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반사茶飯事
차를 마시는 일은 생활이고 밥을 먹는 일은 생존이다. 나는 차 마시기를 밥 먹듯 한다. 어느 날 뜬금없이 차에 대한 글을 한 번 써보라는 권유를 받는다. 다의 유래, 역사, 채취, 채수, 다기, 음용 등 차에 대해 책으로 쓴다면 모를까 제한된 원고지 15장 범위에서 차 이야기를 하기란 시작이 여간 망설여지는 일이 아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828년 김대렴金大廉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앗을 가져와 지리산 일대에 처음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후 진감선사(眞鑑禪師 ; 774~850)가 차나무를 번식시켜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다. 쌍계사 입구에는 그 일대가 차 시배지 였음을 새겨놓은 비석이 있다.
16세기경 중국을 왕래하던 유럽 선원들은 괴혈병에 많이 시달렸다. 그러나 중국 선원들은 항해 중 녹차를 줄곧 음용하여 괴혈병에 걸리지 않았다. 이에 힌트를 얻은 유럽 선원들이 찻잎을 실어가 유럽에 차를 전파하였다. 그 결과로 오늘날 홍차를 세계화하기에 이르렀고 쩌서 만들기에 고온에 강하다는 특성을 지녔다. 티백에 넣어 공급되기도 하여 격식이 까다롭지 않은 듯하지만 영국인들은 한국 일본 못지않게 음다 격식을 중요하게 여긴다.
중국에서는 4월 중순을 갓 지나 곡우 전에 수확한 잎을 우전雨前 또는 세작細雀이라 하여 고급으로 여긴다. 잎차, 녹차, 작설차雀舌茶로 통칭되기도 한다. 우전이 되었건 작설차가 되었건 일반인이 그 맛을 구별하기는 매우 어렵다. 초의선사(草衣禪師 ; 1786~1866)는 『동다송東茶頌』에서 우리나라 기후로는 곡우를 조금 지난 입하立夏무렵에 채취한 찻잎이 맛있다고 소개한다.
차에는 카페인, 타닌, 비타민A와 C 및 루틴을 비롯한 항산화 물질과 무기염류가 많다. 그래서 머리와 눈을 맑게 한다. 또한, 가래를 삭이고 소화를 도우며 해독에도 유효하다. 절집에서 스님이 차를 마시는 일은 다반사다. 차를 마시면서 영양을 염두에 두지는 않는다. 차가 각자覺者에게 미치는 심미尋味는 찻잔 안에서 출렁이는 무명無明과 각성覺性이다.
차를 만드는 일, 물에 대한 품평, 차를 끓이는 법, 차를 마시는 법, 감별 법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자 한다면 『동다송東茶頌』을 읽어야겠지만 일반인이 알기 쉽게 쓴 책으로 『차생활 문화대전』이 있다. 동다송은 선수행禪修行을 차와 일치시켜 차문화를 부흥시키는데 크게 기여 하였지만 일반인이 접근하기에 불편함이 적지 않다.
다자茶字에는 108번뇌가 녹아있다. 풀 초艸는 스물이고, 여덟팔자八字 아래 나무 목자木字에 열十이 있어 이를 합치면 여든이 된다. 스물에 여든을 합쳐 100이 되고 목자木字좌우로 팔八이 있으니 다 합치면 108이 된다는 해학적 해자解字다. 스님이 ‘이머꼬what is it’ 하고 틀고 앉아 차를 홀짝거리는 장면이 연상되는 익살이 엿보인다.
얽혔던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풀고자 한다면 대화 매체로서 술보다 차가 도움이 크다. 술은 흥분을 돋우고 차는 흥분을 가라앉힌다. 차를 마시는 국민은 흥하고 술을 마시는 국민은 망한다는 말이 있다. 오늘날 술잔은 투명한 유리잔을 주로 쓰고 찻잔은 청자나 백자를 주로 쓰는 연유를 생각해 볼 일이다.
다례는 형식이 매우 다양하다. 어떤 이는 자신이 배운 다례법이 정통이라고 우겨 다른 방식을 비하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차가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느냐다. 다도는 차 맛을 즐기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행위를 바르게 하여 인격을 완성함에 더 큰 목적이 있다.
찻잔을 잡을 때는 오른손으로 잔을 가볍게 감싸 쥐고, 왼손으로 잔을 받친다, 마시기 전 먼저 색을 본 후 향기를 맡고 소리가 나지 않도록 3~4모금에 마신다. 차를 따르는 동안 찻잔에 손을 대지 않는다. 『대학大學』에 「성어중형어외誠於中形於外」라는 말이 있다. 정성이 있으면 반드시 겉으로 나타난다는 의미다. 차를 덖는 마음이 지극하면 맛에서 정성이 우러나옴을 일컫는다.
신神에게 차탕茶湯을 바치는 예의를 다례라고 한다. 왕조에서는 궁중다례, 유가불가도가 에서는 종교적 다례를 행한다. 여염집에서 행하는 손님맞이 다례도 있다. 조선 말기 까지는 조상제사에 술을 쓰지 않고 차를 올렸다. 명절에 올리는 차례茶禮가 대중이 치르는 다례를 대표한다.
탕관에서 끓인 물을 먼저 숙우(식힘 그릇)에 붓고, 찻잔에 옮겨 부어 잔을 예열한다. 끓인 물을 80℃ 정도로 식혀서 잎을 우린다. 온도가 높거나 오래 우리면 떫은맛이 배어나 다향을 방해한다. 잎뿐만 아니라 물, 불, 시간, 온도 등 차 맛을 좌우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다.
중국산 보이차가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 원재료는 차나무 잎이지만 발효과정에 차이가 있다. 끓는 물을 바로 부어 우려도 떫지 않다. 좋은 차라도 보관방법, 우려내는 방법에 따라 맛에 차이가 난다. 근년 들어 김해지방에서 생산되는 장군차가 유명해 졌다. 첫 잔을 헹구지 않고 바로 마시고 가격도 착할 뿐더러 향도 참신하여 권함에 무리가 없다.
다식茶食 또한 중요하다. 나는 달지 않은 비스킷이나 견과류를 낸다. 음악인 일념 선생이 과자류를 사용하기에 본을 받았다. 그는 심산유곡에서 물을 길어다 쓴다. 나는 그렇게는 못하고 커피포트 뚜껑을 열고 부글부글을 넘어 솔바람 소리가 날 때까지 끓여준다. 수돗물을 옹기에 사나흘 앉혔다가 인덕션 6정도 약한 불로 천천히 끓이기도 한다.
심리학을 전공한 편 선생은 야생화를 말려 차를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다. 들국화며 마리골드 등 약성이 좋거나 특이한 향을 품은 차를 자주 선물로 보내온다. 그 중 목련차는 내 손으로 만들어 마시고 싶도록 향이 당긴다. 며칠 전에는 중국 명인이 만들었다는 보이차도 건네준다. 차를 선물 받는 건 즐겁기 그지없는 일이다.
다기茶器는 자기磁器로 만든다. 눈으로 맛보는 차라는 차원에서 다례과정에 중요한 요소다. 제작기법과 외양을 감상하는데 전문가적 소양을 요한다. 차 한 잔을 마시는 일이 자기 충족과 위안으로 다가올 때 향기는 심오해진다. 나는 새벽에 눈을 뜨면 찻물을 올리면서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