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난가는 새벽 열차 대전발 영시 오십분
세상은 잠이들고 고요한 이밤 말없이 떠나가는 쓸쓸한 심정
아아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원래 옛날 노래지만
우리들 대가리 좀 굵어질 쯤 국민가수 조용필이 한창 뜰때
애절하게 혼을 불어 넣어 다시부른 대전 부르스다
난 참 조용필 과 라훈아를 좋아하는데
노래에 혼이 살아 있는 조용필을 더 쳐 준다
내가 처음 기차를 타 본것은 고등 학교 3학년 여름 방학때다
몇몇 친구들과 쌀을 조금씩 걷고 회비도 얼마씩 추렴해서 멋진 기차 여행을 하기로 하고 목표는 목포로 정해 강경역에서 기차를 탔다.
옥식이나 재선이나 옥선이 정학이 같이 강경으로 학교를 다닌 친구들도
나와 똑 같은 기차 목포 여행을 한번 쯤은 갔다왔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9시 40분에 출발하여 서대전 역에서 0시 50분에 홍
익회에서 파는 가락국수 한그릇 호호 불며 서서 후루룩 먹고 나서
덜커덩 덜커덩 흔들리는데로 가다 보면 오전 해뜰때 맞춰 목포에 닿는다
목포역에 가까울 수록 역사가 변변찮은 간이역 마다에서 전라도 사투리
가 세지면서 다라를 인 아주머니들과 학생들이 무지 많이 탄다
서울서 부터 달려온 기차가 새벽 차가움에 거친 호흡을 가다듬을 시간
마지막 종착역 목포가 비린내와 뱃고동 소리로 기차를 맞는다.
목포항이 가차이 있어 아침 고기잡으로 나가는 어선의 발동기 소리가
퉁퉁 거리고 갈매기 끼룩 거리는 하모니가 첨 보는 바다의 감흥을 배가
시켜준다
노적봉과 영산강 유달산과 이난영 으로 유명한 목포는 역시 항구다
노적봉을 짚으로 엮어 쌓아놓은 노적가리처럼 보이게하여 왜군을 물러가
게했다는 애교섞인 전설이 임진왜란에서 사실상 패한 선조들의 아픈
자기 변명같은 노적봉 이야기....ㅡ
목포의 눈물 만큼이나 애닯은 임진왜란 이야기
재작년에야 12척의 배로 300여척의 왜군을 물리쳤다(?)는 역사가 작난
좀 쳤다는걸 알았지만 20여년전 목포의 노적봉은 애국심의 표본이고
이순신 장군이 쌓아놓은 군량미가 저렇게 많게 보여 많은 군사가 있는
것 처럼,또한 강강술래를 보름달에 비춰보이게하여...
노적봉에 올라 저 바다 다도해 사이로 뜨는 해를 본게 장관이었지
처음 바다를 보고 기차도 첨타 보고 배도 당근 첨 타봤으니 그 감개가
어찌 무량하지 않았겠나?
도화도인가 하는 섬에가서 산낙지를 먹었던거 같은데 그날 또한 첨으로
거나하게 취해서 친구들과 신나게 노래하고 놀았던 기억이 새록하다.
지금도 그 완행 열차가 운행 되는지 모르겠지만 강경역에서 0시 50분에
출발 했는데 시간만 약 40분 늦춰졌지만 대전 부르스에 나오는 기차를
타고 밤 기차 여행을 했던 20여년 전의 목포가 그리워진다
요즘도 노래는 못하지만 옛날 노래좀 부른다하는 사람 만나면 꼭 부탁
해서 "목포는 항구다","목포의 눈물"등을 신청해 들으며 감흥에 젖곤
한다.
종이가 무척이나 귀했던 시절
딱딱한 책 받침이나 연필심에 침을 묻히지 않으면 툭툭 찢어지던 노란
학기장, 지금 같이 하얗고 좋은 종이가 있었는가?
미술시간에 쓰는 도화지야 비싸서 못쓰고 16절지라 부르던 누런 종이가
최고 였지?
일제 36년 한일협상 댓가로 고속도로 제철공장 비료공장등을 지어 부흥
의 초적을 다졌지만 거기다가 전주제지(지금 한솔제지) 또한 그다음의
큰 기둥이 아닌가?
전주시 팔복동에 전주제지가 있는데 나는 그곳에 특별한 인연이 있다
사촌 큰 형님이 팔복동 사무소에 근무를 해서 방학때면 그곳에서 놀곤
했는데 하얀 증기를 삑 삑 뿜으며 소나무를 실어나르던 증기기차의 기억
이다
웃통을 걷어 붙이고 땀을 뻘뻘 흘리며 삽으로 기차의 보일러에 조개탄을
퍼 붓던 아저씨와 바퀴와 링크에서 칙칙 쏟아내던 증기, 그리고 어디서 싣고온 나무인지 엄청나게 많은 소나무들, 기차 바퀴 레일에 대못을 놓아
납작하게된 대못칼을 가지고 놀았던 기억난다.
땔감이 부족했던 때라 전주제지에서 삶고 찌고 껍데기를 벗기고 남은
찌꺼기가 또랑으로 하얗게 떠내려 왔는데 우리는 그걸 갈퀴로 떠다가
말려서 불을 때곤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