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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복권
민정이는 생긴 것부터가 밉상이다. 양쪽으로 부풀어 오른 볼텡이살로 납작하게 눌린 코가 더욱 눌린듯 보이고, 게다가 단추구멍같이 작고 옴팡한 눈을 지녔다.
키도 작은데다 살도 많이 쪄서 걸핏하면 동네 또래의 아이들로부터 ‘돼지, 돼지, 똥돼지’라며 놀림을 받았다. 뿐만아니라 공부도 잘 못하는데다, 뭘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먹성은 좋아 밥이며 간식이며 주는 대로 다 받아먹고,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돈만 생기면 무조건 동네 구멍가게로 쫓아가 온갖 것을 가리지 않고 다 사먹었다. 평소 불만도 많은데다 심술마저 궂은 편이라 도무지 귀여운 구석을 찾을 수가 없는 아이다.
민정이는 중현초등학교 5학년이다. 두 살 아래로 같은 학교 3학년인 남동생 민석이가 있다. 그러나 민석이는 민정이와는 딴판으로 귀엽고 영리하게 생긴데다 공부 또한 잘한다. 그리고 1학년 때부터 줄곧 반장자리를 독차지해 왔다.
민석이는 아빠와 엄마의 귀여움을 독차지한데다, 누나인 민정이를 ‘살찐 돼지’라며 드러내놓고 깔보기까지 했다. 민정이는 그런 동생 민석이를 은근히 미워했다.
무엇보다 민정이가 젤 싫어하는 것은 아빠나 엄마가 은연 중에 동생 민석이와 자신을 드러내놓고 비교하는 것이다.
“우리 민석이는 공부 잘하는 것이 아빠를 닮았는데, 민정이는 도대체 누굴 닮았을꼬?”
“우리 집안 쪽으로는 살찐 사람이 없었는데, 민정이는 누굴 닮아서 저렇게 살이 찌는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민정이는 그런 아빠와 엄마가 자신을 다리밑에서 주워왔다는 얘기를 안하는 것만으로도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해왔다.
민정이는 부산에서도 제법 변두리라 할 수 있는 다대포해수욕장 근처의 몰운대아파트에 산다.
아빠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그마한 공장을 임대하여 중국에서 들여온 재료로 물비누를 생산, 주로 대형식당이나 모텔 등을 상대로 판매를 해왔다. 비록 부자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네 식구가 사는 데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아빠의 사업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빠의 얼굴엔 웃음기가 사라지고 대신 걱정하는 표정이 역력해져 갔다.
어느 날 민정이는 잠자다 말고 화장실에 가려고 거실로 나서려다 아빠와 엄마가 나누는 소리를 엿듣게 되었다.
“여보, 한 3천만 원만 어디서 빌릴데가 없을까?”
“내가 더 이상 돈 빌릴데가 어딨어요. 그렇잖아도 빌린데마저 제 이자를 챙겨주지 못해 난리들인데.”
“그렇다면…, 이 집이라도 팔아야겠어.”
“그럼 우리 식구들은 길바닥에 나앉으란 얘기예요?”
“길바닥은 뭔…. 전셋집으로 옮겨야 된다는 얘기지.”
그때 민정이를 발견한 아빠와 엄마와의 대화는 그로써 중단되었다. 민정이는 못볼 것을 본 것처럼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지난 10년 동안 별 탈없던 아빠사업은 최근들어 갑자기 어려워졌다. 제품이 잘 팔리지 않아서도 아니었고, 수금이 잘 되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오직 한 사람때문에, 한 사람의 직원을 잘 못써서 아빠가 온갖 고생을 다해 키워온 회사가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아빠의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설 즈음인 3년 전, 아빠는 평소 잘 알고 지내온 지인으로부터 아빠보다 두 살인가 더 나이 많은 ‘김용민’이란 사람을 소개 받았다. 듬직한 체구에 온화한 인상을 지닌 데다 예의도 깍듯하고 말주변도 좋았다.
그는 아빠와의 첫 대면자리에서 ‘자신도 사업을 하다 절친한 친구로부터 사기를 당해 쫄딱 망한데다 누명까지 뒤집어쓰고, 그 때문에 교도소까지 갔다왔고, 결국 이혼까지 당했다’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데다 중국말을 능통하게 구사하고 중국 현지사정에 그리 밝다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국에 목사인 친 형님이 한인교회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 아빠가 그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용하게 된 이유였다.
그리고 그가 입사한지 불과 서너 달 만에 그에게 상무라는 직책까지 주었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줬던 것이다.
김 상무는 아빠가 방을 얻어주겠다고 해도 굳이 마다하며 공장 안의 세 평짜리 숙직실에서 지난 3년간 숙식을 고집해 왔다. 그러니 아빠로서는 욕심마저 없다 여긴 그를 더욱 신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김 상무는 3년 여 동안 누가 봐도 인정하리만큼 아빠회사 일을 자신의 일처럼 정말 열심히 했다. 그래서 얼마후부터는 김 상무를 철저히 믿고 그에게 자재수입관련 일뿐만아니라 거래처관리며 수금까지 모두 도맡겼다.
‘도둑 하나를 열 사람이 못 지킨다’란 옛 속담처럼 그렇게 믿었던 김 상무가 불과 한 달 사이에 1억3천만 원이란 회사거래처의 외상미수금을 가로채고, 창고 안의 원자재까지 3천여만 원이란 헐값에 몽땅 팔아치우곤 중국으로 도망갔다. 그러면서 미안하다는 쪽지까지 남기는 배려는 잊지 않았다.
“박 사장님, 그동안 한 식구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신 고마움은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도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박 사장님을 배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옵고, 언젠가 제가 형편이 좋아지면 그때 신세진 것을 꼭 갚아드릴 것이니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한번도 중국엘 가보지 못했던 아빠로서는 그의 연고지가 정확하게 어딘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그를 붙잡기 위해 중국까지 찾아나설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아빠는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 모아 어떻게 해서든 사업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 했다. 그러나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한번 기울어진 사업은 좀처럼 일으켜 세우기가 힘들었다.
“여보, 이젠 더 이상 버텨낼 방법이 없네.”
“그럼 어떡하면 좋지요?”
“글쎄…. 아무래도 내가 빚쟁이들을 피해 잠시 숨어있어야 할 것 같구료.”
“그 정도로 심각한가요?”
“응.”
아빠는 채권자들의 등쌀을 피하느라 집엔 얼씬도 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시도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빚쟁이들로 집안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집의 등기에도 열 군데가 넘는 곳에서 압류가 들어왔고, 모든 살림살이에도 빨간딱지들이 나붙었다.
어쩌다 한밤중에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나타난 아빠는 턱수염도 제대로 깎지 못한데다 머리도 부스스하고, 때가 잔뜩 낀 와이셔츠며 바지 등 추레한 모습을 보였다. 그때마다 민정이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민정이는 주머니 속에 든 천 원짜리 다섯 장을 만지작거리며 ‘로또복권 제312회 1등 당첨점, 제334회 2등 당첨점’이란 표시가 유리문에 붙어있는 로또복권 판매점 앞에서 몇 번이고 망설였다.
로또복권을 사서 요행을 바라는 것 또한 도박이라 여겼고, 더군다나 초등학생이 복권을 샀다가 누가 알기라도 하면 야단맞을만한 나쁜 짓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렇지만 로또복권에 당첨되어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사람들의 얘기가 자꾸 떠올랐다. 1등 당첨만이 도망다니는 아빠를 구할 수 있으며, 집도 빼앗기지 않고 집안에 그득 붙어있는 빨간딱지를 뗄 수 있으리라 여겼다.
“아저씨, 로또복권 5천 원어치도 팔아예?”
“그럼, 오천 원이면 다섯 줄이네?”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되면 얼마나 탈 수 있어예?”
“응, 어디 한번 보자…. 이번 회차가 345회니깐… 52억 원쯤 되겠네, 근데 1등 하려면 요 여섯 개의 번호가 다 맞아야 가능해. 그리고 1등에 당첨될 확률은 약 8백만분의 1이지.”
“그럼, 2등은 얼만데예?”
“응, 2등에 당첨되면 몇 억을 받을 수도 있지만, 때론 몇 천만 원 정도의 액수밖엔 안 돼. 2등은 당첨번호 5개와 보너스 번호를 맞혀야 되는데.”
“언제 발표하는데예?”
“모래 토요일, 그러니깐 7월11일이네. 추첨은 오후8시45분 SBS에서 스포츠 뉴스가 끝남과 동시에 시작할 거야.”
“그럼 다섯 개만 줘예”
2등에라도 당첨되면 아빠가 집에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민정이는 주머닛돈을 모두 긁어모아 로또복권 5천 원어치를 샀다. 그리고 로또복권 용지의 작은 칸 하나하나에 검정색 유성펜으로 까맣게 채워갈 때마다 하나님한테도 빌고, 부처님과 신령님께도 빌었다.
막상 로또복권을 사들인 민정이는 로또복권을 어디에다 감춰놓아야 좋을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괜히 엄마 눈에 띄면 돈이 흔해 복권이나 산다며 혼낼까봐 겁이 났고, 민석이 눈에 띄면 빼앗길까 겁이 났다.
손으로 만지작거리다 복권번호라도 지워질까봐 두꺼운 비닐로 사각주머니를 만들어서 그 안에 보관했다.
옷장 속 서랍 밑에다가 숨기기도 했고, 신고 있던 양말 속에다 집어넣기도 했다. 그러다 베란다 화분 밑에 숨기기도 하면서 숨겼던 장소만 몇 군데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뿐만 아니라 하루 종일 복권 생각이 떠나지 않기를 꿈자리마저 뒤숭숭했다.
다행히 토요일 저녁엔 엄마가 누군가를 만나러 나간다며 자리를 비웠고, 민석이 또한 컴퓨터오락 한다며 방 밖엘 나오지 않아 거실에서 민정이는 SBS에서 진행되는 복권추첨에 따라 자신이 별도로 적은 로또복권 번호를 꼼꼼히 맞춰 볼 수 있었다.
추첨방법은 01부터 45까지 숫자가 적힌 45개의 볼이 무작위로 섞이다 하나씩 배출되는 순서로 정해졌다.
투명한 원통 안에서 볼들이 구르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에 볼 하나가 ‘슛~!’ 밖으로 튀어나왔다. 한 아가씨가 볼을 주워들고 볼에 적힌 숫자가 잘 보이도록 앞쪽으로 쑥 내밀었다.
“23번”
민정이는 조급한 마음에 얼른 다섯 줄로 표시된 숫자 배열 가운데에서 23번이 있나 확인했다. 다섯 줄 가운데 세 번째 줄과 네 번째 줄 등 23번 숫자가 두 군데에서 발견되었다. 민정이는 연필로 23번 숫자에 동그라미 표시를 했다.
잠시후에 또 하나의 볼이 튀어나왔다. 15번이었다. 이번엔 아쉽게도 다섯 줄 가운데 한 군데인 네 번째 줄에서만 15번 숫자가 발견되었다. 민정이는 15번 숫자에 동그라미 표시를 했다. 그로써 네 번째 줄은 6개의 숫자 중에 두 군데를 맞힌 셈이었다.
잠시후에 또 하나의 볼이 튀어나왔다. 39번으로 이번에는 두 번째 줄과 네 번째 줄 등 두 군데에서 39번 숫자가 발견되었다. 민정이는 39번 숫자에 동그라미 표시를 했다. 그로써 네 번째 줄은 6개의 숫자 중에 세 군데를 맞힌 셈이었다.
그때부터 민정이의 두 볼이 화끈거리며 달아오르고 가슴이 요동치듯 뛰기 시작했으며 온몸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잠시후에 20번의 숫자가 발표되고 이번에도 네 번째 줄에서만 20번 숫자가 발견되었다. 민정이는 20번 숫자에 동그라미 표시를 했다. 그로써 네 번째 줄은 6개의 숫자 중에 네 군데를 맞힌 셈이었다.
민정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 ‘만세!’를 불러댔다. 민정이의 고함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방안에서 컴퓨터게임에 열중이던 민석이가 방문을 열고 삐죽이 머리를 내민 채 민정이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기까지 했다.
“지금 뭘 보는데 그 난리야?”
“응, 지금….”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를 뚝 떼고 있는 민정이의 태도에 민석이는 ‘별일이다’ 싶은 표정을 짓더니 내밀었던 머리를 걷어 들이고는 방문을 ‘쾅!’ 소리 나게 닫았다.
그 사이에 또 하나의 볼이 튀어나왔다. 이번에는 42번으로 네 번째 줄에서만 42번이란 숫자가 발견되었다. 민정이는 떨리는 손가락을 겨우 가라앉히고는 42번 숫자에 동그라미 표시를 했다. 그로써 네 번째 줄은 6개의 숫자 중에 다섯 군데를 맞힌 셈이었다.
민정이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은 흥분과 긴장감으로 비명을 내지르는 대신에 자신의 가슴을 두 주먹으로 마구 두들겼다. 이로써 보너스 점수만 맞힌다면 2등은 따 놓은 당상이라 여겼다.
잠시후에 마지막 볼이 튀어나왔다. 29번이었다. 이번에도 네 번째 줄 외에 첫 번째 줄에서도 29번이란 숫자가 발견되었다. 민정이는 29번 숫자에 동그라미 표시를 했다. 그로써 네 번째 줄의 ‘15, 20, 23, 29, 39, 42’ 등 6개의 숫자 모두를 맞힌 셈이었다.
복권을 맞춰보기 전까지는 1등이 아니라 2등만 되었어도 좋겠다며 가슴을 조아렸는데, 막상 1등에 당첨되자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다. 늦은 시각에 엄마가 돌아왔을 때도 그런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 털어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몇 번씩 확인했기 때문에 틀림없이 1등이 맞을 거야.’
마음 속으론 몇 번씩 다짐을 했지만, 어떻게 그런 행운이 자신에게 올 수 있는 것인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당장이라도 엄마한테 사실대로 얘기하고 싶은 생각도 굴뚝같았지만, 아빠가 집에 오면 그때 사실대로 얘기해야 옳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민정이가 아무리 기다려도 아빠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안 곳곳에 붙어있는 빨간딱지를 볼 때마다, 엄마가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운 모습을 볼 때마다, 민정이는 로또복권 얘기를 꺼내고 싶었으나 왠지 아빠가 없는 자리에서 허투루 그런 얘기를 꺼낼 것 같으면 로또복권의 행운이 절로 날아갈 것 같은 조바심을 느껴 꾹 꾹 참아냈다.
“엄마, 아빠 언제 들어와?”
“아빠는 왜 찾니?”
“아빠한테 할 얘기가 있는데.”
“나도 모른다. 어디 가서 뭘 하고 있는지.”
“엄마, 아빠한테 연락 안돼?”
“연락되면 뭐 할려고? 들어올 때 되면 들어오겠지.”
“엄만, 아빠 걱정이 전혀 안되나 봐.”
그렇게 기다리던 아빠가 수요일이 되어서야, 그것도 새벽 두 시쯤 되어 집엘 찾아왔다. 얼핏 잠결에 들려오는 아빠의 기척에 민정이는 벌떡 일어나 거실로 뛰쳐나갔다.
몹시 피곤해보이는 아빠가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고, 그 맞은편엔 엄마가 측은한 표정으로 아빠를 바라보고 있었다.
민정이는 로또복권이 들어있는 비닐주머니를 들고 아빠 앞에 다가섰다.
“아니, 민정이는 아직 잠도 안 자고 뭘하고 있었어?”
아빠는 밥을 먹다말고 민정이를 바라보며 웃어보였다.
“응, 아빠…. 나 아빠한테 할 얘기 있어. 굉장히 중요한 얘기야.”
“뭔 얘긴데? 뜸 들이지 말고 시원스레 얘기해 봐.”
“응, 아빠…. 놀라지 말고 잘 들어야 돼.”
“응, 안 놀랄 테니까 어서 얘기해 봐.”
“아빠…. 나 말이야, 로또복권 1등 당첨됐어.”
“응,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되었다고? 그럼 어디 보자꾸나.”
“응, 여깃어.”
민정이는 아빠의 손에 로또복권을 쥐어주었다. 아빠는 로또복권을 받아쥐고는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그런데…. 이 로또복권이 어떻다고?”
“이 복권이 엊그제 텔레비전에서 1등에 당첨 됐어. 진짜야, 내 말 믿으라고….”
그제야 아빠의 얼굴에 동요하는 빛이 역력했다. 엄마도 자리에서 일어나 아빠 손에 쥐어진 로또복권을 빼앗아들고는 자세히 살펴보는 듯했다.
“얘가 우리 망한걸 알고는 정신이 좀 어찌되었나 봐요. 민정아. 우리, 힘은 들어도 당장 길바닥에 나앉는거 아냐. 그리고 니가 왜 그런 걸 걱정하니. 공부 열심히하고 아프지만 않으면 돼.”
“엄마, 진짜야. 이 로또복권 1등 당첨된 거 맞아. 하늘에 걸고 맹세할 수도 있어.”
민정이의 얼굴표정이 의외로 진지하다는 것을 느낀 아빠는,
“그럼 우리 컴퓨터로 당첨번호를 직접 확인해볼까?”
아빠가 앞장서서 컴퓨터가 있는 민석이 방으로 들어가자 엄마와 민정이도 따라들어갔다.
“여기 사이트주소 나와 있네? 민정이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 한번 확인해 볼까?”
아빠는 서둘러 컴퓨터 앞에 앉자마자 로또복권 용지 밑에 표기되어있는 인터넷주소로 찾아들어 갔다. 엄마랑 민정이 또한 컴퓨터 앞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그리고 당첨번호를 확인해본 즉, 민정이의 말대로 1등에 당첨되어 있었다. 1등 당첨자는 모두 둘이고, 당첨금액은 한 사람당 52억358만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막상 1등에 당첨된 것을 확인한 아빠나 엄마의 표정도 순간 얼이 빠지기론 마찬가지였다.
그날 밤 민정이네는 오래간만에 불을 훤히 밝히고, 모든 식구들이 잠 한숨 제대로 자지 못했다.
다음날 새벽녘, 날이 밝자마자 아빠는 서울 농협중앙회 본점에서 로또복권 1등 당첨금을 수령하기 위해 서둘러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밤 10시쯤 되어 집에 무사히 도착한 아빠는 로또복권 당첨금이 입금된 농협통장을 가족들 앞에 내놓았다.
30%가량의 제세공과금을 떼고도 ‘3642506273’이라는 아라비아 숫자가 자그마치 열 개나 가즈런히 찍혀있는 통장이었다.
통장을 가운데 두고 빙 둘러앉은 아빠와 엄마, 그리고 민정이와 민석이, 네 식구는 서로의 얼굴표정만 살펴볼 뿐, 그 어떤 말도 쉽사리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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