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1985년 3월의 태안행
⑧작가의 긴 여행#26》0922 AI수정 및 협업 관찰작가의 자서전
by여유시간
Sep 22. 2026
며칠을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고민했지만, 좋은 방법이 있을 리가 없었다.
복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태안으로 직접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노인은 이미 수년간 자신의 일을 봐주던 변호사에게 간척지 이야기를 해두었다고 했다.
아들인 내가 직접 내려오기만 하면, 진행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단칸방에서 내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던 아내에게, 태안으로 내려가서 둘러보고 오겠다는 사실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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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가 식구들 중에서도 특히 장모님이, 누구보다 기뻐하며 우리를 격려해 주셨다.
사실 우리 아버지는, 장모님께도 생명의 은인 같은 특별한 분이셨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아주 오래전 장모님의 막내 남동생이 어릴 적 모진 병에 걸려, 도저히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고 생사의 기로에 섰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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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그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듣고는, 당신이 귀하게 아끼며 소지하고 계셨던 약을 선뜻 그 댁에 건네주셨다고 한다.
그 약 덕분에 죽어가던 아들이 기적처럼 살아났고, 그 인연이 닿아 지금 내 곁에 아내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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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늘 그렇게 대가 없이 남을 돕는 분이셨다.
장모님은 그 고마움을,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슴 깊이 간직하고 계셨다.
그래서 우리 집안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이번 일도 진심으로 잘되기를 바라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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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3월, 아직 겨울 날씨였다.
직장 동료들의 부러움과 뜨거운 응원을 뒤로하고, 휴가를 냈다.
집으로 돌아와 장모님께도 말씀드렸다.
아이들을 맡기고, 새벽 일찍 아내와 함께 태안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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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휴대전화는커녕, 집에 전화기 한 대 두는 것도 귀하던 시절이었다.
버스가 정류장에 잠시 멈춰 설 때마다, 나는 공중전화박스로 달려가 노인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위치를 알리고 상황을 보고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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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버스 창밖으로, 낯선 풍경들이 먼지바람과 함께 스쳐 지나갔다.
저 너머 어딘가에, 아버지가 거친 바다를 막아 일구어낸 거대한 땅이 실재한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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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세 노인의 간절한 증언, 그리고 내 손에 쥐어진 몇 장의 희미한 단서들.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이 여정이 우리 가족의 지독한 가난을 끝내줄 열쇠가 될지, 아니면 또 다른 그리움의 확인으로 끝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심장은 쉴 새 없이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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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나는 전자 오르간이라는 악기를 열심히 배우고 있었다.
이번 일이 잘 되면, 폼나는 악기를 꼭 하나 사야겠다는 소박한 꿈도 함께 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