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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여배우의 모습이 동시에 느껴진다"
"연기 학원에 다닐 생각은 없어요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게 좋아요
배우로서 사람들 마음속에깊이 남고 싶거든요"
도대체 어떤 아이기에 '아저씨'의 태식(원빈)은 혈혈단신 사지로 걸어 들어가, 때론 맹목적으로 느껴질 만큼 무모한 싸움을 벌여가면서 그 소녀를 구하려는 걸까? 세상에서 버림받은 듯한 눈빛, 미묘하게 떨리는 목소리, 힘 없는 어깨…. 그 모습을 보면 이해하게 된다. 누구라도 이 아이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할 것만 같다. 소미 역의 김새론(10).
'인셉션''솔트' '토이스토리' '이끼' 등 쟁쟁한 영화를 개봉(4일) 첫 주 단숨에 눌러 버린 영화 '아저씨'를 보고 나오면서 관객들은 이렇게 묻거나 감탄한다. "김새론이 누구야?", "애가 왜 그렇게 연기를 잘해?"
매서운 눈썰미의 관객이라면 어린이 프로에서 노래하고 춤추던 새론이를 기억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김새론이라는 배우를 발견한 계기는 우니 르콩트 감독의 '여행자'(2009)라는 영화였다. 감독은 어릴 적 프랑스로 입양되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데뷔작에 풀어놓으며, 김새론을 자기의 분신으로 선택했다.
아마도 한국에서 활동하는 아역 여배우는 모두 참가했을 오디션. 참가번호가 거의 끝에 다다를 때까지 주인공은 나타나지 않았다. 거의 마지막에 카메라 앞에 선 김새론은 간단한 상황이 주어진 가운데 즉흥 연기를 펼치다가 펑펑 울었다.
그렇게 첫 영화를 만났고, 칸영화제 레드 카펫을 밟은 최연소 한국 배우가 되었다. 르콩트 감독이 김새론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아역 배우들이 연기 학원에서 습득한 전형적인 그 무엇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린이 프로는 율동이나 노래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재미를 주는 것 같고, 연기라는 건 사람들에게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 같아요"라며 수줍게 자신의 연기론(!)을 펼치는 새론이는, 연기를 배운 적이 없다.
돌 무렵에 이미 모델로 카메라 앞에 섰고, 워낙 춤추는 걸 좋아해 결국은 어린이 프로까지 출연하게 됐지만, 아이가 원한다면 모를까, 부모는 딸에게 배우의 길을 걷게 할 생각은 그다지 없었다. 우연처럼 참여한 오디션이 새론이를 영화배우로 만들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학원과 에이전시를 거쳐 드라마, 시트콤, CF 등으로 주목받고 영화로 진출하는 '일반적 코스'를 거친 아역 배우와 비교하면, 새론이의 연기는 다르다. 잘 구성되거나 유창하기보다는, 조금은 어눌하고 정적이다.
그런데 여기에 '배우 김새론'의 그 무엇이 있다. 즉각적인 감정 몰입을 통해 관객을 끌어당기는, 흡인력 강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힘. 전체적인 시나리오를 읽지 않은 채, 매일 순간의 설정이 주어지면 그 안에 빠져들어야 하는 게 "힘들긴 한데 배우로서 더 좋은 경험"이라고 말하는 새론이는, 좀 더 먼 곳을 보고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연기하는 게) 배우로서 배워야 할 것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어렸을 때 그런 걸 해보면 나중에 더 큰 배우가 되었을 때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요."
전작 두 편 모두 '괴로운' 영화였고, 지금 촬영 중인 '태양은 가득히'(가제)에선 심장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는 아이로 출연하는 새론이에게 혹시 영화가 어떤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염려했다. 이번에도 훗날을 이야기한다.
"그런 거 때문에 힘들진 않아요. 좋은 장면도 많으니까요. 힘든 거 조금 하고 좋은 거 많이 하면 되잖아요?(웃음) 그리고 나중에 연기할 때 더 힘들 게 많을 텐데, 버텨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아이가 벌써 배우를 평생 직업으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 밝은 역할을 해보고 싶진 않으냐고 묻자 말한다.
"해보고는 싶지만…(목소리에 장난스럽게 힘을 주며) 배우라면! 어떤 역할이든지 상관없이 다 접해 보고 싶어요." 김새론에 대해 "아이와 여배우의 모습이 동시에 느껴진다"던 원빈의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연기할 때 외에 가장 행복한 시간은 "내가 찍은 영화를 볼 때"라고 말하는 새론이는, 계속 행복하고 싶어서 현재를 즐겁게 받아들이고 견디는 아이 같았다. '선덕여왕'의 미실을 본 후 고현정 같은 연기자가 되고 싶어진 김새론. 좀 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연기 학원에 다녀볼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엔, 하지만 단호하다.
"아니요. 그런 생각은 없어요. 저는 학원에서 배우는 그런 연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제가 하고 싶은 연기를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이 아이의 꿈은 배우로서 "사람들 마음속에 깊이 남는 것"이다.
음… 지금까지 아직 틴에이저도 되지 않은 어린 배우를 너무 애늙은이처럼 묘사한 건 아닐까? 사실 실제로 만난 김새론은 너무나 밝고 잘 웃고 호기심 많은, 또래의 아이들과 별 다를 바 없는 평범하고 천진난만한 아이다. 오해 없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