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버스를 타고 출근한 지가 벌써 4개월이 넘었다.
20여년동안 타고 다니던 소나타를 없애고 나니 무어라 표현을 못 할 정도로 허전하고 서운해 했다.
폐차장으로 매달려가는 차를 차마 보지 못하고 따로 택시를 타고 올 정도로 허탈한 심정이었다.
지금까지 왜 차를 사지 않느냐고 보는 사람마다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정작 내가, 아니 가족 구성원들이 한결같이 당장 차가 있어야 할 필요성이 없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오히려 아빠를 격려해주는 입장이다.
자가용이 없으니 우선 두 가지 좋은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 째는 가족들과의 대화 시간이 많고 많이 걸으니 건강에 더없이 좋은 거 같다.
두 번째는 오늘 쓰고 싶은 이야기다.
자가용이 없는 관계로 오늘도 귀한 이웃들을 버스안에서 만난다.
자가용이란 조그만 폐쇄적인 공간에 있으면 평생 만나지 못 할 이웃들이다.
매일 나는 마을에서 7시 25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아침 일찍 청소골 53번 버스안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초등학교 동창인 까치산장지기인 김정순 동창을,
그 이웃에서 산장을 운영하는 청호산장 주인을,
우리 고을(청소골) 가장 깊은 곳에 사는 심원마을의 집안 누님들 두 분을 뵙고,
옆집에 살아도 여태까지 같이 버스한 번 탄 적이 없는 앞 집 후배 부인도 보고,
울엄마에게 형님처럼 잘 대해 주신 건우할머님인 원동댁도 만나고,
저건너 같은 마을에 사는 김종완어르신도 만났다.
하루에 한 분을 만나면 한 달이면 30명을 만난다는 결론이다.
막내 또래의 중고등학생들도 매일 얼굴을 마주치면서 한 배가 아니라 비록 가는 길은 다르지만, 한 버스안에 몸을 실어 등교하고 출근하고 시장가고 일보러 간다.
아침마다 고정적으로 물리치료 다니시는 낯익은 이웃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는 건 뭐 당연한 것이니 이렇게 많은 정겨운 이웃들을 만나 인사드리게 된 것이 나에게는 얼마나 마음 뿌듯한 지 모른다.
이 시골냄새 나는 버스를 타면 마치 내차를 타고 가는 것처럼 편하고 정겹다.
다 거기가 거기요 그것이 그것처럼 잘나지도 못나지도 그냥 자연이 준 그대로 부모님이 물러준 그 형태대로 살아온 평범하고 순박한 사람들이다.
코가 좀 뻥 뚫어져도, 입이 빗선으로 비뚤어져도, 일찍 대머리가 되어도, 짝궁뎅이면 어떻고 가슴이 좀 적으면 어떤가 그걸 그냥 운명이라 받아드리며, 이날 평생을 주어진 환경속에서 대차고 알차게 적응해 온 이웃들 아닌가!
버스안 사람들의 얼굴을 보라!
욕심없고 모든 이기심과 아집 다 내려놓고 그저 바퀴가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같아 정말 살갑고 정겨웁다.
다시 말하면 오염되지 않은 생명토가 같은 존재들이다.
흙이라고 다 같은 흙이 아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지만 정신적으로 타락했다던가 물질의 노예가 되어 피폐한 인간들이 있듯 흙도 마찬가지다.
오늘 버스안에서 만난 이 사름들은 바로 흙과 같은 존재 이 표현은 아무때나 붙이면 안된다.
진실로 흙의 무게(비중)와 한 줌 흙의 소중함을 아는 분에게만 적용되는 용어다.
매일매일 시멘트 바닥만 밟고 다니는 사람이 흙이 어떻고 하면 좀 어색하고 진실성이 없어 보인다.
나는 57년간 거의 매일 흙과 더불어 살아왔다고 당당하게 장담한다.
심지어는 몇 십년을 흙과 관련된 농사를 인부들과 함께 직접 지은 사람이다.
농사 관련의 일을 나보다 더 경험이 많은 사람 있으면 알려주시라!
지금도 주말이나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삽들고 들 가운데 서있다.
주말마다 흙을 밟고 흙과 함께 숨쉬며 흙을 어루만지는 자만이 표현할 수 있는 특권이라 감히 말 할 수 있겠다.
눈빛만 봐도 그 사람의 이중을 알 수 있듯, 흙의 색깔만 봐도 난 무슨 흙인지 바로 알 수있다. 내가 태어난 곳이 논가운데요, 태어나 지금까지 이 흙 곁을 떠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동안 흙과 호흡을 한 결과물로 보면 된다.
둔탁한 소리와 덜커덩 거리는 중고 시내버스지만, 그 안의 마음들은 화롯불처럼 따스한 마음들이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빈자리가 있으면 큰 소리로 부르든가 아니면 처음보는 아낙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푹! 찌르면서 여기에 앉아라고 챙겨주는 모습속에서 아직까지도 이 사회는 삭막한 시대라고 하지만 꺼지지 않는 종잣불이 남아 있음을 매일 출근하면서 느끼는 바다.
진정한 이웃의 아름다운 마음과 표정을 보면서 행복함을 가져본다.
따스한 햇살, 장날이면 장짐이 많은 시골 아줌마의 짐을 싣고 내릴 때 문 밖 땅바닥까지 내려주는 어린 중학생의 행동을 보며 '야! 아직 우리의 이웃들의 정이 살아있구나!'라며 마음속의 고개를 끄적이며 마음속 웃음을 지을때가 몇 번이었던가!!
어제 먹은 술이 미처 깨지 않아 횡설수설 떠드는 김씨 아저씨가 있어도 누구하나 조용히 하라고 하지 않는다.(물론 떠들면 안되겠지만)
그만큼 이 시골버스는 눈빛만 봐도 직접 말을 건네지 않아도 거 누구집 손주 누구집 아들 누구네 부인 누구네 며느리 등 대충 가늠을 하며 이해하는 공간이 바로 시골버스 안이다.
나는 이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부터 자가용속에서 느끼지 못한, 생각지 못한 또다른 세계가 펼쳐짐에 무척 행복하다. 때론 짜증나고 성가시기도 했지만 그것들 이 다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됨을 이제사 안다면 바보겠지요.
나도 모르게 건강은 좋아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내가 접하는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어 감사한 마음 잊지 않는다.
친형제뿐만 아니라 직계가족들도 멀리사는 이유로 몇 십년 동안 못 만날뿐만 아니라 서로 남처럼 사는 각박하고 인정머리 없는 세상 가운데서 이토록 정겹고 인간미 넘치는 아침 버스안의 광경에서 격세지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