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로 쓰는 인생
이정식
연필을 손에 쥐고 글을 쓰다 보면 뜻하지 않게 틀린 글자를 만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지우개를 꺼내 잘못된 글을 지운다. 지우고 난 자리는 다시 새로운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다. 그래서 지우개는 실수를 없애는 도구가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열어 주는 희망의 시작이다.
문득 생각해 본다. 우리 마음에도 지우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이 부족한 사람은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니라, 미움과 서운함이 마음을 가리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미움을 먼저 지워야 한다. 원망을 지우고, 시기와 질투를 지우고, 차가운 마음을 지워 버리면 그 빈자리에 따뜻한 사랑이 새싹처럼 돋아난다.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의 문도 어느새 활짝 열린다.
나눔이 어려운 사람도 마찬가지다. 가진 것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욕심과 두려움이 마음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오랫동안 쌓인 욕심과 편견, 욕망의 찌꺼기를 깨끗이 지워 낼 때 비로소 배려와 감사가 자라난다. 나누는 기쁨은 가진 것의 크기가 아니라 마음의 크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세상은 눈부시게 변하고 있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이 쉼 없이 밀려온다. 배우기를 멈춘 사람은 어제에 머물지만, 배우기를 즐기는 사람은 내일을 향해 걸어간다. 우리를 가로막는 것은 나이가 아니라 낡은 생각과 굳어진 고정관념이다. 그 고정관념을 마음의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 버릴 때 새로운 세상이 보이고 새로운 길이 열린다.
인생은 한 번 쓰고 끝나는 글이 아니다. 날마다 고쳐 쓰고, 날마다 새롭써
내려가는 긴 이야기이다. 잘못 쓴 어제를 붙들고 후회하기보다, 오늘 다시 고쳐 쓸 수 있다는 희망이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나는 오늘도 마음의 지우개를 꺼내 든다. 미움은 지우고 사랑을 쓰고, 욕심은 지우고 나눔을 쓰며, 절망은 지우고 희망을 쓴다. 교만은 지우고 겸손을 쓰고, 불평은 지우고 감사를 쓴다. 그렇게 하루하루 마음을 닦으며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조금씩 아름다운 작품으로 완성될 것이다.
지우개는 손바닥만 한 작은 물건이지만,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커다란 지혜를 품고 있다. 오늘 나는 마음의 지우개로 어제의 허물을 지우고, 사랑과 감사와 희망이라는 아름다운 글을 다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