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작품전을 뒤돌아보며
이른 아침부터 안개비가 온 마을을 휘 감아 안으며 온통 회색 물감을 진하게 드리웁니다. 그토록 파랗던 하늘과 형형 각색의 구름들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뽀얀 무채색 하늘이 무심하게 아니 질투라도 하듯이 태양의 얼굴을 가려 버렸습니다.
그러한 날씨의 시샘에도 잦아들지 않는 희열이 이른 봄에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물안개처럼 아직도 가슴과 뇌리에서 온기를 부채질합니다. 통과의례 행사로 여겼던 졸업 작품 사진전이 지푸라기 속에 은근한 군불이 되어 솔내솔내 피어나기 시작하더니 못내는 타닥거리는 자작나무의 불길로 훨훨 타올랐기 때문입니다.
한 작품 한 작품 끌어내리면서 엔딩크래딧처럼 아쉬움을 뒤로하고 갤러리의 문을 닫아야만 했습니다. 각자의 가슴 한 켠에 여전히 채 식지 않고 남아 있는 따스한 열기는 지나간 시간을 그리움에 파묻히게 하고, 그리고 동이 터오르는 길을 향하도록 재촉하는 새로운 발걸음일 것입니다.
지난 일주일 교동미술관은 오락가락하는 비와 궂은 날씨에도 상관없이 북적거리는 축제와 잔치의 장이었습니다. 여느 때의 작품전과 달리 열기와 희열이 그득하였습니다. 그것은 졸업이라는 성취감을 얹혀준 작품전 이었기에 더욱 들뜨고 만족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렇게 들뜬 열기는 교동미술관 주변에 연기처럼 새어나가 들썩거리게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뜸하였던 발걸음이 옹기종기 모여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종영을 앞둔 지척에는 앞 다투어 교동미술관을 붐비게 하였습니다.
‘천천히 그리고 시간 속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행운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교동 미술관에 그윽한 작품전의 열기를 나누어 가졌습니다. 여러 주제의 사진들을 둘러보는 동안 사진 작품 속에서 우러나오는 미묘한 분위기, 그리고 뭔가 알 것 같으면서도 모호한 의미들을 되뇌이면서 신선한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앤디 워홀의 팝아트를 다른 색체와 시각으로 표현한 또 다른 팝아트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익히 알고 있는 마를린 먼로를 회상하면서 친근감을 가지면서도 무언가 애잔함도 동시에 느꼈을 것입니다.
주변에 널려있어서 아무런 의식 없이 지나쳐 왔던 가로수가 사진 속에서 광활한 평야에 외로이 서있는 모습으로 보이면서 처연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무명의 시인으로 살았던 미국의 여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이 토로했던 고독과 아픔과 쓸쓸함이 그 사진 속에 절절히 우러나오는 아우라였을 것입니다.
f64그룹의 선두주자였던 에드워드 웨스턴이 선불교 등 동양의 정신세계를 사진 속에 구현하면서 표현하고자 했던 심상의 사진을 바로 교동미술관의 추상작품 속에서 찾아낸 이도 있을 것입니다.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았을 콘크리트 건물 속을 저렇게도 미묘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단 말인가...T.S. 엘리어트가 전후의 폐허와 인간성의 파괴를 바라보면서 대 연작시 황무지를 발표할 때 가졌던 세상에 대한 허탈감이 저 건물 내부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치마폭을 널려놓은 듯한 한옥 처마 끝은 위용을 드러내며 바라보는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압도하였습니다. 기념으로 남기던 사진, 이쁘고 아름다워 찍었던 사진들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은 사진의 위력 앞에 그동안 보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였을 것입니다.
활처럼 휘어진 현수교의 선을 보면서 저렇게도 미니멀한 오브제에서 품어 나오는 힘이 얼마나 강렬한지 가슴 한쪽에 서늘함을 느끼기도 했을 것입니다.
흔한 나뭇잎 가지가 사진과 만날 때 그리고 그것이 다른 모습으로 표현 될 때 그로부터 발현되는 오묘함이 새록새록 느껴졌을 것입니다.
도시 길거리를 여행자의 모습으로 걸어가는 여인의 팔에 새겨진 문신을 보면서 그들을 무엇을 생각했을까?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그녀가 드러낸 팔과 끌고 가는 캐리어 가방을 보면서 각박한 삶의 현실과 어떻게든 살아가야만 하는 절박한 심정을 들여다보았을 것입니다.
독일의 역사가 쉬펭글러는 도시민은 농촌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지적유목민이라고 했습니다. 유목민은 광활한 초원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이미 농촌을 황폐하게 만들고 모든 농촌의 동력을 앗아 가버린 도시에서 유랑하는 존재로 변모해 버렸습니다. 팔의 문신을 드러낸 저 여행자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도시의 유목민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진은 일종의 언어라고 했던가,,, 그래서 벤야민은 앞으로의 문맹은 사진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일 것이라고 했겠지요. 사진을 읽으려면 사진의 문법을 알아야 한다고들 하지요. 그러나 그러한 길은 사진과 친해질 수 있는 통로는 될 수 있어도 사진에 몰입하게 하면서 깊은 심연으로 몰고 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졸업작품전을 치러 낸 작가들은 아마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저마다의 가치를 찾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며 도전하려 할 것입니다. 도전과 응전 속에서 끊임없이 진화해 나갈 것입니다. 자신이 창조해낸 작품들을 들여다보면서 산고의 고통 속에서 탄생시킨 자식들처럼 애지중지하며 깊은 애정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한 애정과 희열 속에서
아! 아! 우리는 비로소 사진 작업을 해야 하는 이치를 깨닫게 됩니다. 사진은 바로 일상의 삶 속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심미적 즐거움>을 위한 것이라고....
이 작품전이 이루어지기까지 수업을 통해서, 작품 해설을 통해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며 열정을 보이셨던 성창호 교수님께 열매를 맺게 해준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항상 보살피며 궂은일 도맡아 하며 늘 배려해주신 김갑련 팀장님 고맙습니다. 모든 과정을 완주하고 귀한 작품을 전시하며 풍성한 결실을 맺은 작가님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호주 브리스번에서
장준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