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정으로 구원은, 마을에 있다!
물방개라 불리운 사내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19년전인 1997년 9월 서울을 떠나 우리군 홍동면 김애마을에 안착한 후배 농부 이환의입니다. 돌이켜보니 세월이 참 빠르네요. 지금 제가 맡은 직책은 농업기술센터 안에 있는 홍성군귀농지원센터 대표인데 평생 총무, 사무국장, 뭐 이런 것들만 맡아오다 기관의 수장(首長)이 되니 참 부담스럽습니다.
저의 깜냥이 어디 가서 몸을 부려 일하는 속칭 ‘노가다 체질’인데 대표라는 게 본래 중량감과 인성, 연륜 등등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아직 전 한참 멀었거든요. 귀농 3년차에 동네에서 얻은 별명이 ‘물방개’, ‘홍길동’입니다. 마치 물방개가 연못에서 헤엄치는 모습처럼 재빠른데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왼갖 동네와 지역일에 참견을 다 하고 다니니 그런 별칭이 붙여진 것 같습니다.
제가 왜 오늘 교육과 큰 관련이 없는 얘기를 늘어놓냐면 이렇게 살아오니 인생이 좀 피곤하지만 ‘뭔가 되기는 되더라’는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즉 무슨 일이고 한 번 붙잡으면 대략은 ‘되게 만든다’는 거지요. 이건 개인사고 마을 일이고 아마도 비슷하리라 봅니다. 그렇다고 제가 지금까지 손댄 일마다 잘해왔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닙니다.
실패한 것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것도 꽤 있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제가 선생(先生)으로 왔으니 여러분들을 북돋을 책임도 있고 해서 조금 잘 한 얘기, 그럴듯한 에피소드만을 골라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마을 사업이 왜 필요할까? 스스로에게 묻자
이 글의 제목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평소 제가 즐겨 인용하는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명언을 살짝 바꿔보았습니다. 그이가 이런 말을 했다네요. ‘진정으로 구원은 여성적인 것에 있다’. 여러분, 여성이 아니고 ‘여성적인 것’입니다. 저도 혼인전에는 여성에게 구원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더군요. 힘들고 어려운 청년기를 보냈기에 약간은 기대를 했는데 혼인은 또 다른 문제의 연속이었습니다. 여러가지가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동네의 속깊은 모습도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여튼 두 명이상 모이면 문제가 복잡해지는 게 인생사인가 봅니다. 얘기가 자꾸 다른 곳으로 흘러가네요~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지금 무슨 일, 어떤 사업을 할까하는 것보다 어떻게 할까가 더 중요하다는 뜻에서입니다.
어떻게 하면 중간에 추진 주체가 깨지지 않고 순항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사업을 진행하며 참여하는 이와 마을 모두에게 이익이 될까?
이런 고민을 할 때 바람직한 마음가짐이 여성의 마음과 같은 유연함이겠지요. 신을 만나는 임신(姙娠)을 거쳐 아이에게 쏟는 지극한 사랑인 모성애에 근거한 주변을 살피고 돌보기…. 이게 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은 우리네 남성에게는 죽었다깨도 닮아내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일종의 선천성 모성결핍, 애정결핍인데 조물주의 차별 때문에 그리 된 것이라 억울하기는 합니다.
여튼 두 사람 이상이 모여서 일이든 사업이든 무언가를 도모할 때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여성성(여성적인 것)이 더 필요하다는 얘깁니다. 어디든 여성이 끼면 조직의 분위기나 문화가 좀 더 부드러워지고 현실적이 되며 솔직한 느낌이나 문제점을 가슴속 깊이 묻어두지 않고 꺼내어서 조직내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것도 막아주는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 마을 사업을 하실 때 하실 수 있으면 꼭 의지가 있는 여성과 함께 하세요. 사실 구성원의 절반 이상을 여성으로 하셔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구성원간의 소통과 나눔만큼은 여성들이 우리네 남자보다도 훨씬 낫습니다. 한 가정만을 떼어서 들여다보더라도 부인과 딸이 기를 못펴는 집안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몰라도 속사정은 그야말로 안봐도 비디오입니다. 그럼에도 아직 일반적인 농촌의 모습은 남성 중심, 가부장 중심, 권위주의 문화가 뼛속 깊이 자리한 모양샙니다. 왜 저를 포함한 남자들은 스스로 무거운 짐을 혼자지려고 애쓰는지 모르겠습니다. 힘도 달리고 머리도 복잡한데 가정사든 사업이든 평생의 우군인 아내와 나누면 되는 것을….
참고로 저희 집은 어떤 사안을 처리할 때 서로 잘 하는 사람에게 일을 몰아줍니다. 아내가 금융기관 출신이니 회계처리나 계산능력이 뛰어나니 제가 골머리 아프게 손댈 까닭이 없습니다. 공간지각력 또한 저보다 나아서 건축물의 설계나 배치를 구상할 때도 전적으로 아내에게 의지합니다. 때문에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궁굴려봐야 되지도 않는 일로 속을 썩을 일이 없습니다.
이게 가정사에 국한되지 않은 게 아내가 저희 동네 역사상 처음 여성 총무로 일할 때 마을 회관 내부 구획과 동선(動線)을 전담하다시피 했습니다. 당시 이장님을 주축으로 9인의 마을회관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을 때 건물의 외형과 주요 건축자재, 시공법 등은 이장님과 제가 주도했고, 아내는 주방과 마을회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다목적실의 크기와 배치, 1층과 2층의 진입 방법을 의지대로 진행했습니다. 과거 저는 전원주택의 홍보담당이어서 주요 건축자재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어 바닥 기초와 기둥, 벽체 구성, 외장마감, 단열, 지붕마감 등을 제안하였고 거의 그대로 채택되었습니다.
또한 위원 전체가 우리보다 먼저 지은 화신리 다목적 회관을 방문해 주로 문제점 위주로
살펴보고 건물의 내외부는 물론 이장님을 만나 운영상의 애로와 어려움을 심도깊게 들었습니다. 그 결과 주방의 바닥을 타일이 아닌 장판 마감, 방범시스템을 보안회사가 아닌 자체 관리, 크고 넓은 다목적실(주조리실) 안배, 소득 구조 마련 등으로 일을 풀어갔습니다.
때문에 지금 저희 마을 회관은 도농교류센터를 겸해 외부 고객의 이용료가 연간 5백만원이 넘습니다. 아직 미비한 점이 많아 온오프라인 홍보를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알음알음 찾아오는 손님에 불과한데도 말입니다. 큰 돈은 아니지만 초상 등이 장례식장으로옮겨가 마을내 수입원이 줄어든 상황에서 동네에는 적지 않은 도움이 됩니다.
보통 도농교류센터 구축은 수억원이 들어가는 사업입니다. 그러니 앞서 지은 다른 마을의 건물의 장단점을 면밀히 분석하여 되도록 쓸모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알고있는 지식을 총동원했습니다. 대전의 설계 사무소에서는 저희가 그려준 밑그림을 CAD로 다시 그린 것에 불과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대개 마을내 시설의 건축이 이장이나 운영위원장에게 맡겨놓고 나머지 마을 분들은 나몰라라 하는 게 보통의 시골 모습이랄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중간중간 혹은 나중에 개입하여 ‘바꿔야 하네 말아야 하네’ 하며 책임맡은 이를 몰아세우기 일쑤입니다. 그러니 대표는 신경은 신경대로 쓰고 욕은 욕대로 먹습니다. 이 중에 그렇지 않은 마을 있나요? 그렇다면 매우 훌륭한 곳입니다.
제가 이런 지적을 하는 것은 결코 시골을 깔보거나 시골 분들을 욕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저도 이제 시골 사람이고 시골을 좋아해서 온 사람입니다. 다만 우리 솔직히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제가 지적한 모습에서 온전히 자유로운 마을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왜 마을 사람들이 갈라지는가?
저희 집은 2011년에 농촌 교육농장으로 지정되어 학교 교육과 연계된 체험을 진행해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농장내 체험보다 홍성 지역의 체험마을과 농장의 연합체인 홍성농촌체험관광협의회 이사로 몇 년간 축제 팀장을 맡아온데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귀농교육을 해왔기에 체험농장 운영은 부족했지만 그래도 보고 들은 것들이 있어 체험마을들의 속사정은 조금 안다 할 수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둘 이상으로 갈라지는 데는 표면적으로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대개 뿌리깊은 불신과 그로 인한 원망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불신이 생기는 걸까요? 이는 부부사이의 관계도 비슷합니다. 두 사람사이에 충분히 소통하지 않고 공감이 부족한 상태에서 어느 한 편이 일을 일방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잘 나가는 체험 마을도 속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무슨 무슨 상을 계속해서 받고 연매출이 수천만원에서 억대를 넘기는 전국의 체험마을도 내부적으로는 거의 예외없이 불화를 겪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장이나 추진위원장 대(對) 반대파가 존재하는 식입니다. 마치 여야관계나 국회의 소란스런 운영과 비슷한 형국입니다. 지금 국민들이 우리 정부나 국회의원들을 얼마나 욕을 합니까? 욕을 들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정이나 마을, 지역도 비슷한 갈등 구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걸 보면 지금처럼 남의 탓이나 욕을 할만한 처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때 말입니다.
여야나 양당 구도는 정치제도의 산물이니 그렇다치고 마을내 분파나 대립 구도가 형성되는 것은 상당수 이끌어 온 이들과 그에 동조한 이들의 잘못이 크다 하겠습니다. 한 마을내의 분란은 이장이나 추진위원장 등 대표하는 이들의 아전인수식 사업진행과 마을 사람들의 의견을 밀도있게 수렴하는 과정을 거치지 못한데 원인이 있습니다. 잦은 예로 면이나 군에서 주는 배수용 흄관을 내 집이나 내 논밭의 배수구부터 묻는다든가 마을 기금을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고 이장과 총무 등 몇사람이 쑥덕쑥덕하여 쓴다는가 하는 경우입니다.
또 행정의 지원대상자를 선정할 때 친밀한 개인에게 우선권을 주는 등 불공정하게 처리하거나 영수증 미비 등 투명하지 않은 일처리로 인해 많은 오해와 불신이 싹트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대표를 맡은 이가 마음대로 하는 게 주민들의 반발을 사는 겁니다. 제가 일일이 예를 들지 않더라도 워낙 흔한 예니이만큼 공감하시리라 믿습니다. 물론 때때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정치적 성향이 다르거나 그냥 특정 인물이 싫어서 물어뜯는(?) 예도 있기는 합니다.
마을내 분쟁이 최대한 덜 생기게 하려면
마을내 사업을 진행할 때 골치아픈 분쟁을 덜기 위해서는 대표자와 주도하는 이가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마을에서는 사전에 그런 구조를 만들어야겠지요. 그래서 저희 마을에는 운영위원회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과거 군에서 마을내 조직을 권장하던 개발위원회의 이름을 부드럽게 바꾼 것으로 직책을 맡은 당연직과 선출직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장, 총무, 새마을지도자, 부녀회장, 동계회장은 당연직이고 나머지 4인은 선출직으로 총 9인입니다. 하는 일은 이름처럼 마을내 현안을 처리하며 선발은 주민총회시에 선출직 위원을 뽑고 권한을 위임 받습니다.
주요 권한은 백만원 이내의 마을 예산 심의와 총회가 필요하지 않은 가벼운 사안의 마을 업무처리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마을내 브라운관 TV가 낡아 최신 LED TV로 바꿀 때 그 비용이 87만원쯤 한다면 이 안건을 총회가 아닌 운영위원회를 열어 처리하는 겁니다. 마을 총무가 통장 잔고와 TV 구입 예정 가격을 파악해 보고하면 이를 가늠하여 처리하는 겁니다. 백만원 이내이므로 복잡한 총회를 거칠 필요가 없고 연말 동계에 결과를 보고하면 됩니다.
그러지 않고 이 건을 이장이 단독으로 처리해버리면 나중에 잘했느니 못했느니 분쟁의 씨앗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연말 마을 총회에서 고성이 오가고 분위기가 험악해지며 끝내 한 두 사람이 뛰쳐나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평소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마을내에 실질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물품 구입건 말고 중요한 사항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TV나 세탁기 같은 단순한 건은 의견이 갈리기는 해도 구입할만한 사유가 되면 대개는 고개를 끄덕여줍니다. 회관에 모였을 때 TV가 나오지 않는 것처럼 답답한 상황도 또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을내 도로 포장이나 빗물과 하수를 처리하는 흄관 설치건은 이보다 미묘하고 복잡한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편의시설은 누구든 내집 앞부터 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입니다. 당연히 서로 먼저 하려니까 다툼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 마을에서는 마을 총회를 통해 ‘마을내 현안 우선 처리’건을 앞서의 운영위원회에 위탁해서 처리하도록 일종의 안전장치를 마련했습니다. 무언가하면 사안별로 일의 우선 순위를 차례로 정리해 놓은 겁니다. 도로 포장은 김씨 아저씨댁 도로가 1번, 2번은 박씨 아주머니댁…. 이렇게 말입니다.
흄관 같은 건 빗물에 패인 도랑 주변의 토사 붕괴 위험성을 마을 대표가 조사하여 이해당사자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협의를 통해 우선 순위를 정해둡니다. 그 뒤 행정의 지원예고가 있을 때 차례대로 설치해가면 불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미 많은 이들 앞에서 동의하였으니 말입니다. 도로 포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 이장이 마음대로 우선 순위를 정한다면 틀림없이 나중에 어려운 일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어느 마을이든 이해 당사자간에 이장을 끼고 싸움으로 번지는 예도 다반사입니다.
시행에 시간이 걸리다
자, 어떻습니까? 닮고 싶은 사례들 아닙니까? 그런데 이 안을 실행하기까지 3년이 걸렸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시골은 도시보다 변화를 싫어합니다. 그냥 살던 대로, 과거에 하던 대로 하려합니다. 제가 이 안건을 연말 총회에 상정했는데 반대하는 분이 계셔서 시간이 좀 걸린 겁니다. 그래도 꼭 해보고 싶은 제도였기에 끝내 관철시켰습니다. 사문화된 규정이긴 하지만 과거 군에서도 ‘개발위원회’제도라는 걸 권장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힘을 얻었습니다. 이걸 근거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계속 제안한 겁니다.
그밖에도 많은 사례들이 있지만 지면관계상 따로 뵙고 말씀드리기로 하고 갈등을 줄일 수 있는 두 가지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도 있지만 운영자와 마을 주민의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들입니다.
한 가지는 큰 사업을 진행할 때는 누가 되든지 운영위원장을 임명하여 조금 어렵더라도 꼭 수고료를 지급하자는 것입니다. 대개의 경우 무한 희생과 봉사를 요구하는 데 마을종합개발 같은 대형사업의 경우 몇년씩 걸립니다. 이로 인해 책임맡은 이의 가정에 갈등이 생기고 심신이 지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근본적으로 사업비내에서 지급이 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겠지만, 불가능하다면 마을내에서라도 일정 금액이 확보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혹여 발생할지도 모를 비리도 사전에 예방할 수 있고 사업도 더 잘 추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업 규모가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앞서 뛰는 이들이 손사래 치며 사양하면 모를까 ‘일 있는 곳에 보수 있다’는 생각으로 진행하면 이끄는 이들도 큰 힘이 날 겁니다.
다른 하나는 사업이나 마을 운영에 있어 주민들과 행정의 적극적인 참여입니다. 절대로 한 두 사람에게 맡기지 마시고, 저희 마을처럼 추진위원회나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 실질적으로 끌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행정에서도 단순히 회의 주도나 브리핑뿐 아니라 사업의 전과정에 관심을 갖고 지원할 수 있도록 마을에서 담당 공무원의 관심을 유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업 추진시에 피치못할 사정으로 갈등이 발생했을 때는 관계 공무원의 협조를 얻어 중립적 입장에서 조율을 의뢰하고 주민간에 신뢰를 회복시키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상품이 나쁘면 어쩔 수가 없다
요즈음 마을 기업 등 마을을 근간으로 주민들이 수익창출에 나서거나 행정에서도 지원을 점점 늘려가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행정의 보조나 지원에 기대어 사업을 추진하는 것과 무한경쟁이 벌어지는 시장(market)에 팔릴만한 상품을 내어놓은 것은 전혀 다른 원리가 작용한다고 하겠습니다.
가까운 예로 몇 년전 저는 농한기에 약 3개월간 밤마다 풀무생협의 고구마를 롯데마트 오산물류센터에 납품하는 일을 했습니다. 1톤 탑차에 소분된 고구마와 당근 등 뿌리 채소를 싣고 가는 일인데 대형 유통체인인 만큼 물품검수관의 엄격한 관리를 받습니다. 당시 풀무생협에서는 도시생협의 닫힌 시장(closed market) 외에도 일반 시장을 뚫고자 야심차게 추진하였으나 얼마 지속하지 못하고 중단하였습니다.
물품 공급을 중단한 이유는 우리가 생산하거나 공급하는 농산물이 시장의 기준에 전혀 부합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농약, 유기농 등 비슷한 사양의 농산물이 얼마나 철저하게 선별되어야 롯데 와이즐렉 마크를 붙이는지 그때서야 절감했습니다. 제가 가져간 농산물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지적을 받았는데, 제 눈으로 직접 다른 지역의 농산물을 비교해보니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녀올 때마다 농민들에게 직접 부족한 점을 전달해도 바뀌는 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니 중단할 수 밖에요.
마을 기업을 운영하거나 체험을 운영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전국 어디서나 가능한 그저 그런 체험, 흔해빠진 아이템은 소비자들도 식상해합니다. 소비자의 눈길과 마음을 잡아끄는 상품력이 부족한 까닭입니다. 때문에 기업에서는 사활을 걸고 시장에서 팔리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데 제대로 된 상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합니다.
이 과정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니 잠시 설명을 드리면, 새로운 제품 아이디어(product idea)가 떠오르면 바로 시장조사를 통해 현재 시장에서 새 상품의 위치(position)를 정밀히 가늠하여 출시여부와 사양을 판단합니다. 특히 경쟁사와 비슷한 상품을 생산하는 따라쟁이 전략(me too)말고, 세상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배 이상의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자동차 시장을 떠올리면 이해가 빠릅니다. 과거 한국 GM이 트랙스라는 소형 SUV를 출시하기 전에 들인 노력이 굉장할텐데 아쉽게도 마케팅의 실패로 현재 같은 급에서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트랙스에 대해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다는 것은 딱 두 가지입니다. 차값이 예상보다 너무 비싸고 내장이 속된말로 ‘구리다’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소비자들의 가격 저항에 부딪쳐 판매량이 늘지 않고 한국인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해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습니다. 곧 계기판 등 내장과 외관을 바꾼 신모델이 나온다하니 지켜봐야겠지만 시장을 개척해놓고도 쌍용의 티볼리와 르노의 QM3에 시장을 내주어야 했습니다.
마을에서 수익과 관련한 새로운 상품이나 체험 아이템을 개발할 때도 동일한 과정을 거쳐야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수익과 상관이 없는 사업을 진행할 때도 주민들과 외부 방문객의 요구와 욕구에 맞추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당연히 창의적이고, 다른 마을과 차별화되며, 마을의 특색을 반영한 특장점(unique selling point)을 발굴하고 다듬어서 진행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마을의 특성을 최대한 반영해서 다른 곳에서 쉽게 따라하기 힘든 상품을 내어놓는 것이지요.
참견이 아닌 참여를 끌어내는 마을 사업을 하려면…
전국의 수많은 마을이 이른바 전문가 그룹의 컨설팅을 받지만 정작 한 걸음을 제대로내딛기 어려운 이유가 비슷한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해오던 대로 수동적으로, 관성대로 반응하니 결과 역시 별반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혹시 지금까지 공무원이 대충 꾸며준 서류, 큰 고민없이 마을 대표 몇 명에게 위임한 사업의 큰 틀, 진행과정에 자발적인 참여가 아닌 귀찮은 참견속에 갇히지는 않으셨는지요? 혹은 그런 분위기가 팽배한 동네에서 지금껏 고생하지는 않으셨는지요?
19년전 제가 안착한 마을이 금평리 상하중인데 당시 저는 아무개 이장님의 태도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무언가 하면 회의를 진행할 때 참여한 이들이 남김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도록 오랫동안 경청하고 기다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중간에 말을 끊거나 돌리지 않고 끈기 있게 기다려주니 이장이 앞서 이끌지 않아도 합리적으로 수렴이 되더군요.
마을마다 상황이 다르긴 하겠지만 상하중 마을은 그랬습니다. 제가 이유를 물으니 이장님은 “내가 말 주변이 없어서…” 라며 말꼬리를 흐리셨지만 참으로 현명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니 다 이렇게 행동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분은 합리적인 논리로 무장하여 좌중을 설득하되 별다른 불만이 없다면 그런 구도로 가도 좋습니다. 만일 여성이라면 특유의 여성성으로 참여한 이들을 녹여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다만 우리가 국가의 흥망을 좌우할 거대한 사업을 벌이는 게 아니니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따르되 반대했던 소수의 심정도 세심히 살펴 불만의 요소를 줄여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회의원들이야 각자 자신의 집에 돌아가면 다음 등원때까지 서로 볼일이 없겠지만 우리네야 눈뜨면 맨날 서로를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도시민들 대상으로 귀농·귀촌교육을 할 때도 신신당부를 하는 것이 마을내에서 무슨 사업을 벌일 때 ‘사람들의 지지없이는 시작도 하지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지지라 함은 마을 분들의 나에 대한 기본적인 평가입니다. 평소에 손가락질 받거나 평가가 좋지 않은데 무슨 사업을 벌인다고 따라 오겠습니까? 획기적인 사업 아이디어도, 포지셔닝을 위한 시장 분석도, 제품에 상품성을 덧입히는 과정도 전부 이런 마음의 준비후에나 필요한 일들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홍성에 살면서 팔리는 상품을 개발하고도, 개발한 상품이 명품 반열에 오르고도 결국 마음이 맞지 않아 서로 싸우고 갈라지는 경우를 자주 봐왔습니다. 저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기에 여기 계신 분들과 머리 맞대고 해결책을 이야기해 봤으면 합니다.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문제가 있으면 답도 있을 테니 해결의 지혜를 모아밨으면 합니다. 그밖에 이창신 사무국장님이 요청하신 마을과 지역사업의 다양한 예는 직접 강의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끝으로 서두에 말씀드렸다시피 오늘은 선생으로 나섰으니 여러분께 용기를 북돋우는 명사의 말씀을 전해드리고 마칠까합니다. 헨리 워즈워드 롱펠로우라는 미국 시인의 권고입니다. 오래도록 크게 문을 두드리면, 결국 우리는 누군가를 반드시 깨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