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수필가 황덕중(강원수필문학회이사)
산실에서 터져 나오는 고고(呱呱)! 그 소리를 소음으로 들을 사람은 없다. 환희요 축복이다. 지나가던 사람도 박수로 축복한다. 산모의 아픔쯤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아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음 같은 산고를 단말마로 인내한 산모조차도 덤범벅이 된 얼굴에 환한 웃음뿐이다.
하늬바람이 다 가시기 전인데도 새 둥지에서는 은밀한 줄탁음 뒤에 새 새끼, 잘퍽한 숲속에서는 지렁이의 소리없는 생식, 이들도 모두 우리의 산모들만큼의 아픔을 인내하며 새 역사를 짓는다. 들고양이도 산짐승도 그렇다.
풀은? 풀도 나무도 흔적만 짓고 소리는 없는 산통(産痛)으로 새 생명을 지표 밖으로 내민다. 그러나 그들의 아픔을 보라. 모루처럼 굳어버린 흙바닥을 아니 바위틈새를 , 뚫고 찍고 그들은 새의 혓바닥보다도 더 보드라운 속잎을 밀어낸다. 참으로 잔인한 짓을 그들은 자행하고 있다. 전신 마취를 하고도 고통을 느낄 대 수술을 그들은 봄마다 어김없이 자행한다. 그냥 아프다기보다 찔려 죽을 지경인 이 봄을 그들은 그렇게 새순으로 꽃으로 장식한다.
새순으로 꽃으로 장식되는 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 만들어지기까지 그 뒤에 숨은 아픔은 헤아리기 힘들다. 어느 하나도 아픔없이 우리들 눈앞에 연출되는 것은 없다. 아픔 뿐이 아니다. 수많은 희생을 디디고 올라오는 것들이다. 그 하나는 열 아니 수천만의 순사(殉死)를 밞고 올라온 것들이다.
봄은 온통 지표 밑에 임부(姙婦)의 예민함과 산부의 고통을 묻고 있다. 또한 잔설이 일구는 바람 끝의 칼날 같은 예민함을 지표 위에 덮고 있다. 지난해 가을부터 잉태해 온 새 생명들의 태교를 위한 조심성, 예상되는 산통을 위한 예민함이다. 그 예민함의 칼날에 찔려 많은 사람들이 폐렴으로 죽기도 한다. 그래도 봄바람의 탓으로 여길 뿐 억울해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모두가 새 생명의 점지를 위하여 즐거운 아픔 쯤으로 치부하고 넘어간다. 무수히 찔리고 다치고 심지어는 죽음을 당하고도 참는 것이다. 제왕일지라도 그 앞에서는 어쩌지 못한다
하나의 생명은 알고 보면 수 천, 수만 아니 수억 개의 동족을 희생시켜 자신의 자양으로 삼아 곳아 솟아오른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 하나의 탄생을 축복해야 한다. 온 산과 온 들이 깡그리 그런 새 생명으로 뒤덮이고 그 생명을 이 몸뚱이에 가시로 옷을 해 입고 접근을 못하게 하고 ,꽃피고 열매 맺어 다시 또 그런 엄청난 희생을 짓밟고 올라 올 탄생을 꿈꾼다 해도, 우리는 그 잔인성을 탓하지 못한다. 4월이 잔인한 달이라고 한 말의 의미를 이제야 어렴풋이나마 깨닫는 나는-.
일 년이 모두 가을의 결실을 위하여 총력을 기울여 만물의 성장을 도모하고 응원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게 아니다. 일 년은 봄에 돋아나는 새 생명을 위하여 갈무리하는 일에 모든 것을 바친다. 열매를 여물려 땅에 묻고, 알을 수정시켜 지온(地溫)에 맡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양의 열매와 수정란이 혹한의 동토를 견뎌내야 한다. 그러고는 봄에 그 몇 억분의 일만이 살아남아 해토를 뚫고 발아한다.
그러나 봄은 그 발아를 모두 쉽사리 용납하지 않는다. 춘설로, 꽃샘 추위로 사정없이 그들에게 시련을 안긴다. 가뭄도 있고 이상 고온도 있다. 봄의 잔인함은 끝이 없다. 그러나 그 인정 없는 봄의 잔인함은 그들을 강인하게 키우는 가장 영양가 있는 자양분인지도 모른다.
동물의 봄은 언제인가? 이빨도 없이 엄마의 젖을 빨며 엄마의 가슴속을 덮개 삼아 잠자는 유년기아 겨울이라면 범식의 욕구로 혈기 충천하는 시기가 봄일 것이다. 그들은 목숨과도 같이 소중히 간직해 온 처녀성과 동정을 인내의 한계를 허물어 버리는 여우짓 같은 봄볕의 충동질에 못 이겨 혼연히 잉태 행위에 맡겨 버리고 만다. 수억 분의 일 밖에 잉태의 가능성이 없는 잔인한 결과도 부끄러워하거나 허무해 자지 않는다. 봄은 이토록 인정머리라곤 눈꼽 만큼도 없는 자신의 행위를 살랑거리는 훈풍으로 현란한 꽃으로 장식하여 잔혹사를 이어가고 있다.
인류 역사도 그렇다. 억압의 세월을 벗어나기 위한 함성도,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노도의 물결도 더 잘 살기위한 푸른 혁명도, 대부분 새봄의 벽두에 그 잔인한 봄기운을 빌어 많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벌여왔다.
봄은 짐짓 꽃으로 잎으로 부드럽고 아름다운 듯하지만, 기실 지난 일 년 내내 갈무리해 온 힘을 새 생명으로 분출하는 강하고 억센 힘의 계절이다. 새싹이 돋아나는 희망의 계절이라는 단순한 의미에 앞서, 희생의 아픔이 구천으로 구천으로 응어리져, 그 응어리가 분출하는 자양과 열기를 힘으로 하여, 따스함으로 보드라움으로 설렘으로 뭇 생명을 지어내는 계절이다. 땅속에서 땅위에서 공중에서 잔혹한 희생을 디디고 삼라만상이 새싹을 틔워 만화경을 연출하는, 희생의 계절, 탄생의 계절, 신비의 계절이다.(끝)
*봄을 노래하기 전에 봄이 온갖 고통과 아픔을 인고하면서 맞이한 봄의 새싹들-,
우리 인간도 하많은 고통,억압을 참아내며 새봄처럼 분출하며 인류역사는 발전을 해 옴을
봄을 맞은 작가의 봄맞이 관점에 견주어 우리 인류 역사를 돌아본 수작.2019 .3월호-257P 축하!!
이사회가 끝나고 제자와 선 황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