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연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대체적으로 24세에 즉위하여 66년간
통치한뒤 90세에 죽은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사이 첫 번째
왕비 네페르타리와 여러명의 왕비 및 측실과의 사이에서 현자(賢者)로써 명성이 높았던 카엠와세드, 후계자였던 메르에프타하을 시작으로
매우 많은 자식들을 낳았다고 전해진다. 일부에서는 그들 대부분이 양자이며 왕의 아들이란 칭호를 하사받은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무엇보다 람세스왕의 전용 활이라 불리는 커다란 강궁이 남아 있는데, 왕 이외에는 아무도 당기지 못했다는 일화가 있을정도로 뛰어난 전사였던 그가 많은 자식을 남기지 않았다고는 생각되지
않아, 역시 그들은 왕의 친자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치세 전반기에는 히타이트와 팔레스타인을 사이에 두고 세력을 다투었다. 기원전 1286년카데쉬전투에서 직접 출정하여 히타이트 왕 무와탈리 2세와 전투를 벌였다. 이집트는 카데쉬 전투에서 거짓정보에 속은 결과, 주력 군단이 괴멸당할정도의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람세스 2세의 무용에 의해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히타이트 세력을 팔레스타인에서 몰아내지는 못했다. 양쪽은
서로 상대를 물리치지 못하고, 장기간 전쟁을 계속하던 중 람세스 2세의
재위 21년째인 기원전 1269년에 이집트와 히타이트 사이에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휴전하였다.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 왕녀을
왕비로 맞이하였다. 이것은 세계사에서 최초의 평화조약이라 평가했다. 또한
카데쉬 전투에 대한 람세스 2세의 승리선전은 이집트군의 군사제도 개혁을 방해했기에 훗날 재앙의 불씨로
남게 되었다.
람세스 2세는 또한
나일 제 1강을 넘어 누비아로 원정을 떠났다. 람세스 2세는 전승 기념비을 많이 세웠고, 현재도 기념비의 상당수가 남아있는
파라오가 되었다. 누비아는 후에 이집트에 동화되어 본가 이집트의 쇠퇴을 구원하는 형태의 왕조을 세우게
된다.
업적
그는 히타이트와 전쟁을 벌이기는 했지만 실리를 추구할 줄도 알아서
히타이트와 휴전을 맺어 50년 동안 평화를 유지했다. 또한 아부심벨신전, 카르나크신전, 라메세움등의 거대한 건축물을 이집트 전역에 건설하기도
했다. 고대 파라오들에게 있어 자신의
업적을 후세에 알릴 수 있는 건축물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성경에서의 람세스 2세
구약 출애굽기에 람세스 2세가
등장한다. 람세스 2세는 모세와 함께 세티 1세의 밑에서 영재교육을 받았으며 모세와는 시종일관 파라오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람세스 2세가 20대
초반이던 시기에 모세는 40살이였는데 이 무렵 모세는 동족인 이스라엘 민족이 노역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는
감독을 쳐 죽여 혁명을 획책하였다. 하지만 모세의 지지세력이 없었기 때문에 모세는 파라오 계승권을 박탈당한
채 광야로 도주했다.
그 이후 람세스 2세가
파라오로 즉위하였으며 모세가 감독관을 쳐죽이고 도주하던 시기로부터 40년 후 모세는 야훼의 명령에 따라 다시
람세스 2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람세스 2세가 노동력 손실을 우려하여 해방요구를 거부하자 모세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10가지 재앙을 일으켜 굴복시킨다. 그래도 람세스 2세가 모세의 요구를 거절하자 모세는 그냥 자기 민족들을 이끌고 도주하였으며 람세스 2세는 이를 추격하지만 모세가 홍해를 둘로 나누고 동족들과 함께 건너면서 갈라졌던 홍해가 다시 합쳐지자 더 이상
추격하지 못했다.
모세
모세는 구약성서의 출애굽기에 나오는 지도자이자, 예언자(預言者)이다. 모세의 본명은 요김으로 '야훼께서 세우신 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모세'는
이집트의 공주가 지어 준 이름이다.
모세와 출애굽 사건
모세의 유년 시절
요셉총리의 별세 이후 이집트에는 요셉의 행적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조가 등장했는데, 이 왕조에서는 소수민족인 유대인에 대해서 적대적이었다.그래서 중노동을 시키고, 온 백성에게 명을 내려 인종말살을 획책하였다. 히브리 산파들에게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죽이라고 했는데 이들은 하느님을 경외하여 거부하자,사내아이들은 강물에 익사시키고
여자아기만 살려두는 유대인박해를 실시하였다. 이때
태어난 사람이 모세이다. 모세는 어머니와 누나 미리암(후에
여자 예언자즉, 여자 설교자가
된다.)의 기지로 겨우 살아남았다. 아기를 더 숨겨둘 수
없게 되자 왕골상자를 얻어다가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그 속에 아기를 뉘어 강가 갈대 숲 속에 놓아두었는데, 마침
파라오의 딸이 강에 목욕하러 왔다. 공주는 모세가 유대인인 것을 알았지만, 측은지심이 들어 키우고자 했는데, 숨어서 이 광경을 보던 누나 미리암의
제안으로 모세의 어미가 유모 일을 하게 되었다. 공주는 모세를 양자로 삼았고, 강에서 건진 아이라는 뜻으로 모세라고 이름도
지어주었다.
모세의 미디안 생활
40세가 된
모세는 동족인 이스라엘 민족이 노역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는 감독을 쳐 죽여 혁명을 획책하였다. 하지만, 지지세력이 없어서 실패하자 이집트와 가나안의 중간지대인
미디안으로 피신한다. 망명자가 된 그는 미디안종교의 사제인 이드로의 딸과 결혼하여 40년간 살면서 이드로의 영향으로 종교지도자로서의 소양을 익혔다. 그
실례로 소위 모세 5경이라고 불리는 레위기를 보면 제사법 및
종교건축에 대해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저절로 불이 타오르는 초자연현상(엘모의불)을 계기로 야훼를 만난 그는 민족을
구원하라는 명령에 따라
파라오와 대결한다. 파라오가 노동력 손실을 우려하여 해방요구를 거부하자 모세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10가지 재앙을 일으켜 굴복시킨다.
광야 생활
이집트에서 탈출한 모세는 불평불만이 심한 백성들과 논쟁을 벌이며, 광야생활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야훼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으로 이집트군대에서 구원했고, 비로소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훼께서 그 큰 팔을 펴시어 이집트인들을 치시는 것을 보고 야훼를 두려워하며 야훼와 그의 종 모세를 믿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불평은 그치지 않았고, 그때마다 하느님은 만나등을
내려주며 야훼공동체가 실천해야 할 평등을 익히게 하였다.
성서고고학에서 보는
출애굽 사건
출애굽기에 나오는 기적을 실제 초자연적인 역사가 아닌 자연현상이라고
보는 성서고고학자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이들은 고대 이집트가
암흑에 빠져들었다는 9번째 재앙의 경우 당시 그리스의 산토리니 화산분출로 인해 퍼진 화산재의 영향이라고 분석한다.
십계명
이집트에서 탈출한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은 40년간 사막을 여행했으며, 십계명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았다. 물론 모세가 받은 십계명은 처음부터
열 가지 계명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기독교 교파마다 계명의 분류가 다르다. 루터교와 로마가톨릭에서 사용하는 십계명은 1계명과 2계명이 분리되어 있지 않지만, 성공회와 개신교에서 사용하는 십계명은
분리되어 있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는 못했는데, 모세가
해야 할 일은 민족을 구원하는 일이었지 가나안 입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나안의 입성은 후계자 여호수아가 이루어냈다.
모세의 저작
모세는 모세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기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신명기 34장에 그의 죽음에 대해 언급되어 있기 때문에, 진짜 모세가 신명기의 저자인지는 논란의 대상이다. 그러나 신명기 1장 1절은 신명기의 저자가 모세임을
밝혀 주고 있다. 문서설에 따르면 신명기의 원저자는 모세이나, 모세가 죽은 후에 모세의 죽음에 대한
신명기의 기사를 모세의 후손들이
첨가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