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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양(陽)의 부족(不足)에 관하여 다시 변론(辨)
천지(天地)에서의 음양(陰陽)의 화생(化生)은 진실로 백성(:生民)들의 성명(性命: 목숨)의 근본(根本)
이를 보구(補救: 만회)하는 묘용(妙用: 묘한 활용)을 잘 파악(把握)하는 것이 진실로 자신의 도(道)로 천(天)의 대권(大權)을 대리(代)하는 것
그 이치(理)를 보아도(:見) 진실(眞)하지 못하면 곧 얼음을 더하고는 끊는 물(:湯)을 사용(用)하려고 하는 꼴
초년(初年)부터 주단계(朱丹溪)의 <양유여음부족론(陽有餘陰不足論)>을 읽고는 그 고견(高見)에 대해 탄복(服)
30살(:立)쯤 되고부터는 의심(疑)과 믿음(:信)이 서로 반반(半)
40살(:不惑)때부터는 비로소 큰 잘못(:大謬)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됨
이에 유경부익([類經])의 구정록(<求正錄>에다 대보론(<大寶論>) 한 편(篇) 붙였으니(:附), 이는 바로 그 잘못(:謬)을 구(救)하려는 것
항상 나의 식견(見)이 얕고 나의 말이 한쪽으로 치우침으로 인하여, 후세(後世)에 재앙(殃)을 남길까 염려하고 항상 의구심(疑懼)을 품었으며(:懷), 고명(高明)한 자가 이를 바로잡아주기(:正)를 오래도록 기다림
책으로 출판(:付梓)한 지 몇 년(:數載)이 흘렀지만, 수정(:斧削)해야 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고, 명현(明賢)한 자들도 이를 보고는 믿어주므로 스스로 몰래 위안(慰)
병자년(丙子年) 여름에 어떤 친구(:一友)가 가르침(:訓) 몇 마디(:數言)를 전(傳)하여 왔는데, 그의 성씨(姓氏)는 삼오(三吳)에 사는 이씨(李氏)
"양상유여 음상부족(陽常有餘 陰常不足) 이것은 단계(丹溪)로부터의 확실(確)한 논(論)이다. 지금 장씨(張氏)는 도리어 '양상부족 음상유여(陽常不足 陰常有餘)'라고 말하니, 어째서 이와 같이 상반(相反)하게 되었는가? 이를 또 스스로 옳다고 여기니, 어째서 억지를 부리면서(:矯强) 스스로를 뽐내려고(:衒) 하는 것인가? 아니면(:抑) 다른 근본(本)한 바가 있는 것인가?
다만 다 말하는(:口吻) 노고(勞)를 하지 않아도, 누가 맞는지 누가 틀린지 변별(辨)하려 하니, 다만 인사(人事)로만 증명(證)하여도 옳고 그름(:是非)을 바로 알 수 있다.
사람이 생(生)하면서부터 남자(男)는 반드시 16세이라야 정(精)이 비로소 통(通)하고, 여자(女)는 반드시 14세이라야 월경(經)을 시작(始)한다. 그 쇠(衰)에 있어서는 남자(男)는 정(精)이 64세에 갈(竭)하고 여자(女)는 혈(血)이 49세에 정(淨)하여진다. 대개 정혈(精血)은 이미 갔지만 사람이 여전히 의지(:賴)하여 죽지 않는 것은 오직 이 기(氣)일 뿐이다. 대개 ①기(氣)는 양(陽)이고 정혈(精血)은 음(陰)이다. 정혈(精血)이 오는 것은 느리니 기(氣)보다 나중에 오고, 정혈(精血)이 가는 것은 빠르니 기(氣)보다 먼저 간다. 이에 정(精)은 이미 없어져도 기(氣)는 여전히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음상부족 양상유여(陰常不足 陽常有餘)의 분명(明)한 증험(驗)이 아니겠는가?
이로써 선현(先賢)의 금석(金石: 귀중한 말씀)이 본래 틀리지(:謬) 않았음을 알 수 있는데, 후학(後學)의 경망(輕妄)함으로 이를 바꾸는(:易) 것을 내가 어찌 허용(容)하겠는가?"
이 말(:說)을 듣고 더욱 비통(悲)하고 탄식(嘆)
비통(悲)한 것은, 그의 말을 사람들이 듣고는 쉽게 동(動)하여 무릎을 치며(:擊節) 옳다(:善)고 칭(稱)
자(紫: 邪道)가 주(朱: 正道)를 어지럽힐(:亂) 수 있음이 이것보다 심(甚)하지는 않는다.
그 변별(辨)이 분명(明)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긴 꿈(:長夢)에서 깨어나지(:醒) 못하고, 또 목숨(:性命)이 걸린 바가 적지(:渺小) 않으므로, 이도 비통(悲)한 것
비통(悲)함이 다하고는 기뻐하게(:喜) 됨
지도(至道)의 정미(精微)함은 논박(駁)과 교정(正)을 거치지 않으면 결국 소명(昭明)될 수 없다는 것을 기뻐한(:喜) 것
그의 말(:說)로 인하여 이러한 단서(端)가 열려서(:啓) 이렇게 의혹(惑)을 풀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것을 기뻐한(:喜) 것
이씨(:李子)의 말을 변별(辨)하고자 함
'①정(精)은 음(陰)이고 기(氣)는 양(陽)이다.'고 한 것은 본래 틀린(:誣) 말이 아니다.
다만 눈썹(:眉睫)만 보고서(:覰) 그 얼굴(:面目)을 착각(:錯認)하여 장씨(張)을 이씨(李)로 부르게 되는 잘못이다.
'정(精)은 곧 수(水)이고, 수(水)는 곧 양(陽)이다.' 라는 것은 모르는 것
수화(水火)로 말하자면 수(水)는 진실로 음(陰)이고 화(火)는 진실로 양(陽)
화생(化生)으로 말하자면 만물(萬物)의 생(生)은 처음에는 모두 수(水)이고, 선천(先天) 후천(後天)이 모두 이것에 근본(本)하고 있으므로 수(水)는 곧 양(陽)이 화(化)한 것
어떻게 그렇게 보는가?
오행(五行)에 있어서 수(水)는 일천(一天)에서 생(生)하고, 육기(六氣)에 있어서 수(水)는 태양(太陽)에 속(屬)
이처럼 수(水)는 음(陰)이 아니니라.
또 인신(人身)에 있어서의 정(精)은, 정(精)이 성(盛)하면 양(陽)이 강(强)하고 정(精)이 쇠(衰)하면 양(陽)이 위(痿)
이처럼 정(精)은 음(陰)이 아니니라.
또 양생가(養生家)가 중(重)하게 여기는 것은 오직 순양(純陽)이라 하는데, 순양(純陽)의 양(陽)은 정(精)을 말하는 것
정(精)이 만약 삼루(滲漏)한다면 어떻게 양(陽)이 있겠는가?
이처럼 또한 정(精)은 음(陰)이 아니니라.
또 단서(丹書)에 이르기를 "양(陽)의 분리(分)가 미진(未盡)하면 죽지(:死) 못하고 음(陰)의 분리(分)가 미진(未盡)하면 신선(仙)이 되지 못한다." 하였으니,
이 또한 신선(仙)이 반드시 순양(純陽)을 말하는 것
만약 이씨(:李子)의 말에 근거(據)하자면 단지 (음인) 그 정(精)을 모두 설(泄)하면 곧 순양(純陽)이 되는 것이니, 그렇다면 선(仙)을 배우는 법(法)이 어찌 쉽지 않겠는가?
이씨(:李子)의 견해(見)는 단지 음양(陰陽)의 한 부분(:一竅)만 본 것이고
음양(陰陽)의 전체(全體)를 보지 못함.
음양(陰陽)의 도(道)
대강(綱)으로 말하자면 천지(天地)를 위육(位育: 자리하여 생육시키다)하고,
조목(目)으로 말하자면 추호(秋毫)까지도 세세하게 스며들어(:縷析) 지대(至大)한 것에서 지소(至小)한 것까지 언제나(:往) 그 화(化)가 아닌 것이 없다.
청탁(淸濁)의 대대(待對)로 말하자면 ①기(氣)는 양(陽)이고 정(精)은 음(陰)이지만, 이는 음양(陰陽)의 한 조목(目)일 뿐
사생(死生)의 취산(聚散)으로 말하자면 대개 정혈(精血)의 생(生)은 모두 양(陽)인데, 기(氣)는 양(陽)을 얻으면 생(生)하고 양(陽)을 잃으면 사(死)
이는 실로 성명(性命)의 화원(化源)이고, 이는 음양(陰陽)의 대강(大綱)
사람(:人)의 생명(生)은 초목(草木)에 비유(譬)
초목(草木)이 그 초(初)에는 묘(苗)를 생(生)하고, 이어서 지엽(枝葉)을 생(生)하며, 다시 화실(花實)을 생(生)
쇠(衰)에 이르면 화실(花實)이 낙(落)하고, 지엽(枝葉)만 붙어(:存) 있다가 점차 시들게(:凋) 됨
이것은 초목(草木)이 성쇠(盛衰)함에 그 때(:時)가 있다는 것
따라서 생(生) 장(長) 화(化) 수(收) 장(藏)이라 하며, 그 후(候)는 각각 서로 다름이 있다.
사람(:人)의 생명(生)도 또한 이와 같다.
그 초(初)에는 영해(嬰孩: 어린아이)로 생(生)하고 이어서 정혈(精血)을 생(生)하며 다시 자녀(子女)를 생(生)
쇠(衰)에 이르면 정혈(精血)이 거(去)하여도 형(形)은 아직 붙어(:存) 있다가 점차 죽게(:終) 됨
이것은 인생(人生)이 성쇠(盛衰)함에 그 때(:時)가 있다는 것
따라서 생(生) 장(長) 장(壯) 노(老) 이(已)라 하며, 그 나이(:年)에는 각각 서로 다름이 있다.
그러므로 유(幼)에서 노(老)에 이르기까지 대개 생명(生)이 있는 것은 생기(生氣)가 주(主)가 되지 않음이 없고, 일생(一生)의 생기(生氣)는 양기(陽氣)가 주(主)가 되지 않음이 없다.
다만 초(初)와 중(中)의 다름이 있을 뿐
사람의 정(精)이 이르는 것이 곧 음(陰)이 이르는 것이라면, 어찌 화과(花果)가 되는 것이 초목(草木)의 음(陰)에 이르는 것이겠는가?
또 지엽(枝葉)이 시들지(:凋) 않으면 곧 초목(草木)에 양(陽)이 있다는 것인가?
또 양기(陽氣)가 사람에게 있으면 곧 사람마다(:人人) 백세(百歲)할 수 있는데, 또한 이것은 주어진 분수 안(:分內)에서의 천년(天年)에 불과(不過)
요즘 백 명(:百人) 중에서 대개 천년(天年)을 다하고 죽은 자가 과연 그 얼마이겠는가?
이렇게 요(夭)하여 이르지 못하는(:不及) 자는 모두 생기(生氣)의 불급(不及)이 아니겠는가?
어째서 양(陽)의 유여(有餘)로 본다는 것인가?
양(陽)이 강(强)하면 수(壽)하고 양(陽)이 쇠(衰)하면 요(夭)하는데, 어째서 양(陽)의 유여(有餘)로 본다는 것인가?
얻기는 어렵고 잃기는 쉬운 것이 오직 이 양기(陽氣)이니라. 이미 잃으면 회복(復)하기 어려운 것 또한 오직 이 양기(陽氣)이니, 또한 어째서 양(陽)의 유여(有餘)로 본다는 것인가?
천년편(<天年篇>) "사람이 100세(歲)를 살면 오장(五臟)이 모두 허(虛)하게 되고 신기(神氣)가 모두 거(去)하므로 형해(形骸)만 홀로 남으면서 죽는다(:終)."
형(形)은 음(陰)이고 신기(神氣)는 양(陽)
신기(神氣)는 갔어도 형(形)은 아직 존재하니 이것이 바로 '양상부족(陽常不足)'의 결과(:結局)인데, 어떻게 '양상유여(陽常有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정기(精氣)의 음양(陰陽)에 있어서는
③나누어 말할 수 있는 경우와 ④나누어 말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③나눌 수 있는 경우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청탁(淸濁)을 대대(待對)로 말한 것
★④나눌 수 없는 경우는 수련가(修煉家)들이 정기신(精氣神)을 삼보(三寶)로 여기는 것
선천(先天)의 기(氣)는 신(神)으로부터 기(氣)로 화(化)하고 정(精)으로 화(化)하며, 후천(後天)의 기(氣)는 정(精)으로부터 기(氣)로 화(化)하고 신(神)으로 화(化)
이 세 가지의 화생(化生)은 서로가 근본(:根)이 되니, 본래 동일(同一)한 기(氣)이므로 이는 곧 ④나눌 수 없는 것
따라서 정(精)을 잘 다스리는(:治) 자는 정(精) 속에서 기(氣)를 생(生)하게 하고, 기(氣)를 잘 다스리는(:治) 자는 기(氣) 속에서 정(精)을 생(生)하게 한다.
이처럼 나눌 수 있는 경우와 나눌 수 없는 경우의 묘용(妙用: 묘한 쓰임)이 있다.
한열(寒熱)의 음양(陰陽)에 있어서는 ③나누지 않을 수가 없다.
한(寒)의 성(性)은 빙(氷)과 같고 열(熱)의 성(性)은 탄(炭)과 같아서, 빙(氷)과 탄(炭)은 서로를 꾀하지(:謀) 않으니 어찌 함부로 사용(用)하겠는가?
따라서 내가 말하느니라.
★정기(精氣)의 음양(陰陽)은 ④분리(離)할 수 없고,
★한열(寒熱)의 음양(陰陽)은 ③혼용(混)할 수 없다.
이는 의가(醫家)에서 가장 소중한(:切) 법언(法言)
또한 정혈(精血)의 음양(陰陽)은 품부(稟賦)된 원기(元氣)를 말하는 것이고,
한열(寒熱)의 음양(陰陽)은 병치(病治)하는 약이(藥餌)를 말하는 것
요즘 부족(不足)한 원양(元陽)을 유여(有餘)한 것으로 알고 화(火)라고 말하면서, 서로 습관적(習)으로 고한(苦寒)하고 졸렬(劣)한 약물(物)들을 자음(滋陰)하는 보제(補劑)로 사용(用)
아아(:嗟嗟)! 우산(牛山)의 유한(有限)한 생기(生氣)조차도 과연 그 무궁(無窮)한 음(陰: 숲)의 벗겨냄(:剝)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말 못하는 자들(:啞子)이 황련(黃連)을 먹고도(:喫) 하소연(:伸訴)조차 할 수 없은 지가 지금까지 400여년이 되었다.
그들이 앙망(望)하던 단계(丹溪)의 말들은 이와 같을진대(: 황당하다), 하물며 다른 사람들이라면?
고인(古人)들 "성인(聖)의 책이 아니면 읽을 수 없다."
여기서는 특히 더 심(甚)한 것
천지(天地)의 음양(陰陽)의 도(道)는 본래 화평(和平)하여야 하니,
한번이라도 불평(不平)하면 재해(災害)가 이르게 된다.
★내가 '양상부족(陽常不足)'이라 말하는 것도 한 쪽으로 치우친 견해(見)
단계(丹溪)의 보음(補陰)의 설(說)이 잘못(:謬)되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이를 반대(反)로 말함으로써 만세(萬世)의 생기(生氣)를 구(救)하려는 것
사람들이 중시(重)하는 것은 오직 이러한 생(生)이 있다는 것
어떻게 생(生)할 수 있는가 하면 오직 이 양기(陽氣) 뿐이니, 양(陽)이 없으면 생(生)할 수 없다.
생(生)이 있게 하려면 이 양기(陽氣)를 보배(寶)로 삼아야 한다.
날마다 그 휴(虧)함을 염려(慮)
'양상부족(陽常不足)'이라고 말하는 것도 또한 (지나가는) 봄(:春)을 애석(惜)하게 여기는 기인(杞人)일 뿐
진실로 잘못(:左)이 있다면 명현(明賢)한 자들이 다시 논박(駁)하여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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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주단계의 <양유여음부족론(陽有餘陰不足論)>
만물의 생(生)은 처음에 모두 수(水)이고, 선천 후천이 모두 이것에 근본 = 수(水)는 곧 양(陽)이 화(化)한 것
오행(五行)에 수(水)는 일천(一天)에서 생(生), 육기(六氣)에 수(水)는 태양(太陽)에 속(屬) = 수(水)는 음(陰)이 아님
정(精)이 성(盛)하면 양(陽)이 강(强)하고 정(精)이 쇠(衰)하면 양(陽)이 위(痿) = 정(精)은 음(陰)이 아님
양생가(養生家)가 중(重)하게 여기는 것 오직 순양(純陽), 순양(純陽)의 양(陽)은 정(精) = 정(精)은 음(陰)이 아님
신선(仙)은 반드시 순양(純陽)을 말하는 것 = 정(精)을 모두 설(泄)하면 순양(純陽)이 되어 신선(:仙)이 되는가?
음양(陰陽)의 도(道)에서 사생(死生)의 취산(聚散)으로 말하자면 정혈(精血)의 생(生)은 모두 양(陽)
생명(生)이 있는 것은 생기(生氣)가 주/ 생기(生氣)는 양기(陽氣)가 주
양(陽)이 강(强)하면 수(壽)하고 양(陽)이 쇠(衰)하면 요(夭)
형(形)은 음(陰)이고 신기(神氣)는 양(陽)
정기(精氣)의 음양(陰陽)은 분리(離)할 수 없고,
한열(寒熱)의 음양(陰陽)은 혼용(混)할 수 없다.
◆ 정기(精氣)의 음양(陰陽)은 분리(離)할 수 없고,
한열(寒熱)의 음양(陰陽)은 혼용(混)할 수 없다.
정혈(精血)의 음양(陰陽)은 품부(稟賦)된 원기(元氣)를 말하는 것이고
한열(寒熱)의 음양(陰陽)은 병치(病治)하는 약이(藥餌)를 말하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기초가 흔들리므로 음양에서 양 위주로 치료한다.
나머지는 음의 소진이 반드시 있으므로 음 위주로 하되, 음의 소모가 심하지 않으면 표면적으로 한열을 구분하여 그것에 맞게 치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