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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대 요시아 왕 (BC 640~609): 8세에 즉위하여 31년간 통치한 위대한 성왕입니다. 성전 청소와 유월절 회복 등 대대적인 종교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러나 바빌로니아와 전쟁을 벌이던 아시리아를 돕기 위해 북상하던 이집트의 바로 느고 왕을 막으려다 므깃도 전투에서 불행하게 전사했습니다. 백성들의 큰 비탄 속에 예레미야 선지자가 그를 위해 애절한 조가를 지어 불렀습니다. 요시아에게는 네 아들(요하난, 여호야김, 시드기야, 여호아하스)이 있었습니다. 장자 요하난은 일찍 사망했습니다.
제17대 여호아하스 (살룸, BC 609): 요시아 왕이 전사하자 백성들은 둘째나 셋째를 제쳐두고 막내아들인 여호아하스(당시 23세)를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그만큼 인품이 뛰어나고 총해를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즉위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이집트의 바로 느고에게 붙잡혀 이집트로 끌려가 포로로 죽는 비운을 맞이했습니다.
제18대 여호야김 (엘리아김, BC 609~598): 이집트의 바로 느고가 여호아하스를 폐위시키고, 요시아의 둘째 아들인 엘리아김을 왕으로 세우며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고쳤습니다. 그는 11년을 다스렸으나 매우 친이집트 성향을 띠며 우상숭배를 일삼았고 예레미야의 예언 두루마리를 칼로 찢어 불태우는 영적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결국 신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의 1차 침공(BC 605년)을 받아 쇠사슬에 묶여 바빌론으로 끌려가다 처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제19대 여호야긴 (여고냐/고냐, BC 598~597): 여호야김이 죽자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8세(혹은 18세)의 나이로 즉위했으나, 바빌론의 2차 침공을 받아 불과 석 달 열흘(100일) 만에 느부갓네살에게 항복하고 왕궁의 모든 보물, 성전 기물들과 함께 바빌론으로 사로잡혀 갔습니다.
제20대 시드기야 (맛다디아, BC 597~586): 느부갓네살이 여호야긴을 잡아가고, 그의 숙부이자 요시아 왕의 셋째 아들인 맛다디아를 마지막 왕으로 세우며 이름을 '시드기야(당시 21세)'로 바꿨습니다. 그는 11년을 다스렸으나 예레미야의 경고를 무시하고 친이집트 동맹을 맺으며 바빌론에 끝까지 반역했습니다. 결국 BC 586년 예루살렘 성벽이 뚫리며 성전이 완전히 불타고 왕조가 전멸당했습니다. 시드기야는 도망치다 사로잡혀 자식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뒤 눈이 뽑힌 채 사슬에 매여 바빌론으로 끌려가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파란만장하고 처참한 마지막 다섯 왕들의 시대 동안 눈물로 기별을 외친 선지자가 바로 예레미야입니다. 그는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불타오르는 참상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가슴을 찢으며 슬피 울었기에 '눈물의 선지자(The Weeping Prophet)'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얻었습니다. 그는 나라를 잃고 포로로 끌려가는 백성들의 슬픔을 시로 담아 『예레미야 애가』라는 참담한 노래를 남겼습니다.
나중에 그의 모든 눈물의 기별들이 문자 그대로 정확하게 성취되자, 바빌론에 사로잡혀 가 있던 남은 유대 백성들은 마침내 예레미야가 참된 하나님의 선지자였음을 깊이 깨닫고 그를 민족의 영웅으로 위대하게 추앙하게 되었습니다. 미켈란젤로나 여러 네덜란드 거장 화가들이 묘사한 예레미야의 초상화는 하나같이 파멸당한 도성의 연기를 바라보며 깊은 번민과 침통한 슬픔에 잠겨 손으로 턱을 고인 웅장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 사역 시대의 국제 정세와 정치적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당시는 아시리아, 신바빌로니아, 이집트 삼대 열강이 근동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격렬하게 충돌하던 격변기였습니다. BC 626년 바빌론의 나보폴라사르 왕이 메대 연합군과 힘을 합쳐 오랜 거대 제국이었던 아시리아의 손에서 바빌론을 탈환했고, BC 612년에는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를 완전히 함락시켰습니다. 이어 BC 610년에는 아시리아의 마지막 거점인 하란까지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BC 605년 갈그미스(Carchemish) 전투에서 나보폴라사르의 아들 느부갓네살 세자가 이집트의 바로 느고 대군을 완전히 격파하고 팔레스타인 전체의 패권을 단숨에 장악했습니다. 갈그미스 승리 직후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비보를 들은 느부갓네살은 급히 바빌론으로 돌아와 즉위하여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을 총 세 차례에 걸쳐 대대적으로 침공했습니다.
제1차 침공 (BC 605년): 갈그미스 전투 직후 예루살렘을 쳐서 성전 기물을 탈취하고 왕족과 귀족 청년들을 포로로 사로잡았습니다. 이때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바빌론으로 끌려가 왕궁 서기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2차 침공 (BC 597년): 유다의 배도에 진노하여 다시 침공해 성전 보물을 노약하고 여호야긴 왕과 함께 기술자, 장인 등 귀족층 대거를 사로잡아 강제 이주(디포테이션, Deportation)시켰습니다. 이때 제사장 출신의 선지자 에스겔이 2차 포로로 사로잡혀 갔습니다. 열왕기하 24장과 에스겔 1장에 상술된 역사적 정황입니다.
제3차 침공 (BC 586년): 시드기야의 끝없는 반역에 마침내 예루살렘 도성과 성전을 완전히 불태우고 무너뜨렸으며, 가난하고 비천한 자들만 남겨둔 채 대다수 민족을 바빌론으로 쓸어 가 포로 생활을 지우며 유다 왕조의 문을 닫았습니다.
당시 유다의 영적·종교적 상황은 선왕 므낫세가 저지른 지독한 우상숭배와 인신제사, 피 흘림의 죄악으로 인해 이미 하나님의 자비와 인내의 한계선을 넘어서 있었습니다. 요시아 왕이 성전을 청소하고 유월절을 성대히 지키며 종교 개혁을 추진했으나 백성들과 방백들의 호응은 지극히 피상적이고 마지못해 따르는 수준이었습니다. 영적 중심이 변화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개혁의 사령관이었던 요시아 왕이 므깃도에서 전사하자 백성들은 삽시간에 옛 우상숭배와 부패한 방탕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올바르게 되는 개혁은 오랜 세월이 걸리지만 타락하는 부패는 한순간입니다. 예레미야는 이처럼 소망 없이 파멸을 향해 폭주하는 조국의 운명을 바라보며 예레미야서를 기록했습니다.
예레미야서의 구체적인 구조와 개요를 살펴보겠습니다.
대주제: 유다 왕국의 최종 배도와 언약 파괴에 따른 처절한 심판 통첩
제1부: 유다를 향한 변론과 초기 심판 선언 (1~20장)
요시아 왕 치세 동안 예레미야가 받은 소명과 하나님의 자랑, "이스라엘은 내 아내라" 선언하시며 다른 우상 신에게 영적 간음을 행한 아내의 배신을 고발함, 백성들의 종교적 위선과 형식주의 책망(7~10장), 언약 파괴의 고발과 허리띠, 옹기병 등을 활용한 6가지 엄숙한 심판 비유 서사.
제2부: 반역한 지도자들을 향한 후기 심판 기별 (21~39장)
여호야김과 시드기야 치하의 역사입니다.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왕을 향해 칼을 대항하지 말고 바빌론에 묵묵히 항복하라고 하나님의 최후통첩을 전했으나 시드기야는 격노하여 선지자를 시위대 뜰 감옥 구덩이에 처넣었습니다.
23장: 장차 오실 의로운 메시아의 한 가지(가지 예언) 선포
24장: 좋은 무화과(포로민)와 나쁜 무화과(시드기야와 남은 자)의 환상
BC 605년 여호야김 시대에 전한 70년 포로기 예언(25~26장)
거짓 선지자 하나냐와 스마야의 무사안일 낙관론("2년 만에 평화가 올 것이다")에 대한 단호한 정죄와 심판
30~33장: 심판 너머에 예비된 이스라엘의 최종 '새 언약'과 회복의 확고한 보증 기사
시드기야 왕의 노예 해방 언약 불이행 폭로 및 예루살렘의 최종 함락과 함락 당시의 기사(39장)
제3부: 함락 이후 남은 자들과 이집트 포로기의 사역 (40~45장)
예루살렘 함락 후 유다 땅에 남겨진 백성들의 완악함과, 예레미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이집트로 도망간 남은 자들을 향한 이집트 심판 예언. 신실한 서기 바룩을 향한 주님의 개별적인 격려와 위로(45장).
제4부: 이방 열국을 향한 여호와의 공의의 심판 (46~51장)
이집트, 블레셋, 모압, 암몬, 에돔 등 유다를 괴롭힌 주변 부족국가들과 유다를 채찍 삼아 멸망시켰던 대제국 바빌로니아를 향한 최종 파멸 저주 선언.
제5부: 예루살렘 함락의 재진술 및 결론 (52장)
시드기야 왕의 비참한 종말과 도성의 파괴 역사를 다시 정리하며 인과관계를 입증함.
이 장엄하고 아픈 심판의 한복판에서 백성들을 위로하기 위해 예레미야 성전 문 입구에 서서 눈물로 애통해하던 관경은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거울이 됩니다.
예레미야를 묵상할 때 우리는 영적인 타성에서 벗어나 참된 회개로 나아가야 합니다. 선지자의 눈물 속에 담긴 깊은 신학적 주제와 새 언약의 구체적인 약속 기별들은 다음 강의 시간(제35강)에 상세히 이어 공부하겠습니다. 한 주간 동안 하나님의 귀한 말씀 안에서 은혜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핵심 요약정리
명칭의 의미와 구속사적 부름:
'예레미야(이르메야)'는 '여호와께서 지명하셨다(임명하셨다)'라는 뜻으로, 모태에서부터 선지자로 구별되어 요시아 왕 13년(20세 청년 시절)에 부름받은 그의 엄엄한 소명적 신학과 일치합니다.
제사장 가문과 정경의 맥락:
베냐민 땅 제사장 성읍 아나돗 출신으로 대제사장 힐기야의 아들이며, 훗날 포로 귀환 정경을 수립한 학사 에스라의 종조부(할아버지의 형제) 항렬이 됩니다.
성경 전반에 1인칭 자서전적 서술이 가득하며, 그의 신실한 서기 '바룩'의 조력을 받아 예레미야서와 애가를 기록했습니다. 다니엘 9장과 에스라 1장이 그의 저작권을 역사적으로 증언합니다.
마지막 다섯 왕들의 참혹한 연대:
성왕 요시아의 므깃도 전사(BC 609년) 이후 그의 세 아들(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시드기야)과 손자(여호야긴)가 왕위를 주고받으며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의 침공 속에 사슬에 묶여 끌려가고 전멸당하는 유다 왕국의 최종 몰락사를 눈앞에서 목격했습니다.
나라와 성전이 불타는 참상을 보며 평생 눈물로 기별을 전했기에 '눈물의 선지자'로 일컬어집니다.
바빌론의 3차 침공과 선지자의 최후통첩:
BC 605년 갈그미스 전투로 근동의 패권을 쥔 느부갓네살 왕은 유다를 세 차례 침공했습니다(1차 BC 605년 다니엘 포로, 2차 BC 597년 에스겔 포로, 3차 BC 586년 시드기야 실각 및 성전 파괴).
예레미야는 백성들의 무사안일한 거짓 낙관론을 꺾고, "바빌론에 항복하여 목숨을 보존하고 70년의 포로기 징계를 온전히 받으라"는 비장한 하나님의 최후통첩을 선포하며 조국의 종말을 지켜본 공의와 눈물의 선지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