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택하십시오
신명기 30장 15-20.
오늘은 성령 강림 후 두 번째 주일입니다. 또한 총회적으로는 우리 사람들의 욕심으로 인해 날로 황폐해지고 있는 자연을 돌보고, 경건하고 절제 있게 살기를 다짐하는 경건절제환경주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자연환경과 보존이라는 주제에 맞추어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지구촌의 안전을 가장 위협하는 두 가지 문제를 든다면 하나는 날로 깊어가는 빈부 격차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오염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모두 우리 인간들의 끝을 모르는 탐욕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먼저 빈부 격차의 문제입니다. OECD 곧 경제협력개발기구에 속해 있는 34 개국을 대상으로 해서 보면 80년대 중반에는 OECD 국가의 가장 부유한 10 퍼센트의 사람들이 가장 가난한 사람들 10퍼센트 소득의 7.3 배 였는데 90년대 중반에는 그 차이가 9. 3 배가 되었다. 그리고 올해의 경우는 9.6 배가 되었다. 곧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은 거의 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데 부자들의 소득은 계속 늘어서 이제 거의 10배가 되고 있다.
이 중에서 두 나라의 경우를 보자. 먼저 미국입니다. 겉보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부자 나라이다. 그러나 그 내면을 살펴보면 빈부격차가 심각하다. 현재 상위 1 퍼센트의 소득이 중간층의 288 배가 된다. 가장 빈곤층이 아니라 중간 정도 수준의 288 배이다. 그런가 하면 미국인의 약 18 퍼센트에 해당되는 5000 만 명이 빈곤층으로 매일의 끼니를 걱정하고 있다. 밥을 못먹는 결식아동들도 2000 만 명이나 된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도 지나친 소득 불평등이 미국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떠할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역시 빈부 격차가 큰 나라에 속한다. 작년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가구 중 순자산 규모 상위 20% 가구들이 보유한 평균 순자산 규모는 8억2683만원인 데 반해 하위 20% 가구들이 보유한 평균 순자산 규모는 1482만원에 불과했다. 또한 우리나라 인구의 5 퍼센트 정도가 나라 재산의 60 퍼센트 정도를 소유하고 있다. 반면 서울시의 경우 전기세를 낼 2만원, 3 만원이 없어서 전기가 끊기고 수돗물 공급이 끊길 위험에 있는 사람들이 인구의 10 퍼센트 가까이 된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어느 정도의 빈부 격차는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할 때, 또 그것이 계속 증가해 가고 있다는 데 있다. 지니 계수라는 것이 있다. 한 사회의 부의 편중 정도를 알려주는 지수이다. 지니 계수가 0이면 모든 사람이 경제적으로 평등하다는 것. 1 이면 한 사람이 모든 재산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 보통은 0.25 정도이면 평등한 것으로 본다. 0. 3 정도면 불평등이 시작된 것으로. 그런데 오늘날 OECD평균이 0. 35 정도. 우리나라는 0.4 정도이다. 그래서 아직은 괜찮다. 그런데 성장 속도가 문제이다.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0. 5 정도 되면 아주 불평등 사회. 이런 나라는 사회가 와해되고 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
실제로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임마누엘 토드라는 사람이 쓴 ‘제국의 몰락’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거대 제국이 몰락할 때는 그것이 바빌론 이든, 로마이든, 오스만 투르크이든 관계없이 내부에 엄청난 빈부격차가 있었다고 말한다.
아놀드 토인비 : “대제국은 타살로 죽는 것이 아니라 자살로 죽는다.” 곧 내부 모순으로 인해 무너져버린다.
아직은 시간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 관심 가지고 어떻게 더불어 함께 잘 살수 있을까를 함께 기도하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구촌을 위협하는 두 번째 큰 문제는 생태계 위기의 문제이다. 우리는 환경 오염되고 있고 지구 온난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공장이나 차량에서 나오는 배기가스를 줄여야 하고 친환경 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 하는 이야기를 요즘 들어 많이 듣게 된다. 그러나 그 위기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로 의식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실상을 살펴보면 상당히 심각하다.
일단 물이 오염됨으로 인해 식물성 플랑크톤이 급감하고 있다. 실제로 1950년대와 비교해 보면 식물성 플랑크톤이 40 퍼센트나 사라졌다고 한다. 식물 플랑크톤은 모두 아시다시피 모든 생명체들의 기본 먹이이다. 식물 플랑크톤을 동물 플랑크톤이 먹고 살고 그것들을 물고기들이 먹고 살고 또한 새나 동물들이 물고기들을 잡아먹고 산다. 그리고 그 정점에 사람이 서 있다. 먹이 사슬의 가장 기초가 흔들리고 있다.
그런데 정말 위험한 것은 현재 지구 온난화의 속도가 급격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제임스 핸슨이라는 저명한 환경 학자에 의하면 현재 지구가 더워지는 속도는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 폭탄 40 개가 매일 지구 전역에서 폭발하여 그 열이 전달되는 속도와 같다고 한다. 지구 온도가 지금 속도로 계속 상승하면 21 세기 말이 되면 섭씨 6도가 상승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생명체들의 90 퍼센트가 멸종할 것이다. 또한 식량난과 식수난 그리고 산소 부족으로 인한 호흡 곤란과 마지막 살 수 있는 땅을 차지하기 위한 기후 전쟁으로 인해 전 세계 인구의 상당수가 죽을 것이라고 한다. 아주 비관적인 예측에 의하면 2050년이면 세계 인구가 90억이 되겠지만 이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2100 년이면 세계 인구는 5억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의 안보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계속 방치한다면 인류 문명은 앞으로 63년에서 75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어놓고 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이런 데 대해 관심이 없다. 그저 환경 문제가 심각한가 보다 하면서도 정작 일상생활은 눈 앞에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급급하다. 그저 어떻게 하면 돈을 좀더 벌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얻게 할까? 노후를 어떻게 건강하고 의미있게 지낼까 하는 데 마음을 쏟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점점 더 힘들어 지고 있다. 그래서 틱낫한 이란 스님은 이런 우리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닭장 속의 닭 명 마리가 곡식 몇 알을 놓고 다투고 있지만 몇 시간 후 모두 죽게 될 것이라는 것 모르고 있는 것과 같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결국 그 이면에는 우리 인간의 깊은 탐욕이 들어 있다. 빈부 격차의 문제도 환경오염도 모두 나 혼자 어떻게 하든지 잘살면 된다는 생각이 깊이 들어 있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도 깨어있는 개인의 자각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오늘 말씀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오늘 말씀은 이제 이집트를 탈출하여 40년 광야 생활을 보낸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침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이다. 이제 이 요단강만 건너면 40년 동안의 모든 광야 생활은 끝난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앞에 두고 모세는 사랑하는 아버지가 자녀들을 앞에 두고 마지막 당부를 한다. 길고 긴 고별 설교를 한다. 자기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들어갈 것이다. 함께 출애굽 했고 함께 광야 생활을 해 온 이 사람들... 기쁨도 슬픔도 희망도 절망도 함께 나눈 이 사람들 앞에서 모세는 마지막 당부를 한다. 그 내용은 결국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를 선택하라는 것이다.
15절에 보면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19절에 보면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생명을 택하라.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생명의 길을 택하라는 말씀이다.
어떤 것이 생명을 택하는 것인가? 오늘 말씀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생명을 택하는 길이라고 한다. 16절에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또한 20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오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삶은 곧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삶이다. 우리가 진정 이웃을 사랑한다면,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는 삶을 산다면 이처럼 엄청난 빈부격차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연에 대한 철저한 파괴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같이 동영상을 잠시 보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먼저 개인적으로 생태적인 삶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자연의 리듬에 맞춘 삶. 곧 아침이 되면 일어나고 밤에는 일찍 자는 삶. 그러나 우리 도시인들은 이렇게 하지 못한다. 밤에 일이 많다. 밤늦게 까지 일을 하든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본다. 젊은 세대들일수록 더 그렇다. 그러면 몸과 마음이 견디지 못한다. 자연의 순환에 맞춘 삶을 살아야 한다.
저도 말은 이렇게 하면서 자주 밤에 늦게 잔다. 꼭 안 보아도 되는 데 인터넷 틀어놓고 이것저것 본다. 지난 금요일에도 어찌어찌 하다 보니 밤 1시 30분에 잤고 아침에 일어나 설교 준비해야 하는데 지장이 많았다. 오전 내내 멍청하고 피곤했다. 아니다 싶었습니다.
둘째, 욕심을 줄이는 삶. 여기에서 우리는 영어 단어 need와 desire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need는 있어야 하는 것. desire는 없어도 되는 것. 우리에게는 기본적인 먹거리 필요하다. 적당한 입을 옷과 하루 일 마치고 쉴 집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이상은 구태여 필요 없다.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상품을 팔아야 유지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계속 물건을 팔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의 욕망을 자극한다. 이것을 사시고, 이것을 먹으시고, 이런 정도 집에는 살아야 당신은 일등 시민이다.
세 번째. 물건보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삶.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삶이 있어야 하겠다. ‘혼자서 살면 무슨 재미인가?“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한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더불어 함께 모두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세상이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세계 시민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책임적으로 응답해야한다.
이런 일이 그냥 되지는 않는다.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찾아와야 한다. 구체적으로 훈련해야 한다. -아침의 일. 그 말씀이 우리를 붙잡을 때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런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으시기를...
그래서 다시 한 번 오늘 말씀 앞에 서게 된다. 신명기 30장 15절: “보십시오. 내가 오늘 생명과 번영 죽음과 파멸을 여러분 앞에 내어놓습니다. 여러분들이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길을 따라가며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면 여러분들은 잘 되고 번성할 것입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들이 살려거든 생명을 택하십시오. 주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의 말씀을 들으며 그를 따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들이 살 것입니다.”
간략한 동영상을 몇 개 보도록 하십시다. -기독환경운동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