자폭 드론을 방어하는 연구를 많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라멕 당시 사람들이 이룬 문명은 굉장히 발전했을 것입니다.
당시는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문명의 바벨탑을 쌓아가고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당시 라멕과 그 아들들이 이룬 성공 신화가 빛이라면, 거기에는 반드시 어둠의 그늘이 있게 마련입니다. 라멕의 아들들과 경쟁했던 사람들은 하나둘 몰락해 갔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과 이런 기업들은 경쟁에서 져서 하나둘 도산해 갔을 것입니다.
이것은 산업화의 양면성입니다.
누군가의 성공이 있다면 그 배후에는 반드시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눈물이 있습니다. 소수의 성공 신화의 주인공을 양산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의 재물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어디 이것뿐이겠습니까?
도시의 번영 뒤에는 얼마나 많은 소외 계층이 양산되고 있습니까? 도시에서 성공을 위해 저질러지는 각종 불의와 범죄와 사기, 죄악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인정하든지 인정하지 않든지, 이 세상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원리를 지배하고 있는 신은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이 세상은 마귀의 수중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을 바라보고 이 세상을 목적하며 살아서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속에 깊숙이 들어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해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2. 다음은, 사명을 위해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이유는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명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주신 사명은 무엇입니까?
첫째, 문화변혁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성공을 최고의 선으로 추앙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들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의 사상과 가치관을 따라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곳은 이 세상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가치관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이 세상의 가치관을 변화시켜 나갈 문화변혁 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정치계를 변화시키고, 경제계를 변화시키고, 교육계를 변화시키고, 과학계를 변화시켜 나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문화변혁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불신앙적인 문화를, 하나님을 인정하고 섬기며 사는 문화로 변화시켜 나가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게 하도록 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구약에 선지자들을 보십시오.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떠난 그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가치관을 심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의 윤리와 법도가 그 생활의 규범이 되는 나라를 이루고자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도 같습니다.
우리가 받은 사명은 첫째, 문화변혁 자로 살아가는 사명입니다.
둘째,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만 세상이 빛이다. 너희만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세상에 빛을 비추어 주고 세상에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방법을 통해 이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성공 신화에 빠져 살고 있는 부유한 사람들을 향한 사명입니다.
성공 신화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인간 본연의 절망적인 상태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결국 죽을 존재라는 것을 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성공은 육신을 입고 살 동안만 유용하다는 한계를 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성공도 부도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잊고 살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물질에 눈이 멀고, 권세에 눈이 멀고, 성공에 눈이 멀어서, 가치 판단 능력을 상실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깨우쳐 주고 일깨워 주는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야고보서의 말씀과 같이 이 세상의 성공과 부는 마치 풀의 꽃과 같고, 사람의 인생은 안개와 같이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명예를 누리고, 부를 누리며 살았던 솔로몬이 그 말년에 어떤 고백을 했습니까? 해 아래서 수고한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고 모든 것이 헛되다.”라고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또 하나는 세상에서 낙오하고 실패한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사명입니다.
이 세상에서 빛이 필요하고 소금이 필요한 곳이 어디입니까?
어둠에 싸인 곳 아닙니까? 썩어 냄새나는 곳 아닙니까? 하나님은 성공 신화의 뒤편에 있는 이 세상의 어둠을 밝히라고, 죽고 썩어 냄새나는 곳을 치료하라고 우리들을 부르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면 누가 이 어둠을 밝히고, 썩은 곳을 치유하겠습니까?
우리는 성공 신화에서 낙오된 사람들에게, 안개와 같은 헛된 성공 신화를 따라가지 말고, 복음을 믿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새로 태어나도록 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경쟁에서 실패하고 인생의 낙오자가 된 사람들에게는, 그 고난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해 줌으로 희망을 가지고 새 인생을 살아가게 해 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3. 아벨의 후손들에게 주어졌던 사명입니다.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 모습
우리는 당시 아벨의 자손들이 이 사명을 잘 감당하며 살았다는 것을 가인의 후손들의 이름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4:18절입니다. “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가인의 손자 이랏은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므후야엘이라고 지었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이 생명을 주시다’라는 뜻입니다. 또 므후야엘은 그 아들의 이름을 므드사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 사랑’이란 뜻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자녀의 이름에는 부모의 신앙이 담겨 있습니다.
이 말은 가인의 손자 이랏은 비록 저주받은 가인의 후손으로 태어났지만, 나중에 신앙을 가졌던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의 이름을 ‘하나님이 생명을 주시다.’라고 지은 것입니다. 이것은 므후야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자녀의 이름을 ‘하나님 사랑’이라고 지은 것입니다.
이런 말씀 들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가인의 집과 셋의 집은 사실 원수지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셋의 후손들 중에서 누군가가 가인의 후손들에게 전도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을 먼저 믿고 구원을 받은 우리들이, 믿지 않는 가족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할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잊지 말고 늘 전도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다가 기회가 오면 전도 인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야 합니다.
세속화 되어간 모습
그런가 하면 세속화 되어간 모습도 보입니다.
세속화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하나님께 속해 살아야 할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이 세상에 속하여 살아가는 것을 세속화라고 합니다. 우리가 비록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하여 살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라멕의 아들들이 이룩한 놀라운 성공 신화는 당시 사람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삶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삶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부를 가져다주는 성공에 매력을 느끼게 되면서, 자신들도 이런 부를 얻고 이런 성공을 이루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벨의 후손들도 성공이라는 장미빛 희망을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신앙이 변하고 그 추구하며 살아가는 삶이 변하자, 얼마의 세월이 흐른 후에 보니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오직 노아 한 사람만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도 믿고, 이 세상도 취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살든지 이 세상에 속해 살든지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두 가지 다 동시에 취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혹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예수님도 부자 청년에게 이 선택을 요구하셨습니다.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이 선택을 요구하셨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넷째,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우리들이 살아가야 할 삶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합니까?
믿음 때문에 자신과 세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참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믿음을 가졌으나 세상도 함께 취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두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양다리를 걸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사시겠습니까?
제가 볼 때, 우리 중에는 성공 신화를 따라 사는 사람이 없어 보입니다. 만약 성공 신화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은 우리 교회와 같이 작은 교회에 함께 하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성공 신화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목회하고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성공 신화를 따라 살고자 하는 사람이었다면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세상 적으로 보면 우리의 현재 모습은 자랑할 것도 없고, 흠모할 것이 없고, 성공적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오늘 우리가 여기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는 이것이 의미 있는 일로, 가치 있는 일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공을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믿음 주시고, 은혜 주시고,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인도해 주시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지금과 같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주를 섬기며 살아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신앙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까?
믿음으로 오랫동안 참고 인내하는 사람들만이, 성경에서 말씀하신 대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로도 짧은 시간은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인내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랫동은 믿음으로 인내하며 살게 하는 힘은 어디서 나옵니까?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통해 그 힘이 나옵니다. 우리가 매일 드리는 예배에 성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 우리는 예배 때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위에 우리 신앙을 세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아벨과 같이 믿음으로 늘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성공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이 세상입니까? 하나님 나라입니까? 이 세상의 성공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상급입니까?
우리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살아가는 삶이 달라집니다.
이 세상을 목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그 목적이 이 세상이라는 것을 그 살아가는 삶을 통해 보여주며 살게 되고, 하나님 나라가 목적인 사람은 그 목적이 하나님 나라라는 것을 또한 그 살아가는 삶을 통해 보여주며 살게 됩니다.
우리는 예배에 실패한 가인의 후손들이 이룩한 불신앙적 문명을 삶의 목적으로 삼지 않고, 구원받은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하나님 나라를 목적 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이 구별된 삶이, 우리들이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삶이 될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