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봉에 매력에 빠지다. 함께 해서 더욱 즐거웠던 설악 화채행
1. 일자: 2016. 8. 20 (토)
2. 장소: 설악산 화채봉
3. 행로 및 시간
[오색(02:55)
-> 대청(06:05) -> 전망바위(06:45)
-> (조식) -> 1253봉(07:49)
-> 만경대 갈림(08:05) -> 화채봉(08:33~08:45)
-> (험로, 개구멍 바위) -> 칠성봉갈림(09:15) -> 칠성봉(09:57) -> 칠성봉갈림(10:51) -> 토왕폭갈림(11:12) -> C지구(13:10)]
4. 동행: 산거북님, 옥혜님.
새벽 어둠을
뚫고 울산바위에 올라 설악을 올려다 보면 대청봉이 좌측으로 흘러 내린 곳에 뾰족이 솟은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설악 주능선을 치받치고 있는 은둔의 비경 화채봉이다. 지금은 출입이 금지된 곳이라 더욱
애뜻한 눈길이 가는 곳이다. 작년 가을 등로도 정확히 모른 체 작은 지도와 감만 믿고 대청 밑에서 길을
꺾어 도전했던 긴 내리막 능선, 그 화채능선의 정점에서 바라보던 풍경은 신세계였다. 공룡능선이 내 발 아래에서 꿈틀거리고, 조금은 작아진 울산바위는
그래도 병풍의 위용이 느껴졌고, 멀리 속초바다는 주홍빛 여명을 벗어 던지고 푸른 아침을 맞고 있었다.
그 비경을 잊지 못해 다시 길에 나선다.
모처럼 교대에서
산행 길에 오른다. 대간 길을 다시 나서는 듯한 설렘이 좋았다.
새벽 3시, 오색은 늘 분주하면서도 긴장감이 돈다. 숙명처럼 먼 길을 가야 하는 자들의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산거북님, 옥혜님과 서로 끌어주며 길고 먼 어둠의 길을 헤쳐간다. 늘 한결같던
다리님의 컨디션 난조가 아쉽다. 대청으로 오르는 힘겨운 길이야 오롯이 내 몫이지만 ‘함께’가 큰 힘이 되어 준다. 평소보다
가뿐하게 대청에 오른다. 바람 한 점 없는 대청은 처음이다. 미명의
바다 위로 희미하게 일출의 여운이 느껴진다.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희푸른 하늘이 발 아래 펼쳐진다. 대청에서 여는 아침은 늘 작은 성취감에 취한다. 무언가를 해낸 느낌, 산을 오르는 이유다.
화채능선을
내려간다. 이 길이 처음이라는 옥혜님은 여러 번의 미끄러짐으로 신고식을 치른다. 길 우측 바위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장관이다. 공룡이 등뼈를
고추세우고, 울산바위는 병풍을 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그
뒤 속초 앞 바다로 엷은 운무가 드리워진다. 은은한 색감이 참 곱다.
거친 비탈을 내려서 준비한 소박한 아침 상은 새벽을 달려온 자들에게는 진수성찬이었다.
이 계절 화채능선을 대표하는 들꽃은 금강초롱이다. 처음 한
두 송이에는 눈이 휘둥그래졌으나 하산 길 내내 지천이라 더욱 놀라웠다. 이 곱고 귀한 야생화의 지존을
이리 쉽게 보고 지나칠 수 있다는 게 화채의 격을 높여준다.
심마니 제단 뒤로 화채에 오른다. 공룡을 발 아래 두고 대청을 올려다 본다. 화채능선 따라 농밀한
숲에 쌓여 치오르는 설악의 정수리가 늠름하다. 멀리 속초에는 시시각각으로 구름이 인다. 언제 보아도 명품 풍광이다. 잠시 후 도착한 낯선 이에게 사진 한
장을 부탁한다. 훗날 오늘을 기억할 중요한 기록이 완성된다.
산거북님 따라 험로를 내려선다. 지난번과는 다른 등로다. 길이 하도 어지러워 다시 와도 찾아내긴 쉽지 않아 보인다. 해산굴을
어렵게 내려서면서 그나마 안도감을 찾는다. 좋은 풍광 본 삯을 톡톡히 지불했다.
지치고 힘도
빠질 무렵 도착한 칠성봉 갈림, 칠성봉은 오늘 이 코스를 선택하게 한 이유다. 지도나 사진으로 아무리 봐도 헛것이다. 내 힘으로 발 품 팔아 얻는
게 진짜 내 것이 된다는 진실은 일상이나 산에서나 매 한가지다.
좌측으로 길을 꺾어 숲 길을 한참 내려선 후에 맞는 암릉구간, 아찔한 고도감과 더불어 잘 생긴 바위들이 어우러져 만들어 놓은 형언할 수 없이 멋진 풍경, 눈이 휘둥그래 지며 본능적으로 더 높은 곳으로 향한다. 내려올 걱정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한다. 좋은 걸 보려는 욕망은 훗날 찾아올 대가보다 우선이다.
칠성봉 정상에 선다. 권금성과 안락암이 구름에 날려 시야에
들어온다. 늘 사진으로 보던 풍경이 온전한 내 것이 되었다. 감동에
소리를 질러 본다. 권금성에서 바로 반응이 온다. 큰 일이다. 국공에서 우리의 존재를 알아버렸다. 날머리 선택에 더 신중해진다. 걱정은 잠시 처음 보는 경치에 빠져든다. 조각품 수준의 준수한 칠성
암봉의 자태는 주위를 압도한다. 쏟아지는 햇살만이 유일한 훼방꾼이다.
화채봉 이상의 감동을 얻었다.
벗어 두었던 배낭을 찾아 돌아오는 능선 갈림까지의 길은 왜 이리 길던지. 구름에 덮여 있던 해가 나기 시작하니 순식간에 무더위가 찾아 든다. 갈
길은 먼데…. 그래도 후회란 없다. 오늘 아니면 영영 이었을
지도 모르지 않는가? 기회를 준 이들과 상황에 감사한다.
예전 산행에서
칠성봉 갈림에서 C지구까지 3시간이 걸린걸 알기에 페이스
조절에 신경을 쓴다. 무리하지 않고 내 몫의 길을 간다. 이전에는
모르고 지나쳤던 토왕폭 갈림도 확인하고, 길이 헷갈리는 바위 갈림에서의 올바른 등로도 알아냈다. 설악 베테랑 산거북님 덕이다. 길 중간에 바라본 잘 생긴 금강송과
동쪽으로 보이는 신령스럽다는 달마봉과 하산 길 내내 이정표 역할을 해 주는 설악파크 호텔을 벗 삼아 무사히 C지구
주차장에 도착했다.
산을 내려서니
감당이 안 되는 햇살이 쏟아진다. 이내 숲이 그리워진다.
< 에필로그 >
혹시나 있을
국공의 단속을 피해 정규 등로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으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려왔다. 고문님과 다리님(새벽과는 다르게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께 인사하고 척산온천에 가 배불리 먹고 찬물에 풍덩 한다. 올 여름처럼
시원한 물의 소중함이 절실한 적은 없었다. 산꾼의 행복이란 이런 건가 보다.
귀경 버스에서 숙면을 취하고 일어난다. 눈 앞에 칠성봉의
잘 생긴 바위들이 떠오른다. 길 사정을 몰랐기에 용감하게 그 먼 길에 도전했고, 현장이 주는 감동을 예상하지 못했기에 더욱 풍광이 환상적으로 다가왔고, 그
힘든 과정을 겪고도 다시 또 가고픈 마음이 살아나니 더욱 놀랍다. 이 놈의 취산벽은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멀 길 함께하며 좋은 이야기 나누며 감동을 공유한 산거북님과
옥혜님께 감사한다.
날 잡아 또 다른 설악 보려 가시지요!!
첫댓글 멋진산행 축하드립니다^^
저의 맘도
산행전부터 설레이더니
산행내내 함께한 기분에
덩달아 설레이네요~~~
저에게도 함께할 기회가 주어지겠지요 ^^
시리즈로 설악 탈 테니 시간되시면 함께해요^^
설악의 비경을 찾아서 산행하는 재미가 쏠쏠해요. ^^
고개만 돌리면 피안인데 너의 피안은 산 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