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數術學의 影響
氣 數 象 이 두 영역에 공통된 핵심어일 뿐 아니라 한자 문화권에 있어 서 대부분의 전통적 학술, 문화 전반에서 역시 핵심적인 사유의 도구이자 주제이 기도 하다. 따라서 전통적인 철학이나 시상을 연구하든, 의학올 연구하든 또 문학 올 논하든 홈法올 논하든, 인간의 운명올 점치든, 옴택과 양택을 가리든 모두 옳 니 數니 象이니 하는 용어를 떠날 수도 없고 나。까 이러한 용어를 가지고 설명 을 해내는 것이 아니라 동어반복만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심지어 氣라 는 용어에 대해서는 구미권의 학자들조차 더 이상 번역하기를 포기하고 음역을 하는 실정이다. 본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數라는 용어 역시 숫자 number라고만 번역하면 이해를 돕기보다는 오해로 유도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물론 번역이라 는 것이 기본적으로 오해로 이끌 수밖에 없는 부분올 포함히는 것이긴 하나 이해 보다 오해로 이끄는 부분이 더 많다면 재고의 여지가 있다 3) 뚫友蘭은 기념비적인 저서인 『중국철학쇄에서 자학시대를 여는 인물인 공자를 디루기 이전,<공자 이전과 당시의 종교 · 철학사상>이라는 절에서 術數라는 항목 을 언급하는데, 그는 고대인은 대체로 우주간의 시물들과 인간사의 상호영향 관계 를 인식했고, 따라서 고대인은 이른바 술수의 법이라는 것이 있어서 각종의 去術 로써 우주간에 사랍의 주의를 끌만한 현심딸을 관찰하여 인간의 화복을 예측했다 고 말했다,4) 이어서 예를 드는 것이 『漢홉 • 藝文志』의 術數略에서 언급되는 天文, 는데 철학관이 우리 문화에서 사라져야 할 폐단이라면 기학은 가꾸고 발전시켜 나가 야 할 사유의 .庫라고 말한다. 바로 이 정에 대하여 필자는 그것이 가능할까? 다시 말하여 분리는커녕 구별하는 논리를 발견하는 것조차 용이하지 않옴올 지적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점의 체계라고 활 때는 몇 가지 점복의 방법만올 가리키는 협소한 의미로서가 아니라 미래률 예측하고자 하는 인간의 염원을 반영하는 다양한 방법을 포괄적으혹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고자 한다. 완전히 부합히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점의 체계가 班固의 도서분류법애 따르면 六略 중 術황略과 중첩된다면, 한의학은 六略의 마지막에 열거된 方技略에 대체적으로 결쳐있는 것으로 보인다. 3) 최근 미국에 우후죽순격으로 세워지는 한의대의 교재에서 혔血이라는 용어를 energy (or qi, ch’i) and blood 라고 번역하는 것을 보면서 격의 한의학(?)의 출현올 예상 하게 되는데 인류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성공적인 격의가 이루어지기를 바 랄 뿐이다. 단순히 개념 대 개념의 대웅이 아니라 한 개념의 역사적인 변천과정까지 를 고려한다면 번역이야말로 위대한 학문작업이 아닐 수 없다. i"!': (\:. ~i‘사에 111 진 ψf'lLJ밍의 tFi 185 歷讀, 五行 훌훌, 雜古, 形法 둥 종의 數術이다.fi) 풍우란은 數術에 관한 내용을 오직 음양가의 전통과만 연결지어 설명하였지만 이는 결코 음양가의 전유물은 아 니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정치와 학술의 중심에 놓여있던 중요한 지식이자 실천 체계였음은분명하다. 적어도 漢代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어온 이러한 數術올 “공자 이전이나 당시”의 종교적 실천이라고 시기적으로 못박곤 하는 것올 문제로 지적하는 것도 중요하지 만 더욱 더 적극적으로 과연 이러한 數術이 고래로부터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어 떠한 기능을 하고 있었으며 문화 전반에 어떤 영향력올 발휘해왔고 왜 그러했는 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률 부분적으로나마 규명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과거제가 폐지되고 서구의 학문을 접하고 학제를 모방하면서 전통적인 학문방법과 내용, 전통적인 지식인의 모델이 바뀌가 시작하는 20세기 초 이전에는 적어도 음 양이니 오행이니 하는 용어나 二뚫 四方, 八封, 六갖, 十二律, 二十四節혔 둥의 용 어가 너무도 기본적이고 일상적인 것이었지 신비스러운 지식은 아니었다. 다만 백 년도 채 안되는 시기를 통해 전통이 전통 아니게 되어버린 지금의 상황이 바로 넘어야 할 문턱인 셈이다. 필자는 중국“數”의 문회사라는 방대한 작업에 대한 준비가 아직 되어있는 것도 아니고 본고가 이러한 문제제기에 걸맞는 진지한 탐구를 담고 있지도 못하지만 4) 碼友蘭, 中國哲學史, 上冊, 50쪽. 풍우란은 술수 그 자체는 미신에 근거률 두고 있지만 자연올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이를 정복함으로써 자연의 힘올 빌리려는 점에서 과학과 공통점올 가지고 었고1 과학의 단서가 내포되어 있음올 지적하였다. 1948년 영문저서 A Short HístoηI of Chínese Phílosophy의 번역본인 「중국철학사.!, 185쪽 5) 漢書 · 훌文志 의 서문에서 六略올 나열할 때는 짜數略이라 하였고 육략에 대한 각 론올 펼칠 때는 數術이라는 용어률 사용하는데 이에 대하여 중국인들은 고래로 아무 런 차이도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소위 “諸子出於王官說”을 주장하는 班固는 數術 이라는 것이 明堂에서 흉和史 III 인지 훌훌와 和인지는 불분명하나 史는 전적과 달 력을 관장하고 역사를 기록했던 太史를 말하고 은 짧를 통괄하던 관직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둥의 관직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했으며 다만 주나라가 쇠미해져 史官이 폐해진지 오래고 전적도 흩어져서 온전히 남아있는 것이 없고 있다 해도 그 것올 이해할 수 있는 자가 없다고 하였다. 반고는 이어 “진실로 그 합당한 사랍이 아니라면, 道만이 공허하게 행해지는 법은 없다”는 <훌離傳>의 말올 인용하면서 시 대가 가장 그와 가까운 인불로는 뱃끓의 <天官書>. <屬홈>에 보이는 漢代의 都라는 인물올 들어 그 대체적인 것을 얻은 사람이라고 평했는데 결국 이미 반고 당 시에는 數術에 정통한 자는 찾어볼 수 없었던 상황을 전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가운데 두 번째인 諸子略 안에 옴양가가 있는데 이 역시 반고는 흉和의 官에서 나왔다고 했다. 둘 다 맞는 것이라면 圍場家의 경우는 비교적 이론적인 측면올 담당 했고 數術家들의 경우는 보다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업무흘 담당하던 자들이 아니었 나추측할수 있다. IR6 종교와 문화 왜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자 하는가를 밝힌다는 의미에서 이러한 문제를 제기해 보았다. 문화권마다 수를 헤아리는 방법이나 숫자들올 표현하는 체계들 사이에는 현저한 차이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 안에 시간과 공간의 힘과 신성함이 가시적인 형태로 경험된다고 하는 그러한 숫자들은 일찍부터 인류의 관심올 끌어왔다. 때로는 그 자체에 신적인 성질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최초로 숫자에 대해 종교철학적인 관심올 보였던 것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 학파였다고 하며, 지금까지도 이 세계의 의미있는 구조를 추구하는 자들 사이에서는 숫자들과 그 특성에 대한 관심이 계 속되고 있다,6) 이러한 상황은 대개 중국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으로서 필자는 앞으로 중국 고대에서 數가 논의되는 사상적 배경, 수의 상정화, 신비적인 숫자의 출현과 그 의미 및 역할, 수와 술의 결합, 이러한 제반 사항들이 중국의 사상, 종교 학술 둥 문화 전반의 형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연구를 해 나가JL자 한다7) II. 數術: 數와 관련된 학문 얼반 훌훈에서 術數略은 六훌略 諸子略과 나란히 六略의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史릅2_n, 日者列傳」의 서두에는 “옛부터 성왕이 국가를 건립하고 천명올 받아 왕 업올 일으키는 사업을 시작할 때 f!를 중시하여 善政에 어용하지 않은 적이 없 었다”는 태사공의 말이 실려있다 일자얼전」에는 司馬季主에 관하여 상세한 장문 의 기록을 남겼올 뿐 아니라 당대를 대표하는 유자인 宋忠과 寶誼가 사마계주에 게 깊이 탄복하였음올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나 公孫弘의 열전은 따로 세 워지지 않았올 뿐 아니라 rf홈林列傳」의 말미에 소개된 그들의 전기는 사마계주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간략하다. 또한 일자열전」의 끝 부분에 소개 된 한무제 당시의 다양한 古家, 즉 표行家 堆興家 建除家, 훌辰家, 層家, 太一家 둥이 있었다는 사실로부터도 당시 사회에서 數術이 차지하는 비중을 엿볼 6) Annemarie Schimmel, Numbers: An Overview, E.H. Vol. 11. 7) 양혜를 구하자면, 연구가 이미 진행된 것이 아니라 다만 연구 계획의 윤곽만올 가지고 있던 터에 간단한 발표만올 위하여 각성해 보았는데 학기중이라 미처 충분히 다듬올 여유가 없으므로 이 글은 미완의 형태로 그저 가지고 있던 생각올 정리한 셈이다. l'J: f\:: Î:‘ 、시_l l 띠친 Ilr~i뼈덩 의 影전 187 수 있다 귀책열전」에서는 “전하는 때 의하면, 옛날 오제와 삼왕이 거사하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훌龜로 점올 쳐서 결정하였다고 한다"고 하며, 시초와 名龜의 종류를 상세히 언급하고 그 신령한 점복을 수없이 열거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역시 數術의 비중은 실제로 제자백가의 학에 결코 뒤지지 않았음올 짐작 할수있다. 이렇듯 비중이 있는 수술학이 漢代 경학에 미친 영향올 논하기 위하여 일단 두 단어의 범위와 대체적인 내용을 규정하는 작업이 필요하겠으나 필자가 이에 관한 독자적인 체계를 구성하고 있지 못하므로 우선은 數術이라는 용어가 어떻게 사용 되어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최근 『中園方術考』와 『中國 方術樓考』라는 저서를 연달아 출간한 李좋은 方術이 다루는 두 가지 문제로서 대 우주(macro-cosmos) , 즉 天道 혹은 天地의 道에 대한 인식은 數術에 해당되고, 소우주{micro-cosmos) , 즉, 生命, 性命 혹은 道에 관한 인식은 方技에 해당되 었옴올 적절히 지적하였는데 역시 漢志 術數略의 분류를 의식하였던 것이다08) 尊은 數術이라는 단어는 사랑물로 하여금 수학이나 산술을 상기시키기 쉽지만 ‘數 란 ‘숫자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고 理數()ogic 道理 專理)와 命數(機童, 즉 돌아드 는 機會와 時運)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며며’ ↑의 뜻이라고 한다,9) 종의 數術만을 대상으로 사고를 전개할 경우, 이와 같은 설명이 타당하지만 數와 術은 결합되어 數術 혹은 術數가 되기 이전의 양상을 더 듬어봐, 10) 數의 경우는 이미 기본적인 수, 數目, 數훌, 算術 둥의 의미뿐 아니라 道數나 方法, 技훌홍 技巧, 道理 法制 둥의 의미로 많은 선진 제자서에 동장한다. 漢代에는 策略, 홈數라거나 규율, 필연성 동의 의미와 天命, 命運까지도 뜻히는 용례가 확인 된다. 術의 경우는 본래 사람이 다니는 도로를 의미하기도 했고 역시 방법, 수단, 그 가운데에서도 법가서에서는 특별히 군주가 신하롤 지배하고 이용하는 책략과 수단 올 의미하는 글자로 사용되었다. 그밖에도 技훌 면想、 學說 學習 둥의 의미를 가 지는글자이다. 數라는 글지셰 이어지는 數術라는 항목에는 ‘훌뼈이란 곧 術훌로, 고대의 천문, 8) 李쫓, 「中園方術考 18쪽. 9) 李훌, 中國方術.考 쪽‘ 10) 글자에 대한 설명은 漢語大짧典」어1 의거하여 정리해 보았다. 188 종교와 문화 역법, 점복의 학문[A 이라고 설명이 되어 었다. 이것이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간단한 정의이다. 術라는 글자에 이어 나오는 ‘術數’에서는 네 가지로 나누어 의미 를 설명하는데 다음과 갈다:(D 각종의 방술로, 자연계에서 주의할만한 현상올 관 찰하여 사랍의 累數와 命運올 미루어 헤아리는 것올 말한다. 셰칭 I'l術[8 1 (2) 치 국의 방법과 課略 @ 군주가 신하를 부리는 책략 및 수단.@ 權術과 計諸 둥인 데 대체적으로 ~)의 경우는 법가적, 혹온 황로학적인 용례에 해당히는 것이고 우리말 가운데 술수가 기만적이라는 의미에서 부정적인 합의를 가지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a:의 경우는 바로 [A] 가 지칭하는 것과 일치하는 대상올 설명하고 었다. 즉, [A], [B] 와 @!@는 둘 다 同義字가 결합된 경우라 해도 결합의 형태를 다르게 보고 있는 셈이니 @영@는 논외로 하고서 다시 질문올 해 보자면, 수술 혹은 술 수가 신비스럽고 불명료하다는 것에서 비롯되는 부정적인 측면은 數에 기인하는 개 아니면 術에 기인하는개 단적으로 소위 “시립으| 鷹훌와 命運율 점치는 점복 의 학문”이라 할 때 “점치는 점복”이라는 의미는 數에서 기인하는개 아니면 에서 기인하는개 이것올 답하기 어려운 바로 그 대목에서 수와 술은 자연스럽게 결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數術이나 術數를 고대나 지금이나 중국인들이 동일 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11) 처음부터 수의 술, 혹은 술의 수는 아니었을 것이 라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이미 나왔던 方術이리는 용어 외에 法術, 道術" f:勳힘, 둥의 용어가 선진의 제자서와 진한의 典籍에 다수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術은 비교적 가치중립적인 기술, 방법, 학설 둥의 의미로 제자학이나 당시를 풍미 하던 지식체계에 적용되었던 개념이라 생각왼다. 위의 내용올 통하여 추측해 보자 면 아마도 의 術이라는 형식의 용어들은 후대로 내려가면서 점차 고정화되는 경향올 보이게 되었고 따라서 數術이라는 용어도 점차 상용화되어갔던 것이 아닐 까생각된다. 결국 위와 같은 사전 찾기 작업올 통하여도 數術이리는 단어에 대한 명확하고 도 합당한 설명은 발견하지 못한 셈인데, 필자는 數術이라는 용어롤 수와 표련된 학문이라고 포괄적으로 사용하파 한다. 數란 가장 기본적인 의미가 숫자였다가 그로부터 다른 의미가 引뼈되어 나온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 여도 이미 숫자는 일상생활 중에서도 늘 시용됨으로써 추상화되어간 상징적 개념 11) 王先짧의 「漢홈補注 를 찾아보아도 術數략이라고 한 뒤에 계속 數術이라는 용어로 설명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 l:씬선에 미친 rlL 덴의 “센3ι 189 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숫자 가운데 몇몇은 소위 “신비숫자”가 되어 역대로 줄곧 인식 주체의 분류체계 뿐 아니라 사물올 분류하는 틀로 작용하기도 하고 그 자체 로 풍부한 상정성을 띄며 인간의 정서나 사유에 영향올 미치기도 해왔다. 젤에 서 童{뺨의 훌양옳을 정리하면서 중국 고대 廳옮의 일반적인 성격을 몇 가지 지적 해 보고자 한다. m. 뿌합의 數훌옮 중국의 신비숫자에 관한 연구는 그다지 많지 않은데12) 1, 2, 3, 4, 5. … 10, 12, 72, ... 둥 각각의 숫자에 관한 용례률 나멸하거나 혹은 그것올 易의 數와 연관지어 설명한다거나 團數와의 관련성올 언급하는 방식올 취하므로 필자는 연구 사를 통해서 신비숫자 연구롤 개진할만한 방법의 실마리률 발견할 수는 없었다. 본고에서는 다만 동중서의 수 이론올 살펴보고 그의 춘추학에서 동장하는 수와 수술, 그것이 경전해석학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주로 고찰해 보고자 한다. 훌{輔 의 <天 三策>이나 『春秋聚짧』 어디에도 術數 혹은 數術이라는 용어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數라는 용어는 무수히 사용되고 있는데 단독으로 λF용되는 경우가 많Jl, 數, 天之數 順數 뾰數 동의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결국, 본래의 뜻 그대로의 숫자라는 의미 이외에 願里 혹은 道理라는 의미로 사용되는데 그렇다고 하여 그대로 天道라거나 天之道로 맞바꾸어 사용활 수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왜냐 하면 道니 天道니 허는 용어가 數나 天數보다 훨씬 더 많이 사용되는데 이 두 경 우에 대하여 명확하게 구분올 하기는 어렵다. 그저 주해나 번역에서도 둘 모두를 유사하게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術의 경우는 〈天 三策〉에서 孔子之術, 햄鋼이라는 용어가 나오고1 『春秋聚훌훌』 에서 建治之術, 致力之術, 王術, 篇雖之術, 經術(2 次) 둥의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孔子之術과 經術이라는 말은 공자의 學이나 經學보디는 실용성이 농후하여 구체적으로 政治나 敎化에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을 뜻한다고 생각된다. 이것이 漢初의 유학, 특히 경학이 형성되기 시작하던 당시에 활동하던 유생들의 12) 그통안 필자가 보았던 연구로는 橋希썼 <中園古代的神秘數字論續i> <論굶辦數字t 十二>, <古籍神秘性編樓型it補證〉 이 논문들온 각각 1972 년, 1974 년, 1972 년에 발 표되었다가 후얘 「先훌文化史讓棄』 안에 수록되었다. 그밖에는 비교적 최근 1995년 단행본으혹 출간된 nl 野憲 田大憲 공저 「中國古代 輔數字」가 있다. 190 종교와 문화 인식을 가장 잘 설명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선진 제껴}옳의 사상도 마찬가지이지만 한초의 유학 역시 현실적으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고 발휘해야 히는 것이었지 학 문올 위한 학문은 아니었던 점올 말하는 것이다. 1. 대우주와 소우주롤 관통하는 신비적 질서: 뤘 적어도 이 우주가 의미있는 질서의 체계이며 이미 그 자체로 조화로운 세계임 을 인정하고 설명하는 경우 갖추어야 하는 이론적인 요소는 둘이다. 하나는 그 근 원이 애초에 조화로운 질서 그 자체였음올 가정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로 인하 여 드러나는 이 현상의 세계가 이미 조화롭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피타고 라스는 우주만물의 근원은 수이며, 우주만물의 기본적언 구조 역시 수의 원리로 이루어져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우주률 이미 질서와 조화가 이룩된 것이라는 의미 의 ‘코스모스’라고 불렀던 최초의 철학자로서 이 두 가지 요소의 전형올 보여준 )3) 이러한 사고방식과 매우 홉사한 양상올 우리는 동중서의 말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물론 그는 만물의 근원이 數라고 말하지는 않았으나 그것온 수를 체현하 고 있으며 우주만물 역시 그러하다고 말하고 있다 “元이라는 것은 만물의 근본이다"(元者탔萬物之木.). 春秋緊露 . ~R 4~ , “오직 성인만이 만물을 하나로 귀속시킬 수 있고 그리하여 만물의 근원으로 연결지올 수 있다."(빠聖人能屬萬物於一, 而緊之Jl:tlUO a 1::), 동중서의 세계관 안에서 우주만물은 그 채현하고 있는 조화로운 질서를 數라는 형식으로 (혹은 類라는 형식으로) 드러내고 있는데 그것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고 말한다. 즉 사람 그 자체의 형상이 바로 천지간의 조화를 가장 잘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天數의 세부적인 연올 탐구하는데 있어서 사랍의 옴에서 하는 것 만한 것이 없다. 사람의 몸에는 사지가 있으며 사지는 모두 세 개의 마디가 있고, 삼에다 사-를 곱하여 십이를 얻게 된다. 이 열두 마디가 서로 도와 합하여 형체가 이루 13) 필자는 川原秀熾의 <術數學-中園σ)‘計量的’ 科學〉이라는 논문에서 피파고라스의 야기로 중국의 자연과학을 언급하기 시작하는 것옳 참조하였다. 이 논문은 1993 년에 「中園 - 社會 fb 집애 발표되었는데 후에 中뼈σ)科學‘면想‘」이라는 단행본 안에 그대로 수록되었다. {‘까 1\ ¥、 ‘덴에 111 친 방때빙의 影쩍; 191 어진다. 자연계에는 사계절이 있고 사시는 각각 삼 개월이 있다. 삼에 사를 곱 하여 |二를 얻는데 이 I-_:. 개월이 서로 이어 일 년이 마쳐진다."(求大數之微, 짜깐於人, 人之%fi IJ Ji, 패Ji {í 二;때 ,갯넌 1-..:..:., 1- ~íJ 해짜, IÚ} 形體\r.쫓. μι니 .4一時有까月, C_-~[l.y 1 二. 1-二J1 受. 띠歲數終롯.) <'Fìa;IJ 짧大 24>. 위와 같은 논지를 가진 예문은 『春秋훌훌훌』안에 부지기수이다. 물론, 피타고라스 와 유사한 면이 있다고는 하지만 근본적인 의도나 접근방식에 있어서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예컨대 중국의 경우 이 우주의 근원을 추구하고 그것을 수에서 발견 하고 설명하는 것 자체에 최종적인 목적이 두어진다기보다는 수에 의거하여 자연 계와 인간계, 즉 천지인의 조화를 설명하고 그 조화를 유지시키는 것에 본래적인 의도가 있었다고 할 수 있올 것이다. 다만 이 세계를 계량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고14) 그 수치가 이미 근원적으로 조화와 질서를 갖추었다고 본다는 면에서 그 공통점을 주목할 수 있디는 것이다. 2. 聖人이 만든 신비로운 數理 易傳에는 수많은 문화영웅들이 둥장한다. 包樓&는 하늘에서 象올 관찰하고 땅 에서 법칙을 관찰하고, 팔패를 지었다고 하며, 포회씨의 뒤를 이은 신농씨, 황제, 요순씨는 모두 64패에서 취하여 생활을 위한 많은 도구도 만들고 의상도 만들고 생존을 위한 산업방식도 만들었다고 한다{<짧購 • 下>). 또,<說좋 專>에는, “옛날 성인이 易을 만드실 적에 은연중에 신명이 찬조하시어 시초를 내시었다. 天數를 三으혹 하고 뼈數를 二로 하여 數를 세우고 음양에서 변화를 관찰하여 패를 세우 고…”라고 하여 성인이 數와 數에 의거한 封를 만드셨음을 히고 었다. 문화적 영웅이 사람에게 이로운 문명의 이기를 제공한다는 주제는 많은 민족의 신화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것이지만 중국의 경우는 이것이 이천년 이상 학술의 중심을 이 루어왔던 經書에 기록되어 있디는 것과 또 正史인 『史듬ê.J나 『漢홉』에 편입되었다 는 사실로 인하여15) 지극히 보편적인 지식이자 신념이 되어갔다. 동중서의 경우 뚜렷하게 制數說은 보이지 않으나 인간의 사회에서 통용되는 명칭(名)이 바로 14) 이에 관하여 송영배 교수님께서는 중국의 경우 어디까지나 목적론적 세계판이 전제 되어 있으며 근대적 세계관에서의 기계론적 시각괴는 완연히 차이가 존재한다고 지 적해주셨다. 15) 史등&의 〈廣홉>나 〈夏本紀>, 그리고 『漢홈J <律屬志> 동에 문화영용들의 이야기 가 실려 있다. 191 종교와 문화 이 드러낸 바의 天意라고 하며 이어서 受命의 君主는 天意가 주어진 것이라 는 동중서의 말로부터 6l 역시 天意를 인지하고 본받아 인사에 도입하는 역할은 성인의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春秋聚훌훌』에 둥장하는 聖A이 과연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혹은 관념적으 로 이상화된 典範인지는 곳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단정할 수는 없지만 소위 황로사상을 담고 있다고 평가되는 <保位權 20> 에는 성언, 군주, 신하의 세 가지 가 각각 다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 었다 功은 신하로부터 나오고 그 명예는 군주에게로 돌아가게 히는 다스림이 바로 의 다스림이라는 것인데, (聖 由之, 故功出於昆, 名廳볍也 <保位權 20>) 이를 위하여 성인은 天地의 성 정에 따라 尊뿜의 제도 貴購의 둥급을 마련하는 자이다. 또한, “옛 성인이 天數의 마침에 인하여 숫자를 만들어 십까지 기록하고는 다시 시작하였다. 백성들 사이에 서 대대로 전해지면서도 그것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모른다 .... "(古之聖 因天數 之所止↓;鴻數, 紀十如(=而)更始, 民世世傳之, 而不知省其所起... <陽劃쏠뿔 43>) 라 고 한 것을 보아 이 자연계의 운행올 관찰하고 이를 백성들에게 일용의 도구 로 만들었다는 식의 사고를 충분히 엿볼 수 었다. 많은 문화영웅설화에서처럼, 그 리고 〈계사전>, <설패전>의 성인들이 도구률 제작했듯이 역시 天(자연계, 道)과 A( 인간계, 事) 사이를 매개하는 성인이 장악하는 것이며 인간 세상에 전 수한 것임은J7) 의심의 여지없이 동중서에게도 수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3. 數와 類: 천인감응의 이론적 근거 동중서에게 있어서 수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바로 天(자연계, 天道)과 A( 인간 계, 事)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캡올 설명할 수 있는 도구로서의 의미였다. 天과 의 사이에는 분명 상호 영향관계가 폰재하는데 왜 그럴 수 있는지를 설명해주 는 두 가지 방식이 바로 數와 類라는 것이었다. 사람의 마음에 사려함이 있는 것은 度數와 부합하고, 행동에 조리가 있는 것 은 천지와 부합한다. 이러한 것은 사람의 몸에도 은연중에 다 드러나서 사람과 더불어 생겨나 존재한다. 동류가 상합하는 것에 있어서 셀 수 있는 것은 수와 16) IJ 聖샤爛天훌 不可不深觀也 受命之君 天意之fl1H <深察名號 35>. 17) l 「大했홈數 , 56쪽 본서는 중국의 수학사에 가까운 내용이지만 이에 관한 전 적이나 수학가 계산도구, 수학교육 등에 관한 소개도 곁들여 있다. l:: ;:、 i:n.~ 에 미친 !따때j!}l의 ~펀! 193 부합하고 셀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그 類와 상합하는 것이니 모두 마찬가지로 천과 부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체가 있는 것올 나얼하여 형체가 없는 것을 드러내고、 셀 수 있는 것올 포착하여 셀 수 없는 것올 드러내는 것이니‘ 이는 하늘과 인간의 過가 종류에 따라서 서로 응하는 것이 마치 그 형체가 상합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그 수가 서로 맞는 것과 같다 lRJ 본래 類라는 글자에 ‘닮다’, ‘비슷하다’라는 뜻이 있고 따라서 닮은 것끼리의 종 류, 類別이라는 뜻과도 통하는 것일텐데 동중서는 이 類라는 것올 자연계와 인사 간의 다양한 분야에 적용시켰다. 이러한 천인지간의 類관계가 성립될 수 있는 근 본적인 원인은 바로 사람올 만든 것은 하늘이고, 따라서 사랍이 사람으로 된 근본 은 바로 하늘에 있는 것이므로 사람은 하늘올 닮올 수밖에 없다는 데에 있다. 사 람의 형체는 天數의 변화를 받아서 이루어진 것이고 仁義와 같은 품성 역시 天志 의 변화를 받아 그러한 것이며 사람의 회노애락과 사시의 변화도 각각 類를 같이 하는 것이라고 한다.19) 이 가운데 사람의 형체란 天數가 변화하여 이루어진 것이 라는 것이 바로 신인동형론의 기초를 이루며 이는 한대를 통하여 매우 보면적인 사고였다. N. 뿌좀f 數(術) 思想의 적용: 童표 春秋學의 핵심적 도구 동중서가 중국사장사나 문화사를 다루는 어떠한 일반적 혹은 전문적인 서적에 도 빠짐없이 동장하며 매우 중요하게 평가되어 왔던 이유는 그가 ‘罷짧百家, 獨尊 뿜術의 기치를 내걸고 사상통일올 꾀하여 한제국의 군주전제적 정치체제의 구축 과 유지, 강화에 이바지했으며 중국이 유교국가의 체제를 정비해 가는 데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올 했던 인물로 인정되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위의 서술에 대하여는 18) 心有計慮 훌|應數也 行有倫理, IJ 天地也 此짧훌"1훌身, 없生, 比而偶之웠:合, 於其 可數也, 副數, 不可歡者, 폐類 皆當同而副£一tQ. 是故陳其有形, 以著할形者, 狗其可 씨著其不可數者, 以此言遭之亦宜以類相應 播其形也 싸數相中也() 19) 뚫生不能뚫A. 者, 天也 之生本於天, 天亦 之홉祖父也 此A之所以乃上類天也 之爛훌, 化天數而成.A之血황 化天志而仁 之衛Î. 녕§理而義 之好惡, 化天之 題淸.A之홈恐 化天之寒홈~A之受뼈, 化天之四時.A生有훌뿐 흉훌之答, 春秋~J:之 類也 홉, 之答也. 秋之答也 樂, 夏之答也 哀, 훗之答也 天之홉뾰乎A. 之情 性有由天者옷.<앓 者天 41>. 194 종교와 문화 그 역사적 맥락이 더 설명되어야 하며 부분적으로는 수정, 보충이 요구되기도 하 지만 그 대체를 인정한다면 이러한 공헌은 바로 동중서외 춘추학을 통하여 이루 어진 것이다. 까 이 장에서 간단히 나마 지적하그찌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동중서 춘추학을 이루는 중요한 학문적 토대가 바로 수술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1. - : 전쟁으로 점철된 춘추전국시대에 사람들은 점차 통일에의 염원을 가지게 되었 고 그러한 염원올 제자백가서에 잘 나타나 었다-유가적이든 법가적이든 심지 어 도가적이든- 의 덕올 갖춘 유덕한 王者가 승리하는 마지막 통일전쟁에 의하여 전쟁은 종식되고 통일된 제국이 전개되어야 한다는 신념은 대개의 제자사 상에 공통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통일에의 염원이 사상적으로는 최고의 실재에 대 한 관념이 생겨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들 말한다. 예를 들면 『老子』에서 천 지만물을 생성, 유지시키는 一者인 道의 관념도 이에 속할 것이고 易傳에서 음과 양의 배후의 太極이리는 一者를 상정하는 것이나 『呂民春秋』에 둥장하는 궁극적인 一者인 太一, 시대를 좀 내려가 揚雄의 개념 역시 그 예가 될 것이다. 훌{햄 의 개념은 일관된 하나의 뜻만을 견지하는 것은 아니나 분명 위의 예 문에서 보았듯이 만물의 근원이라는 뜻을 가진다. 그런데 元이라는 개념은 발음장 原, 둥과 통하므로 『春秋』 경문의 기록에 一年올 元年으로 기록한 것을 보고 동중서는 이것 자체에서 성인의 깊은 의도를 읽어내고자 한다. 一이라는 것은 만 물이 그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元이라는 말은 ‘크다’, ‘중요하다’는 뜻이니. 一올 元이라 한 것은 그 시작을 중요하게 여기고 근본올 바로잡고자 한 것이라고 해석 한다.때) 그로부터 만물의 근원이리는 개념으로도 사용되지만 일반적 의미에서의 근본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동중서가 元올 중심에 놓고 우주론을 전개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으며 원이 과연 물질적 원리인지 관념적 실재인지도 확정할 수 없다. 이렇듯 일관적인 서술은 결하고 있지만 元은 동중서의 춘추학에 서 제기되는 중요한 개념이며 동시에 공양학의 전통에 있어서는 중요한 영향올 끼쳤다. 이러한 元의 개념올 동중서는 君이라는 호칭올 설명하는 데에도 시-용한다. 20) 톰讀案春橋몹 -元之훌 一者萬物之所從始也, 元者짧之所謂大也 릅뽑-篇元者, 視大始 而欲正本也 春秋深探其本, 而反自貴者始. 故뚫 君者, 正心싸正朝廷 正확 廷以正百官, 正百官以표홈民, 正萬民써正四方. 四方표, 遺近莫敢不훌於正, 而亡有耶혔好其間者 漢 書.1<훌{뺑헤홉> 이와 유사한 문장은 「春秋훌훌 도 였다 꺼(\ n'ij.l 에 "1 친 따때빙의 ~~첼, 195 2. : 陰陽 『노자』에서도 “一生二”라는 관념이 보이고 <역전>에도 “太極生兩憐”라는 관념 이 보인다.<짧農上홈>에서는 天一, 地二 天三 地四…, 天九, 地十이라고 하고 天數 다섯, 地數 다섯올 각각 합하면 25와 30 이 얻어지고 그러므로 天地의 數를 합하면 五十五라는 내용이 보인다. 따라서 고대로부터2)) 一에서 十까지의 숫자 가 운데 다섯은 奇數이고 또 天數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나머지 다섯은 偶數이고 또 샌數라고 불리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동중서는 현상세계의 모든 것이 서로 상대적으로 되어 있다는 것율 인 정하며 동시에 그 상대적인 음양관계는 궁극적으로 상보적인 이원성이라는 것올 인식하면서도 그 상대적 관계에 尊뿜라는 가치개념올 도입한다. 음양은 인사의 원 리일 뿐 아니라 자연계의 원리이기도 하고 동시에 통치의 원리이기도 하다. 그러 므로 여기에 가치적 요인올 도입함으로써 견강부회함을 면치 못하면서도 陽尊隱뿔 라는 개념을 춘추재이설을 구성하는 중요한 원리로 내세운다. 그리하여 『춘추』에 기재된 다양한 기사를 남녀 혹은 군신간의 음양관계에서 陽尊陰뿜의 원리가 지켜 지지 않아서 발생하게 된 재이라고 보고 그로부터 역사적 도덕적 교훈을 이끌어 내려 한다. 3. 三:三世와三統 三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인식은 천지인 三才의 원리일 것이다. 물론 선진 제 자사상에 거의 공통적으로 둥장하는 히은주 三代의 유토피아 역시 三이라는 숫자 를 통반하고 었다. 요순우라고 하는 三王 역시 그러하다. 그런데 동중서에게서 은 크게 두 가지의 사고와 맞물려 있는데 그 하나는 관제의 문제이고 또 하나는 그의 역사관에 입각한 개제의 논리이다. 三과 四가 또 다시 읍과 양올 대표하는 數록 사계절이 있고 그것은 각각 삼 개월올 가진다는 것으로부터 왕은 네 번의 선거를 통하여 세 명의 신하를 선발한다는 식의 관리선발이나 관제의 정비를 주 장하는 것이다. 또, 그는 『춘추』 경문에 기재된 12 세의 기사률 三으로 나누어 有홈 有聞, 傳聞의 三世로 삼고 각각 그 사용하는 말이 다름올 지적한다. 이는 후대의 춘추공 21) 楊希板는 늦어도 동주이래라고 하는데 특별한 근거훌 들고 있지는 않다L"선진문화사 논집 , 619쪽. 196 종교와 문화 양학의 主듭가 된다. 동중서는 나아가 그의 改制의 원리를 설명하는데 역시 三統 (新周, 故宋, 以『春秋』當新王)이라는 개념올 이용하여 孔子의 개제 원리가 『春秋꾀 안에 다 들어 있고 漢朝는 이제 그 원리를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혁명적인 공양학의 정신은 주례』와 더불어 보수적인 경학의 전통 내에서도 중국 역사상 개혁의 논리를 지지해주는 중요한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4. 四法 : 商훌質文 四에 관하여 말하자연, 무엇보다도 四時라는 것이 가장 얼반적인 왼리일 것이 다. 동중서 역시 四의 원리를 옴양의 원리가 좀더 세분화된 것으로 종종 인용하고 있다. 음양의 분화로서의 四에 관한 언급은 陣陽에 관한 언급의 연장선에서 이루 어진 것이고 혹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관리선발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정도이다. 그러나 그의 개제에 대한 주햄 서 둥장하는 四라는 상정의 의미는 그 동장 이 유가 그다지 명백하지 않다. 四時와 五行의 배합이 늘 문제되듯이, 三統, 프正, 敎와 四法의 배합이 그리 용이하지 않은데 그럽에도 불구하고 굳이 사법의 항을 설정하고 있는 것은 개제에 따른 구체적인 예제를 상술하기 위한 것(商과 質에 대한 설명이 비교적 상세하다)과 또 다른 의도는 『춘추』 라는 경서로 대표되는 왕 통올 黑統에 배당하 찌 하는 것 정도를 지적할 수 있올 것이다~22) 5. : 五行 五라는 것은 <洪範> 이래로 둥장하는 오행의 원리가 가장 일반적인 것으로 동 중서 역시 오행올 다수 언급하고 있다. 이미 <홍범>에서 보이는 소박한 형태의 오행이 아니라 다섯 가지의 원리 내지 분류의 체계로서 나타나고 있는데 동중서 는 이 역시 『춘추』 경문의 몇몇 재이의 기사를 해설하는 원려로 사용한다. 『春秋훌훌』에서 자주 둥장하는 五行은 대체로 전국 말부터 그 기틀이 형성되어 갔던 월령적 사고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즉 그 오행의 성질에 합당한 물후와 정사를 나열한 후, 그러한 政事를 펼치지 않으면 그에 해당하는 재해가 닥철 것임 올 경고하는 형식올 취한디는 것이다. 22) 이에 관하여는 필자의 박사학위논문인 「훌{뺑 春軟學之빠究』의 장 절에 언급 하였다. f\: 힘에 미 친 數術學의 합짧 197 6. 十:天之혔 동중서는 十이 비로소 완벽한 수이자, 수의 극치라고 말한다.<十指 12> 에서도 그는 『춘추.JJ 242년 간의 기록에는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천하 의 중대사를 두루 포괄하고 있으나 그 대략의 중점은 열 가지로 볼 수 있다고 말 한 바 있다. 그 열 가지에 온갖 천하의 일들이 다 결부되며 왕의 교화가 바로 이 로 말미암아 흐르게 된다는 것이다231 보다 직접적으로 十이라는 숫자에 관하여 언급한 것은 <官制象天 24> 에 보이 는데, 十이 天의 數인 이유는 바로 天이 十端(‘근본이 되는 요소’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가장 나을 것 같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그 십단은 바로 天, 陰, 陽, 水, 火, 木, 金, 士, 그리고 이리거 한다. 天의 십단 중 첫 번째인 天은 아마도 구체적인 하늘을 말하고 이러한 십단을 가지고 있다는 天은 우주 자연계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십단을 열거하고 난 후에 동중서는 이어서 “섭단 을 갖춤으로써 마쳐지며 이것이 하늘의 숫자이다. 天數는 십에서 끝나며 王者는 天으로부터 십단을 받는다."24) 라고 말한다. 이제껏 십 이하의 숫자에 관하여만 언급하였지만 섭 이상의 숫자로서 12는 12 개월을 나타내는 수인 동시에 동중서에게서 특수한 의미로 λF용되고 있는 三과 四를 곱한 수로서 J=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 동중서가 에 의해 통일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대우주와 소우주에 관한 사고방식의 다양한 측면이 전통적인 數관념을 바탕으로 하여 전개되고 있으며 그것이 그의 춘추학을 특정짓고 있는 중요한 해석의 틀로 기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위에서 나타나 는 숫자들은 자연과 인문현상을 관찰하여 거기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그 자체로 수적인 기능을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각각의 數의 원리로 자연 계와 인사를 보도록, 그에 입각하여 경전올 해석하도록 하는 힘올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것을 일컬어 신비숫자라고 중국인들은 명명하고 있는데 앞으로 춘추학 뿐 아니라 한초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또 하나의 경학 전통인 주역학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신비숫자 뿐 아니라 한초의 數術學 전반에 대한 이해를 보충해나 갈 수 있을 것이다.경) 23) 春秋二百四十二年之文, 天下之大, 훌훌之博, 無不有也 雖然, 大略之要, 有十指. 十指 者, 事之所뿔也, 王化之所由得流也 <十指 12>. 24) 凡十端而畢, 天之數也 天數畢於十, 王者受十端於天.<官制象天 24>. 25) 최진묵 님의 <數字의 체계와 한대인의 생활>이라는 논문에 漢代의 술수학자들이 음 양오행설 뿐 아니라 상수역화의 논리에도 상당한 영향올 받았지만 그들이 수용한 198 종교와 문화 V. 마치는 글 『四庫提要』의 經部 易類 第六에서는 동중서의 「春秋陰陽』은 문체로써 보건대 績홉와 같다고 했으며 春秋類에서 역시 동중서의 춘추번로』어l 관하여 순수한 解라고 보기 어렵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겐) 꼼꼼한 고증적 성향을 가진 반신비주의자였던 『사고제&의 저자들에게 동중서와 같이 훈고에 입각하지 않고 미언대의률 논하는 식의 경학은 용인되기 어려웠올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유가의 경서와 경학이 형성되는 시기의 모습이며, 漢代 400년 이후로도 경학 내부 에 깊이 뿌리박고 농도를 달리하면서 그 C}상을 드러내고 있었던 수술학의 일단 이다. 달리 말하면 중국 학술사의 중심을 이루는 경학의 전통을 볼 때 그것의 커 다란 지침대의 하나는 바로 數術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자연과 인시를 하나의 원리로 파악하.:ïl자 하는 之際에 관한 사고는 어떤 시기를 막론하고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 시 말하자면, 때로 순자나 왕충과 같은 소위 합리주의자, 혹은 회의주의자들이 나 타나 천인지제에 관한 지나친 견강부회를 지적했다고 해도 여전히 그들도 천인지 제를 인정하는 큰 흐름 속에서 작은 역류를 일으켰을 뿐이라고 할 수 있다. 之際의 사고가 전개될 때 수술학의 영향력은 발휘되지 않을 수 없고 바로 이런 부분이 소위 동양학으혹 하여금 늘 애매하고 신비스럽고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해왔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사족올 덧불이자면 동서 c}을 막론 하고 아직은 한자문화권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유지되어왔던 이 애매한 수술학 의 구체적인 내용을 여러 학문분과에서 탐색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된다. 본고에 서 필자 역시 중국 학술사의 중추인 경학에 대하여 술수학이 애초에 중요한 사유 의 도구를 제공하였던 측면만을 언급하였지만 여전히 한대 지식인들의 상식 혹은 일상적이고도 일반적인 지식에 접근하지 못하였음올 스스로의 한계로 지적하며 글 을마친다. 『易』의 지식은 數라는 기능적 지식에 불과하며 易의 형이상학적 단계에까지 이르지는 못하였으며 바로 이런 점에서 도가나 유가와 구분된다는 언급이 있는데, 바로 동중서 의 재이설이나 『춘추번로』의 <求兩>, <止雨>면에 보이는 다양한 주술적 사고는 이 렇게 단정지을 수 없는 하나의 예가 될 것이며 앞에서 보았던 <일자열전〉의 기록 역 시 술수학자들이 피상적인 수의 기능에만 능통하였다는 판단올 어렵게 만든다. 26) 川原秀城의 <術數學中園σ)‘計훌的’ 科學>,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