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협조:김거민/초등학교 6년선배)
30호M짜리 그림 중에 미완성된 것은 고작 두 서너 작품뿐, 그런대로 대부분은 나름 작년 개인전에 출품되는 낙점을 받았었다. 하여튼 그 두 서너 작품 중에 포함되는 하나가 <선두리 포구>인데 오늘 스케치 갈 곳이 선두리 포구라 하니 잘 됐다 쾌재하며 볼 것 없이 그 미 완성 30호 캔버스를 일찌감치 캔버스 백에 챙겨 넣고 오늘을 기다려 왔었다. 문제는 비가 오리라는 일기예보인데 까짓 비 온다고 크게 문제 삼을 평소의 나도 아니건만 딸이 오늘 비는 황사에 방사선까지 우려되는 비이니 조심하라 일러 일단은 소용이 되든 말든 년전 현대사생회에서 개강 선물로 준 일인용 텐트까지 챙겨 넣긴 하였다.
왼쪽 어깨에는 무거운 러시안 이젤 박스가 오른 쪽엔 30호M캔버스 두 쪽이 들러붙었으니 남는 손이 어디 있어 우산을 들 수 있겠는가? 별 수 없이 작년 일요화가회가 개강선물로 준 감색 우의를 입고 기세 좋게 집을 나선다. 가히 꼬락서니를 볼 것 같으면 돈키호테가 아니고 무엇이며, 몬티 파이튼의 성배에 나오는 흑기사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양새와 다를 바 없다 할 것이다.
평소와는 그 비의 성격이 사뭇 다른 오늘 같은 날에 용감하게 사생 가겠노라 인사동까지 출장나선 화우는 32명이 넘었다.
버스가 강화 선두리 포구에 도착했을 때에는 어느덧 빗발이 수그러들고 있었다. 그러나 버스에서 내려 주위를 살펴보니 이곳은 내가 알고 있던 그 선두리 포구가 아니었다. 아뿔싸, 이를 어이하랴! 일부러 마음 크게 먹고 낑낑 들고 온 <선두리 포구>는 오늘도 그 완성의 기회를 날렸고 대신 덤으로 따라 온 엉뚱한 녀석이 등판의 기회를 얻었다. 비는 얼마 안 있어 완전히 멎었다. 나는 포구의 방파제 끝까지 멀리 나와 이젤을 폈다. 바람이 제법 세게 분다. 30호 캔버스가 바람을 얼싸 안는 배의 돛대 꼴이 되어 사뭇 위험천만임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러시안 박스의 위용을 믿고 그대로 이젤을 캔버스를 걸어 놓은 채로 놔두고 점심을 먹고 와서 보니 믿었던 러시안 박스는 볼썽사납게 뒤집혀 있고 붓과 물감 이 땅바닥에 나 뒹굴어 마치 쓰나미를 맞은 모양새 이었다.
그림은 서술이 아니다. 그냥 온 몸으로 밀어 붙임이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선두리 포구 제방에서 나는 그러한 단순 무식한 자세로 30호 캔버스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래! 어떻게 가 중요한 게 아니다. 무엇을 이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오늘 또 하나의 선두리 포구가 제작되었다. 불러 <나도 선두리>.
2011.3.20
방파제 밑까지 날아온 붓. 차암 인연도 길지....
첫댓글 오호! 애재라! 통재라!! 박교수님! 끈을 준비해 돌로 묶어 놔도 되는데!! 아님 큰돌을 박스위에 올려놓고 가심이?? ㅎㅎㅎ
아하! 석구형님! 오랜만입니다. 돌이요? 그 돌 날아가 누구 머리 박살내면? 요즘 바다 무섭습니다.
갯벌 옆, 둑 같이 생긴 곳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돗자리며, 가방, 파레트까지 모두 들썩거려서 식당의 처마 밑으로 자리를 옮겼어요. 추운 거는 괜찮았는데, 찐득한 갯벌로 날아간 화구들을 건져올 엄두가 안 나서....^^
혜원씨에게 “그 자리 참 좋습니다.” 해 놓고 난 다른데서 그림 그리고 있어 조금 미안했습니다. 言行一致가 안되시리.……
ㅎㅎㅎㅎㅎ 그냥 개구쟁이 일기 읽는듯..
개구쟁이가 개구쟁이를 알아보는 법. 맞지요?
제 눈에도 개구쟁이로 보입니다. 개구쟁이는 인생연륜에 상관없겠지여 ~ 개구쟁이 두분 ~~ ㅎㅎㅎ
여기 한 분 추가요~
형님 거제일요화가회 카페가끔 들렸다가 가셔요^^팔리만 날린다~
파리채 하나 들고 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