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신천지 성도 李,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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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건너편의
한적한 곳으로 가시니,
많은 사람이 여러 마을에서 도보로 예수님보다 먼저
그곳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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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신 이적을 보았기 때문이다(막 6:31~37).
예수님께서는 저희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자를 고쳐주셨다.
날이 저물어 가자,
사도들은
그곳이 빈 들이므로 사람들을 근처 마을로 보내어
무엇인가를 사 먹게 하자고 말씀드렸다.
예수님께는
이적을 행하여 군중들을 먹일 능력이 있으셨다.
그러나 빌립을 시험하시려고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라고 물어보셨다.
빌립은 현실적이었다.
그는 ‘이 사람들에게 조금씩이라도 떡을 먹이려면
이백 데나리온어치를 사도 모자라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때까지 빌립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여러 이적을 보고도,
이 문제를 예수님께서 무난히 풀어가시리라 확신하는
믿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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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한 아이가 가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다.
여기서, 오천 명은
여자와 아이들을 제외한 남자들의 수를 말한다(마 14:21).
그 많은 사람이 먹고 남은 조각을 거두어보니
열두 바구니나 되었다.
이 날 오천 명을 먹이고 남은 떡은,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려주신 만나처럼
육신을 위한 양식이다.
이 오병이어의 기적 또한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아들이심을
단편적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가난하던 대중은
영적인 문제보다 당장 육신의 배를 부르게 하는
떡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을 목격한 저희는
억지로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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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랐던 대로
물질의 문제를 해결하러 온 구원자가 아니시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과 다른 엉뚱한 기대를 품고 있는 저들의 생각을 읽으시고
산으로 피해 가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가게 하시고,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셨다(마 14:22~23).
오병이어의 기사(奇事)를 목격한 제자들의 가슴은
감격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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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갈릴리 바다에는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났다.
갈릴리 출신의 어부였던 제자들이 힘겨워한 것을 보면
풍랑이 무척 거세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밤 사경 즉 우리 시간으로는 새벽 3~6시쯤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 가까이 오셨다.
제자들은 유령인 줄 알고 무서워 소리를 질렀다.
예수님께서 ‘나’라고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로 갔다.
그는 예수님을 믿고 물 위로 발을 내디뎠으나,
사나운 풍랑을 보자 두려움에 떨다가 바다에 빠져 갔다.
그 때까지만 해도 베드로의 믿음은
예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수준이 못 되었다.
예수님께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책망하시고,
베드로의 손을 잡고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그쳤다.
이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했다.
이와 비슷한 일화가 마태복음 8장 23~27절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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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무리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자신들과 함께 떡을 먹던 그 곳에 없는 것을 알고,
예수님을 찾아 가버나움으로 갔다.
무리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깨닫지 못한 채,
단지 떡을 얻기 위해 그를 따라다녔다.
육신의 양식밖에 구할 줄 모르는 저희에게
예수님께서는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 인치심을 받은 자신이 그 양식을 주겠다고 하셨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는 말에,
사람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하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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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영생을 얻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육체의 노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저희는 자기 조상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던 일을 거론하며,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라는 것을 믿을 수 있는
또 다른 표적을 구했다(요6:30~31절).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표적으로도
저희의 어두운 눈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지, 모세가 먹인 것이 아님을 지적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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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 그 만나와는 비교도 안 되는 참된 떡을
하나님께서 내려주신다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그 떡을 육신의 양식으로 생각하여
항상 주시기를 청하였으나,
세상에 생명을 주는 그 떡은 바로 예수님이시다(요6:32~35절).
많은 이스라엘 사람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여러 이적을 보고도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하나님께 택함받은 자는 다 예수님께로 갔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늘에서 이 땅에 내려오신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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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을 믿는 자로 하여금
부활에 동참하고 영생을 얻게 하시는 것이다.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온 예수님은
그 뜻에 따라,
자신을 믿는 사람들을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신다.
예정된 마지막 날은
주께서 전하신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
이 땅에 천국이 이루어지는 때이다.
즉, 세상 끝과 주 재림에 관해 기록된 징조와 사건이 나타나고(마 24장),
종말에 이루어질 모든 예언이 성취되는 시기이다.
그 때가 되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부활과 영생에 관한 약속을 모두 이루신다(계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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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하자,
유대인들이 수군거렸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요셉의 아들 즉 자신들과 다를 것이 없는
보통 사람인 줄 알고,
‘어찌하여 네가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느냐?’고 했다(요6:41~42절).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온 것을 모르는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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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이신 하나님께 듣고 배운 사람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 말씀을 듣고 배운 자를 말한다.
구약 성경을 제대로 배운 사람은
구약 성경에서 증거하고 있는 예수님께로 갔다.
사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하나가 되셨으므로(마 3:16 참고)
예수님을 본 것은 곧 하나님을 본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은
성령을 한량없이 받아서(요 3:34)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하는 사람에게 말씀을 배우는 것은
곧 하나님께 배우는 것이 된다.
초림 때는 성령의 인도를 받은 예수님에게 듣는 것이
곧 하나님께 배우는 것이었다.
만일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다면,
어찌 자기들보다 더한 핍박을 받는 예수님께 갈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핍박당할 것을 각오하고,
어두움 속에서 발견한 참 빛을 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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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한낱 목수의 아들로만 보는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모든 사람이 먹어야 할 생명의 떡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알려주셨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는 하나,
영원한 생명을 공급하는 양식은 아니다.
그것은 썩어 없어지는 양식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며,
썩지 않을 양식이다.
예수님을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라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다가 내려오셨기 때문이며(요 3:13),
하나님께 받아온 생명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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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명의 말씀을 예수님을 통해 듣는 사람은
영원히 주리지 아니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위 말씀에서 예수님의 살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몸을 상징한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육적인 것으로 오해한 유대인들은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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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가 지혜가 있어 이 말씀을 깨달았겠는가?
예수님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이셨으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다(요 1:1~18, 요일 1:1~2).
그러므로 본문 예수님의 살과 피는 말씀을 나타낸다.
또한 우리 죄를 대속하시려고 자기 몸을 기꺼이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상징한다.
이로 보건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을 말하며,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영을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으므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자는 생명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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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살과 피는 생명을 주는 것이므로,
실로 모든 사람이 먹어야 할 참된 양식이며, 참된 음료이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성도는 예수님 안에 거한다.
즉,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과
그 말씀이 우리 안에 있으면,
예수님의 영이 우리 마음에 들어와 계신다(롬 8:9, 계 3:20, 요 14:20).
한편, 바울은
대속 제물이 되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가리켜
유월절 양이라고 하였다(고전 5:7).
모세 때 유월절 양 고기를 먹고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引枋)에 바른 자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었듯이(출 12:22),
우리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어야만 생명을 얻는다.
누구든지 참된 양식인 예수님을 먹지 않으면
영생도, 구원도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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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과 피를 먹어야 생명을 얻는다.’는 이상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은
그를 따르던 제자들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여러 명의 제자들이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하고
수군거렸다.
살리는 것 즉 생명을 주는 것은
영적인 것이지 육적인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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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언급한 살과 피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은
영적인 것이며, 생명을 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중에서 자신을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인지,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를 처음부터 아시고,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라고 하셨다.
이 후에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나가자,
“너희도 가려느냐?”하고 열두 제자에게 물으셨다.
열두 사도 중에는
베드로와는 극히 비교가 되는 한 인물이 있으니
가룟인 유다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가리켜 ‘마귀’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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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를 열두 사도 중 하나로 택하셨는가?
그것은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다.’고 하는
시편 41편 9절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발꿈치를 들었다’는 것은
예수님을 배반한 행위를 가리킨다.
발꿈치를 들었다는 말은
이스라엘에서 배신 행위를 나타낼 때 쓰는 관용 어구이다.
실제로 등을 돌리고 가는 사람에게서
발꿈치를 들고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가리켜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다.”라고 하셨고(창 3:22),
야곱은
열두 아들, 즉 열두 지파의 조상 중 하나인 ‘단’ 이
뱀이라고 하였다(창 49:17).
이와 같이 뱀 곧 마귀는
하나님의 역사 중심부에 늘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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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마지막 때 하나님의 심판으로
마귀가 영원한 지옥 불에 들어가면
마귀의 역사는 모두 끝이 난다(계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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