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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선우회를 위한 대원선사 법문
2017. 3. 19 심행 정리
사람 사람이 누구나가 다 모든 것이 다 구족 되어서 있는데, 별다른 법을 구한다던가 본인들이 살아 가는데 여러 가지로 별다로 구하는 그런 마음을 내면 본인들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미(迷)하게 됩니다.
구하는 생각이 일체 그런 것이 없는 것은 왜 그러냐 하면 본인들이 부처님이나 저나 여러분이나 다 똑 같이 모든 것이 모자란 것이 없이 다 만족되고 구족 되어 있어서 별다로 부처님이나 저나 무엇을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려야 할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뭐든 법을 설하게 되고 말을 하게 되고 또 상대방이 들어야 할 것이 있고 그렇게 된다면 근본적으로 우리들이 자신을 매각 해 가지고 자기를 모르고 잊어 버려 가지고 몰라서 그래서 별다른 뭐가 있는 것 같이 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바로 나 자신을 바로 보는 이라면, 나 자신을 바로 보는 사람은 일체 모든 것에서 구애 받을 것이 없다. 구애 받을 것이 없기 때문에 어디 내가 구하려고 하는 것도 없고 살아가는 그대로가 대만족 되는 그런 생활을 여러분이 하게 되십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 자리에 이렇게 와서 앉아서 뭐를 들으려고 한다면 벌써 틀렸다는 것입니다. 들으려고 하는 자체가 틀렸다 이거요. 그래서 저도 여러분 한테 해 드려야 할 말이 아무 것도 없거든요.
그래서 부처님이 법상 위에 올라 가셔서 아무 말씀도 안 하고 가만이 앉아서 계셨거든요. 일체 말없이 그대로 무연히 앉아 있는 그 모습을 보고 문수보살이 앞에 앉아 있다가 죽비를 세 번 딱,딱 치고, ‘오늘 법왕의 법은-법왕은 부처님이 법왕이니까요- 법왕의 법은 여시 여시라. 이와 같고 이와 같아서 오늘 법문은 다 해 마쳤기 때문에 더 들을 것이 없습니다’ 하고 일어 났습니다, 죽비 세 번 치고.
그러니까 부처님이 아무 말없이 법상에서 일어 나셨거든요? 그 어른이 왜 그렇게 했을까요? 왜 그렇게 하셨는지 아시겠어요? 모르겠어요?
하, 이제 우리 중생들이 살아 가는데 뭐가 잘 못되었는가 하면, 생각이 병 이거든요. 생각이.
여러분에게, 생각이 병이에요. 여러분이 다 생각이 있지요? 그렇지요?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모든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뭐 진리는 뭐 어떤 것이 진리인 것이냐? 그런 생각을 하고 또 어떤 것은 아주 선이라고도 생각하고 또 어떤 것은 좋은 거고 나쁜 거다. 그런 뭐 여러 가지 생각 다 하지 않아요? 생각을 안 하지는 않지요? 그렇지요?
그러면, 여러분에게 생각하는 그 생각 속에 생각하는 그 범위, 그 안에만 살고 있기 때문에 항상 중요한 것은 배고픈 사람처럼 배가 부르지 않아요.
밥을 굶은 사람, 배고픈 사람처럼 만족하지를 안 해가지고 무언가를 자꾸 구합니다. 구해서 얻으려고 하는 것이 있어요. 그게 이제 생각이 잘 못돼서 그렇거든요. 생각 가지고 그 생각에 갇혀 가지고 그 생각을 가지고 여러분도 알고 있고 그 생각을 가지고 재산을 삼고 있고 그래요. 그런데 그 생각이 그게 잘못된 거라.
가만히 여러분 자신을 한번 돌이켜 보면 여러분이 생각을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으로 미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거야. 있어요? 없어요? 여러분의 말로나 생각으로 미칠 수가 없습니다. 생각과 말로 미치지 못하는 그런 차원의 세계를 뭐라고 하지요? 뭐라고 합니까? (공,깨달음, 무명,무안계…)
뭐라고 하지요? 공? 축구하는 공 말이요?
말과 생각으로 미치지 못하는 세계를, 차원을 요 ‘불가사의 하다’ 이럽니다.
알겠어요? 불가사의 하다. 불가사의가 뭐예요? (생각이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 신비한 세계) 왜 그걸 모르지? 불가사의 하다.
우리 인간으로서 미치지 못하고 알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생각할 수 없는 그리 높은 차원의 세계를 뭐라고 하느냐? 그건 불가사의하다고 그래요. 불가사의하다. 그렇지요?
이 불가사의한 이 세계를 이 차원의 세계를 그 깊은 불가사의한 도리를 그 의제를, 그 당체를, 바로 여러분이 본다면 여러분 인생은 부처님이나 조사스님이나 다를 바가 없다 이거예요. 똑 같다 이겁니다,
그런 차원의 세계를 여러분이 다 가지고 있는데 그런 걸 볼라고 하지 않고 생각조차도 안 하고 그래 살아 가니까 그런 우리 현실에 육근, 육식 가지고 있는 우리 인간의 의식, 사람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의식, 그 의식이 어떤 거지요?
그것을 미 할 迷자, 바를 識자, 迷 한 의식이라 그래요. 迷 한 의식. 미한 의식 알아요? 미한 것은 캄캄해요. 어두운 의식. 그걸 그 의식을 가지고 현실의 목전에 있는 것만 이렇게 분별하고 살아요.
그 우리가 눈앞에 말해요. 요거는 요거다 조거다 하고 그렇게 한계 주어진 그 부분만 알고 살아요. 한계 주어진 그것만, 그것만 분별하고 살아 가요.
그밖에 불가사의한 세계는 몰라요. 그렇지요?
그러니 이제 인생을 살아 가는데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눈,코,귀, 오관, 의식 이것은 중생의 의식이라. 그런데 이걸 마음이라고 해, 그런데 무슨 마음이냐? 무명심이라 그래요. 무명한 마음. 중생들은 캄캄한 무명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이거요. 무명한 마음은 가진 쪽은 불가사의한 쪽을 몰라요.
또 그걸 이렇게 말을 하지 않아도 얼굴만 보고 눈만 마주쳐도 바로 척 알아 차려서 아, 말할 필요 없이, 그분의 말하고 자 하는 그 의지를 상대방이 안다 이거요. 눈만 마주치면 알아. 이렇게 되면 우리가 이때까지 가지고 있는 현실에 쓰고 있는 의식 밖에 있는 소식이라. 의식 밖의 소식, 여러분이 지금 쓰고 있는 의식은 어두워서 캄캄해서 몰라요. 눈만 끔벅하면 알아차려야 하는데 눈을 깜박하면 뭔데 저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하느냐? (하고 생각해요)
눈만 껌벅하면 어때요? 뭐 어떻게 알아 들어요?
(눈을 껌벅이시며) 요렇게 하면? 한쪽 눈을 요렇게 하면 어떻게 알아 들어요?
(마음이 있다는 뜻입니다) 상대방이 마음이 있다 이거지요?
그렇게 알아 듣지요. 그렇지요? 하하 다른 것은 없다니까요.
그것만 알아 들어 그것. 이렇게 (눈을 껌벅) 하면 한쪽 눈이 작아 지지요 그렇지요? 그걸 뭐라 해요. 윙크한다 그러지? 한쪽 눈을 요렇게 작아 지게 하면.
그때는 어떻게 알아 차려요? 네가 나한테 관심이 있다. 좋아한다 그렇게 알아 차리는 거에요. 그렇게 알아 듣지요? 다 그렇지요?
이게 이제 중생이 가지고 있는 의식의 병이다. 딱 한계를 지워 지어서 아는 그것. 한계에 지워 진 것. 고정되어 있는 관념. 그것 밖에 몰라요.
아, 이렇게 하는(눈 깜박이는) 것은 나를 좋아 하는 구나, 나에게 히야까시 하는거다. 요것만 알아요. 그렇지요? 응?
그런데 이쪽에서 윙크하는 사람은 전혀 그런 차원에서 윙크한 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요. 그런 것이 아닌데 상대방이 그렇게 알아 듣는다면 그게 바로 알아 들은 거요? 잘 못 알아 들은 거요?(잘 못 알아 들은 겁니다)
잘못 알아 듣고 착각한 거지요? 착각은 자유야. 착각은 자유지만 그것보다도 착각이다 그지요?
그러면 어떻게 되요? 그 사람하고는 둘 이가? 뜻이 어긋나는 것이 아니 겠어요? 뜻이 어긋나는 것을 뭐라고 그래요? 너는 동으로 가고 나는 서로 간다 이거야. 그걸 등졌다고 그래요. 서로 등이 졌어. .서로 손바닥이 합쳐져야 되는데 등졌다 이 말이요.
그래 이렇게 눈을 윙크를 했다고 해서 그렇게 알아 들으면. 이쪽에서는 그런 것이 아니다. 아주 높은 차원의 법을 보여 주는 건데 법문을 보여 주려고 이렇게 (눈을 깜박)했는데, 상대방에서는 그렇게(관심 있는 줄) 알아 듣는다 이거요.
그러면 안되지요? 그렇지요? 이것이 중생들이야. 이게 미한 의식이야.
미해서 상대방의 의지와 관계도 없이 자기가 고정되어 있는 고정된 관념을 담아 놓은 그 생각으로만 본다 이거요. 고정되어 있는 관념, 그것만 가지고 본다 이거예요. 그래서 일체를 말 못 보는 거지.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렇게 살아 가는 것이 중생들이기 때문에 중생들은 완벽하지도 않고 만족한 것도 없고 하는 일마다 하고 보면 그르쳤고, 잘한다고 하면 실수한 거고. 또 잘 한 것도 그걸 잘 못했다고 그러고, 잘 한 것은 잘 못, 분명히 잘한 것을 바로 볼 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요?
잘 못된 것을 바로 볼 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나요? 모릅니다.
잘 된 것도 잘 못 되었다고 하고 성토를 하고 자기의 생각을, 주장은 피력을 하고 자기의 주장을 완전이 성취시키려고 하고 그런 것이 중생들의 놀음이야 중생들의 놀음이 그래.
올바른 것은 잘못되었다고 그러고,잘 못된 것은 잘 했다고 그래요. 분명히 이야기 합니다. 이게 바로 볼 수 있는 안목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살아 가는 현실에 바로 보고 바로 판단할 수 있는 자기의 안목이 중요하다. 내가 바로 보고 바로 판단하는 그런 마음이 지혜의 눈이 꼭 필요하다 이거야.
이것은 중생은 고정되어 있는 그 관념을 가지고 살아 가기 때문에 그 것에 맞추어서 미 해가지고 그걸 미 하다 해요. 미 한 것은 어둡다 이 말이요. 어두워, 어두워서 밝지를 못해서, 밝지를 못해서 어두워서 잘 못 본다 이거여. 그런 미 한 의식으로 살아 가는 것을 중생이라 해요.
누가 옳고 그른 것이 없어, 그것을 무어라 그러느냐? 때에 따라서는 나쁜 것도 좋다고 하고 그럼 좋은 것이 되고, 좋은 것을 나쁘다고 하면 나빠지고, 그래서 원래 좋고 나쁜 것이 정해진 것이 없는데
그렇게 상황에 따라서 자기들이 편리하게 이용하기 위해 이용 하려고 나쁜 거지만 좋다고 정당화 하는 겁니다. 좋다고 정당화 시켜요. 또 좋은 것은 때에 따라서는 상대방을 싹 해치우려고 원한다면 상대방을 좋은 것을 나쁘다고 성토 하는 거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습니다)
이래서 그렇게 우리가 살아 가는 그러한 의식은 끊임없는 시비, 투쟁이 잠잘 날이 없이 꼬리를 물고 일어 나게 되어 있어요. 그런 사회를 지금 여러분이 살고 있는 거는 여러분이 그런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 의식을.
그래서 그런 의식에서 벗어 나서 정말 모든 것을 바로 보고 바로 판단하고 할 수 있는 正見, 그걸 정견이라고 그래. 바를 正자, 볼 見자. 바로 본다. 바로 볼 수 있는 안목의 지혜를 가진 자가 있으면.
두 사람이 싸움을 하면 똑 같아야 싸움을 해요. 똑 같아야지. 절대 한 사람이 월등하면 싸움이 안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모든 게 이거요.
뭐 사회적으로 보아도 운동을 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하고 싸울 상대가 안되면 싸움이 됩니까? 못해요. 똑 같아야 이제 싸움이 되지. 왜 똑 같아야 싸움이 되지요? 생각이 똑 같아야 싸움이 되는 거야. 그런데 한 사람이 생각이 지혜의 눈이 열려서 월등히 뛰어난 부류가 있다면 싸움할 필요도 없어요.
싸움할 근덕지를 만들지도 않고 그런 것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원만하게 처리가 될 것이에요. 수습이 원만하게 자기가 수습해요. 잘 되요.
그런데 이 양분된 의견이 수습이 되서 화합이 되고 하나가 되려면 거기서 뛰어난 안목을 가진 사람이 있어야 되요. 분명히, 그런 사람이 있으면 그게 되요. 그런데 그게 안되면 안 되요.
그래서 절에서도 스님들이, 부처님 말씀에 산 속이나 토굴에 살 때에도 둘이 서는 살지 말아라 이랬어요. 절대 둘이 서는, 둘이 서는 살지 말아라. 왜 둘이 살지 마라 그랬을까요? 둘이서 싸우면 이거는 꼼짝없이. 하나는 죽지 않으면 둘 다 가는 겁니다. 말릴 사람도 없고, 그런데 꼭 부처님이 세 사람이 살라고 했어요. 셋이. 셋이 살아라, 세 사람이 되면 뭐라고? 대중. 대중이라고 그래요.
대중, 많은 대중이 모인다고 그러지요? 많은 대중이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 세 사람부터 시작해요. 세사람이면 대중이라고 그래요. 세사람이 살아야 된다 이거요.
그러면 둘이 싸움을 하면 한 사람이 말릴 수 있다 이거요. 화합이 된다 이거예요, 화합이 될 수가 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안목이 좀 높고 수행이 뛰어난 사람이 있어야지 그 세 사람이 한 몸, 한 마음으로 잘 살아 갈 수 있는 분위기를 잘 만든다 이겁니다. 그런데 세 사람이 똑 같으면 맨날 싸움을 해요. 싸움을 안 할 수가 없어요.
그게 이제 토굴에 나도 살아 봤는데 어쩌다 보니 둘이 살게 되었어. 둘이 사는데, 그러다 보니 둘이 살아도 안 먹고 살 수 있나요? 밥을 먹고 일을 해야지?
그래 뭐, 그럼 ‘나는 밥하고 죽하고 끓이겠다. 나는 반찬하고 된장찌개는 내가 하겠다.’ 그렇게 이제 분담을 했다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김치를 담는데 영 엉터리라. 되도 않는 방법으로 김치를 담고 있더라 말이오. 그래 내가 ‘이거 그렇게 담는 것이 아니라고 김치를 이렇게 담아야 된다’고 하니까 ‘그럼 분담을 했으면 타치 하지 말아야지 뭐 간섭이냐?’
이래 가지고 뭐 ‘왜 서로 분담을 했는데, 이거 내 책임이지 뭐 남의 일까지 타치를 해!’ 그렇게 기분 안 좋게 딱 그런단 말이에요?.
아, 그러니까 ‘그런 방법으로 담아 가지고 먹지도 못하게 담아서 뭐 하느냐? 나도 먹어야 하는데 김치를.’
그래 가지고, ‘아이다, 그건 그렇게 먹지도 못하게 김치를 담으면 되느냐 말이다. 김치 담그는 것도 못 배웠느냐?’ 하니까.
‘이 새끼가?“ 하면서 아, 자존심 상한다 이거예요.
그래 가지고 싸움이 되었다 이거요. ‘그렇다면 한번 해 보자.’ 이래 가지고
그래 이것이 아주 이거 말이야. 아주 위험한 거라.
나중에 연장 놔 두는 그 곳에 가더니 낫을 들고 나오데. ‘이 새끼 죽인다.’고.
그것 보니까 큰일 나겠더라고 그래 가지고 말이오. 큰일 나. 이게 바로 잘 아는 사람하고 모르는 사람이 살면 그게 잘 못된 것을 스스로 잘못된 것을 알고 한 사람이 고칠 줄 알고 이런 마음을 가지면 되는데 어디 그래야지.
‘너만 중이냐? 나도 중이다. 똑 같이 계 받아 가진 스님인데, 뭐 너나 나나 나이도 비슷한데 네가 뭔데 나에게 어른 노릇 하려고 하느냐?’ 뭐 이런 식으로 아, 절대 승복 안 하지. 내가 잘못된 줄 알면서도 안 한다 이거야.
이게 오늘날 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퐁토 입니다. 사회에는 이런 사람이 없지? 사회에는 없지?(아닙니다, 있습니다,.) 더 많아요? 사회에도 그런 것이 많구나. 아, 나는 절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사회에는 이런 사람이 없는 줄 알았는데.
아, 집에는, 가정에서는 그런 것이 없을 건데 안 그래요? 부부간에도 의견이 안 맞아요? (예-) 아, 서로 싸우는 구만. 그러면 안 되는데.
이게 문제라는 거요. 서로 부딪칠 일이 없어야 되는데 왜 부딪치느냐? 이거요. 이게 이제 중생심은 우리가 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 가지고는 안 되요.
이건 해결책이 없어요. 절대 해결이 안 되요.
뭐야 요새 무슨 촛불하고 태극기 하고 야단하던데, 요새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어. (촛불이 이겼어요) 뭐 대통령도 이제 나가야 되요? (나가야 되요)
나가야 되요? 대통령을 쫓아 내었네.
그것이 이제 그러면 어느 것이 옳으냐 이거요.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것은 중생들끼리 서로가 따지고 있는 거야. 그게 이것은 중생세계에 따지는 여러분이 어느 것이 옳다 그러다 하는 것은 알 수 없다 이거다.
이쪽 것이 옳은 것 같지만 나중에 보니 알고 보니, 그것도 틀렸다 이거고,
저쪽 것이 옳은 것 같은데 나중에 보니 확실히 보면 허물이 있다. 틀렸다 이거요.
전부 다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서 중생들이 만든 것이다 이거여. 그것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입에 걸면 입걸이, 목에 걸면 목걸이. 그게 그렇게 된다니까? 그게 원래 금 덩어리가 원래 어디 귀걸이도 아니고 코골이도 아니고 목걸이도 아니지 않아요, 그렇지요?
그걸 붙이는데 따라서 달라 집니다. 그게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었다가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니까. 또 목에 걸면 목걸이가 되고 그렇지요? 그게 일정하게 정하는 것이 없어.
그러니까 이게 세상의 모든 만법이 본래 정해진 것이 없는데 그때 그때 따라서 필요에 따라서 만들어 져서 붙이는 건데 그것이 진짜가 아니고 가짜더라 이거에요. 알고 보니 가짜라.
그걸 만들어 내는 놈이 있어. 일체를, 만들어 내는 그 놈이 무어지요? (마음이에요)그거는 어떤 세계? 불가사의의 세계야.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중생심은 지금 여기 안이비설신의 육근 육식 이것이 중생심이고, 육근 육식을 마음이라 하지, 이건 중생심이라. 요건 끊임없는 투쟁과 시비가 일어 나요. 화합이 안 되요.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밖에, 이 밖에 무한대한 마음, 그것을 뭐라 해요? 불가사의한 마음. 그 밖에, 불가사의한 마음이라 이거예요. 그것을 우리가 모르고 산다 이거야. 그래서 맨날 지지고 볶아. 맨날 지지고 볶는 거여. 그게 중생세계야. 사바세계야. 사바세계는 천일, 만일이 가도 내가 그 마음 그 마음이야. 똑 같아요. 다르지 않아요.
뭐, 서양사람이라고 뭐 다르고 동양사람이라고 다르냐? 안 그래요. 가다가 돌을 발로 차서 아플 때 악! 하는 것은 똑 같아, 다르지 않아요. 중생심은 똑 같아. 어디 가 보아야 모든 것에서 완벽한 것은 없어. 다 중생심을 가지고 중생심을 가지고 그걸 가지고 그것을 만족되게 채워서 살려고 하는 또 생각이 일어 나니까 더 큰 시비가 일어 나고 더 큰 투쟁이 일어 나지. 자꾸
그래 우리나라도 그런 나라는 세계로 나가려면 그런 생각에서 벗어 나야.
여러분이 그런 생각에서 중생이라는 그 세계에서만 살지 말고 이것을 벗어 나는 마음의 세계에서 살 줄 안다면, 우리들이 대한민국이 한 가족이고 따지면 한 가족인데, 한 민족인데 왜 서로 갈라 져서 싸움을 해야 되고, 죽여야 되고 왜 시비를 이렇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래 그 짐승이, 하이애나가 양이 둘이서 싸우고 있는데 하이애나가 살살 잡아 먹으러 가도 둘이 싸우느라고 몰라.
우리나라가 지금 이렇게 국내에 우왕좌왕 서로 싸움을 하는 이런 틈을 타서 미국, 일본, 중국이 전부 다 우리나라를 요걸 어떻게 먹느냐?
이게, 우리가 언제까지나 남의 나라에 외세에 밑에서 허리 한번 못 펴고 계속 살아야 하는가요? 응? 우리가 스스로 만든 거예요. 누가 우리나라를 만들어 줍니까?
우리가 힘이 하나로 화합이 되고 응집이 되고 하나가 된다면 저거들이 절대로 넘겨 보지 못해요. 그리고 여러분이 중생심이란 이 생각 밖에 훌륭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 간다면 이 나라 국민은 세계의 사람을 지배하는 최고의 국가, 일등 국민이 될 수 있다 이거요.
그런데 부처님의 진리는 온 일체 중생을 가족으로 말했지, 대한민국 사람만 가지고 요걸 생각한다 그런 것을 말한 것이 아니요, 부처님은.
진리의 사상은, 일체 중생을 한 가족으로 했지, 일체 중생을 한 가족으로 했기 때문에 우리 부처님 법에 의해서 보면 임진왜란 때 우리가 승병이 나가서 다른 나라 사람하고 서로 싸움하고 스님이 죽고 살고 막 했지 않아요. 부처님 시상에서 보면 어긋나고 잘못된 겁니다, 그리 하라고 안 했습니다, 부처님이
남의 나라나 이 나라가 없어. 온 일체 중생을 부처님은 하나의 한 몸이요, 한 마음이요, 한 가족이라고 했어 부처님이.
그렇다면 부처님의 차원의 사상은 구한다면 우리가 뭐 가족이라고 뭐 우리 대한민국 사람은 대한민국 사람이 해야 된다 그런 게 아니라 그건 몰라서 그런데
무슨 뭐 촛불집회 가서 지지하고, 스님들이 또 태극기 한다고 태극기 하는 데 가서 지지하고 이건 안 된다 이거요. 이런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부처님의 사상은, 진리는 자비의 사상은 일체중생이 다 한 가족이요. 한 몸이요. 한 마음이다. 둘이 아니다 이거요. 그런 차원에서 상대를 해야 된다 이거요.
우리 불자들도 그렇다 그래요. 그래 여기 가서 우왕좌왕하고 저기 가서 우왕좌왕하고 그래 가지고 그래서는 부처님 근본 사상은 상실했다는 거요. 그러니까 부모하고 자식들을 어느 자식이라고 사랑하고 어느 자식이라고 차별 두고, 안 그렇지 않아요? 자식은 똑 같다 이 말이요. 미우나 고우나 내자식이면 사랑한다 이거야. 부처님이 일체 중생을 내 자식이라 그랬어요. 일체 중생이.
이래서 불자들은 그런 사상으로 살아야지 어느 한 곳에 국집해 가지고 집착해서 지지를 한다든가 그건 잘 못 됐다 이거요. 그래서는 안돼, 절대 잘 못된 겁니다.
우리는 중생들의 의식을 가지고 사는 중생들이 잘 못 된 것은 그것을 올바른 지혜의 눈을 열어서 살아 갈 수 있는 진리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정신적인 지주지. 그것을 해야 하지 그것을 하지 못하고 그것을 앞장서서 중생을 일깨워 주어서 중생을 높은 진리의 차원으로 나아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그런 역할이 스님들이, 성직자가 하는 거예요. 또 여러분이 하는 거고 여러분이 불자니까 공부해 가지고 이제 하는 거요.
아, 여러분이 ‘이것은 아닙니다. 이것 아닙니다.’ 이렇게 내가 말한 것을 상대방이 안 듣더라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는 해 주어라 이겁니다.
그런데 또 부처님은 누구든지 말을 하면 부처님 말씀은 다 들어요. 부처님 말씀 때 뭐 악한 무슨 코브라 같은 뱀도 독한 놈이지만 부처님한테 오면 부처님한테 꼭 절을 하고 순한 양이 되니까요. 부처님은 무적이라 적이 없다, 그러니까 대자비라. 대자비요. 그러니까 새도 한 마리가 딱 날라 와서 부처님 손에 앉으면 푹 잠이 들어, 앉자 마자 잠이 들어, 그런데 사리불한테도 새가 날아 들었는데 손에 앉아 새가 벌벌 떨고 있더라는 거야. 벌벌 떨어. 그게 다르다 이거요.
그러나 여러분이 산에 가면 토끼나 다람쥐가 도망을 가는데, 왜 도망을 가겠어요? 여러분이 토끼나 산토끼 보면 도망 가 버리지요? 그렇지요? (네)
부처님은 곁에 오라고 안 해도 곁에 딱 온다 이 말이요.
신라 때 대안대사 같은 분은 산에 너구리, 뱀, 오만 거와 같이 굴에서 살고 잠자고 너구리 새끼도 끌어 안고 다니고, 젓 구해 먹여 주고, 뭐 이게 전연 적대시하는 그런 마음이 하나도 없다니까. 그래 그렇게 되려면 여러분 마음에 뭐가 없어야 되요? 살기, 살기가 없어야 되요.
잡아서 죽인다는 살기, 살기가 없어야 되요, 그러니까 절대 안 오지요. 도망 가지요. 벌써 알아 본다고, 짐승도.
중생의 의식은 짐승들도 멀리 가 버려요. 절대 곁에 안 와요. 그런데 부처님은 일체 모든 미물 곤충까지도 무서운 코브라 뱀까지도 무서운 독룡, 독을 품은 용까지도 부처님한테는 전연 경계가 없고 자연스럽게 아무 부담도 안 느끼고 곁에, 부처님 곁에 자연스럽게 같이 잠자고 부처님한테 같이 있어도 전연 그게 서로 무섭다던가 불편하다던가 이런 게 하나도 없는 거라. 가족,
그러니까 여러분의 가정이 행복하게 잘 살려면 그거부터 그 중생의 마음부터 고쳐야 되요. 중생의 마음을 고치면 꼭 나만 남편이 꼭 나만 생각해 주고 잘해 주어야 된다는 그런 개인적인 바라는 생각이 없어, 또 부인이 나만 잘해 주어야지 하는 개인적인 욕심을 바라는 그런 생각으로부터 탈피해요.
그런 것을 해탈이라 그래. 자기의 중생의 욕심에서 벗어 나는 것이 해탈이라 그래요. 해탈.
그러니까 그 해탈되는 그 마음은 서로가 사는 속에서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요구하고 바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다 자율적으로 잘 된다. 잘 돌아 간다.
뭐 이거 해야 된다 이런 말 안 해도 요구하는 것이 없어도 이미 그 다 알고 알아서 맞아 들어 가.잘 돼. 잘 맞아 들어 가게 되어 있고, 또 그때 풍기는 기운이 에너지 기운이 좋은 쪽으로 풍기게 되어 있어서 가정이 그 기운이 추운 겨울이지만 온화한 봄, 봄 같이 봄처럼 따뜻한 가정이 된다 이거요.
따뜻한 가정이 무엇 때문에 되겠어요? 좋은 기운이 풍기기 때문에, 여러분 마음에서 좋은 기운이 풍기기 때문에. 그런데 여러분은 안 그렇지 않아요?
그래 우리나라가 이거 잘 못된 게 참 많아요,. 외세에 미국에 6•25 때도 그렇고 뭐 먹을 게 어려웠는데, 미국사람들도. 미국도 양반이 있고 쌍놈이 있어요. 그걸 몰라서 그렇지.
미국사람들이 뭐 맨 그 즉 말하자면, 그 하빠리, 미국에서 하빠리 그런 사람들을 보내서 전쟁 치르러 보냈거든. 전쟁하고. 그게 군인이니까
그러니까 그런 사람은 미국에서 결혼하기도 힘들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전쟁해 준다고 우리나라에 왔는데 우리나라 여자도 있고 아가씨고 있고.
전쟁 중에, 어쨌든 전쟁 중에는 군인들이 판 치지 않아요? 군인시대 이니까.
그러니까 이게 여자를 얻으면 옥이야 금이야 하고 아주 떠 받들고 애기도 그냥 남자가 끌어 안고 보따리도 짊어 지고 여자는 살랑살랑 빈 몸으로 따라 가는데, 그걸 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뭐라고 해요? 아, 저 미국 사람을 보니까,
‘대단하다. 우리도 저래야 되지 않느냐? 저게 민주주의 가 아니냐?:” 이렇게 잘 못 알고 있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안 그래요?
내가 미국에 가 봤는데 미국에 양반촌이 있다 이거예요. 미국에 무슨 양반이 있느냐? 하니까, 아니 스님 그건 잘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미국에 양반촌이라는 것은 그 근본 터줏대감들인데, 이 사람들이 그 미국의 영국 쪽에서 올 때 흉악한 산적같은 그런 나쁜 놈들이 그 뉴욕에 건너 온 것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영국의 양반이 건너온 촌이 있답니다. 양반이.
그 양반들은 암만 무더운 여름이라도 정장, 미국사람을 보면 뭐 옷도 아무 렇게나 얄구지게 하고, 살 내 놓고 걸어 다니고, 가면서 뭐 씹어 먹고, 차 타고 다니며 뭐 먹고 다니고 이러지 않아요? 하는 행동이
그러나 이제 양반촌에 있는 사람에게 가 보았는데 남자들이 그 더운 여름에도 정장, 우리나라의 선비들이 갓 쓰고 두루마리 입듯이 정장, 그 정복을 젊은 사람이 벗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참 철저하게 딱 입었는데.
딱 식당에 왔는데요. 딱 여자가 애기를 안고 남자는 가방을 들고 들어 왔습디다. 그게 그 법이랍니다. 그 사람들의
우리나라가 그랬거든요. 옛날에는. 과거에 우리나라가 여자가 애기를 안고 남자가 가방을 들었어요.
그런데 이것이 지금은 무너졌다 말입니다. 지금은 무너져서 ‘너 가방 들어.’ ‘너 애기 안아.’ 이렇게 됩니다. 조졌어. 아주. 여자가 조졌다니까
지금 그렇게 해요. 부엌에서 ‘너 설거지해, 너 설거지해.’ 이래요. 그러더라고.
그래서 부엌에서 신부가 신랑에게 ‘야, 이리와 설거지 해’ 그러더라고. 그래요.
아, 조졌어 이 나라가 쌍놈이 되 버렸어, 양반이 아니요.
양반이 쌍놈의 나라가 되었다 이거야. 그렇지요?
여러분은 안 그렇지? 여러분은 그런 분이 없지요? 여기 있는 분은 그런 분이 없어. 하!하! (요즘 시대가 변했습니다.)
여러분은 안 그런데 시대가 그렇지? 하! 하! 그 말이 맞는데, 하!하! 그 말이 맞아 여러분은 안 그런데 시대가 그래.
이거 참 문제야 이런 것이 가정적인 그 도덕 윤리라던가 우리나라의 살아 온 모든 도덕적인 예법이 다 무너뜨렸다 말살되었다 이거야. 그래 가지고는 이제는 삭막해, 삭막하다고, 살아 가는 것이. 삭막한 시대에 살아 가는 사람들은 의식이 지금은 옛날하고 지금하고 완전히 다릅니다.
지금 의식은 어때요? 뭐를 위주로 살아 가요? 뭐를 위주로 살아 갑니까? (물질) 개인 편리 위주로 살아 가지 않아요? 개인 편리 위주라. 자기 개인 편리 위주가 우선이야. 지금은.
정말 자기의 괴롭고 힘들고 어려운 것은 내가 다 짊어 지겠습니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상대방이 편하다면 참 편안하게 해 줄 수 있고 배려 해 줄 수 있는 마음으로 해 주고 괴로움은 내가 끌어 안겠습니다. 하는 사람이 몇 사람이 되요?
여기 있어요? 여기 있는 사람은 안 그러겠지. 시대가 그렇지 시대가. 시대가. 이 조진 거라. 한마디로 말하면 이게 다 절단 났어. 이거 큰일 났어요. 그래서.
이제 이게 이렇게 살아 가는 변하는 세계가 중생의 의식으로서 변화해 가는 창조하는 모습이라, 이게. 중생의 의식이 창조하는 의식의 세계라, 이거는 만족할 수 없어. 진정한 행복도 없어, 진정한 참으로 편안함이 없다 이거요. 아닌 거야.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살아 갈 수 있는 그런 가정, 사회, 국가 세계, 전 인류, 일체 중생, 정말 잘 되려면 부처님처럼 뱀 하고도 같이 한 식구처럼 부담 없이 같이 뒹굴고 또 신라 때 대안대사처럼 너구리, 뭐 여우, 뱀 새끼, 뭐 산토끼 또 그 조그마한 다람쥐 까지도 같이 자연스럽게 이렇게 격이 없고 막힘이 없이 자연스럽게 한 가족 한 사회, 일체 중생이 그와 같은 분위기가 이 땅에 조성이 되고 그렇게 정착이 되어서 살아 갈 수 있는 사회가 분위기가 만들어 지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부터 정리 되야 돼.
여러분의 마음이 정리가 안되면 절대로 가정, 행복. 편안한 사회, 그리고 이 땅에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계속 반복된 투쟁, 태극기, 촛불, 지랄하고 이렇게 나와서 모두가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이거로 끝날 줄 압니까? 앞으로 또 몰라요. 어떤 일들이 일어 날지
그래서 여기 오신 여러분들은 그래도 다행히 아, 이게 아니다. 어떻게 살아 가면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는가? 정말로 가정과 행복과 평화를 어떻게 하면 유지하고 정착시키고 살아 갈 수 있는가? 생각할 때.
아, 그 모든 문제의 근본은 나한테 있구나. 나의 있는 그 허물을 제거하고 내 마음, 내 몸부터 잘 다스려서 잘 다듬어서 나부터 첫째 잘 만들어야 되겠다.
그래야 내 상대방을 배려해 줄 수도 잇고, 어려운 고통을 내가 안고 받아서 어려운 고통을 내가 짊어 지더라도 행복하다 이거요.
괴로운 불행도 행복하게 되어있고 시끄럽더라도 바다같이 불안이 해소되어 편안함이 있다 이거에요. 편안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이 몰라서 그렇지.
그러니까 그렇게 되어야 된다 이건데.
여러분이 이렇게 저와 마주 보는 것은 여기에 부모 미생 전에 본래 면목을 여러분이 분명히 이 자리에서 바로 안다면, 각지에서 깨어 난다면, 도출생사라, 나고 죽는 여러분의 의식의 고통에서 벗어 나서 그러한 생산의 의식의 세계에서 벗어 나서, 안심입명이라 영원히 편안한 이 마음은 여러분이 써도 써도 끝이 없이 써도 다 함이 없는 그 묵임을 살아 갈 것이다.
그게 바로 불가사의 속에 살아 사갈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이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은 이와 같은 도리를 알겠는가? 이와 같은 도리를 알겠는가?
이 말이지.
차가운 얼음 위에 눈이 내려 오면, 초엽 일체 모든 잎은 다 떨어 져서 없어지지마는 다시 훈훈한 바람이 도래하면 만물이 다시 소생하듯이 겨울에 차가운 기운이 오면 잎이 떨어 지고 또 따뜻하게 되면 만물이 다시 소생하고 그 두 가지 모양이 되어 있지마는 그러나 계곡에 흐르는 물과 그 바람은 한 곳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계곡은 양변은 뛰어 난 밖에 올리니, ‘출몰비물 자공 왕래’로다.
봄이 오매 제비는 위로도 나르고 아래로도 나르고 좌우로, 마음대로 자유 자재로 오고 가고 날라 가네.
그러니까 ‘회자마’ 그랬어요.
‘수로참마조’ 하니, 수로존자가 마조스님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마조대사가 발로 들고 차 버렸습니다.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물으니까 발로 밟아 버렸어요.
그랬는데 ‘지혜 박수라’, 일어 나더니 크게 박수를 치고 하하 웃었다.
발로 밟았다. ‘무슨 뜻입니까?’ 하고 물었는데, 수로화상이 마조스님한테 찾아 가서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하고 물었는데)
마조스님이 발로 냅다 밟아 버렸다.
그랬더니 수로 화상이 일어 나며 박수를 치고 하하 웃으면서 아주 박장 대소를 했습니다. 그래서 ‘당하에 대오’ 라, 그 지팡이 아래 크게 깨달았다. 그래서 수로대사가 마조대사의 법을 잇게 되었다.
추후에 수로화상이 산중이 머물러 있는데 그 어떤 스님이 수로스님한테 와서 물었는데, ‘여하시 조사 서래의’입니까?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하니까, 수로 화상이 답해 가로되, ‘작용마사 일직해서 직지어에 수로부여’이라. ‘내가 마조스님한테 가서 한번 발로 밟힌 뒤에 지금까지 나는 그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마조스님은 냅다 밟아 가지고 깨닫게 해서 했는데, 수로화상은 반대로 그 산중에서 머물면서 대중을 가르치고 있는데, 어느 분이 물은 겁니다.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수로화상의 대답입니다. ‘내가 마조스님한테 한번 밟힌 뒤로 지금까지도 그 웃음이 그치지 않느니라.’
한 말이 다릅니다, 반대로. 마조스님은 한번 밟아 버렸는데, 수로스님은 안 밟아 주고, 그렇지?
자, 오늘 여러분, 여기 오신 분은 각자가 나는 무엇인가? 한번 돌아 봐야 합니다. 나라고 하는 것은 본래 무엇일까? 이걸 여기서 여러분 자신을 나의 바로 보면, 나는 본래 무엇일까? 하고 그걸 한번 본인 자신을 돌이켜 봐야 돼,
본인을 돌이켜서 나를 돌이켜서 나는, 나라고 하는 이것은 본래 무엇이냐?
이거를 여러분이 깊이 생각해 보면 거기에서 일체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는 그 여러분의 열쇠가 딱 거기에 들어 있어요. 있어요. 모든 것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다 나와요. 여러분이 그걸 안 하고 살아 와서 그렇지.
그렇게 되면 여러분 모든 일이 하고자 하는 만족된 생활 그것을 할 수 있고, 육바라밀을 하라는 소리 안 해도 스스로 하게 되고, 육바라밀을 배워서 하라고 하면 힘이 들어서 못하는데 여러분이 여러분 지신을 바로 보고 나를 깨달음을 아는 사람은 육바라밀을 하라, 하지 마라 이럴 필요도 없이 스스로 알아서 다 잘해
그래서 오늘 여기 오신 여러분은 이제 앞으로 나는 무엇인가? 알겠어요? 나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 뭡니까? (여러 가지 답변) 뭐예요? 여러분은 뭡니까? (나요)
그 나라는 것이 뭡니까? 뭐를 나라 그래요? (모르겠어요) 그걸 알면, (그걸 알고 싶어요) 이제 집에서 생활 속에서 남자도 여자도 부부간에 자식도, 그거로, 그게 근본이야. 그걸 공부를 하는 사람은 뭐 아들보고 잔소리할 필요도 없고 부부간에도 트러블 생길 일이 없다니까.
그 공부하는 사람만이 그래, 공부도 안하고 살면 이거는 어쩔 수가 없어. 점점 더 업이 쌓여 가지고 서로 갈라 설 수 밖에 없는데, 맞나요? 그래, 안 그래요? 그런 갈라 지게 생기게 만들어요. 아무리 하려고 해도 되요? 안됩니다.
어쨌든 뭐 그 뭐 저리 가서 눈 돌리면 남인데 뭐. 그런데 안 통한단 말이오. 벌써 달아 난지가 오래 됐어. 달아나 버렸어.
그리 된 것은 왜 그러냐 말이지. 그러니까.
정말 인생이 사람으로, 정말 사람으로 사람답게 멋지게 인생을 살며, 보람이 의미도 우리가 제대로 알면 살아 가려면 ‘이뭣고’ 를 해야.
나는 무엇인가? 하는 화두를 열심히 해야 만이 여러분이 앞으로 정말 가정에도 그렇고 편안하게 잘 살 수 있어요. 멋지게, 알겠어요?
지병천공 연곡하니 시전도막은 절찬 공이로다
친리두금 무실하는데 다니동중이 청풍이로다
나무아미 타불
여러분이 오늘 여기 와서 이 법문을 듣고 같이 여러분과 내가 얼굴을 마주 하는 이곳에는 아주 지혜가 밝아서 천고에 그 신령들에게 통한다는 이름을 붙이게 된다.
나날은 일체를 다 모든 것을 중생에 대한 잘못된 쓰레기 보따리 같은 생각을 딱 끊어 져서 잊어 버리고 천지에 구원 구세 하늘 정말 밝은 놀이더라
상이 성조 기천 풍이요. 사방을 크게 동서남북을 봐도 그 맑은 푸른 소나무에 맑은 바람과 달이 비치듯이 맑은 청풍 끊임없이 일어 나노라
다 그렇습니다.
(주장자를 세번 내리 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