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움직이는 힘 -인물인가 조건인가-
역사는 인간들이 살아가는 수많은 사건들의 집합으로 구성되고 형성된다. 또한 역사적 사건은 역사를 움직이는 인물들의 행위와 역사가 만들어지는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다. 역사를 움직이는 힘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우선적인가? 이것은 역사의 오랜 논쟁 주제이기도 하다. 19세기에는 유독 ‘영웅’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견해들이 많이 등장하였다. 대표적인 영웅사관을 표명했던 영국의 칼라일은 영웅이 의지의 힘을 통해 역사를 빚어냈다고 주장하기도 했으며 이탈리아의 역사학자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는 “자신의 행위를 통해 우리의 특별한 존재를 지배하는 과거 또는 현재의 인물을 불가항력적으로 위대한 인물이라고 부르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주장은 역사는 탁월하고 비범한 존재들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암시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인류에게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준 사건의 원인을 특정인물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역사적 견해에 대해 반발하여, 역사는 결코 몇 사람의 행위와 힘이 아닌 역사적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조건과 구조 속에서 발생하였다고 주장하는 견해가 등장하였고 오랫동안 이러한 관점이 역사학계를 지배하였다. 하지만 인물보다 구조나 조건에 초점을 맞추는 견해는 역사적 사건을 실지로 일으킨 인물들에 대한 명백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점에서 분명 문제가 된다. 동일한 상황이나 조건 속에서도 모두 똑같은 사건이나 결과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건의 실질적인 결과는 조건보다는 인물의 개성적인 특징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쟁의 중심에는 20세기 최악의 지도자라 평가되는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있다. 둘다 모두 민족적 파시즘을 선포하고 국가를 집단적 광기로 몰아넣어 결국은 끔찍한 비극적인 결과로 이끈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비슷한 시기에 두 인물이 등장했다는 사실은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역사적 조건이라는 점을 말해주는지 모른다. 이탈리아와 독일은 1차 세계대전 이후 극심한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그 와중에도 기존의 정치가들은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한 채 무능으로 일관하였다. 그때 등장한 것이 폭력적인 극우세력인 파시즘과 나치즘이었던 것이다. 당시 보수적 정치가들과 권력자들은 20세기 초 러시아에서 일어난 사회주의 혁명에 더 큰 두려움을 갖고 있었고,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날 것을 방지하기 위해 결국 극우적 폭력조직과 결탁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세력에 의해 오히려 권력을 빼앗기게 되고 파시즘 세력은 자국의 이익과 민족주의적 열망 실현을 위해 유럽을 공포에 몰아넣게 된 것이다.
이들은 모두 예외적인 상황에 나타난 예외적인 인물들이었다. 무능한 국가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새로운 구세주라고 국민 다수에게 지지를 받았던 인물들이었다. 그들이 권력을 장악한 것은 기존 정치권의 무능과 사회적 혼란이라는 필연적인 상황 속에서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장악한 권력을 이용하여 유럽을 학살과 파괴의 현장으로 만들어갔던 것은 단순히 상황적 이유로만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갖고 있던 과장된 이념적 확신과 통제되지 않은 광기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적인 성격의 집단이 권력을 장악했더라도 그것이 전쟁과 살육으로 발전된 것은 집단을 이끌었던 특정 인물의 개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파시즘의 기본적인 이념은 낡은 정치 사회질서의 철저한 파괴, 민족의 재탄생과 영광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유토피아적인) 사회의 약속이었다. 문제는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이 폭력이었다는 점이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선명한 약속과 미래의 영광에 대한 제시는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낸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집단적 선전 효과는 이러한 이념을 점점 강화시킨다. 파시즘 세력은 자신들의 주장을 강화하는 한편 또 다른 방향에서는 반대 세력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폭력으로 응징한다. 그들이 핵심적인 실행원칙은 선전과 폭력인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폭력적 통치가 결코 그들이 내세웠던 사회의 안정과 민족의 발전을 가능하게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일시적으로는 혼란을 잠재우고 억압을 통해 침묵을 강요하지만,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고 폭력으로 운영되는 국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될 뿐 아니라 파국으로 무너지게 된다.
경제적 불황, 사회적 혼란, 전쟁과 기아와 같은 위기상황에서 사람들은 강력한 지도자를 기대하고 그들에게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고 지지한다. 하지만 반대 세력을 억압하고 제거하는 방식으로 국가는 정상 상태로 돌입하지 않는다. 선동적이고 폭력적인 정권이 역사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었던 사례는 없다. 그런 점에서 위기를 과장하고 선동을 앞세우며 완벽한 실현을 약속하는 세력에 대한 경계가 필요한 것이다. 문제의 해결은 사회세력간의 건강한 논쟁과 협력을 바탕으로 장기간에 걸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어려움 때문에 선택한 선동적인 인물은 결국 국가의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독벌레로 변신하는 것이다. 카리스마적 개성은 이러한 위험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결국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선택한 두 국가는 오랫동안 고통을 경험해야 했다. 어려운 상황은 특별한 개성을 가진 인물을 선호하게 한다. 이것은 치명적인 유혹이다. 선동과 광기의 개성은 광신자들에겐 일시적인 만족을 제공할지 몰라도 언젠가는 모두를 파괴하는 폭력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 역사학자의 다음과 같은 말은 우리에게 어떤 인물을 지도자로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기준을 제시한다. “필자더러 선택하라고 한다면 카리스마 넘치는 개성있는 인물은 가급적 피하고 개성은 덜 화려하더라도(모든 시민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집단토의와 건전하고 이성적인 의사결정을 기반으로 한) 실현가능하고 효율적인 거번넌스를 제시하는 인물을 택하겠다.”
첫댓글 - 정치는 지성주의의 총합이 아니다. 이기주의자들의 욕망을 부추기는, 미심쩍어 하면서도 거기에 희망을 거는, 얄팍한 인간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힘을 만들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