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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소설가협회에서 발간한 "소설로 읽는 진주" <진주, 너여서 아름답다>에 수록된 소설가 김지연 선생의 단편소설 "옴마"를 올립니다.
단편소설 옴마 김지연
* 봄날 꽃밭의 노랑나비처럼 화사하게 차린 여자가 쇼퍼의 구석켠에 항아리처럼 놓여 있는 진주댁을 흘끔 스쳐보곤, 현관문을 소리나게 닫고 나갔다. 마지막으로 집을 나간 사람이다. 진주댁은 비로소 상체를 꿈틀거리며 작은 몸뚱이를 일으켜 쇼퍼 위로 기어오른다. 비로소 숨을 내쉴 수 있는 당신의 세상이 된 것에 희벌쭉 볼을 실룩이며 가슴께를 편다. 이어 두 다리를 쇼퍼 위로 끌어 올려 양반 앉음새를 만들며 여느 날 아침녘처럼 맞은 켠 액자 속의 노인을 바라본다. 다섯 사람이 옹기종기어우러져 미소를 머금고 있는 액자 속 중앙부의 여인을 응시한다. 아무리 두 눈 부릅뜨고 살펴보아도 젊고 아름다운데 아들은 그네가 바로 어머니 당신이라고 했다. 어저께와 그저께에도 그러했듯 진주댁은 속바지 주머니에서 손거울을 꺼내 사진 속 여인과 자신의 얼굴을 비교한다. 어림없다. 사진 속 여인은 검정 머리에 갸름하고 단아한 모습인데 손거울 안의 여자는 백발에 그나마 탈모하여 붉은 살갗이 드러나고 쾡하게 꺼진 눈과 함몰된 입술 거기다 주름이 빈 곳 한군데 없이 짜르락 깔려 있다. 마귀할멈 같다. 사진 속 여인이 슬픈 눈으로 진주댁을 바라보는 듯하여 진주댁은 고개를 외로 꼰다. ‘내가 아니야……. 아들이라 말하는 이 집의 착한 사내가 거짓말 한 것이여. 늙어 쭈글진 원숭이의 얼굴처럼 왜소하고 초라한 낯짝이, 저렇듯 우아한 여인과 같은 인물은 아닌 거여’ 그러나 나쁜 기분은 아닌 듯 진주댁의 볼이 경미하나마 벌쭘거린다. 그 때, 별안간 현관문이 거칠은 소리를 내며 벌컥 열리더니 좀 전에 나갔던 여자가 후다닥 다시 들어왔다. 곧장 안방으로 들어가 스마트폰을 바른손에 들고 나오며 쇼퍼에 엉거주춤 엎드려 있는 진주댁을 돌아보며 “나도 당신처럼 되려나봐” 했다. 그러다 두 눈을 벌려 뜨며 “어쭈, 쇼퍼에 올라 앉으셨어? 발을 씻든가 양말이라도 신든가, 더러운 발로 쇼퍼쿳션 다 버려놓찮아―. 내숭스럽기는…….” 여자가 큰소리로 내뱉곤 현관문을 다시 쾅 닫고 나갔다. 진주댁이 미처 쇼퍼에서 비껴 구석진 당신 자리로 옮겨 앉을 겨를도 놓치고 당황하여 두 다리만 쇼퍼 아래로 내리는데 여자는 속사포처럼 이미 현관 밖으로 나갔다. 진주댁은 컹컹대는 가슴에 손바닥을 붙이며 여자가 나간 문켠을 바라본다. 또 들어설 것 같아서다. 여자는 진주댁이 집안에서 가장 어렵고 긴장감을 주는 사람이다. 집안에 다른 사람이 없을 때는 사뭇 공포감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아들은 그 여자를 진주댁의 며느리이고 당신의 아내이며 손자들의 어미라고 했다. 낯설기로는 아들이라는 사내와 손자라는 두 아이와 별반다를 바 없지만 그들과는 많이 다른 그녀 면전에서는 전신이 위축되고 경직되는 신체적 증상을 겪는다. 그러한 연유를 진주댁은 알지 못한다. 진주댁이 세상살이의 제반사와 단절된 것은 작년 10월 하순경부터다. 그러니까 정확히 일곱 달 조금 더 되었다. 아들 내외가 출근하고 손자 남매를 등교시킨 후 언제나 그러하듯 설거지를 하기 위해 주방으로 향하다가 거실의 차탁 앞에서 스르르 주저앉아 버렸다. 현기증을 느낀 것도 아닌데 전신이 마비된 듯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심장이 공포감으로 벌름거려 진주댁은 가까스로 차탁 위의 전화로 아들을 불렀다. 그리고 의식을 잃어 버렸다. 진주댁이 눈을 떴을 때는 쓰러진 날로부터 사흘 후, 병실 침상에서다. 사람들이 그녀를 둘러서 내려다보며 한꺼번에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 할머니―.” 진주댁은 뜨아한 표정으로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낯설었던 것이다. “어머니! 나 아범이에요! 알아보시겠어요? 어머니, 저 어미예요, 할머니 나 현찬, 나 민찬―.” 그녀를 둘러 선 사람들은 다투어 고개들을 내밀었다. 진주댁은 여전히 그 어느 누구도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판가름이 되지 않았다. 의사가 왔다. 한숨 잘 주무시고 깨셨냐며, 여기 모인 사람들 모두 할머니 가족들이라고 했다. 점차 기억이 돌아올 것이라며 사람들을 모두 밖으로 나가게 했다. 그런데, 일곱 달이 지났어도 가족들은 물론 자신이 누구인지 친척·지인 그 어느 누구도 기억하지 못했고, 아울러 자신의 일상사와 함께 식욕도 의욕도 언어도 상실해버린 상태가 되어 버렸다. 당신의 천직이던 가사 돌보기며 손자 챙기기며 부처님 경전 읽기며 베란다의 화분에 물 주기며에서 슬그머니 손을 놓아버렸다. 의사는 말했다. 진주댁의 병명은 뇌 촬영 결과 뇌수두증과 전측두엽퇴행이 혼합된 치매(癡呆라고 했다. 치매증상을 유발하는 원인질환을 세분하면 70여 가지에 이르고 ‘알츠하이머병’과 ‘혈관성치매’가 가장 많지만 두개강 안에 많은 양의 뇌척수액이 괴어서 인지기능과 언어기능이 저하되고 신체장애까지 오게 되는데, 거기다 퇴행성의 전측두엽까지 동반되는 양상은 흔치 않다고 했다. 뇌척수막 사이나 뇌실·척수내강에 물(림프액)이 많이 고이는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치료법은 뇌를 절개하여 뇌와 척추에 쥬부를 연결시켜 림프액이 순환되게 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료법이라고 했다. 발병하던 날 전신에 일시적 마비증상이 왔을 때도 척추로 뇌속의 물을 빼내면서 몸은 풀렸지만 의식을 잃었던 것인데, 실제 물은 뽑아낼수록 더 자주 차게 되어 뇌의 전 기능이 빠르게 저하될 수 있으므로 순환료법이 최선이라고 했다. 뇌 촬영상에 나타난 증상은 실제 놀라웠다. 뇌 중앙부로 깨트리지 않은 커다란 명란젓 크기의 검은 영상이 시커멓게 가로 누워있었는데, 그것이 점차 증대되고 무거워져서 뇌의 전 기능을 상실시키며 급기야는 저능아의 상태로 대소변의 인지까지 상실하게 될 것이라 했다. 아들은 연일 눈물바람을 하며 진주댁의 수술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의외로 주치의사는 적극적이지 못했다. 수술을 한다고 상황이 호전되리라 기대함은 무리이고, 다만 현재의 상태를 조금 더 유지하는 정도의 성과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원인이 수두증뿐만 아니라 퇴행성의 전측두엽까지 복합되어 있기 때문이라 했다. 며느리의 수술 반대도 적극적이었다. 일흔이 넘은 노인에게 그나마 현재의 상황을 유지하거나 자칫 그르칠 수도 있는 난해한 수술을 굳이 큰돈 들여 감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아들은 노모가 이상 더 악화되길 원치 않았으므로 어렵지만 최선을 다해 시술해 줄 것을 의사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그런데 당사자인 노모의 거부반응이 완강했다. 아들과 의사 사이에 수술 운운의 말이 나오면 고개를 채머리 흔들 듯 두팔을 내저어 싫다는 반응을 분명히 했다. 아들의 팔을 붙들고 머리를 절개하지 말아달라는 손동작과 함께 기음을 발했다. 전신을 경련하듯 떨고 충혈된 두 눈에 눈물까지 머금었다. “아, 알았어요, 수술하지 않을게요, 그럼, 약과 식사는 절대로 거르시면 안 돼요. 아셨지요?” 아들이 노모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곡기를 끊듯 하는 그녀 앞으로 흰죽 그릇을 당겨 수저를 쥐어주곤 했다. 결국 당사자인 환자의 간절한 반대와 시술해도 큰 효과를 얻지 못한다는 의사의 담담한 낯빛에 아들은 수술치료는 접기로 하고 집안도우미 겸 간병인을 구했다. 그러나 시간제로 구한 간병인은 출퇴근이 일정치 않았고 집안은 점점 어수선해졌다. 맞벌이 아들 내외를 위해 집안 살림을 도맡아 살고 손자들의 일상까지 챙겨주던 진주댁의 발병은, 집안의 질서며 뿌리를 뒤흔들어 놓았고 손자들은 매일 아우성을 쳤다. 그러한 상황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대로 적응이 되 어갔다. 깔끔하고 평화롭던 예전의 집안 분위기는 없어졌지만 어지럽고 서툴고 빈 채로 일상은 유지되었다. 주말에는 온가족이 대청소를 하고 식탁에는 거의 반찬가게에서 사들인 음식으로 채워지고 손자들은 자유방만해졌지만 하교 후 전전하는 학원들은 요행히 잘 다녔다. 끊임없이 먹을 것 챙겨주고 간섭하고 보살펴주던 단아하고 자애롭던 할머니가, 머리숱이 빠진 엉성한 백발에 핏발 선 붉은 눈과 함몰된 입술에 심하게 쭈글진 얼굴을 하고 쇼퍼 구석에 박혀 앉아있거나 당신 방구석에 웅크리고 누워있음을 보면서, 초등학교 3학년짜리 작은 손자는 할머니가 갑자기 귀신이나 마귀 같다고 울음을 터뜨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저들을 키워준, 엄마보다 할머니에 더 의지해 살아온 탓인지 특히 작은 손자는 진주댁을 동정했다. 억지로 할머니를 식탁에 끌어 앉히고 식은 죽을 레인지에 덥혀 먹도록 한다거나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사면 나누어 주곤 했다. “할머니 나 진짜 몰라? 작은 강아지 민찬이야―. 진짜 할머니 자기 이름도 몰라? 박정자 여사야. 박정자, 따라해 봐.” 진주댁은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나 6학년의 큰아이는 달랐다. 냄새 난다 식탁에 앉지 마라, 세수해라, 눈꼽 떼라, 원숭이 같으니 의치 빼놓지 마라, 옷 좀 바꾸어 입으라, 발 좀 씻으라, 할머니는 천치 바보 멍청한 짐승 같애―, 밖에 절대 나가지 마 창피해―, 하고 싶은 말을 다했다. 그러나 집 안에 아무도 없고 진주댁만 쇼퍼 구석에 웅크려 있으면 죽 그릇에 숟가락을 꽂아 먹으라고 갖다 주기도 했다. 가끔 큰손자의 불손한 말투에 아들이 아이를 엄하게 나무라고 더러 종아리에 매질을 하는 경우 진주댁이 괴성을 지르며 아들을 만류했다. “정말, 하루도 편한 날이 없어―. 치매는 국가에서 치료해 준다던데, 요양원으로 보내자구요―.” 그날도 큰아이를 나무라는 남편을 향해 며느리가 짜증 섞어 말했다. 진주댁이 쇼퍼 구석에서 불안한 눈빛으로 앉아 있는 면전에서 큰소리로 거침없이 그렇게 말했다. 아들이 얼른 진주댁의 표정을 살피면서 며느리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 “당신 왜 그래, 어머니 앞에서.” “어때요, 들어도 무슨 소린지 알지도 못하는데―.” “아시는지 모르는지 당신이 어떻게 알아? 어떻게 당신까지 점점 어머니께 함부로 하는 거야? 우리에게 어떤 어머니신데 함부로 대하는 거야? 수차 말했지만, 나는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지 않아, 요양원에서 살아 나오는 사람 보지 못했어. 요양원에 보내는 것은 어머니를 바로 폐기하는 것과 다름없으니까, 나는 절대로 우리 어머니를 버릴 수 없어―. 부탁한다, 이제 그런 말 더는 하지 마―.” 아들은 감정이 격해 오르는지 꺽쉰 음성으로 거칠게 말하곤 방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며느리가 반사적으로 쏟아 놓을 다음 말들을 듣지 않기 위해서였다. “자신은커녕 아들도 손자도 알아보지 못하고 감정도 감성도 느끼지 못하는 목석같은 노인인데, 오히려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요양원이 본인에게 가족들에게 나을 것 아니냐구―. 점차 대소변 인지도도 없어진다는데, 간병인은 10여 일에 고작 한두 번밖에 다녀가지 않는데, 누가 치우란 말이냐구―. 옷을 벗으려 들지 않으니 속옷은 지린내로 쩔어 코를 찌를 정도고, 도무지 씻지를 않으니 온 집안이 비위생적으로 전염병이 돌 것 같단 말예요―.” 방문을 거칠게 닫고 밖으로 나왔으나 아내의 속사포 같은 말들이 한 획도 틀리지 않고 고스란히 귓속으로 박혀들었다. 아들은 서둘러 집안 대청소를 끝내고 진주댁을 화장실로 부축하려 들었다. 진주댁이 버둥거렸다. “어머니, 제발 씻어야 해요. 그래야 손자들이 좋아하지요. 자, 저하고 씻자구요.” 아들이 땀에 젖은 얼굴로 쇼퍼 구석의 진주댁을 안아들고 욕실로 향했다. 정작 욕실 바닥에 몸체가 놓여지자 진주댁은 다소곳해졌다. 아들이 노모에게 걸쳐진 상하의가 붙은 헐렁한 옷을 머리 위로 벗겨내자 뼈와 가죽뿐인 살갗이 드러났다. 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앙상했다. 3주만에 몸을 씻겨주는 셈인데 그간 너무 야위어졌다는 생각에 아들은 명치께가 쩌엉해져서 잠시 눈을 감는다. 그러다 두 눈을 부릅떴다. 피골이 상접할 만큼 야윈 것도 놀랍지만 무릎께며 엉덩이께며 등허리 등에 펴져있는 푸른 멍자국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들은 서서히 차오르는 분노를 느낀다. 지난 주말에는 당직으로 회사에서 근무했던 터라 아내 아니면 간병인이 목욕을 시켰을 것인데, 어떻게 해서 생긴 타박상의 흔적들인지 담박에 소리쳐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아들은 일단 참는다. 수건에 비누를 문대어 노모의 몸 전체를 고루 닦아준 후 미지근한 물로 비눗물을 씻어낸다. 특히 샤워기로 백발의 머리와 항문께 등을 고루 씻어주고 마른 수건으로 부드럽게 살갗을 눌러 닦아준다. 노모의 표정에 평온함이 돌면서 아들이 내미는 속옷을 구부정한 자세로 입었다. 그러나 거실로 나선 노모는 다시 쇼퍼 구석으로 찾아 들어가려 했고 아들은 그런 노모를 붙잡는다. 그리고 쇼퍼 위로 힘주어 노모를 앉게 한다. “제발 어머니, 여기가 어머니 자리예요. 예전처럼 여기 쇼퍼 위에 앉아서, 저 텔레비를 보는 거야, 이렇게 말이요. 그리고 힘들면 이렇게 여기에 드러눕는 거야, 알았어요? 저 구석으로 내려가면 안 된다구요.” 자꾸만 구석 켠으로 쏠리는 노모의 몸을 쇼퍼 위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자 노모는 몇 번이나 주방 켠에서 서성대는 며느리의 모습을 옆 눈으로 살폈다. 아들은 또 다시 낭패감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타박상 자국을 만든 사람이 아내라는 감을 다시 갖게 되지만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한다. 노모의 면전에서 또 다시 큰소리를 내면 노인에게 불안감을 줄 것 같아서지만, 무엇보다 노모의 문제로 아내를 계속 예민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모른 척 묻어버리기에는 멍자국들이 너무 컸고 큰 상처만큼 그의 마음이 탔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는 아내에게 지나가듯 말을 꺼냈다. “지난주에는 어머니 목욕을 간병인이 해드렸나?” “글쎄요, 여자가 오다마다 하니까 잘 모르겠네, 왜요?” “어머니 몸에 멍자국이 많더라구. 어디 부딪친 것인지 목욕탕에 미끄러져서 생긴 것인지 궁금해서.” “부딪친 것이겠죠. 쇼퍼 구석에 앉았다가 집안에 사람만 없으면 쇼퍼로 부르르 올라가고, 어떨 때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수십 차례 반복하고, 혼자 화장실에 들렀어도 얼마든지 부딪칠 수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군……. 간병인이 많이 바쁜가? 일주일에 두 번만 와도 주말에는 우리가 돌봐드리고 그런대로 카버가 될 것 같은데…….” “몰라요, 일이 많아서 일주일에 한 번 오기도 힘들다고 하더라구요.” “간병인을 바꾸어야 하겠군……. 당신에게 미안하지만, 어머니께 좀 더 신경 써주어요. 어쩌겠소, 부모님이신데……. 지금까지 우리 살림 다 맡아 하시면서 아이들 키워주셨는데…. 당신 알다시피 나에게는 어머니가 내 생명보다 더 소중한 분이잖소…….” “그만해요, 청상에 혼자 되어 더구나 유복자로 태어난 당신 하나 키우면서 수절하고 살아왔다는 말, 천 번도 더 들었네요. 부모 소중하지 아니한 사람 없다구요, 알았어요. 그만 자요.” 놀랍게도 아내는 더 이상 이야기를 끌려하지 않았다. 아니 반박하려 들지 않았다. 아들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며 한숨을 잦힌다. 다음날, 아들은 간병인에게 바쁘시더라도 거르지 말고 어머니를 잘 좀 보살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나 의외의 말을 들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들르는데 부인이 일주일에 한 번씩만 오게 하더니, 한 달여 전부터는 요양원에 갈 것이니 들를 필요가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덧붙여서 노인 스스로 화장실을 이용하고 손발을 씻도록 훈련이 되어야 하므로 온갖 시중을 다 들어주는 간병인의 손길은 오히려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도 했다는 것. 아들은 조금은 아연한 기분이 된다. 어떤 방법으로든 노모를 요양원에 보내버리기 위한 아내의 책략임을 깨달으면서 낭패감에 젖는다. 그러나 일단 간병인에게 의무적인 일수는 지켜야할 것 아니냐며 중전대로 아파트에 들러 노모를 도와달라고 한다. 요양원 입소는 보류하고 있다는 말로 그나마 아내의 입장을 세워준다. 간병인은 알았다며 부인에게 확인시켜 달라고 했다. 아들은 간병인과 통화를 끝내고 한동안 자리에 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간병인의 방문이 이미 한 달 전에 중지되었다면 피골이 앙상한 노모의 몸뚱이에 서린 멍자국에 대한 의혹이 다시 불거졌지만, 머리를 저었다. 걸음이 온전치 못해 이곳저곳에 부딪쳐 발생된 타박상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형상이 심하여 가슴이 탔다. 아내에게 간병인이 다시 들르게 되었음을 말하자 그녀는 “오, 이제 시간이 난대요? 다행이네” 했다. 표정 한가닥 변하지 않았다. 아들은 더 이상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따지고 들어 그녀의 거짓을 드러낸다 해도 결과는 노모에게 이로울 것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예 그녀의 책략을 들추어내다 보면 이판사판 싸움판이 벌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아내는 터놓고 요양소 보내는 일을 강하게 추진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또 한 달여가 지나갔다. 도시는 용광로처럼 뜨거워져 모두 헉헉거렸다. 폭염의 칠월이라 해도 예년에 없이 40도에 가까운 날씨는 거리의 사람들을 휘청거리게 했다. 진주댁의 몰골은 더 초췌해져 쇼퍼 구석에 처박힌 채 시체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조반 시에 아들이 떠먹여주는 미음 몇 숟갈 외에는 온종일 입 다시는 것 없이 웅크리고 앉은 채 잠을 잤다. 완전히 기력이 쇠진한 채 움직일 힘도 없는 것 같았다. 아들은 회사의 상반기 결산 때문에 마음 같지 않게 그런 노모에게 세심한 신경을 쓰지 못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만 할머니 끼니 잘 챙겨 드리라고만 부탁했다. “냄새가 집안 구석구석에 배었어, 먹은 것도 많지 않은데 똥오줌은 왜 그리 많이 싸―. 온 몸뚱이가 똥덩어리야, 기저귀가 흠뻑 젖어 범벅인데도 빼지 않으려 한다구. 의사 말 하나도 틀리지 않아, 똥오줌 마려운 것도 모를 거라 하더니, 소변만 질금거리는가 했는데, 이제는 대변까지야―.” 방안에 있는 가장이 들으랍시고 아내는 주방에서 큰소리로 말했다. 아마 어저께나 그저께쯤 아내가 노모의 기저귀 정리를 한 모양이라 생각했다. “여보 수고하셨소! 이번 주말에는 내가 목욕시켜 드리겠소.” 아들은 노모를 쇼퍼 위에 올려 앉혀놓고 출근을 했다. 회사일에 정신없이 돌아치다가도 잠시 숨 돌릴 시간이 되면 기분은 깊숙이 가라앉아 우울했다. 우려했던 노모의 증상이 이제 드디어 본격적으로 시작된 듯해서였다. 평소에도 소변은 속옷에 혹은 귀저기에 질금거렸어도 대변은 본인이 비틀거리면서도 화장실을 이용했는데 이제 그렇지 아니한 것 같아서였다. 두개강 안의 뇌척수액이 점점 많아져 뇌의 기능을 누르면서 대소변의 인지가 없어지니 자신도 모르게 그것들은 배설되어 누군가 매일 매시간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될 상태에 이른 것 같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그리도 깔끔하시던 어른이…….’ 아들은 눈물을 머금는다. 스무 살, 목씨 집안의 종부로 시집온지 이태 만에 지병을 앓던 남편을 잃고 재혼은커녕 혼자 농사를 지어 유복자(遺腹子) 아들을 키워내면서도 흐트러짐이 없던 노모였다. 고등학교를 가까스로 졸업시킨 아들이 고학으로 야간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자 시골집을 혼자 된 시누이에게 맡기고 아들과 합가하여 살림과 손자를 맡아 키웠다. 재산이라곤 선산뿐인 가난한 종가집안의 어른들이 거의 타계(他界)해 버리자 시누이와 그의 아들에게 선산자락에 개간한 밭 세마지기를 맡기고 떠나 왔던 것이다. 이렇듯 진주의 초전동에는 노모가 살던 선학산 아래의 초가집이 일흔다섯 살의 시누이에 의해 빈집이 아닌 채로 있었는데, 아들은 문득 당신이 노모를 모시고 고향집에 내려가 농사나 지으면 어떨까 떠올려 보다 실소를 머금었다. 경제적으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은행에 들어가는 아파트 대출금의 상환과 두 아들의 과외비며 생활비 등 현재의 수준을 맞추려면 아내와의 맞벌이는 부득이한 경우일 수밖에 없을 뿐더러 더욱이 아내는 결사코 하향을 찬성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노모의 상황은 점점 쇠락해져 오래갈 것 같지가 않았다. 오로지 아들 위해 당신 삶 전부를 희생한 노모에게 나머지 삶이나마 편케 해드리고 싶은데 방법이 여의치 않아 아들은 몸부림을 쳤다. 그는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집으로 향했다. 간병인이 주말 가까이 들른다니 수요일이면 노모의 몸이 많이 더럽혀져 있을 것 같아 이 날은 당신이 미리 목욕을 시키고 싶어서였다. 현관문이 잠겨 있지 않았다. 아이들이 귀가할 시간도 아니어서 간병인이 앞당겨 들렀나 보다 생각하며 거실로 들어섰다. 욕실에서 기이한 신음소리가 났다. 짐승울음 같기도 하고 비명 같기도 했다. 노모가 쇼퍼 구석에 없었다. 불길한 예감에 반사적으로 욕실문 앞으로 내달았다. 그런데, 찢어지는 소리가 안에서 터지고 있었다. “왜 처먹어―. 아들 앞에서는 곡기 끊은 듯 죽 몇 숟갈로 내숭떨고, 왜 밥솥 밥에 숟가락을 찌르는 거야―. 진짜 똥칠갑 할려고 그래―. 매일 문 열어두는데 왜 안 나가―. 나가 없어지란 말이야―. 어디든 없어져버리란 말이야―.” 둔탁한 소리와 함께 다시 짐승울음 같은 비명이 터지고 이어 욕실문이 벌컥 열렸다. 그 곳에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아내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발가벗겨져 웅크린 노모의 어깨를 발로 떠밀고 있고, 노모가 두 손을 싹싹 부비고 있었다. 순간, 소스라치게 놀란 아내가 얼른 발을 거두며 반사적으로 욕실문을 닫으려 했다. 눈만 벌려 뜨고 숨을 멈추고 있던 아들이 아내의 팔을 나꿔채 밖으로 끌어내며 양쪽 뺨을 두세 차례 후려쳤다. “너…… 이런 여자였어? 어서…… 내 앞에서 꺼져……. 내가, 무슨 일 저지를지…… 몰라……. 죽고 싶지 않으면…… 꺼져…….” 눈동자의 초점이 파르르 전율하며 납빛이 된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아내는 뒷걸음질을 치다 현관 밖으로 뛰어 나갔다. 아들은 부들부들 온몸을 떨며 욕실로 들어가 노모를 끌어안는다. 커다란 소리로 울음을 터트린다. “옴마, 옴마 미안하요―. 울 옴마를…… 울 옴마를……. 옴마― 오옴마―. 으흐흐…… 으흐흐―.” 노모는 조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쭈글진 얼굴에 가득 서려있던 공포감은 스러져 있었다. 아들은 시종 꺼이꺼이 울며 노모의 몸을 샤워기로 행궈주고 거실 쇼퍼로 안고 나와 물기를 눌러낸다. 미처 가시지 않은 멍자국이 아직도 질펀한데 바로 이날 받은 주먹 타박의 흔적은 선홍색으로 전신에 깔려 있다시피 했다. 사나흘 후면 뼈가죽 뿐인 몸뚱이에 또 다시 시퍼런 멍자국으로 난자질이 된 것이었다. * 뜨거운 한낮이었다. 마당가의 소태나무에서 매미들이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귀가 울릴 정도로 소리들이 커서 아들은 찌푸린 얼굴로 진초록 잎새가 무성한 소태나무를 쳐다보는데, 진주댁의 얼굴에 화색 기운이 돌았다. 그랬다. 노모는 소태나무를 고개를 외로 꼬듯 쳐다보며 입귀를 실룩거렸다. 새로운 반응이 었다. “하이고…… 진짜로, 우리 성님 맞나? 이기 무신 꼴이고……. 세상에…… 사람이가 해골이가…… 아히구 성님…….” 진주댁보다 두 살이나 많은 그러나 손위 오라버니의 아내인 그녀를 맞이하던 시누이 노인은 비명부터 질렀다. 그리고 울음을 터트렸다. “장조카야, 성님 와 이 모양이고? 정신줄 놓았다 소리 듣고 가본다 가본다 카믄서 몬가봤는데, 병든 지 일년도 안 됐는데 성님 와이리 됐노? 눈만 감으먼 송장이네…….” “제가 잘 못 모셔서 그러니, 고모가 좀 돌봐 주이소.” “진작 뫼시고 내려오제 그랬나, 알았다, 성님캉 내캉 죽을 때꺼정 동무하고 살믄서 내가 돌봐줄낀 게 걱정 말거라, 세상에 그리도 곱던 사람이…….” “이제 재검진을 해서 3급을 받으면, 요양사가 일주일에 두세 번은 와서 도와드리도록 할 겁니다. 그냥 고모님만 믿습니다.” 노인은 진주댁이 쌓인 한(恨)이 많아 몹쓸 병에 걸렸을 것이라며 꺼질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진주댁은 지팡이에 의지하여 구부정한 자세로 마당 가운데에 선 채, 연신 소태나무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 무어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아들이 환한 낯빛이 되며 노모의 팔을 붙들었다. “어머니! 여기가 어딘지 아시겠어요? 여기가 어디예요?” 노모가 아들을 바라보았다. 웃을 듯 말 듯 입귀를 실룩거렸다. 이어 옹달샘이 있는 뒤란 켠으로 몸을 돌려도 보고 디딜방아가 있는 헛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장독 둘레 화단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봉선화와 맨드라미, 지붕 위를 타고 올라간 박나무 줄기를 고개를 들어 눈부신 듯 쳐다보더니 또 다시 입귀로 중얼거렸다. “여기가 당신이 사십 년 몸담고 살던 집인 줄 알것는갑다! 보소 성님, 여그가 성님 집인 줄 알겄소?” 진주댁의 팔을 붙들고 고모가 큰소리로 물어보자 진주댁이 한참만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은 감동하여 우선 노모를 마루에 오르게 하고 고모가 금방 생수로 타내온 미숫가루 컵을 들어 노모의 입술에 대준다. 노모는 바른손으로 그것을 받아 천천히 몇 모금 마셨다. 집을 떠난 지 12년 만에 찾아왔어도 드디어 기억을 떠올리는 노모의 반응에 아들은 한 가닥 희망을 찾는다. 가슴에서 희열 같은 뿌듯함이 차오르고 쩡한 감동이 왔다. 시집와서 40여 년 살던 곳을 기억한다면 당신이 누구인지, 또한 가족도 알아볼 수 있을 것이고 따라서 당신의 여생을 막막한 어둠 속에서 살지는 않을 것이라 믿었다. 경이로운 일은 노모에게서 매일매일 조금씩 일어났다. 충혈된 쾡한 눈동자에 가득 서려있던 공포감과 두려움은 점차 가셔지고 표정이 편안해졌다. 시누이가 정성껏 쑤어주는 죽을 조금씩 이나마 거르지 않고 먹었고 점차 그 양을 늘려갔다. 걸음걸이는 여전히 편치 못했지만 뒷간을 찾아 마당으로 내려서기도 했다. 시누이가 커다란 사기요강을 들이밀며 당신이 치워줄 것이니 거기에 볼일을 보라고 했다. 진주댁이 입귀를 실룩이며 그것은 사용하지 않았다. “고모! 다음번에 휴가 받아 와서 부엌도 입식으로 개조하고 마루 끝방을 화장실로 만들어줄게요. 뒷간이 마당 끝이니 너무 멀고 매번 요강에 일 본다는 것도 고모가 너무 힘들어서 안돼요. 1회용 기저귀는 차고 있으니까 크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내 걱정은 말거래이. 성님 있어 유복자 우리 장조카 낳아주고, 목씨 집안 씨줄 이어주어서 얼매나 고마운 은인인데……. 뿐이가, 자기도 청상과부믄서 혼자된 나를 올매나 챙겨주고, 내가 늙어서 이렇게 편키 사는 것도 다 장조카와 성님 덕인데, 내가 진 빚 갚을 끼다.” 노모를 시골집에 모셔 놓고 사흘째 되던 날, 상경할 준비를 끝낸 아들은 고모에게 거듭 노모를 부탁하며 곧 다시 하진 할것을 말한다. 그리고 디딜방아 앞에 선 채 발 놓는 가랑이 나무판을 쓸어보고 있는 노모에게 곧 다시 내려오겠으니 고모와 잘지내시라고 말했다. 노모가 어여 가라는 듯 쭈글진 손을 두세 번 쳐들었다. * 아들은 아파트를 부동산에 내 놓은 지 5주 만에 매각했다. 집값의 절반이 넘는 은행 대출금을 갚아버리고 변두리의 연립주택 2층을 매입하여 이사를 했다. 아이 둘도 전학을 시켰다. 아내는 노모를 학대하던 그날로 집을 나간 후 한 달여 계속 소식이 없었다. 아이들은 부모가 뜻이 맞지 않아 당분간 별거를 하 는 것으로 이해하는 듯 보였으며 아버지의 표정이 워낙 경직되어 연유를 물어보지도 못했다. 아들은 아내의 행위를 어떤 측면의 상황으로도 이해를 할 수가 없었고 용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아이 둘을 생각하여 존속학대로 고발을 하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집을 팔고 집을 구하고 이사하는 등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서도 고향집의 고모가 들려주는 소식은 반가웠다. “장조카냐? 오늘은 성님 손에 봉선화 물을 들여 주었는데, 세상에 아이처럼 좋아한다이! 양은 적지만 옛날에 먹던 장떡 같은 거 지졌더니 글씨 그것만 갖고 잡숴야!” “내려올 때보다 성님 몸에 쬐끔 살이 들어간 거 같다. 십리나 들어갔던 눈도 좀 나온 거 같고 밥 묵기 전에 손도 잘 씻는다. 아니다. 아즉 자기가 누군지는 모리는 거 같고……, 나도 몬 알아 보지만 쬐끔도 경개(경계)하지는 않는다. 성님이 초전의 우리 목씨 집안으로 시집오기 전에 읍내 옥봉동에 살았다 아이가. 내가 무신 이야기 끝에 남강 뒤비리(뒤벼리)란 말이 나왔는데, 글씨 성님이 눈을 번쩍 뜨더라, 그래서 뒤비리 알겄소 물은깨네 고개를 끄덕거리더라. 장조카 내리오믄 혹시 정신이 돌아올란지 성님을 그리 한 번 모시가 봐라.” * 처서가 지나자 아침저녁으로 기온은 달라졌다. 아들은 열흘간의 휴가를 받아 시골집 안방에 기름보일러를 놓고 주방 개조와 수세식 화장실을 만들었다. 3대가 살아온 옛집을 그대로 두었던 터라 어차피 한 번 개조는 해야 될 형편이었고 워낙 사전준비가 치밀했던 탓에 생각보다 빠르게 큰일들을 끝낼 수 있었다. 노모의 상황은 많이 좋아져 있었다. 아들의 말이라면 무슨 내용이든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표시를 했다. 하향한지 한 달여 사이에 고모 말처럼 노모는 살이 좀 올라 있었고 몸도 손도 깨끗해지고 입성도 밝아져 있었다. 쪄들었던 표정은 간 곳 없고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병들기 이전의 노모 모습이 아 쉬운 대로 조금씩 드러나고 있음을 보면서, 아들은 늙은 고모의 두 손을 모두어 잡고 고맙다는 말로 진정어린 인사를 한다. 집 개조 공사가 끝난 다음 날. 고모의 권유대로 그는 두 노인을 함께 차에 태우고 진주 내성(內城)에 있는 ‘촉석루’로 갔다.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강물에 뛰어든 의암(義岩)을 바라볼 수 있는 촉석루의 난간으로 오르자, 노모의 표정이 감회에 젖는 듯 눈시울이 고즈넉해졌다. “어머니! 여기가 어디지요?” 노모가 애잔한 눈길을 강물 쪽으로 향하며 두세 번 손짓을 했다. 노모의 머릿속으로 혹여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낀 논개가 왜장 ‘게야무라 노구스케’의 열 손가락과 마주 깍지 끼고 촉석루 아래의 바위벼랑으로 춤추며 내려가 의암으로 건너 뛰어 푸른 강물 속으로 뛰어드는 그림이 펼쳐지는 것인지, 노모는 한동안 넋 나간 듯 서 있었다. 아들은 진정 노모의 머릿속에 그런 변화가 일어나기를 원했다. 아들의 집요한 궁금증에 시원한 반응을 준 것은 아니지만 노모의 눈동자에서 그녀가 이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다만 느낄 뿐이었다. 아들은 노모를 다시 차에 태우고 옥봉동 둑길에 올랐다. 도시계획으로 주변의 동네가 옛날과 많이 다른 상황이었지만, 남강변의 높은 둑길은 옛 그대로였다. 어릴 적 어머니의 손을 잡고 소싸움 씨름판에 구경 나왔던 경험을 떠올리며 아들은 노모의 표정을 살핀다. 강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아들은 두 팔을 벌려 심호흡을 하며 강변의 백사장을 향해 노모를 돌려 세운다. “어머니, 저 모래사장 봐요, 저기서 가을마다 소싸움 씨름판이 신나게 벌어졌잖아요! 씨름대장 진주 점배, 배가 만삭의 여자처럼 불룩해가지고 황소 한 마리 상으로 끌고 진주 시내를 누비던 거인 진주 점배, 생각 나십니까요?” 노모의 얼굴에 분명히 웃음 기운이 돌았다. 기억이 떠오르는 것일까. 씨름꾼 진주 점배는 아이들에게는 영웅이고 시민들에게는 자랑이었다. 씨름판에서 진주 대표로 매년 황소를 타서 그의 모습을 떠올리는 자체만으로 웃음이 머금어지는 인물인데, 노모의 얼굴에도 선명치는 않으나 미소가 폈던 것 같았다. 아들은 신명이 나기 시작했다. 옥봉 둑길의 끝점에서 자연스레 이어지는 뒤벼리 벼랑길로 차를 몰아 들어갔다. ‘뒤벼리’는 깍아지른 산벼랑 아래로 오솔길이 있고 길 아래가 바로 강물인, 경치가 빼어난 곳이었다. 그러나 옛날과는 달리 길이 넓혀져 있고 도깨비가 출현한다던 길 중간의 정자나무는 버혀지고 없었다. 계속 차장 밖을 내다보던 노모가 어느 지점에선가 짧은 소리를 발했다. 차를 멈출 수가 없어 그냥 서행 운전을 하는데 노모의 시선을 쫓던 고모가 성님이 ‘처녀골’을 본 것 같으니 차를 세워보라고 했다. 외곽으로 차를 세우고 노모를 차 밖으로 부축했다. 고모의 말이 맞았다. 산벼랑이 끝나는 지점에 처녀무덤들이 있다는 골짜기가 있었고, 노모는 분명히 그 지점에서 반응을 보였으며 차에서 내린 그녀의 시선이 바로 그 골짜기에 박혔던 것이다. “아 어머니, 처녀무덤들이 있는 처녀골, 기억나셔요? 한밤중이면 처녀 귀신들이 강가로 내려와 노래를 부르며 빨래를 한다는, 바로 여기 이 물가에서 말예요!” 노모의 시선이 물가의 반석 위를 맴돌았다. “맞아요! 맞아요! 처녀귀신들이 저기 저 반석에서 노래 부르고 깔깔 거리면서 빨래를 했다고 옛날에 어머니가 저에게 얘기해 주셨거든요!” 아들의 흥분된 음성을 들으면서 노모는 이렇다 할 대답은 물론 없었다. 그러나 상기된 낯빛으로 골짜기와 포장된 도로 아래 물가의 반석을 오래도록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들은 노모를 다시 부축하여 차에 오르게 하고 이날은 그 정도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노모의 기억을 되찾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는 확신감을 가졌다. 노모가 성장한 옥봉동 주변의 향교(鄕校)며 기생조합이 있던 권번(券番)이며 ‘말띠고개’ 대숲 윗길의 외딴 국수집이며, ‘큰들’ 모래흙 땅의 딸기밭이며, 지금은 진양호에 잠겼지만 너우니 뱃가의 모래찜질이며, 또한 노모의 모교인 봉래초등학교며, 비봉산 아래의 진주여자중학교며, 그녀와 인연된 곳을 두루 찾아 볼 계획을 세웠다. 뿐만 아니었다. 진주대첩의 영혼들이 모셔진 삼장사며 호국사며 왜구의 침투를 감시하던 서장대 북장대 남장대며, 대첩 때 사망한 민관군민 7만여 명의 영혼을 위로하는 유등(油燈) 띄우기며, 노모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무한정이기 때문이었다. 뇌수두증과 전측두엽퇴행의 혼합원인으로 인지기능과 언어기능 청력기능 신체장애의 기능까지 손실되었다 해도 고향 옛집으로 하향한 이후의 노모는 확실히 다른 모습과 반응을 보였기에 희망적이었던 것이다. 실제 임상적 판단은 어떠할지 정밀한 뇌촬영과 전문의사의 재진단이 내려져야 하겠지만, 아들은 분명히 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고향에는 존재한다는 생각을 했다. 때묻지 아니한 유소년 적부터 정신과 육신에 흠신 저려진 고향의 정령(精靈)이 과학의 이론적 근거를 상쇄해버릴 수도 있을 것이라 믿었다. 태생지의 토양과 바람과 햇살과 수질이 형성해 놓은 유기체(有機體)에 개인의 감성적 성향이 투여되면 새로운 형체의 경이로운 생명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믿음이 아들의 머릿속을 연일 꽉 채웠다. 알 수 없는 오열이 목구멍으로 쉼 없이 차올라, 아들은 자주 헛기침을 했다. * [작가 노트] 진주, 정신이 살찐 영원한 구원의 요람
1942년 진주시 초전남동에서 태어나 진주 도동초등학교, 진주여중, 진주여고를 졸업하고 대학 졸업 후 다시 하향하여 직장생활 3년여 통합 26년을 고향에서 살았다. 진주는 필자의 태알자리면서 정신이 살찐 영원한 구원의 요람이다. 산천이 변하고 도시는 수많은 낯선 사람들로 꽉 차 있지만, 그리고 고향 떠난 지 40여 년이 흘렀어도 진주는 내 가슴의 소중한 처소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힘들 때 그 처소 안에서 쉰다. 힘을 얻고 위안을 받는다. 유년 소녀 적의 신선한 기억이 세월 더할수록 감동으로 다가온다. 초등학교 동창 한 명이 정신줄을 놓은 구순의 노모를 뫼시고 고향의 선산을 찾았는데 촉석루가 보이는 철교를 지날 때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던 노모가 “이아미…… 철구다리……”라고 중얼거렸다고 했다. 자식도 알아보지 못하는 노모가 의암(義岩)과 철교(鐵橋)를 기억해냄을 보고 놀랐다는 동창의 말을 듣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형체를 알 수는 없지만 분명히 고향에는 신비한 정령(精靈)이 있어 노인의 뇌며 심경을 자극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노인이 평생을 몸 부비고 살아온, 발 닿는 아득한 옛 자리마다 정령은 서리어 노인을 깨어나게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작품 ‘옴마’의 발원 동기이다. 4, 5년 전에 고향 가까운 산청군 시천면에 황토집을 짓고 한 달이면 두세 차례 내려가 진주와 덕산을 오락가락 고향의 기(氣)를 받고 산다. 그래선지 노년이 아직은 분주하지만 평화롭다.
김지연 진주 출생 서라벌예대 문창과 196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1968년 <현대문학> 천료 저서 『산울음』, 『산정』, 『야생의 숲』, 『히포크라테스의 연가』, 『씨톨』, 『생명의 늪』, 『명줄』 등 30권 한국소설문학상, 월탄문학상, 채만식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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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너무나 가슴 와 닿는 절절한 얘기에 먹먹해 집니다.
" 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고향에는 존재한다는 생각을 했다. 때묻지 아니한 유소년 적부터 정신과 육신에 흠신 저려진 고향의 정령(精靈)이 과학의 이론적 근거를 상쇄해버릴 수도 있을 것이라 믿었다."
아들의 생각이 곧 나의 생각입니다.
고향의 정령이 치매든 노인네에게도 치료효과 만점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