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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송배 시집『바람과의 동행』
‘바람’의 여정과 자적自適의 충만
- 김성조(시인, 문학박사)
1.
김송배 시인의 제13시집『바람과의 동행』(도서출판시원, 2023)을 읽는다. 이 시집에는 “80여 성상”(「화색和色이 감돌 때쯤」)을 돌아볼 수 있는 여러 시적 발자취가 형상화되어 있다. 1983년 심상 신인상으로 등단을 한 시인은 올해로 시력 40여년이 된다. 13권의 시집출간은 시력 40여년의 시적거리에 비춰보면 상당한 수준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지금까지 시인의 시작활동이 대단히 열정적으로, 성실하게 이어져오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될 것이다.
전체 제5부로 구성된 이번 시집은 조금 특별한 형식을 고수하고 있다. 제1부에서제4부까지의 시편들에 이어, 제5부에는 영역, 일역, 중역의 시편들이 첨부되어있는 것이 그것이다. 이와 더불어, 흔히 시집해설이 놓이는 자리에 “나의 창작산실”이라는 타이틀을 두고 시인의 세편의 글이 실려 있다. 이 세편의 글들은 시인의 삶과 문학 즉, 개인적 삶과 시적여정의 여러 흔적들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첫 시집에서부터 제10시집까지의 시집소개와 시적배경에 대한 언급, 그간 출간한 시선집, 시론집 등 출간서적들을 한 자리에 정리한 작업도 의미 있게 다가온다. 이러한 시적 발자취들은 큰 틀에서 한 시인의 시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할 때 긴밀한 자료적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송배 시세계의 의미구도는 시인 자신이 “나의 시쓰기의 주안점은 삶을 통한 생생한 체험”(「착목着目한 사물에 투영된 의미 탐색-무엇을 쓰고 있나」)에 터를 두고 있다고 했듯이 살아온 궤적과 인간적 교류, 그 관계성에서 오는 다양한 이야기적 요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번 제13집의 시적걸음 또한 이러한 체험적 요소들을 정서적 기반으로 해서 이즈음의 시적인식과, 성찰적 깨달음의 세계를 생성하고 있다. ‘바람’의 함축적 배경과 자적自適의 세계는 시세계를 열어가는 핵심구도이다. ‘바람’ 이미지는 개인적 삶의 여정과 시적여정을 두루 아우르는 시적기제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다 폭넓은 범주에서의 의미를 생산하게 된다. 자적自適은 ‘바람’의 긴 여정을 지나와 비로소 확보하게 되는 정신적/현실적 자기정화의 지점이다.
2.
『바람과의 동행』은 대략 세 개의 구도로 그 의미적 배경을 짚어볼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개인적 삶의 영역과 연계한 자아인식의 세계이다. 이는 과거의 자아와 현재적 자아가 맞물려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오늘을 성찰하는 일련의 과정이 된다. 다음은, 현재시점에서 체감되는 현실인식의 한 측면이다. 여기에는 병, 죽음 등이 주요 주제로 떠오르면서 허무적 심연과 나와 주변적 관계성에 대한 인식을 유도한다. 마지막으로, 문우들과의 교유를 기반으로 하는 여러 발자취들이다. 여기에는 주로 술과 관련해서 생성되는 여러 형태의 에피소드가 등장하고 있다. 이 세 개의 의미구도는 어느 순서로 펼쳐놓아도 상호 연결성이 주어진다. 이 글에서는 제시된 순서대로 분석의 틀을 잡기로 한다.
잠 설친 이른 새벽
촛불을 밝힌다
전등불보다 아늑하다
낮에 못다 읽은 시집을 뒤적이거나
그동안 멀리 달아났던 체험들을
주섬주섬 주워 모으는 일에서부터
하루를 시작한다
불빛이 흔들릴 때마다
내 가슴에 울렁거리는 아련한 연민
왜일까. 흥건한 눈물보따리가
펼쳐지는 이 어둠의 시간이,
그 공간이,
멀리 사라진 아픔의 행간에서
촛불을 켜놓고
아직도 아슴푸레 들려오는
지난 날 방황의 일기를 적어본다
-「촛불을 켜며」전문
‘새벽’은 성찰적 사유를 응집할 수 있는 긴밀한 통로이다. 따라서 분산되어 있던 자아를 완전체의 형식으로 직시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주로 새벽에 시를 썼다”(「사유의 확대와 언어 조탁의 공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인에게 ‘새벽’은 시작詩作과도 연계성을 가진다. ‘새벽’은 아직 아침의 소음이 깨어나기 전의 어둠을 담고 있다. ‘촛불’은 그 어둠을 밝혀주는 빛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새벽’과 ‘촛불’ 이미지는 분리할 수 없는 상호 연계성을 가지게 된다. “잠 설친 이른 새벽/촛불을 밝힌다”에서 그 관계성의 구도를 읽을 수 있다.
시인이 “촛불을 켜”는 ‘새벽’은 “낮에 못다 읽은 시집을 뒤적이거나/그동안 멀리 달아났던 체험들을/주섬주섬 주워 모으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낮에 못다 읽은 시집”은 현재적 시간을, “그동안 멀리 달아났던 체험들”은 과거의 시간을 표상한다. 따라서 과거와 현재가 혼재하면서 자아를 일깨우는 정서적 기반이 되고 있다. 시인이 인식하는 자아는 “불빛이 흔들릴 때마다/내 가슴에 울렁거리는 아련한 연민”으로 구체화된다. “흥건한 눈물보따리”는 그 뒤를 이어 생성되는 내적파장이다.
그러면 자기연민을 동반한 “흥건한 눈물보따리”의 원천은 어디일까. 이는 “멀리 사라진 아픔의 행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지난 경험적 시간에서 비롯된다. 시인에게 지난 시간은 ‘연민’, ‘눈물보따리’, ‘아픔’ 등으로 이미지화되면서 자아인식의 한 축이 된다. 그리고 그 상처의 흔적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내적갈등을 유도하는 시적요인이 되고 있다. 정리해보면, “이 어둠의 시간”으로 표상되는 ‘새벽’과 어둠을 밝히는 ‘촛불’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으로서의 시적 매개물이 된다. 이러한 시적 매개물은 “지난 날 방황의 일기를 적어본다”로 연결되면서 어제와 오늘을 각인시키는 현실인식의 근원이 된다.
빈농貧農의 아들에게서 꾀죄죄한 몰골에 절망의 세월은
운명을 탓하면서 처절한 인내를 요구했다
뼈마디마디 깊숙이 찬바람이 몰아치고
가슴 밑바닥까지 밀어닥치는 성난 파도
그 아픔도 눈물도 잘도 참아 왔구나
80여 성상을 일그러진 표정에도
노욕老慾을 떨쳐낸 안분지족安分知足
이제사 찌푸러졌던 주름살이 펴지고
화기和氣가 만면滿面에 넘치는데
또 무엇을 덧칠하여 면상面相을 바꿀 것인가
가난이 유죄였던 한으로 남아서
불면으로 헝클어져 만신창이가 된 상흔을
순리대로 말끔히 지우면서 살아온 한 생애
아슬아슬했던 위기의 절벽에서도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은 어느덧
자적自適의 면목面目으로 정화되고 있다
-「화색和色이 감돌 때쯤」전문
김송배 시세계에서 “빈농貧農의 아들”로 상징화되는 ‘가난’의 정서는 대단히 큰 진폭을 내장한다. 그의 여러 시편, 혹은 글들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가난’은 시인의 삶의 전반을 물들이는 강력한 기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적 삶의 발자취는 고스란히 시적영역으로 이동해오면서 시적색채를 구성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가난’의 정서는 시인의 개인적 체험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보편적 체험구도를 형성하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우리쩍 사람들은 모두 겪은 일이지/못 먹고 못 입고 못살아서/못 배운 그 시절은 나만의 운명이더냐”(「너는 아직도 1」)에서 이러한 배경이 드러난다. ‘가난’은 ‘우리쩍’을 두두 아우르면서 보편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체험적 요소가 되고 있다.
위 시편은 앞서 살펴본 시편과 마찬가지로 두 개의 시간적 배경을 담고 있다. “빈농貧農의 아들”로 상징화되는 과거시점과, “노욕老慾을 떨쳐낸 안분지족安分知足/이제사 찌푸러졌던 주름살이 펴지고”의 현재시점이 그것이다. “빈농貧農의 아들”에서 촉발된 “절망의 세월”, “뼈마디마디 깊숙이 찬바람이 몰아치”던 시간은 “그 아픔도 눈물도 잘도 참아 왔구나”까지 이어진다. 부정적인 과거와 현재적 심리구도가 동일한 무게로 반영되어 있다.
지난 시간이 “운명을 탓하면서 처절한 인내를 요구했”다면, 현재는 “화기和氣가 만면滿面에 넘치는” 시간으로 전환된다. 이는 “불면으로 헝클어져 만신창이가 된 상흔”, “아슬아슬했던 위기의 절벽” 등 “가난이 유죄였던 한”을 스스로 극복하고 정화시키면서 수렴하게 되는 시간이다. “순리대로 말끔히 지우면서 살아온 한 생애”는 ‘절망’, ‘눈물’, ‘상흔’을 딛고 쟁취한 시간이다. 시인은 “또 무엇을 덧칠하여 면상面相을 바꿀 것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진다. 이러한 물음은 모든 결핍의 시간을 내려놓고서야 가능해지는 자기구현의 목소리이다. “자적自適의 면목面目으로 정화되고 있다”는 그 결과론적 배경이 된다.
한강 선유도엘 갔다
가볍게 산책을 할 요량으로
바람과 구름과 동행했다
입구 화단에서 만난 꽃
늦가을 햇살에 대궁만 흔들리고 있다
이제 벌 나비도 제집으로 돌아갔는지
형체도 그 소리도 사라졌는데
윙윙거리며 채취하면서 남겨진
화분花粉으로 씨앗들이 여물어 가지만
아무도 예전의 희로애락을 생각지 않는다
아늑하게 흐르는 한강물이
오늘은 어쩐지 더욱 한가롭다
문득, 옛말 무자서無字書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보이는 부분은 선명한데
지워져 숨겨진 뒷모습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을 읽어내는 것이 시다
한강 물굽이의 선유도 바람이 어우러지는 숲에서는
가을나무들이 단풍잎 팻말을 들고 있다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한 저 글귀
저승과 이승의 갈림길을 안내하고 있다.
-「바람과의 동행」전문
“한강 선유도엘 갔다”로 시작되는 위 시편은 특별한 시적기교 없이 담담하게 풀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가볍게 산책을 할 요량으로/바람과 구름과 동행했다”에서 한가로운 일상의 한 장면이 포착된다. 시간적 배경은 “이제 벌 나비도 제집으로 돌아갔는지/형체도 그 소리도 사라”진 ‘늦가을’이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아무래도 “아무도 예전의 희로애락을 생각지 않는다”, “지워져 숨겨진 뒷모습은 알 수가 없다”에 있을 것이다. ‘늦가을’은 분명 치열한 봄과 여름을 지나왔다. 그럼에도 “화분(花粉)으로 씨앗들이 여물어 가”는 그 배경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눈에 보이는 ‘늦가을’의 풍경에만 연연할 뿐 감추어져 있는 내적 진실에는 무감각하다.
담담한 시적 흐름 속에 비판적 인식이 깔리게 되는 것도 여기에 있다. 시인은 “그러나 그것을 읽어내는 것이 시다”라고 그 빈 공간을 채워 넣는다. ‘시’는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한 저 글귀”로 표상되면서 그 특징적 위치를 드러낸다. 하지만 “저승과 이승의 갈림길을 안내하고 있다”에서 또 다른 갈래의 의미가 생성된다. “저승과 이승의 갈림길”은 흐르는 시간, 유한한 시간에 대한 인식을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간인식은 ‘늦가을’의 풍경 속에 각인된 계절의 흐름, 삶과 죽음이라는 존재론적인 배경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런 점에서,「바람과의 동행」에서의 ‘바람’은 많은 상징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바람’은 단순한 자연적 현상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걸어온 시간과 걸어가야 할 시간을 함축하고 있다. ‘바람’은 고통과 시련의 표상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정신적 자유의 한 형식에 닿아있기도 하다. 따라서 인간 삶의 여러 질곡과 함께 자유로운 사유를 표방하는 원천이 되고 있다. 김송배 시세계의 ‘바람’ 이미지 또한 이러한 정서적 흐름을 견지하면서 개인적 삶의 영역과 시적영역을 두루 포괄하게 된다. ‘가난’에서 촉발되는 자아인식의 세계, 긴 시적탐색의 시간과 자기정화의 세계가 여기에 있다.
3.
김송배 시인의 ‘바람’의 여정에는 ‘시간’이 매개되어 있음을 이미 살펴본 바이다. ‘시간’은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확인하는 현실인식의 척도이면서 또한 중요한 과제가 된다. 이는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에 대한 인식, 필연적으로 봉착하게 되는 ‘병’, ‘죽음’에 대한 인식을 그 요체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을 체감하고 성찰하는 과정은 ‘병’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이끄는 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탐구영역이 된다.
①
시인 친구의 문병을 갔다
손을 꼭 잡은 채 몇 마디 위로를 하고
빠른 쾌유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며칠 후 끝내 회복을 못한 친구의 부음이
카톡을 요란하게 울렸다
나는 조문을 하고 조시를 읽었다
-「병에 대한 여운ㆍ1」부분
②
달력에 빨간 볼펜으로 날짜를 표시해 놓았다
오늘은 병원 가는 날이다
혈압이 얼마일까, 혈당은?
그러니까 미리미리 예방 차원에서
음식도 조심하고 행동도
그리고 술 담배는 다 끊었겠지
그러면 무슨 재미로 사나
이승 떠날 날만 헤아리고 있는가
-「병에 대한 여운ㆍ4」부분
연작시「병에 대한 여운」5편은 모두 ‘병’과 ‘죽음’이 연계되어 있는 작품들이다. “시인 친구의 문병을 갔다”에서 시작된 시적상황은 “나는 조문을 하고 조시를 읽었다”(①)까지 이어진다. ‘문병’, ‘부음’, ‘조문’, ‘조시’까지의 거리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시적거리는 ‘며칠 후’라는 그리 멀지 않은 시간 내에 순차적으로 일어난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달력에 빨간 볼펜으로 날짜를 표시해 놓았다/오늘은 병원 가는 날이다”(②)에서 보여 지듯이 시인 자신의 일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른바 나와 ‘친구’의 오늘과 내일이 동일한 현실적 구도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미리미리 예방 차원에서/음식도 조심하고 행동도/그리고 술 담배는 다 끊었겠지”의 물음도 이러한 배경 속에서 생성된다. “예방 차원”, “술 담배는 다 끊었겠지”는 너와 나의 관계성을 확인하고 염려하는 일련의 과정이 된다. 그리고 이즈음 서로에게 던지는 가장 큰 관심영역이 된다. “그러면 무슨 재미로 사나/이승 떠날 날만 헤아리고 있는가”는 뒤이어 찾아오는 회한과 슬픔이다. 여기에는 흐르는 혹은 흘러가버린 ‘시간’에 대한 허무적 인식이 함축되어 있다. 이러한 허무적 인식은 시인이 적극적으로 표출하고 있지는 않지만, “병에 대한 여운”을 각인시키는 강렬한 심리적 기저가 되고 있다.
요즘 들어서 문상問喪을 가는 일이 많아졌다
절친切親이 이승을 하직한 장례식장에는
모두들 조의弔意만 표하고 나갔는지
상주들만 썰렁하게 조문弔問을 받고 있다
할 일 못다 이룬 채 훌쩍 떠나버린 그의 영정은
그래도 웃음 가득 머금은 표정으로
생사의 행간에서 진한 눈물로 정을 나눈다
내일이면 화장장에서 한 줌 재로 변할 육신
지옥이냐 극락이냐 따져볼 겨를도 없이
납골당 유골함에서 그는 잠들어 있겠지
잘 가시오 사고팔고四苦八苦의 고통을
훌훌 벗어던지고 영원한 인식을 구하겠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하직의 슬픈 섭리
마지막 곡성哭聲이 저 하늘 높이 울려퍼진다
-「하직下直에 대하여」전문
위 시편을 구성하는 의미요소는 ‘문상’, ‘절친’, ‘장례식장’, ‘납골당 유골함’ 등이다. “요즘 들어서 문상問喪을 가는 일이 많아졌다”는 이를 뒷받침 하는 의미배경이 된다. 시인은 “요즘 들어서” ‘이승’을 하직하는 ‘절친’들이 늘고 있음을 절감한다. 지인들의 병문안과 뒤이어 다가오는 죽음, “생사의 행간”이 갈리는 영원한 이별이 그것이다. “내일이면 화장장에서 한 줌 재로 변할 육신”에서 삶과 죽음의 현저한 갈림길이 드러난다. 함께 젊음을 걸어왔던 지인들과 그들이 함유하고 있던 활달한 한 시대의 이야기가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문학의 금자탑-채수영 시인을 추모함」,「낭만주의자의 우수-이창년 시인 생각」,「연기로 사라진 영혼」등의 시편에서 옛 지인들의 발자취를 그리워하는 것도 여기에 있다.
김송배 시인에게 “절친切親이 이승을 하직한 장례식장”은 현실인식의 명징한 척도가 된다. 이는 연륜, 병, 죽음 등을 아우르는 시간인식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김송배 시세계의 ‘시간’은 직접적인 표현방식이 아니라, 여러 경험적 요소들을 통해 간접형식으로 깊이 관여하고 있다. 지난 발자취를 일깨우는 과거에 대한 기억들, 시간의 유한성을 체감할 수 있는 병, 죽음에 대한 인식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시적요소들은 시인이 의도한 것이라기보다 자연스럽게 체득되어 흘러나오는 내면의식의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다.
특징적인 것은, ‘병’과 ‘죽음’을 둘러싼 “요즘 들어서”의 근황을 꾸밈없이 진솔하게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누구나 피할 수 없는 하직의 슬픈 섭리”를 이미 깊이 수용하고, 승화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런 점에서 제목 “하직下直에 대하여”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직’은 삶의 양식 속에서 발현되는 여러 형태의 관계성과 그 관계성을 단절시키는 일련의 행위가 된다. 하지만 여기서의 ‘하직’은 일상적 행위영역이 아니라, 자연적 섭리를 내포하는 영원한 이별을 전제한다. 따라서 누구나 준비해야할 경건한 수순으로서의 ‘하직’이 되는 것이다.
4.
시집『바람과의 동행』에서 가장 호기롭고 다채롭게 상상력을 펼치고 있는 부분은 ‘술’과 관련된 작품영역이 될 것이다. 여기에는 문우들과의 인간적 관계, ‘바람’을 걷고 향유하는 다양한 형식의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바람’의 여정을 함축하는 자유로운 삶의 흔적과 문학적 관계성의 발자취들이 형상화되어 있다. 따라서 단순히 ‘술’의 세계에 한정할 수 없는 인간 삶의 여러 진면목과 지난한 문학적 여정을 돌아보게 하는 발자취가 된다. 시인의 시편에 자주 등장하는 갈등양상이 표출되지 않는 것도 이 시편들이 갖는 특징이라면 특징이 될 것이다. “참새 방앗간을 그냥”이라는 소제목을 단 제4부에는 연작시「술詩」가 19편이나 실려 있다. 이외에도 ‘술’과 관련한 시편들이 적지 않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 문단에는 애주가 3인이 있다
수원의 임병호, 양평의 정성수
그리고 서울의 나를 손가락에 꼽는다
요즘은 정순영이 합세하여
문단 주류酒流 4인방이 되었다
우리는 술이 어느 정도 거나해지면
이백의 월하독작月下獨酌이 어떠하고
장진주將進酒가 그러하고
두보의 주채심상 하처유酒債尋常何處有,
소동파의 시를 낚는 갈고리를 더듬거리지만
정성수는 늑막염이 나아서 정하 한 병만 마시고
임병호는 무슨 수술 후에 아예 금주행禁酒行이고
남아있는 둘만이라도 가끔 한잔씩 나눈다
술은 백약의 장長이라는 옛말을 외치면서
주호酒豪나 주선酒仙이 된 양
술잔 부딪는 소리에 서로 위안하는 주석酒席이
흥겹게 인생의 노년을 메꾸고 있었다.
-「흥겨운 인생 노년」전문
“우리 문단에는 애주가 3인이 있다”로 시작되는 위 시편은 많은 이야기적 배경을 담고 있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 술에 대한 이야기가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 시인에게 ‘술’은 나에게 집중되어 있던 시선을 주변으로 돌려 함께 호흡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론의 하나로 수렴된다. 한 생의 희로애락을 지고 가는 끈끈한 관계성의 한 축이 그것이다. “애주가 3인”, “문단 주류酒流 4인방”으로 표상되는 인물들은 ‘술’과의 인연을 이어가는 구체적 대상들이다. 이들의 술자리는 ‘이백’, ‘두보’, ‘소동파’를 불러들일 만큼 흥겹고 호기롭다.
이러한 ‘애주가’의 세계에도 현실을 자각하고 한 생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시간이 찾아온다. 건강의 문제로 더 이상 활달한 술자리를 할 수 없게 된 것이 그 주된 배경이다. 이로 인해, “문단 주류酒流 4인방”에서 ‘둘만’이 남아 “가끔 한잔씩 나눈다”고 시인은 털어놓는다. ‘술’은 지인들과의 교유는 물론 문학적 정서를 이끌고 확장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또한, ‘노년’을 흥겹게 보낼 수 있는 중요한 연결고리로서의 역할을 한다. “술잔 부딪는 소리”에서 그 흥겨움의 활기를 감지할 수 있다. “서로 위안하는 주석酒席이/흥겹게 인생의 노년을 메꾸고 있었다”에 ‘서로’를 ‘위안’하며 살아가는 ‘애주가’의 한 생이 물들어 있다.
아버지와 형이 뒷골 다락논에서 피사리를 하다가
출출했는지 나에게 술심부름을 시켰다
아랫마을 주막에서 막걸리 한 주전자를 사들고
논둑길로 돌아오다가
‘대체 술은 무슨 맛으로 먹지?’
궁금했던 나는 주전자 꼭지에 입대고 꿀꺽꿀꺽-
어허 온몸이 빙빙 돌아가다가 끝내 길바닥에
쓰러져 잠들고 말았다
술심부름간 애가 오지 않아 찾아 나선 아버지
웬걸, 이놈이 취했구나, 취했어
업혀서 집에 돌아온 나는 다음날 깨어났다고 한다
그때 나이 일곱 살?
-「아버지의 술심부름-술詩 2」부분
김송배 시인의 ‘술’의 여정은 그 출발시점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아버지와 형이 뒷골 다락논에서 피사리를 하다가/출출했는지 나에게 술심부름을 시켰다”에서의 ‘술심부름’이 그 출발시점이 되고 있다. ‘나’는 “막걸리 한 주전자를 사들고/논둑길로 돌아오다가”, “대체 술은 무슨 맛으로 먹지?”라는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주전자 꼭지에 입대고 꿀꺽꿀꺽” 먹는 것으로부터 일련의 사건이 발생한다. “온몸이 빙빙 돌아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 그것이다. “그때 나이 일곱 살”이다. 아니, “일곱 살?”이라는 물음표까지가 하나의 의미 속에 포섭된다.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한 컷의 풍경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일곱 살’의 크나큰 경험은 시인의 ‘술’ 여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점 추억이리라. 앞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연작시「술詩」는 19편이라는 적지 않은 편수로 구성되어 있다. 이 19편의 시편들은 술에 얽힌 여러 이야기적 요소들을 펼쳐내고 있다. ‘밀주를 단속’하는 ‘술조사’에서부터, 아버지의 반주, 큰댁 할머니의 기제일의 음복, 혼술에 대한 단상, 퇴근 후 직장인들의 술자리 등 이야기적 배경도 다양하다. 여기에 덧붙여, “양주동의 문주반세기/변영로의 명정40년/조지훈의 주도유단/김진섭의 주중교유록/신동한의 문단주유기”(「술 한 잔 시 한 수-술詩 15」) 등에 대한 언급도 한 몫을 한다. 이는 곧, “시의 묘약은 술이었나니’로 종결된다. 술과 삶과 문학이 하나의 구도 속에 놓여있다.
이쯤 되면 ‘술’ 예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에 따라 술집 순례도 만만치 않다. 피맛골, 충무로를 거쳐, “시인통신, 소문난집, 순풍에 돛달고, 시가연” 등의 공간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러한 공간은 작고한 이창년 시인을 생각하면서 떠올린 술집 이름들이다. 그리고 “인사동 골목골목 술집을 다 헤매어도/그의 흔적은 지금 천천히 지워지고 있다”(「낭만주의자의 우수-이창년 시인 생각」)로 쓸쓸한 심회를 마무리한다. 김송배 시인에게 시와 술과 친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 분명하다. 따라서 시인의 ‘술’ 이야기는 아직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자칫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쯤에서 끊어야 전체적인 균형이 잡힐 것 같다.
한결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왜 그렇게 집착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껴안고 지냈던 슬픔과 원망
눈물로 얼룩진 세월의 무게
거기에서 몸부림치면서 울분을 터뜨렸던
하 많은 어리석은 갈등과 번뇌
이제야 겨우 말끔히 지워버리고
홀가분하게 마음을 정리한다
“마음을 비워라. 집착을 내려놓아라”
선승 조주선사가 탁발승 엄양존자에게
내린 가르침이 오늘따라 새롭구나
본래 재물도 가진 것이 없고
저 높은 곳을 향한 욕망도 단념했던
한생의 일장춘몽에서 깨어났지
한결 전신이 가뿐하게 살아간다.
-「방하착放下着에 대하여」전문
김송배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 가장 초점이 놓이는 것은 ‘80여 성상’, ‘노년’으로 표상되는 현재시점이다. 곧, 정화와 자적의 시간으로 정립되는 지점이 된다. 위 시편「방하착放下着에 대하여」는 시인의 사유를 결집하는 중요한 단서를 내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한생의 일장춘몽에서 깨어났지”를 뒷받침하는 현재적 정서가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의 대부분의 시편이 그렇듯, 위 시편에도 과거와 현재가 하나의 구도 속에 포섭되어 있다. 이른바 지금 이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상상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비추어 오늘을 도출하고 정립하는 과정이 그것이다.
과거와 현재는 현저한 대비적 색채를 고수하고 있다. 과거는 ‘집착’, ‘슬픔과 원망’, ‘눈물로 얼룩진 세월’, ‘울분’ 등으로 그 위치를 드러낸다. 그리고 현재는 “하 많은 어리석은 갈등과 번뇌/이제야 겨우 말끔히 지워버리고/홀가분하게 마음을 정리한다”로 결론지어진다. 과거와 현재의 극단의 대비는 시인의 현재적 심리를 반영하는 깨달음의 한 영역이 될 것이다. 그 중심에 “선승 조주선사가 탁발승 엄양존자에게/내린 가르침”이 놓여있다. “마음을 비워라. 집착을 내려놓아라”는 시인의 내적자아를 일깨우고 새로운 ‘오늘’을 사유하게 하는 명징한 지침이 되고 있다.
이러한 시적배경은 시집 제3부에 자리하고 있는「성철 스님, 법정 스님」,「소요유逍遙遊에 대하여」,「무소유에 대하여」등 다수의 시편들을 통해서도 접할 수 있다. “얄팍한 지혜나, 입신출세나 욕망을/내던지고 오로지 도가의 생을 살다간/현인들과 함께 한생을 마무리하자”(「무하유無何有에 대하여」)라는 시적사유도 여기에 닿아있다. 비우고 내려놓는 마음의 상징체계는 무소유의 흐름에 닿아있다. 이제 시인은 “한생의 일장춘몽에서 깨어”나. “한결 전신이 가뿐하게 살아간다”라고 말하고 있다. 긴 ‘바람’의 여정을 지나와 안착하게 되는 오늘, 자기극복을 동반한 자적自適의 세계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