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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의 최남단 마라도
류인록
입동을 지나 겨울의 초입에 들어섰을 즈음 특별한 여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네 주민자치위원들과 함께 제주도의 워크샵이다. 11월 15일 오전 5시! 주민자치위원들이 하나둘씩 집합장소로 모였다. 이른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배웅 나온 시의회 의장의 배웅을 받으며 14명의 일행은 두 대의 차에 나눠 타고 출발시간보다 여유 있게 공항에 도착해 탑승수속을 순조롭게 마쳤다.
비행기가 이륙한 시간은 7시 10분이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비를 몰고 올듯했다. 이륙 후 고도를 잡은 기내에서 내려다보니 온통 구름뿐이다. 오랜만에 기내에서 산하를 내려다보고픈 마음이었지만 겨울비가 내려 아쉬웠다. 얼마쯤을 지나니 구름은 사라지고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비행시간은 이륙 후 약 한 시간이라고 했다. 제주에 도착하니 다행이도 비는 내리지 않았다. 우리의 첫 계획은 한라산 등반이었으나 동절기는 해가 짧은 관계로 그 시간에는 오를 수 없다고 했다. 한라산 등반은 다음날로 미루기로 했다.
첫날의 일정은 우리나라 최남단의 섬 마라도로 바뀌었다. 육지와는 달리 제주도의 겨울은 밭에 온통 농작물이 가득했다. 싱싱한 귤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귤 밭을 끼고 목장에는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수확을 앞둔 널찍한 감자밭들이 즐비했다. 일 년에 두 번 감자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이동하는 도중에 ‘오설록원’에 잠시 들렸다. 24만 5천 평에 이른다는 차밭에 들려 차밭과 차 박물관을 둘러보고 차를 마시며 잠시 그곳의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제주에 이렇게 넓은 차 밭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삼다도’로 불리는 제주도, 하지만 이곳도 세월의 흐름을 거역하진 못했다. 인구 비율이 여자보다 남자가 600 여명이 많고 아직도 말들은 많다고 한다. 그 중 종마 는 8마리뿐이라고 했다. 제일 값나가는 종마는 마리당 무려 32억 원 이란다. 그 말을 사육하는 사람들은 제주의 공무원이라고 한다.
송악산 아래 선착장에서 ‘마라도’로 가는 유람선 코스를 택했다. 드디어 도착한 최남단의 섬 마라도 아주 작은 섬이었다. 초등학교 전교생이 3명이고 교사는 2명이란다. 매년 있어야할 입학식과 졸업식이 없을 때가 많다고 한다. 그래도 그곳에는 성당, 교회, 절이 있었다. 관광객들은 최남단에온 기념으로 자기가 믿는 종교 건물들을 꼭 둘러보기 때문에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단다. 주민 수는 적어도 관광객들이 많아 중식당들과 회집이 많았고 하나같이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자연산 톳을 곁들인 자장면에 소주 한잔 걸치고 둘레 길을 여유롭게 돌아보며 기념사진을 담았다. 거대한 등대가 서 있는 등대공원에는 각 나라들의 등대모형이 전시돼 있었다.
유람선을 타고 육지로 돌아와 송악산에 오르기로 했다. 오르다보니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차단되었다. 등산로를 개설하는 공사를 하는 중이라고 통행을 금지한다는 안내문이 걸려있어 둘레 길을 택했다. 잘 만들어진 둘레 길을 기암절벽과 부서지는 파도를 보노라니 멀리 ‘가파도’와 ‘형제섬’ ‘산방산’ ‘한라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곳곳에 태평양 전쟁 때 일제가 사용했던 전쟁터 진지가 남아있는 흔적들도 살펴보고 산책을 하며 몸과 마음의 ‘힐링’ 시간을 보내고 나서 온천으로 향했다. ‘산방산 온천’은 국내에서도 희귀한 탄산온천이란다. 오랜만에 온천욕을 하고 나니 마음도 몸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제주산 고등어, 갈치요리에 잘 차려진 음식으로 풍요로운 저녁 식사를 마쳤다. 숙소는 공항이 가까워 비행기 소리로 좀 시끄럽다. 하지만 전날 잠을 설치고 오랜만에 많이 걷고 보니 곧 잠이 들었다.
이튿날 날 아침, 창문을 열고 보니 비가 내린다. 한라산의 등반은 오늘도 미루어야 할 것 같다. 한라산은 포기하고 다른 곳을 돌아보았다. 버스로 이동하여 ‘장생의 숲길’을 찾았다. 곳곳에 잘 만들어진 볼거리들을 살펴보고 유명하다는 장생약수 물도 마셨다. 우천 관계로 실내에서 관람할 수 있는 중국 서커스 공연장으로 이동했다. 8년 전 제주도에 왔을 때 관람했던 것이었지만 단체로 활동해야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서커스 단원들의 멋진 공연은 또 다시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먼저 간 아내와 같이 관람했던 생각이 문득 떠올라 마음이 울적했다. 하늘나라에 갔을 것이라고 믿고 스스로 위안을 했다. 점심식사는 제주도 토종 똥 돼지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리필식당이었다.
오후에는 신비의 도로로 갔다. 버스에 시동을 껐는데도 차가 굴러가는 것을 직접 체험해보니 도깨비의 짓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착시 현상이겠지만 어쨌거나 신비의 도로다. 다음 찾아간 곳은 근처에 있는 ‘러브랜드’다. 성을 상징하는 다양한 조각들이 넓은 공원에 설치돼있어 만져도 보고 웃음도 터뜨리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 큰 공원을 꽉 메워 놓은 조각들과 기념품 판매대에는 비가 내리는 데에도 불구하고 관람객들이 줄을 이었다. 다행히 비가 멈추고 제주 해안도로 둘레 길을 산책하고 저녁식사 시간에는 제주산 싱싱한 횟감으로 양을 채웠다. 비용도 만만치 않았지만 실컷 먹고 마시고 나머지는 숙소에까지 싸 가지고 와서 여운을 즐겼다.
3일차 마지막 날이다. 비는 여전히 아침부터 내렸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가이드가 제주의 특산품이라는 ‘오메기’ 떡을 가져왔다. 여느 떡 보다 맛이 괜찮았다. 오늘의 첫 일정은 제주 민속 마을을 둘러보는 것이란다. 제주의 오래된 풍습과 그 곳 사람들의 살아가는 지혜를 보고 제주도의 똥 돼지도 구경하고 물을 담아 짊어지는 물 허벅도 짊어져 보았다. 곳곳의 코스는 모두 입장료가 붙었는데 제주자연사 박물관은 65세 이상은 무료였다. 오랜 제주의 역사와 볼거리들을 그림과 조각, 사진, 잘 설명한 글들을 보고나니 제주의 역사를 한 곳에서 가늠해볼만했다.
제주에는 색다른 기차여행이 있었다. ‘에코랜드’ 기차여행이다. 한 바퀴를 도는데 4개의 역이 있었고 각 역에서 내려 그곳주위를 둘러보고 다시역으로 와 기다리다가 오는 열차를 타고 다음 역으로 이동 곳곳에 잘 꾸며 놓은 경치와 절경을 구경하며 멋진 추억들을 만드는 곳이었다. 비가 내렸지만 잘 갖추어진 풍광이 다시 한 번 찾고 싶을 정도였다.
마지막 빼놓을 수 없는 코스는 제주 동문시장이었다. 재래시장이지만 워낙 큰 시장이다. 관광객들로 붐비어 발 들여놓기 쉽지 않을 정도다. 일행들은 저마다 필요한 쇼핑을 마치고 시간이 조금 남아 해변 가 출렁다리를 건너보고 관광의 일정을 마무리 하고 저녁식사를 마친 후 공항으로 이동 탑승 수속을 밟았다. 올 때 보다 많아진 짐을 챙기고 부치며 제주에 정말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제주에는 넘쳐나는 관광객으로 인하여 제2의 국제공항이 지금의 공항보다 더 큰 규모로 신설된다고 한다. 제주발 9시 비행기는 한 시간도 안 돼 김포에 도착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11시가 다 되었지만 몸과 마음의 ‘힐링’으로 생활의 활력소를 찾은 듯 했다.
연일 내린 비로 한라산에는 한 번도 못가 봤지만 그래도 국토의 최남단 마라도를 다녀온 것만으로도 자랑스럽다. 14명의 일행 중 나는 제일 나이가 많았지만 다행히도 똑같은 나이의 일행이 셋이나 되어서 다소 위안이 되었다. 누군가 말했던가. 나이 듦은 늙어가는 게 아니고 익어가는 것이라고. 얼마 남지 않은 60대의 시간들을 젊은이들과 잘 어울려가며 보고 듣고 배우며 마무리하고 70대엔 젊은이들에게 피해 끼치지 않고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하나둘씩 실천해가며 살아가리라고 다짐해본다.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