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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은 시작이 배려요 끝은 감사였다. 때로는 시작도 끝도 모두 감사였다. 무어 그리 고마운 게 많은지…. 이런 그를 보고 ‘바를 정(正) 착할 선(善) 이미지로 통하는 사람이니까, 딱히 어려운 게 없고 잘 되는 인생이니까…’ 그렇게 솜뭉치 만지듯 짐작하는 이가 있다면 아마도 아직 철부지이거나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적이 전혀 없거나. 최수종은 지난 8월 한국 국적의 국제구호개발NGO 굿네이버스의 친선대사 자격으로 미국 LA의 한인교회에서 ‘동행’이라는 이름의 간증 콘서트를 열었다. 감사한인교회, 베델한인교회, 남가주동신교회, 나성열린문교회 등 총 4개 교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그는 지난 10여 년 간 굿네이버스 친선대사로 활동하면서 만난 제3세계 아이들의 이야기와 ‘인간 최수종’의 삶과 상처, 극복과 희망에 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었다. 인터넷으로 본 그의 간증 영상 속에 화려한 청춘스타는 없었다. 고난 당한 것이 유익이 되어 주의 율례를 배웠노라(시 119:71)던 시편 기자처럼, 그저 겸허하고 담담하게 그가 통과한 광야 시절을 간증한 것이다. 급작스런 부친의 사업 실패와 바닥을 짚을 수 없는 가난의 구덩이를 거쳐 절망의 밑바닥까지 내려간 그의 청춘은 강남고속버스터미널 한 구석 찬바람 휑하니 드는 벤치에 누워 있었다고 했다. 공중전화 요금 20원만 있으면 아는 친구 선후배를 불러내 하루 숙식을 해결했다는 그 시절, 한 달이 지나니 전화 걸 때도, 받아주는 이도 더 없더라는 그 날이었다. 그보다 허름한 옷차림의 어른이 다가와 들고 있던 신문지 한 장을 나눠주며 말했다. “이거라도 덮어. 안 그러면 얼어 죽어.”
최수종은 그 순간 다시 태어났다. 여자보다 더 곱상해 청소년 때부터 주일학교 율동교사를 도맡아 했다는 최수종. 그러나 극도의 시련 앞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세상을 욕하고 있던 그에게 주님은 신문지 한 장이나마 덮어주라며 천사를 보내셨던가 보다. 그 순간에도 그를 돌보시고 여전히 지키시는 이는 최수종의 주님이셨다. 그 자리에서 기도를 회복한 그는 불과 몇 달 뒤,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세상이 다 알아보는 스타가 된다. ‘이벤트의 제왕’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배려심의 비밀, 가진 것 하나라도 더 나누려는 넉넉한 마음씨의 동기,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는 하나님의 뜻대로 시원스레 사는 비결은 바로 주님이 베푸신 구원의 은혜와 감격 때문이었다.
그 날, 최수종 씨가 하나님을 다시 만난 겁니까? 그렇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런 사람도 신문지 한 장 나눠주는데, 나는 이렇게 욕만 하고 쓰러져 있을 것인가? 나도 언젠가 돈을 벌면 저 사람처럼 나눠주며 살고 싶다. 이렇게 세상만 탓하며 살아갈 순 없다, 하고 생각을 바꾸게 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리고 일어나 막무가내 닥치는 대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옛날 용산구청 건물 벽돌 일부는 제가 등짐지고 나른 것이고, 안 해 본 밑바닥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외모를 보면 고생 같은 건 전혀 모르고 자랐을 것 같습니다만…. 어릴 땐 그랬지요. 초등학생 시절 반포의 한 개척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며 영락교회에서 하는 여름성경학교 교사강습회에 찬양율동을 배우러 다닌 적도 있고요, 유복한 환경 가운데 가족 모두 교회를 나갔습니다. 아버님은 원래 지붕이 파란색인 큰 건물에서 근무하신 분입니다. 그런 아버지의 첫 사업 실패가 얼마나 컸던지, 제가 외국어대학교에 합격해놓고도 등록금이 없어 못 갔어요. 정말 어렵게 사업에 재기해 저를 미국으로 유학 보내주셨을 때, 어려운 와중에 다시 공부할 수 있게 해주셨다는 게 너무 감사해서 책상 앞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는 말씀을 붙여 두었습니다. 그랬는데 또 얼마 못 가 대학 2학년 때, 그러니까 아버지가 빚만 잔뜩 남기고 돌아가셔서 그만 가진 책과 짐 모두 아는 집 차고에 쌓아두고 간신히 몸만 돌아와야 했을 때, 내가 이렇게 된 건 모두 무능한 부모님과 나쁜 세상 때문이라며 욕을 하고 다녔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잘 곳이 없어 길거리 노숙까지 했다는 게 상상이 안 됩니다. 가족은 당시 아버지 사업차 파라과이에 이민 가 있을 때라 서울엔 제가 잘 곳이 없었어요. 결국 동생은 공부하느라 파라과이에 남고 어머니만 돌아오셨는데, 한동안 어머니나 저나 갈 데가 없고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때 제 입에 붙은 말이 “동전 20원만”이었어요. 그걸로 공중전화를 걸어 아무나 연결되면 그날은 그 친구에게 빌붙어 저녁 얻어먹고 술 마시고 취해 쓰러지는 겁니다. 헤어질 때면 또 “20원만” 하고요. 하지만 친구집에 가는 것도 하루이틀이지요. 한 달이 지나니 더 이상 갈 데도 없어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땐 반겨주던 어른들도 눈치가 보이니 가기 어렵고…. 생거지가 되고 나니 물질의 여유가 있을 때 하고는 세상이 하늘과 땅의 차이더군요. 젊은 마음에 사람의 변하지 않는 초심의 중요성, 친구들의 중요성을 알게 됐습니다. 그때 제 삶은 방탕 그 자체였어요. 어느 날 새벽 눈을 뜨니 포장마차 자리였는지 어딘지도 모를 길거리 가로수 옆에 쓰러져 있더군요. 그렇게 아무데서나 쓰러진 건 한두 번이 아니고요. 그러던 어느 날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벤치에 누웠는데, 저보다 더 없어 보이는 어떤 사람이 신문지 한 장을 건네준 겁니다. 그걸 받으면서 제가 크게 감동이 됐어요. 그리고 한동안 잊고 지냈던 기도를 다시 했습니다. “하나님, 저 사람은 무슨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저렇게 합니까? 나도 돈을 벌면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한 다음부터 제가 달라지기 시작했던 거지요. 막노동으로 번 돈으로 어머니 밥값 드리고 잘 데 없다 하시면 여관비 드리고, 외국에 남아 있는 동생 학비도 챙기고, 그리고 저야 아무데서나 자도 되니까, 쪼개고 남은 돈으로 친구가 다니는 어려운 교회 가난한 아이들에게 학용품을 사다줬어요. 나누는 건 하나님과 한 약속이니까요. 다시 살 수 있다는 게 또 너무나 감사해서요.
만일 그런 일이 없었다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저의 매형이 가수 조하문 목사님이잖아요. 사모님이 된 누나가 저한테 하는 이야기가, 그런 시험과 고난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아마 없었을 거래요. 아버지의 후원으로 편하게 외국 다녀오면 정말 무엇이 되었을지 몰라요. 그런 생활이 없었으면 ‘날라리’가 되었을지도 모르지요. 그런 상황에서 TV 탤런트로 데뷔했다는 것이 또한 상상이 가질 않습니다.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었잖아요. 제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몇 달을 고생하고 다니니까 어머니가 주변 친구들에게 “미국 다녀온 내 아들 일자리 좀 알아봐달라” 부탁해 얻은 일이 ‘몰래 과외’였습니다. 하루는 그 학생 아버지가 좀 보자 하시더니 “너 탤런트 안 해 볼래?” 하시는 거예요. 다음 날 KBS 방송국에 나오라 해서 갔더니 예능국장실에 앉아 계시더군요. 방송 시작하면서 한두 달 지나니까 거리에서 아이들이 저만 지나가면 난리가 나는 거예요. 아직 집이 없어 떠돌아다니고 버스 타고 방송국 오가야 했는데, 이젠 버스도 못 타고 다니게 생긴 거예요. 난리가 나니까. 출연료를 모아 과천 구석의 반지하방을 임대해 이사하던 날, 저와 어머니는 손을 부여잡고 한참을 울며 감사 기도를 드렸어요. 엄마와 자식이 비록 누추해도 한 집에서 산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요.
하루는 청소년들이 보는 잡지 기자가 팬클럽과 함께 연예인의 집 탐방을 온다는데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와서 보더니 기자가 기가 막혔는지 아무 말도 안 하고 다시 나가요. 그러더니 팬클럽 여학생들과 함께 다시 와서 한참을 붙이고 해요. 뭘 하나 봤더니 제게 온 팬레터 엽서가 몇 박스 있었는데 그걸 단칸방 벽과 천장에 온통 붙인 거예요. 얼마나 멋있고 감사하던지, 나중에 기사를 보니 ‘팬레터로 꾸민 최수종의 특별한 방’ 하면서 그럴싸한 사진 설명을 써놨더군요.
최근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 ‘패밀리가 떴다’를 보니 기존 출연진에게 슬리퍼 선물을 돌리고 새벽엔 격려하는 풍선도 매달고, 아내 하희라 씨에게 하는 생일 축하 이벤트는 이 세상 모든 남편에겐 ‘공공의 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상한 면모를 보이고 계시지요. 저는 아내 하희라 씨는 물론 두 아이들에게도 존댓말을 해요. 아이들도 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거지요. 이게 다 아버지 영향이라고 봐요. 아버님이 어머니와 누나에게 잘했어요. 주일은 남자들이 일하는 날이었어요. 아버님은 부엌에서 반찬 만드시고 저와 남동생은 이불 개고 청소하고, 하루는 방에서 어머니를 꼭 안고 계시는 걸 우연히 들여다보았더니 한눈을 찡긋 하며 눈치껏 문 닫고 나가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자상하고 정이 많으시고, 어려운 친구 사정 모른 척 못하시고.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저를 그렇게 이끄시고요.
결혼기념일에 굿네이버스에 거액을 기부하고 10년 넘게 친선대사 활동을 해오셨는데, 이 일에 대해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마음이 있을 것 같군요. 나눔은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저를 만나주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고, 그때 하나님과 한 약속입니다. 저에게 이 사명을 주신 거지요. 저 같은 사람이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시간을 내서 봉사하고, 기부하는 문화에 앞장서다보니, 이제는 사람들도 점점 이런 나눔을 당연시하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굿네이버스에서 저에게 이런저런 일을 해달라고 하기 전에 제가 먼저 “곧 드라마 끝나니까 어디 어디 가서 활동하고 봉사하고 싶다”고 제안하기도 해요. 이번에 미국에 간증 다녀온 것도, 갓피플 매거진과 만나는 것도 사실 제가 나선 일이고요. 다른 데 들어갈 돈을 하나라도 더 실제적으로 전세계와 북한의 어린이들에게 나눌 수 있도록 한다면 좋을 것 같아서요. 특히 저는 교회가 교회 안의 일에 머무는 시각을 벗어나, 우주적인 하나님의 시각으로 나눔과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대외적으로는 종교색을 표방하지는 않으나 사실상 교회 기반에서 탄생해 선교적 사명을 품고 일하는 굿네이버스에 교회와 갓피플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동참해주시면 좋겠군요.
이번에 미국에 가기 전에 부부가 40일간 새벽기도를 모두 참석했다고요.
지금 출석하는 주님의교회(박원호 담임)에서 올초에 40일간 특별새벽기도를 하는데, 최근 하나님과 사랑에 빠지기 시작한 아내 하희라 씨와 손잡고 40일 새벽기도 개근을 했어요. 나중에 소문을 들으니 “최수종 하희라도 안 빠지는데 우리가!” 하면서 갈수록 새벽기도 참석율이 높아졌다고 해요. 마지막 날엔 본당이 거의 다 차고, 아내가 교회에서 간증하던 날 저는 옆에서 얼마나 감사한지 눈물이 나 잠깐 뒤돌아서기도 했어요. 장모님은 불교를 신봉하시는데, 아내는 저랑 결혼하고서 처음에 남편 따라 잠시 교회 나왔다가, 사소한 일로 시험을 당해 오랫동안 교회를 안 나가게 되었어요. 저는 그냥 기도하면서 이런 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해요! 아내 하희라 씨에게도 어려움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게 되셨을까요? 세 번 아이가 유산되고 너무 힘들었지만, 6년 만에 첫아이를 선물로 받으면서 저나 하희라 씨나 의견은 똑같았어요. “감사하다, 우리는 너무나 감사하다.” 우리는 분만실에 들어가는데 갓 나온 아기를 중환자실로 데려가는 걸 봤어요. 우리 부부 이상으로 아기를 마음대로 갖지 못하는 사람들도 너무 많더군요. 그런 분들에게 봉사하고 기부하자고 다짐했지요.
그런 와중에 처형이 태권도 사범을 하는 형님과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사시다가, 대개의 미국 교포들이 그렇듯이 자연스레 교회를 나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셨고, 그 분들이 한국에 들어올 때 아내에게 전도한 거예요. 또 그 무렵인가, 아내가 친구가 선물해준 책을 보다가 책상 앞에서 펑펑 울고 있더라고요. 무슨 책인데 그러나 해서 봤더니 <더 내려놓음>이래요. 그보다 먼저 나온 건 <내려놓음>이라며 그것도 보고, 저도 주변 사람들도 다 보게 됐어요. 그러면서 저와 아이들과 함께 교회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의 변화를 어떻게 느끼십니까? 믿음이 들어가면서 아내의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는데, 남편인 제가 봐도 어떻게 저렇게 감사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진짜 더 감사하며 살아요. 얼마 전 양초공예를 하다 손에 2도 화상을 입었는데 화상전문병원에 가보니 자기는 아픈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고 해요. ‘하나님이 나에게 화상을 주신 건 이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 하라는 사명을 주신 거다’ 생각하고 저와 함께 올해 11월 20일 결혼기념일에 화상환자를 위한 미니 복음성가 음반을 내기로 했습니다. 이 일을 그냥 돕겠다는 전문 연주가와 믿음 좋은 녹음스튜디오 프로듀서도 만나게 해주셨고요. 아내가 믿음이 생기지 않았다면 자기 몸 먼저 챙겼을 텐데, 그러지도 않고요. 감사하게도 성형수술 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이 깨끗하게 치유해주셨습니다!
연예인은 유명해질수록 유명세에 시달린다고, 애매한 소문도 듣게 되어 속상할 때도 많을텐데, 오늘 만난 최수종 씨는 그래도 언제나 감사하는 분으로 보입니다. 저는 극과 극을 다 살아본 경험이 있잖아요. 길바닥에서도 자보았는데 감사하지 못할 게 무어 있겠습니까. 그냥 감사해요.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는데 앞의 차가 급정거를 해 제 차만 크게 부서졌어요. 그러면 보통 인상 쓰고 나오겠지만 저는 그 순간 “하나님, 감사합니다. 안 다쳤어요!” 하고 있더라고요. 저 그렇게 살아요. 모든 게 감사해요. 그래서 간혹 문제가 생겨도, 어떤 오해가 생겨도 하나님이 시험을 주시나 보다, 더 좋은 것 주시려나 보다 생각하고 그냥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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