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인 일이십니까? " "안녕하십니까? 안경앱니다" 라고 오랜만에 전화를 넣으니 윤항수씨가 한 말이다.
한때 우리는 그를 자유인이라고 불렀다. 그도 명함에 '자유인 윤항수'라고 적고 다닐 때였다.
그 즈음 그는 참 무던히도 술을 마시고 다녔다. 정말이지 걸어 다니는 술통이었다. 어쩌다 노상에서 만나면 그는 이렇게 인사를 건넨다. "어이 낭자 술 한 잔 하고 가"
물론 필자도 그땐 처녀 시절이었다. 오래 전, 오래 전 일이다. 약속한 찻집에서 그를 만났다. 그간의 서로의 안부를 묻고- 명함 하나 달라고 했다.
"핸드폰 번호 알잖아?" "편지 쓰게요" 그는 무슨 객쩍은 소리를 하느냐라는 듯한 눈초리를 거두고 엉거주춤 일어나 뒤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다.
그는 더 이상 자유인이 아니었다. 명함에는 한소리 국악원. 한국 국악협회 영주지부장 윤항수 라고 적혀 있었다. 다만 흘림체에서 그 옛날의 자유인의 흔적을 찾았다면 지나친 걸까?
윤항수씨(48세)는 국악인이다. 그를 자유인이라고 불렀던 그때도 그는 국악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단소를 배웠다. 장소가 달랐을 뿐이다. 학교. 문화원, 국악원 등에서- 그를 영주 국악의 뿌리라고 해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교육청 앞 서림사(출판사) 3층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국악을 가르쳤다. 그러나 늘 교습생들은 열 손가락에 꼽을 만큼 수가 작았다. 돈 안돼는 정도가 아니라 까먹고 앉았다는 걸 누가 봐도 알 만큼-
그를 아끼는 많은 사람들은 아직은 영주에서 국악학원은 시기상조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그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거의 비다 싶은 국악원을 지켰다.
가끔 들른 출판사에서 그의 대금소리를 듣고 올라가면 그는 어김없이 큰 공간에 동그마니 혼자 앉아 연주를 하곤 했다.
그 무렵 가야금을 잘 타는 그의 아내는 시내에서 작은 음식점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음식 솜씨를 익히 알고있는 필자도 그 집의 단골이었다.
특히 그녀의 칼국수 맛은 최고였다. 지금까지도 국수를 보면 어김없이 그녀가 끓여 내준 맛깔스러운 칼국수가 떠오른다.
어느 날 칼국수를 사주마 하고 친구를 불렀다. 그날 따라 사정이 생겨 약속시간보다 많이 늦어서 가니 그 친구는 셔터가 내려진 음식점 앞에서 도끼눈을 하고 있었다.
얼마 후 풍문으로 들었다. 음식점도 문을 닫고 이어서 국악원도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 후 잊고 지내다 출판사에 볼일이 있어 습관처럼 국악원이 있던 3층을 오르니 어떤 종교 단체가 들어와 있었다.
윤항수씨 부인이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건 그로부터 약 한 달 뒤쯤이었다. 오늘에서야 그녀의 안부를 물었다.
"수술이 잘 돼 건강해. 내가 옛날에 너무 속을 많이 썩였나봐" 그는 모처럼 '허' 하고 웃어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그의 웃음은 참 보기 좋다. 사람 좋아 보이는 그런 웃음이다.
윤항수씨는 요즘 어린 새싹들에게 우리의 음악을 가르친다. 그 전과 다른 점은 찾아가서 가르친다는 것이다.
"국악강사 풀제라고 하는데 교과서에 나오는 국악을 가르치는 거야. 음악을 전공한 선생님이 계시지만 양악을 전공했잖아. 그러니까 국악 부분만 우리가 가르치는 거야"
그가 현재 나가는 학교는 초등학교 3곳(남산.중앙.서부)과 영광여중이다. 교과과정에 따라 민요하시는 분, 사물놀이를 가르치는 분과 함께 가기도 한단다.
"좋아하지. 그런데 역시 애들이라 정적인 것보다 동적인 것을 좋아해 가창(전래동요)을 좋아하지"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노래는 '남생아 놀자' '고사리 끊자' 등이라고 한다.
불행히도 필자가 아는 노래는 하나도 없다. 하지만 어떤 노래냐고 되물을 용기도 없었다. 사람 좋은 그지만 욱하는 성질 또한 있다는 걸 잘 알기에- 혹시 " 그것도 모르면서 취재를 와. 나 안 해" 이러면 정말 낭패가 아닌가?
국악기는 60여종이 있다고 한다. 궁중음악에서 사용하는 악기도 있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풍물놀이에서 사용하는 악기도 있다. 그리고 사찰에서 불교의식에 사용하던 악기, 무속음악에 사용하는 악기, 풀피리와 물장구(물방구)처럼 민간에서 만들어 쓰던 악기도 있다.
윤항수씨는 요즘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명함을 갖고 있다. 하회 별신굿 탈놀이 이수자 라는 명함이 그것이다.
토요일 일요일이면 그는 하회로 간다. 그곳에서 그는 태평소를 연주한다. 영주면 어떻고 하회면 어떠랴. 그는 오늘도 어디선가 우리의 악(樂)을 알리고 있을 것이다. 박수가 있든 말든, 대금으로 단소로 우직스럽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