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 - 백승종 지음 -
대부분의 역사가들이 역모사건을 왕 중심으로 기술하는데 반해⌜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은 사건 주모자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는 점과 형사나 탐정의 기법을 도입해서 역모와 관련된 사람들의 생각과 계획을 추론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한 가지 역모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제시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그 시대를 입체적으로, 종합적으로 볼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저자는 조선의 문예 부흥기로 손꼽히는 영조와 정조 시대에 많은 역모 사건이 일어난 것에 주목하고 있다.
18세기에 들어서 역모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난 이유는
첫째 1636년 병자호란으로 정치, 경제 등 사회전반에 걸쳐서 총체적 파국이 일어난 후, 전후 회복을 하지 못하고 조선의 체재와 기강이 무너진 것이고,
둘째 서북지방 상공인들의 부와 지식이 축적되면서 성리학이념이 재배하는 사회에 대한 분노와 불만이 폭발되기 시작하였고,
셋째 사화와 반정 등으로 몰락 양반이 된 부류들이 조선 도처에서 기존의 정치체제와 왕권에 대한 불만을 가졌고,
넷째 영조의 출신이 미천하고(모친이 금구현 출신의 무수리), 이복형제 독살과 아들 살해를 일삼은 파렴치한 인간이며 정조 또한 그런 피를 이어받은 존재로서 왕이 되기에는 부덕하다는 인식이 만연되어 있었고,
다섯째 조선의 멸망을 예언하는 <남사고비결>과 <정감록>이 영∙정조시대에 민간에 유포되었으며 지배체제에 불만을 가진 세력들이 비결을 이용하여 민심을 현혹하였고,
일곱째 양란 후에 돈으로 신분을 세탁하는 면천이 빈번하게 발생하였으며 양민과 천민들의 신분제도에 대한 저항과 체제에 대한 불신이 만연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반역에 대한 기록 중에서 “김원팔 일가의 <남사고비결> 역모 사건”, “문인방의 정감록 역모 사건”, “문양해의 정감록 사건”을 선택해서 재해석을 하고 있다.
김원팔 남원 괘서 사건은 영조 9년에 남원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영조의 정통성에 대한 부정이었다. 영조는 1724년 즉위 때부터 정통성(출신, 성품 등)에 대한 시비에 휘말렸다. 그는 1728년 무신란, 1730년 나홍언의 반역 사건, 1733년에 남원 괘서 사건, 1755년에 나주 괘서 사건등 크고 작은 역모 사건으로 고초를 겪었다.
김원팔의 괘서 사건에는 김원팔과 부친 김영건, 두 아우 김원하와 김원택, 몰락양반 최봉희,
<남사고 비결>을 퍼뜨린 중 태진이 나온다.
문인방의 정감록 역모 사건은 1783년 정조 7년에 < 정감록>을 믿고 문인방 등이 역모를 한 사건이다. 서북술사 문인방과 양반 이경래 등이 충청과 해서 및 관서 지방에 송덕상을 떠받드는 무리가 많은 것을 이용하여 난리를 일으키려 했으나 박서집의 밀고로 일망타진 되었다. 문인방은 예언서 <정감록>을 믿고 왕조 교체를 꿈꾸었다.
문양해의 정감록 사건은 1785년 정조 9년 2월에 <정감록>을 믿고 비밀결사를 조직한 도인 문양해, 정조의 외척인 홍복영, 서울 명문가의 양반 이율, 술사 주형채, 홍복영의 수승인 중인 양형 등이 서울과 경상도, 함경도에서 역모한 죄로 체포된 사건이다.
세 사건을 정리하면서 저자는 역모 사건에 신분 차별 없는 평등 세상과 사화와 당파 싸움이 없는 평화 세상에 대한 민중들의 염원이 담겨있다고 해석한다. 그는 역적들이 입을 모아서 자기에게 이렇게 외친다고 하였다.
“맞아요, 백선생! 당신이 바로 내 마음을 제대로 읽은 거야. 난 중도에 잡혀 죽어도 좋으니 , 조선왕조를 뒤엎고 미륵님이 다스리는 평화와 축복의 새 세상을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그들이 진정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미륵 세상”과 “하나님 나라”를 대망해서 모의를 했는지 일신의 권력과 부귀영화를 위해서 모의를 했는지 알 길이 없지만, 비인간화되고 계급화 된 성리학 세계에 대한 도전과 저항의 물길이 여기저기서 열려서 1894년 동학 농민혁명의 바다에 이르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렇다!
역모는 기득권자의 기록대로 역모가 아니고 선각자의 외침과 저항일 수 있다.
2019.8.28.수
우담초라하니
첫댓글 희망의 메시지 ???
역모사건이 바로 독재자나. 포악한 기득권자, 부패한 정권 및 세도가 를 향한
"계란으로 바위치기"이지만 그것이 누적되어서 새 흐름을 만든다는 저자의 해석! 그런 역모사건의 정신적인 흐름과 민심이 모이고 모여서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나타났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거지. 왕정과 성리학의 계급적인 지도이념에 반기를 든 사람들이 근대정신의 맹아라는 해석에 공감. 그런 의미에서 역모사건은 민초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