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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불교의 죽음관과 티벳불교의 죽음관의 전개/펌글
제 4부
(死)죽음에 임하는 자에 대해서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많은 인간과의 만남과 재화를 소유한다. 그러나 죽을 경우 이 모든 것은 가치가 없는 것이다.
인간은 이를 가지고 떠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죽는 인간은 오직 영혼인 진정한 자아만을 가지고 떠난다.
인간이 죽어갈 때 그는 그 어떤 이승에 대한 집념과 아집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 집념과 아집, 즉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가지고 있는 물건에의 욕심, 이루고자 하는 일에 대한 집착, 등 비록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던 부정적인 것이던 사후의 순수한 영혼에 욕망이 되어 업과의 관계로 이끌려 지게 되기 때문이다. 30]
인간은 스스로가 죽음에 임박했음을 알 수 있을 경우 미리 슬픈 이별의 인사를 끝내고 재화를 청산하며 이승에 아무런 미련이 없어야만 한다.
죽음에 임박할 경우 친지나 가족들이 옆에 있는 것은 사자의 미련을 불러 일으켜 환생의 길로 접어들게 함으로 금지하는 것이 좋다.(죽은자은 임종시에는 가족들이 그 곁에 있는 것은 죽은자(영혼)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것과 같다 사자의서는 환생의 장애물로 여겼다.31]
그러나 그의 정신적 僧(승) ‘포와 수행의 僧(승)’만은 곁에 두어야한다.
그 승(僧)은 (티벳의 스님)생전의 정신적 인도자로써 그 포와 수행의 방법으로 인해 사자의 영혼을 머리끝에 있는 정수리(天門)로부터 영혼이 빠져나가 좀 더 해탈의 빛과 가까이 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며 죽은 자에게 사자의 서를 읽어 줌으로써 죽음으로 인해 베풀어지는 마지막 해탈의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해준다.32]
이 때 시신의 몸에 닿지 않게 조심하면서 그의 귀에 대고 이 사자의 서를 읽어 주어야 한다.
죽음에 임하는 자는 평온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현재까지의 삶에 무엇보다 만족을 가져야만 하고 더 이상의 욕심을 가져서는 안된다.
30]류시화 『티벳 사자의 서』, 정신세계사, 1995, p. 73.
31]
☆티벳 불교뿐 아니라 티벳인들 대부분이 임종하는 자의 몸을 만져서는 안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의식체의 정상적인 이탈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들은 의식체의 정상적인 이탈은 머리 정수리에 있는 브라흐마의 구멍을 통해서 일어나야만 한다고 믿는다.
만일 브라흐마의 구멍을 통해서 이탈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신체의 다른 구멍을 통해서 일어나게 되고,
따라서 인간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32] 백봉초 『사자의 서』, 경서원, 1984, pp. 26-27.
2) 죽음의 과정과 사후의 세계
(1) 육체와 정신의 분리
① 인간의 몸과 정신은 죽음과 함께 그 해체의 국면을 맞게 된다.
◈ 죽음이란 의학적으로 외(外)적인 호흡이 멈추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나 불교의 관점에서는 내(內)적 호흡의 멈춤이 진실된 죽음의 시작이다.
~인간이 평상시에 임종으로 外적호흡이 끝나 버리면 일종의 또 내 몸속 안에서 다른 시스템이 켜지면서 內적인 호흡으로 대체되면서 몸이의 상태가 잠깐 유지 된다
그것은 마치 나와는 상관 없는 신체 조직과 별다른 느낌인데 그 것으로 인해 호흡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는데 그것은 내가 아닌 다른 어떤이가 내속에서 와서 숨어서 해주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고 한다.
② 죽음은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것은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 즉 이별의 슬픔이나 세상에의 미련에 의한 고통일 것이다.
이에 외적 해체가 시작되는바 외적 육체의 해체는 우리의 사물을 느끼는 다섯 가지 감각의 둔화와 상실에서부터 시작된다.
그와 동시에 우리의 몸을 구성한다는 5요소인 ★지(地), 수(水), 화(火), 풍(風), 공(空)의 점진적 해체가 이루어진다.
一. 먼저 땅의 정기로 나타난 살과 뼈 냄새를 맡는 기관에 이상에 생겨남에 육신의 힘이 떨어진다.
二. 혈액 등 몸안의 체액을 구성하는 水의 기운이 다해 그 배설이나 눈물의 통제력이 없어지고
三. 火의 인자에서 비롯되는 몸의 온기와 혈색이 사라진다.
四. 몸의 활력을 상징하는 에너지의 발원체인 風의 기운이 다해 사고의 감각이 없어지며 호흡이 어렵고 마지막 다섯 번째로 空으로 그 육체에 대한 의식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33]
33]죽음의 세 가지 중요한 현상들이 여기에서 몇 개의 원소들로 상징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첫째, 신체의 압박감을 ‘흙이 물 속으로 가라앉는다’고 표현하고 있다.
둘째, 몸이 마치 물 속에 잠기듯이 신체의 끈적끈적하고 차가운 느낌은 점차 뜨거운 열의 느낌으로 녹아드는데, 이것을 ‘물이 불 속으로 가라앉는다’고 표현하고 있다.
셋째, 몸이 원자들로 날아가 버리는 듯한 느낌을 ‘불이 공기 속으로 가라앉는다’고 표현하고 있다.
각각의 징후에는 신체의 외적 변화가 따른다.
이를테면 안면 근육을 조절하는 기능이 상실된다든가, 청각을 잃는다든가, 시력을 잃는다든가, 의식의 상실 직전에 숨을 헐떡거린다든가 하는 것 등이다.
③ 이후 내적호흡이 멈추기까지 인간 영혼의 해체가 시작된다.
이것은 순수한 영혼의 해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서 이승의 삶으로 인해 첨가되어 있는 사상의 가치관이나 감정을 말한다.
즉 학습과 수행으로 닦아낸 모든 이성의 해체를 말하는 것이다.
내적 해체는 임신의 과정을 역으로 나타냄과 같다.
어머니의 뜨거운 정수와 아버지의 차가운 정수가 심장에서부터 갈라져 분리되고 희노애락의 감정이 사라지며 死者는 무의식의 혼미한 상태로써 자신의 존재마저 깨닫지 못하고 단지 의식 없는 영혼의 존재만이 빛으로 남는다.
이 시점부터의 죽음의 과정은 모든 세상만물에게 나타나며 이 순간부터 영혼이 해탈을 가질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여행旅行
(2) 사자(死者:죽은자)의 힘든 여행 - 바르도의 세계
내적 해체가 거의 끝에 다다를 무렵 영혼은 미약하나마 스스로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는 의식을 갖은 상태가 되어 있다.
이때부터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 즉 인간계와 사후5계의 경계선을 의미하는 바르도라는 세계가 시작된다.
인간이 이 바르도의 세계에 머무는 시간은 꼭 49일이다.
먼저 머리 위로부터 투명한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것은 광명의 빛이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현상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은 인간 모두를 지배하고 있는 잘못된 관념이다.
그 잘못된 관념에서 나온 생각들이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잘못된 관념이다.
그 잘못된 관념에서 나온 생각들이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한 그는 정신적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이다.
종교에서는 그 정신적 장애를 무지 또는 무명이라고 부른다.
이 무지는 참 지식을 얻는 데 방해가 된다.
불분명하고 잘못된 관념들을 모두 치워 버렸을 때만이 비로소 무지의 생각들이 지배하지 않는 마음의 근본을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을 때 『티벳 사자의 서』에서 말하는 다르마카야의 최초의 투명한 빛이 밝아 온다.
무지로 어두워진 인간의 마음은 곧잘 두터운 먼지로 덮인 거울이나 흙탕물로 가득한 수정 꽃병에 비유하기도 한다.
요가는 거울에서 먼지를 닦아내고 물에서 흙 알갱이를 걸러내는 과학적인 방법이다.
마음의 그런 식으로 맑고 투명해졌을 때만이 마음은 비로소 존재의 근원에서 비치는 빛을 반사할 수 있다.
그때 인간은 자기 자신을 알 수 있다.
이 빛은 어떠한 세계를 의미하는 구성된 꼭 천국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의 빛은 순수한 만물의 근원 그 자체이다.
이것이 해탈의 길이며 이를 따라가는 사자의 영혼은 영원한 환생의 굴레에서 구원을 받게 된다.34]
“그러나 내적 해체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사자는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자각이 너무도 희미하고 무엇보다 그 빛을 따라가려 해도 영혼은 육체와 같은 물리력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극도의 마음에 집중력과 목표의 지향을 갖고 혼신의 힘을 다해 떠올려야 비로소 움직이게 되는바 그 '빛' 을 잡기란 너무도 힘든 것이다.” 35]
광명의 '빛'이 사라지면 여러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신(神)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시점이 다르마타 바르도라 불리는 사자의 힘든 49일의 여행의 시작이다. 36]
이 순간 사자(죽은자)는 영혼과 분리된 스스로를 인지하는 감정을 되찾게 된다.
그는 그의 현재 이전의 전생을 알게 되고 그가 영혼의 상태임을 깨닫게 된다. 이에 사자는 자신의 죽은 시체를 돌아보게 되고 그 시신의 안으로 들어가려 하기도 하며 슬퍼하는 가족들에게 접근을 시도한다.37]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소용없음에 절망과 슬픔을 겪게 된다.
이 과정에서 먼저 행복과 기쁨의 42신, 그리고 분노와 슬픔의 58신이 만물의 근원이자 형태라 하는 만다라를 구성하여 사자에게 보여지게 된다. 38]
>만다라란 세 개의 중심 차크라와 관련해서 세 개의 중심 만다라가 있다.
신비한 신들의 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만다라들은 다시 열네 개의 만다라로 나누어진다.
그것들은 우리의 경전에서 설명하고 있는 바르도의 처음 14일(7일+7일)에 해당한다.
34] 류시화, 『티벳 사자의 서』, 정신세계사, 1995. p. 86.
35]위의 책, p. 86. 36]앞의 책, p. 268. 37]위의 책, pp. 86-87. 38]위의 책, pp. 492-493.
세 개의 중심 만다라 중에서 첫 번째 것은 42명의 신들을 담고 있다.
이 만다라는 여섯 개의 만다라로 나뉘며, 이것은 초에니 바르도의 처음 6일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들은 가슴 에너지 센터(아나하타 차크라)로부터 나온다.
두 번째 만다라는 열 명의 중심이 되는 신들을 담고 있으며, 일곱째 날에 나타난다. 그리고 이들은 목 에너지 센터(비슈타 차크라)로부터 나온다.
세 번째 만다라는 58명의 중심 되는 신들을 담고 있고, 일곱 개의 만다라로 나뉘며, 초에니 바르도의 처음 6일에 해당한다.
이들은 머리 에너지 센터(사하스라라 파드마)에서 나온다.
처음의 42신과 마지막의 58신이 합쳐져 100명의 최고신들로 이루어진 대만다라를 만든다.
이들 42신은 평화의 신들이라 불리고 58신은 분노의 신이라 불린다. 그리고 나머지 열 명의 신들은 목 에너지 센터와 연결되어 있는데, 이들은 가슴 에너지 센터의 42신과 머리 에너지 센터의 58신들의 중간에 나타나며, 42 평화의 신들과 함께 분류된다.
이들의 모두 합쳐지면 110명의 신들로 이루어진, 초에니 바르도 전체의 더 큰 만다라를 형성한다.
사자는 그들의 모습과 그들이 사자에게 쏘아내는 빛에 무한의 공포를 느끼게 된다.
이 순간 그 신들의 빛 뒤에는 사자가 인지 할 수 있으며 신의 만다라에서 쏘아내는 두려울 정도로 강렬한 노란색의 빛에 비해 은은하며 희미하고 친숙한 빛이 유형의 통로를 형성해 나타난다.
그 빛들은 각각 흰색, 희미한 노란색, 녹색, 빨간색, 파란색, 그리고 검은색으로 성냄, 탐욕, 무지, 욕망, 질투, 자만심을 근원으로 하여 6계에 환생의 통로가 된다.
사자의 감정은 신에의 두려움에 자신의 전생에 친숙했던 것으로 기울고 그것이 그의 탐욕이었던 이기심, 자만심, 질투, 또는 선한 마음이던 간에 그의 영혼을 이끌게 된다.
사자의 이승에서 지배적이었던 감정은 필연적으로 신의 만다라 뒤에 나타나는 종류별의 색을 따라가게 된다.
이것이 죽음으로 인해 전생의 업과 일순간 분리되었던 순수한 본성의 영혼이 다시 그 업과 맺어지는 이유이고 인간 윤회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光明 (빛)의 문 (門)☆
1.이에 사자(죽은자)가 흰색(白)의 빛을 따라가면 ▒신(神)계로 가고,
2.녹색(靑)을 따라가면 ▒아수라계 가고,
3.희미한 노란색(黃)색은
▒ 축생 가고,
4.빨간색은(赤)
▒아귀계 가고,
5.그리고 검은빛(黑)은 ▒지옥으로 가게 된다.
6.그중 파란빛(空色)이 ▒인간계로의 환생이다.
사자가 신(神)의 만다라에서 받은 공포에 의해 도망을 결정하고 6가지 희미한 빛을 따르게 되는 바 이시점 이기준으로 49일의 끝에 해당하며 사자의 영혼은 인과율과 업(業)에 의해 운명 지워진 부모의 수정을 통해 자궁에 들어가거나 타계로의 환생으로 다시 윤회의 굴레를 겪는 것이다.
3) 죽음에의 대비
(1) 죽는 자의 목적
사자의 서에 기초할 경우 우리는 삶의 최대 비극인 죽음을 맞이할 때 인간에게 최대의 행복을 이룰 수 있는, 모든 고뇌의 늪을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해탈의 기회를 얻는 것이다. 39]
우리는 수많은 죽음과 삶을 영겁의 세월을 통해 경험했으며 매번 그 해탈의 기회를 [무지함]과 [아집]으로 놓쳐버렸기에 지금 인간세에, 다른 5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해탈의 기회를 잡는 방법은 무엇인가.
사자의 서는 또 티벳의 고승들은 하나같이 수행으로 인한 인간정신의 고양과 무아의 경지를 말한다.
그런 인간정신의 수행이 엄청나게 많은 방법이 있으며 그것은 불교와 각종 종교의 고된 수행이나 이타적인 삶, 계율에 복종하는 삶 등으로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사자의 서에는 포와 수행이라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나 가장 고되고 힘든 것이며 무엇보다 엄격한 수행의 경지에 이른 스승의 가르침 없이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스스로 생각해서 수행을 할 경우 인간정신의 파탄을 가져와 영원히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포와 수행만을 통해 죽음을 이르르는데 있어 수행을 한 자만이 꼭 바르도의 광명의 '빛' 을 잡을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세상에서 「無因善異熟心 : 무인선이숙심) 」
선하고 성실한 마음 즉 무엇에도 연연하지 않는 불교의 무아, 무심의 경지를 갖는 결코 인간은 죽음의 순간 희미한 무의식 속에서 오랜 고생의 시간 그 시절 그의 삶에 습관으로 인해 영혼 깊숙이 자리 잡은 영혼의 본질을 상기해내 갑자기 자기도 모르게 그와 가장 친숙한 광명의 '빛'을 좋은곳으로 자연스럽게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39] 앞의 책, p. 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