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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m 선수와 골프 선수
서길수 / 화공과
1978년 영남대에 부임하여 한 학기를 수업한 후, 나는 내가 속했던 집단과 영남대 학생들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젊은 시절을 보낸 집단이 엄격한 규칙 안에서 움직였다면, 이곳은 유연한 환경에서 도전을 즐기는 집단이었습니다. 이를 스포츠에 비유하자면, 나는 100m 달리기 선수였고 영남대 학생들은 골프 선수였습니다.
100m 달리기 트랙은 정확한 규격이 정해져 있지만, 골프 코스는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집니다. 그래서 나는 골프 선수들을 무리하게 100m 달리기 선수로 만들려 하기보다는, 그들이 뛰어난 골프 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차이를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100m 선수는 정해진 기술을 완벽히 익혀야 하는 반면, 골프 선수는 다양한 상황에서의 경험과 적응력이 중요합니다. 이는 매우 큰 차이점입니다. 규격화된 트랙에서 진행되는 육상 경기에서는 2등이 1등을 꺾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사인 볼트의 독보적인 기록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반면, 골프는 코스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타이거 우즈도 모든 대회에서 연속 우승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영남대 화공과 학생들은 변화와 도전의 기회가 많은 기업이나 창업 분야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제 연구실 출신 중 학계보다는 산업계나 창업 분야에서 성공한 제자들이 많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는 단순히 성공한 제자들만을 언급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의 연구실 출신들은 전반적으로 국내 최고 대학 화공과 졸업생들과 견줄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많은 제자들 중에서 기억나는 대로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창업한 제자들의 이야기
L군은 코오롱에서 근무하며 우리 연구실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미국 코넬대학에서 박사 후(postdoc..) 과정을 마쳤습니다. 귀국 후 그는 제게 조언을 구했고, 우리는 그의 전문 분야인 고분자를 활용한 창업을 논의했습니다. 그는 페놀수지 분야에서 특히 뛰어났습니다. 현재 L군은 서울에 본사를, 김천에 대규모 공장을 둔 회사의 사장이 되어,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거주하는 첫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영남대 출신이 변화가 많은 기업이나 창업 분야에 적합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Y군은 합천 출신으로, 제가 영남대에서 만난 가장 우수한 학생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고분자 합성과 분석기기 사용에 능숙했으며, 뛰어난 창의력으로 연구실의 각종 프로젝트 제안서와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박사학위 취득 후, 그는 회사 경험이 전무한 가운데 화공약품 제조 및 위탁생산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제가 봐도 신통방통합니다. 2024년 여름, 처음으로 그의 회사를 방문했는데, 약 6,000평 규모의 잘 정비된 공장에서 플라스틱 사출과 화공약품을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이 회사에는 또 다른 제자인 P군도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P군은 학창시절 우수한 성적과 다재다능함으로 유명했으며, 졸업 후 당시 대기업이었던 '대우'에 입사했었습니다. ‘대우’의 몰락 이후, 그는 Y군의 회사에 합류하여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이는 연구실 선후배 관계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경산 자인공단에는 L군의 회사가 있습니다. L군은 대학원 시절 실험과 전자현미경 사용에 능숙했으며, mesoporous 물질 연구로 미국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기도 했습니다. 졸업 후 그는 우레탄 접착제 생산 기업을 창업했습니다. 이 접착제는 가구 제작, 자동차 부품 조립, 건물 방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됩니다. 현재 회사는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다수의 연구실 후배들을 고용하고 있어 성공적인 경영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업에 근무하는 몇 명의 제자들 이야기..….
회사 선택 시 자신의 성격과의 적합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Y군과 L군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남성적인 성향의 Y군은 풍산금속에서 잘 적응했지만, 얌전한 성격의 L군은 풍산금속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L군은 결국 퇴사 후 제 연구실로 돌아왔고, 나는 그의 차분한 성격을 고려해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를 추천했습니다. L군은 하이닉스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상무까지 올랐고, 현재는 자회사를 운영 중입니다. 반면 Y군은 풍산금속에서 꾸준히 승진하며 현재 “전무”로 근무 중입니다.
지속적인 자기계발의 중요성입니다. K군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그는 대학 1학년 때 수업을 빼먹다 적발된 후, 제 연구실에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제 조언에 따라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했고, 석사 졸업 후 코오롱을 거쳐 산업안전관리공단으로 이직했습니다. 그곳에서 기술사 자격을 취득하고 출제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퇴직 후에도 기술사 자격증을 바탕으로 주 2일 근무에 연봉 7,000만원을 받는 새 직장을 얻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연구실에 들어온 또 다른 K군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활달한 성격으로 석사 학위 후 코오롱에 입사해 중국에서도 근무했습니다. 최근 은퇴 후 울산에서 첼로와 중국어를 배우며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 두 K군의 사례는 회사 생활 중 지속적인 자기계발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한 명은 기술사 자격증으로 노후를 보장받았고, 다른 한 명은 그렇지 못했지만 여전히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정도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또 다른 K군은 꼼꼼했지만, 제가 보기에 공학도 적성과는 맞지 않아 보였습니다. 석사 졸업을 앞두고 K군에게 한국감정원 입사를 제안했습니다. K군이 "화공과 졸업생이 아파트 감정이나 하면 되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저는 "아파트가 아닌 회사를 감정하고 평가하는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K군은 고민 끝에 한국감정원에 입사하여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고, 지금은 그의 아들이 우리 대학 로스쿨에 재학 중입니다.
P군은 체격이 우람하고 씩씩한 청도 출신으로, 졸업 후 유명 자동차 부품회사에 입사했습니다. 이 회사에 시차를 두고 보낸 3명의 제자들이 각각 사장, 전무, 상무로 승진한 것을 보며 그들의 도전 적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P군은 상무로 승승장구하다 아내를 잃고 현재는 청도에서 과수원을 운영 중입니다. 제 아내가 중매했던 터라, 그들 부부를 떠올리면 가슴이 아픕니다.
최근 영대동창회보에 소개된 중앙의료재단 본부장 K군도 제 연구실 출신입니다. 경주 안강 출신으로, 공부에 대한 열정으로 가출까지 했다는 이야기에 감동받았습니다. 그는 학부 시절 많은 자격증을 취득했고, 방위산업체를 거쳐 산업안전관리공단 연구소장을 지낸 후 현재 위치에 있습니다. 박사학위와 기술사 자격을 모두 갖춘 그는 제 어머니의 중매로 결혼해 대전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제 어머니가 중매를 부탁 받았을 때, "좋은 젊은이지만 가진 것이 없다"고 농담 삼아 말씀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인연이 닿아 결혼이 성사되었습니다.)
일본에서 3개월 보내기
어느 해부터 나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습니다. 평소처럼 등록금을 지원하되, 원하는 학생들에게는 우리나라보다 발전한 나라(최소 일본 이상)에 가서 3개월간 생활하고 돌아오는 기회도 주고, 등록금에 상응하는 여행 경비를 지원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외국 경험을 제공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 결과, 약 절반의 학생들은 다음 학기 등록금을, 나머지 절반은 일본 경비로 지원받았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후배 교수들에게 추천해도 좋을 듯.
지금도 당시 학생들은 그 경험이 그들의 인생을 국내 중심에서 국제적인 시각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느 해에는 고베 지진도 겪었지만, 적은 돈으로 일본에서 3개월간 생활한 학생들은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석사 졸업 후, 일부는 취업을 미루고 영어권인 캐나다와 미국으로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하숙집을 소개하는 등 연결고리가 이어졌습니다.
이후의 성과도 주목할 만합니다. K군은 LG에 입사했다가 퇴사 후 미국의 유명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미국 회사에 근무 중입니다. 미국 학회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의 발표를 듣는 기쁨도 있었습니다. P군은 현재 나이키의 상무로, J군은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당시의 제안에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물론 등록금 지원을 선택한 B군을 비롯한 여러 학생들도 신이츄코리아 등 여러 회사에서 성공적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여학생들 스토리..….
제 연구실 출신 여학생 4명의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J양은 음대 지망생이었지만 화공과에 와서 사교성과 열정을 발휘했습니다. 전자산업 진출을 권유해 동진쎄미컴에서 시작해 현재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의 핵심 인력으로 성장했습니다.
두 번째 J양은 성실한 연구와 국제 학회 발표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적 화학기업 듀폰코리아에 입사했습니다. 외국계 기업의 공정한 환경이 그녀의 성장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 J양은 화공과 CC로 만난 K군과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동진쎄미컴에서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K군은 산업안전관리공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최근 J양의 건강 문제가 있었지만, 적절한 치료로 회복 중이며 부부가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P양은 취업 준비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화공기사 자격증 취득 등 꾸준한 노력 끝에 세계 최고의 2차전지 회사인 LG엔솔에 입사했습니다. 대기업의 상대적으로 공정한 환경이 그녀의 성공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해외 진출 사례
P군은 우리 졸업생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보여줍니다. 구미 출신 선배인 C군은 뛰어난 실력으로 5군데 대기업에 합격한 후 도레이첨단소재에 입사했습니다만, 후배인 P군은 석사 후, 동진쎄미컴과 삼성전자를 거쳐 현재 중국 베이징에서 디스플레이 세계 1위 기업 BOE에서 일하고 있으며, 자녀들을 국제학교에 보내고 있습니다. 또 다른 P군도 중국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성공은 영남대 학생들의 잠재력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중국인 학생 사례
제 연구실의 유일한 외국인 학생이었던 L군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L군은 학부 때부터 영남대 화공과 학생이었습니다. 2학년 때 처음 만났을 당시, 그는 한국어가 서툴러 수강신청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제 연구실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을 거치면서, L군은 한국에서의 취업을 목표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L군의 여자친구인 Y양 또한 중국인으로, 경북대 국문과 대학원생이었습니다. 제 조언으로 Y양은 영남대 중문과 박사과정으로 옮겼고, 두 사람은 함께 한국어 실력을 향상시켰습니다. 박사 학위를 받고, L군은 코오롱(코오롱ENP)에 입사했고, Y양은 대가대 교수가 되어 '코리안 드림'을 이룬 부부가 되었습니다.
공무원으로 진출한 졸업생들
우리 학과 졸업생 중 공무원으로 진출한 사례도 있습니다. L군은 대구시청 6급 공무원으로, S군은 SK에 합격했음에도 공무원을 선택했습니다. K군은 달서구청에서 EGS기획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P군은 포항테크노파크에서, K군은 한국수력원자력에서 각각 일하고 있습니다.
영남대 학생들의 특성과 성공 가능성
영남대 학생들은 자유롭고 씩씩하며 순수한 영혼을 지니고 있습니다. 교수의 역할은 그들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적성에 맞는 진로를 안내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성공 가능성을 크게 높일 수 있습니다.
제조업 대신 판매업을 선택하게 한 예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김성조 군에게는 화공약품 판매업으로 안내했는데, 그후 도의원을 거쳐 3선 국회위원으로, 다시 한국체육대학총장을 거쳐 경북관광공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학 거울못 등에 있는 경관조명을 기부한 김의원 동기인 L사장은 지금도 미국 나스닥 진출을 꿈꾸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왜관의 '파미힐스' 골프장은 회원들의 투표로 사장을 선임하는데, 직전 C사장과 현재 L사장 모두 제 제자들입니다. 최근 L사장은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졸업생들은 교수들이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이걸 보면서, 먼저 학생들에게 작은 도움을 주면, 훗날 큰 기쁨이 돌아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취업 관련 잊지 못할 경험 :
어느 해, 화공과 취업률을 크게 상승시켜 취업처장이 저와 서정숙 교수, 성도경 교수를 은하정으로 초대해 점심을 대접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성도경 교수로부터 처음으로 7급 지역인재 할당 공무원 제도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이런 제도의 존재를 몰랐습니다. 학생들에게 공무원을 희망하는 경우 7급 지역인재 할당제도가 있다고 알려주며, 고시원에 가서 성도경 교수와 상담해보라고 조언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이공계열 중 화공과가 7급 공무원을 가장 많이 배출하게 되었습니다. 성도경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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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총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정성을 쏟은 원고로 날자 지켜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원고 부담드려 죄송합니다.) 총장님의 연구 생애를 따라가며, 평소 들어왔던 '교수 개개인은 각기 한 개의 중소기업을 능가한다'라는 말, 그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지는 것 같습니다. 화공과가 이렇게 다양하게 진출하는구나 하고 놀라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달리기 선수와 골프 선수를 비교해보게 되는 아침입니다. 그것을 일찍 깨닫고 제자들을 대하셨음을 부러워합니다. 제 제자들을 돌아보고 여러가지를 배웁니다. 다만, 이 initial로 쓰인 제자들이 궁금하기도 하고, 이름을 쓰면 어떤 효과가 올까도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