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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千字文(천자문) - 39
學 배울 학
優 넉넉할 우
登 오를 등
仕 벼슬 사
■ 學優登仕(학우등사) : 학문이 뛰어나면 벼슬길에 올라갈 수 있고,
攝 잡을 섭
職 벼슬 직
從 좇을 종
政 정사 정
■ 攝職從政(섭직종정) : 직책를 맡아서 나라 일에 참여하게 된다.
39. 學優登仕 攝職從政(학우등사 섭직종정)
: ‘배운 것이 넉넉하면 벼슬에 오를 수 있고, 직분을 맡아 정사에 참여한다.'
논어(論語) 자장편(子張篇)에,
● 仕而優則學 學而優則仕(사이우즉학 학이우즉사) - "벼슬을 함이 넉넉하면 배우고, 배움이 넉넉하면 벼슬을 하는 것이다." 구절이 있는바, 벼슬과 학문이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말하며, 이런 생각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내려 있었습니다.
학(學)은 '아이가 가르침을 받는다'는 원뜻인데, '배운다'는 뜻이고,
우(優)의 본뜻은 '부드럽다'인데, '넉넉하다', '뛰어나다'는 뜻이며,
등(登)은 본뜻은 '수레에 올라타다'인데, '오르다', '수레에 타다' 라는 뜻입니다.
사(仕)는 사람 인(人)과 선비 사(士)가 합쳐진 글자로, 선비가 임금을 섬긴다는 뜻에서 '벼슬'이란 뜻으로 쓰입니다
학우등사(學優登仕)는 "학문이 뛰어나면 벼슬길에 나아간다"는 말씀입니다.
배우지 못한 자가 벼슬을 하면 폭정을 일삼게 되지만, 학문을 올바르게 닦은 사람은 나라 일에 인의(仁義)로 임합니다.
섭(攝)의 본뜻은 '끌어 당기다'인데, '다스리다', '잡다'의 뜻으로 쓰입니다.
직(職)의 본뜻은 '기록하다'인데, 직분(職分)이란 뜻으로 쓰입니다.
종(從)은 '좇다'의 뜻입니다.
정(政)은 '바르지 않는 자(者)를 쳐서 바르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섭직종정(攝職從政)은 "직위(職位)를 맡아 나라의 정사(政事)에 참여한다"는 말씀입니다.
천자문 이번 편은 충분히 학문을 갈고 닦은 후에, 그걸 올바로 펴서 공익(公益)을 이룰 수 있고, 백성을 윤택하게 하는 길을 안후에 벼슬에 올라, 나라의 일을 감당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 學優登仕(학우등사) [學 (배울 학), 優 (넉넉할 우), 登 (오를 등), 仕 (벼슬 사)]
: 학문이 훌륭하면 벼슬길에 오르고,
■ 攝職從政(섭직종정) [攝 (잡을 섭), 職 (벼슬 직), 從 (따를 종), 政 (정사 정)]
: 관직을 맡아 정사를 돌본다.
解說
배우고 여유가 있으면 벼슬길에 올라, 직책을 갖고 정치에 종사할 수 있다.
≪論語(논어)≫ 子張(자장) 편에 보면
● “子夏曰 仕而優則學 學而優則仕(자하왈 사이우즉학 학이우즉사) - 자하는 말하기를, 배워서 실력이 우수하면 벼슬할 수가 있다고 했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잘 배워서 실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덕행이 따르지 않으면 아니 된다. 덕이 없으면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재주를 쓰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재주 많고 많이 배운 사람이 못된 짓을 하고 벌을 받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論語(논어)≫ 雍也(옹야) 편에서 “由(유)는 너무 과단성이 있구나! 그러고서 정치를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했다. 由(유)라는 제자가 성질이 급하기만 할 뿐 덕이 결핍됨을 지적한 말인 것이다. 유는 나중에 성질이 급하고 덕이 없어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또한 사람이 배운 바가 없거나 무능한데도 중책을 맡으면 일은 일대로 망치고 그 사람도 상하게 된다
천자문 제39연은 공자의 언행록 네번째『논어』 이야기이다.
● 學優登仕하여 攝職從政이라.(학우등사하여 섭직종정이라.) - 배우면서 남은 힘이 있다면 벼슬에 오르고, 관직을 맡아 나라 다스리는 일에 종사한다.
공자의 제자들 중 시문(詩文)과 정확한 학문으로 이름을 얻은 사람으로는 자유(子游)와 자하(子夏)를 들 수 있다.
정치적 능력을 발휘한 인물로는 자유(子有)와 자로(子路)를 꼽을 수 있다는 것은 앞에서 설명한 바 있다. 자하(子夏)는 학문에 뛰어난 재주를 지니고 있는 사람답게, "배우면서 남은 힘이 있다면 벼슬에 나가고, 벼슬을 하면서도 남은 힘이 있다면 배운다"고 했다. 따라서 '學優登仕(학우등사)' 곧 '배우면서 남은 힘이 있다면 벼슬에 오른다'는 말은 자하(子夏)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 생존 당시 노(魯)나라는 계손씨·숙손씨·맹손씨의 소위 '삼환씨(三桓氏 : 노나라 제16대 제후인 환공의 후손들 중 세 가문)'가 권력을 독점하고 전횡하였다. 그 중 세력이 가장 큰 가문은 계손씨(季孫氏)였다. 이 계손씨(季孫氏) 가문의 실권자인 계강자(季康子)가 어느 날 공자에게 제자들 중 자로(子路)·자공(子貢)·자유(子有)의 정치적 능력과 수완에 대해 물었다. 아마도 공자의 제자 가운데 자신의 가신(家臣)을 뽑아 쓰려고 한 것 같다.
계강자는 먼저 자로(子路)에 대해 물었다. 공자는 "자로는 결단성이 있다"고 하며 정치에 종사할 수 있다고 했다. 다음으로 계강자는 자공(子貢)에 대해 물었다. 공자는 "자공은 모든 사물의 이치에 통달하고 있다"면서 역시 정치에 종사할 수 있다고 했다. 계강자는 마지막으로 자유(子有)에 대해 물었다. 공자는 "자유는 재주와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며 마땅히 정치에 종사할 수 있다고 했다. 제자들의 특징과 장점을 꿰뚫고 이를 충분히 살려주는 교육을 했던 공자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 이들 세 제자 중 계씨 가문의 가신(家臣)이 된 사람은 누구일까? 그 사람은 자유(子有)였다. 그는 계씨의 가신이 된 후, 그 가문의 일을 처리하고 와서는 공자에게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공자가 항상 "너무 뒤로 물러나기만 하지 말고 앞으로 좀 나가 보라"고 할 정도로 워낙 겸손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위에서 말한 자하(子夏)가 "배우면서 남은 힘이 있다면 벼슬에 오른다"는 말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다.
자하(子夏)는 공자 사후 황하 서쪽 지방에서 선생 노릇을 하면서 위(魏)나라 문후(文侯)에게 국정 자문을 했다. 자유(子有)는 "벼슬을 하면서도 남은 힘이 있다면 배운다"는 말을 몸소 실천한 인물이다.
공자의 언행록인 『논어』 「자장」편과 「옹야」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안짝인 학우등사(學優登仕)는 배움이 넉넉하면 벼슬에 오른다는 말이고, 바깥짝인 섭직종정(攝職從政)은 직책을 끼고서 정사에 따른다는 말이다. 사람이 학문을 익혀 훌륭한 품성을 갖추어야만 벼슬살이를 하더라도 올바른 이치를 근본으로 삼아 성실하게 정사를 잘 돌볼 수 있다.
字義
學 (배울 학)
도리를 깨우쳐 안다는 뜻인데, 자형은 ‘가르칠 교(敎)’와 ‘덮을 멱(冖)’로 이루어졌으며, 멱(冖)은 아직 몽매하다는 의미다. 국( <v>)은 발음을 나타낸다. 학(學)은 전문(篆文) 효(斆)의 생략형이다[說文 : 學, 覺悟也. 从敎冖. 冖, 尙矇也. <v>聲. 學.篆文斆省]. 효(斆)와 각(覺)은 운모가 같다. 예기(禮記) 학기(學記)편에서 이르기를 “배운 뒤에 부족함을 안다. 부족함을 안 뒤에야 스스로 반성한다[學然後知不足 知不足然後能自反也].”라고 했으니 이른바 도리를 깨우쳐 안다[覺悟]는 말이다. 또, “가르친 후에 어려움을 안다. 어려움을 안 뒤에야 스스로 힘쓴다[敎然後知困 知困然後能自强也].”라고 했다. 그러므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가 성장하는 것이다[敎學相長]. 열명(悅命)에서 “가르치는 일의 반은 배우는 것이다[學學半].”라고 한 것은 바로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다. 가르치는 것 역시 배우는 것이다. 배우는 것은 스스로 깨닫는 것인데, 가르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고로 예전에는 이를 모두 일러 학(學)이라고 했다. 멱(冖)은 덮는다[覆也]는 뜻이다. 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운 아이들[尙童?]을 가르쳐서 깨닫게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학(學)이 교(敎)와 멱(冖)으로 구성됐다. 국은 손가락이 서로를 향해 마주 보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 모두가 상보상성(相輔相成)하면서 깨닫고 배운다는 말이다. 그리고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서 “효(爻)라는 것은 천하가 움직이는 것을 본받는 것이다[爻也者 效天下之動者也].”라고 했다.
優 (넉넉할 우)
넉넉하다는 뜻인데, 자형은 ‘사람 인(人)’으로 이루어졌으며, 우(憂)는 발음을 나타낸다. 한편으로는 배우라고도 한다[說文 : 優, 饒也. 从人. 憂聲. 一曰倡也]. 요(饒)는 배부르다[飽也]는 의미인데, 속이 꽉 찼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인신(引伸)되어 무릇 여유 있는 것은 모두 요(饒)라고 말했다. 그리고 하는 일 없이 한가롭고 편안하게 지내거나[優游], 마음이 부드럽고 순하여 끊고 맺는 데가 없다[優柔]는 데서 활용돼 배우(俳優)라는 뜻으로 쓰였다. 창(倡)은 즐거워한다는 의미다. 즉 기생노릇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인데, 이른바 배우를 가리킨다.
登 (오를 등)
수레에 오르는 것이다. 자형은 ‘등질 발(?)’과 ‘콩 두(豆)’로 이루어졌다. 수레에 오르는 형상을 상형했다[說文 : 登, 上車也. ??豆. 象登車形]. 인신(引伸)되어 무릇 오르는 것은 모두 등(登)이라고 말했다. 발(?)은 발이 엇갈려 있는 것을 의미한다.
仕 (벼슬 사)
배운다는 뜻인데, 자형은 ‘사람 인(人)’으로 구성됐으며, 사(士)는 발음을 나타낸다[說文 : 仕, 學也. ?人. 士聲]. 벼슬길로 들어간다[入官]는 것이 지금의 뜻이나, 고문에서는 벼슬[宦]이라는 말이었다. 사(仕)는 배운다는 의미다[仕訓學]. 모전(毛傳)에서 “사(士)는 사(事)를 뜻한다.”라고 했다. 대아(大雅) 문왕유성(文王有聲)에서도 역시 “사(仕)는 사(事)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사(士)와 사(仕)는 모두 사(事)를 뜻하는 말이다. 학(學)이란 도리를 깨우쳐 안다[覺悟]는 의미다. 사(事)는 그 일[事]에 대한 깨우침이 나날이 발전한다[日就]는 뜻이다. 논어 자장편(子張篇)에서 자하(子夏)가 이와 같이 말했는데 “벼슬하여 여력(餘力)이 있으면 곧 학문에 힘쓰고, 학문을 닦다가 여력이 생기면 벼슬한다[仕而優則學 學而優則仕].”라고 했다. 여기에서 활용돼 어떤 일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 사람을 사(士)라고 불렀으며, 사(仕)는 이러한 일을 맡는 것을 일컬었다.
攝 (잡을 섭)
끌어 잡는다는 뜻인데, 자형은 ‘손 수(手)’로 구성됐으며, 섭(?)은 발음을 나타낸다[說文 : 攝, 引持也. ?手. ?聲]. 끌어당겨 잡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무릇 섭(攝)이란 다 가지런히 정리한다[整飭]는 의미인데, 복잡한 것을 끌어당겨 질서정연하게 정리한다는 말이다. 좌전(左傳) 양공(襄公) 십사년(十四年)에 “쓰지 않은 것은 태만했기 때문이다[不書者惰也].”라고 했다. 여기에서 서(書)는 섭(攝)을 말하는데, 이는 정리[整]하여 기록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職 (벼슬 직)
표지(標識)를 해 놓는다는 뜻인데, 자형은 ‘귀 이(耳)’로 이루어졌으며, 시(?)는 발음을 나타낸다?耳. ?聲]. 고문의 기(記)는 마음에 간직한다[識]는 말이다. 기미란 기록이나 부호로 표지해 놓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직(職)은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안다[識]는 뜻이다. 지(識)는 직분이라는 의미인데[識, 常也], 관직이나 직위[職]를 말한다. 상(常)은 깃발을 말하는데, 옛날에 조회에 참여하는 뭇 신하들은 깃발을 세워 표지[徽識]한 위치에 따라 각자가 자리[職]를 잡았다. 주례(周禮) 춘관편(春官篇) 서관(序官)에서 “사상(司常)의 하는 일은 임금의 깃발을 주관한다[司常主王旌旗].”라고 했다. 또, 직(職)이란 (벼슬아치가) 착하고 정당하여 도덕적 기준에 맞는 것을 널리 살펴 듣는다[善聽]는 의미다. 그런데 이러한 설문의 자의(字義)와는 달리 예부터 이 두 글자는 정반대의 뜻으로 쓰였다. 이러한 뒤바뀐 용법을 줄곧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데, 인식, 지식의 뜻으로는 지(識)를, 직위, 직무의 의미로는 직(職)을 쓴다.
從 (따를 종)
따라가는 것이다. 자형은 ‘따를 종(?)’과 ‘쉬엄쉬엄 갈 착(?)’으로 구성됐다[說文 : 從, 隨行也. ???. ?亦聲]. 따라가는 것이다. 시경 제풍(齊風) 환(還)에서 “나란히 달려 두 마리 큰 짐승을 뒤쫓는다[?驅從兩肩兮].”라고 했다. 종(從)은 쫓는 것이다[從, 逐也]. 축(逐) 역시 따르는 것이다[逐, 隨也]. 이아(爾雅) 석고(釋?)에서 “종(從)은 따르는 것이다[從, 自也]. 자(自)는 종(從)과 같다.” 또, “종(從)은 겹치는 것이다[從, 重也].”라고 했다. 여기에서 인신(引伸)돼 종(從)이 순응한다[訓順]는 말로 쓰인다. 종(从)은 가는 것인데, 따라가는 것이다[从辵者, 隨行也]. 가는 것이 주가 아니라 따라가는 것이 주다[主从不主辵] 그러므로 주부(辵部)에 속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종(从)은 서로 듣는다[相聽]는 뜻이다. 인신(引伸)돼 서로 허락[許]한다는 의미가 됐다. 허(許) 역시 듣는다[聽 : 聆]는 뜻이다. 종(从)과 종(從)은 같은 뜻인데, 종(從)이 유행하면서 종(从)이 없어졌다.
政 (정사 정)
바른 것이다. 자형은 ‘두드릴 복(攴)’과 ‘바를 정(正)’으로 구성됐다[說文 : 政, 正也. 从攴正. 正亦聲].논어 안연(顔淵)편에서 공자가 이르기를 “정치란 바르게 하는 것이다[政者, 正也].”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