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용(니콜라오)-성모님께 올리는 글.
사랑하올 나의 어머니 성모님, 부끄럽지만 어머님과 아들이라는 모자사이가 된지도 벌써 1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강산이 변할만큼 오랜 세월이지요. 하지만 정작 변해버린 건 세월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를 찾아뵌지가 언제인지 기억 저편을 아무리 더듬어 보아도 가물거리기만 합니다. 10년이라는 기억 저편에서 세례를 받으며 나도 모르게 흘렸던 뜨거운 눈물의 의미는 이미 식어버린지 오래이고, 한번의 실수는 용서가 되어도, 두번의 실수는 실수라 할 수 없기에, 제가 아직도 제 자신이 용서가 되지 않을 뿐더러 용서라는 말이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삼키지도 못하고 뱉지도 못해 그저 버거워만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나 제 자신 하나조차도 사랑하지 못해 결국에는 이렇게 또 다시 육신의 담장만큼 커다란 마음의 담장 속에 제 자신을 구겨넣었는지도 모릅니다. 눈만 감아도 볼 수 있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지만, 잡아볼수도 안아볼수도 없기에 그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인해, 남몰래 화장실에서 물을 틀어놓고 흐느껴 목놓아 울때, 그런 못난 절 측은해 하시고 불쌍해하며 11동안이나 제가 성모님을 외면하고, 아버지를 모른척하며 제 자신을 버릴때부터 성모님은 제 곁에서 제가 다시 어머님의 품으로 돌아와 주길 바라시며, 저와 함께 흐르껴 울고 계셨다는 것을 저는 몰랐습니다.
인자하시고 자애로우신 성모님! 당신께서는 육신의 아들을 핍박하고 박해하며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까지 용서하셨는데, 저는 누군가를 용서하기는 커녕 제 자신도 용서하지 못하고 당신께 향한 작은 용기조차 없어, 형제들의 눈을 의식하며, 성호 한번 긋는것조차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죄인처럼 행동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성모님! 성모님! 나의 어머니시여! 처음부터 당신의 장한 아들로 새롭게 거듭나지 못해 죄송하구요, 주제도 모르고 악한 제 자신에게 예수님을 팔아넘겨 죄송하구요, 그저 입으로만 사랑한다고 수없이 되뇌였을 뿐, 정작 성모님 가슴 채울 모래알만한 믿음 한알의 장미꽃 한송이도 제대로 바치지 못해 죄송하구요, 온통 죄송하다는 말로 도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죄송하다는 말 되뇌이는 절 부디 용서하세요. 11년이라는 세월을 뒤로하고 또 다시 죄를 짓고, 담장 안으로 기어들어와서는 기억 저편을 아무리 더듬어도 희미하고, 가물거리기만 하던 성모님이셨는데... 기가 막히게도 저는 독실한 신자인양 또 다시 '사랑'을 외치고, '주님'을 외쳐되니, 어찌 질시와 야유, 박해와 핍박이 따르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가식적인 제가 성모님 보시기에 얼마나 안타깝고 속상하시겠습니까? 이런 제가 성모님께 어머니라 부를 자격도 없는 어리석은 죄인임을 잘 압니다.
저의 희망이시고, 보호자이신 성모님! 희망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것이라 합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희망을 믿고 기다리기보다, 저의 모난 부분과 허물까지 오롯이 어머님께 의탁하고 어머니를 믿고 의지하며, 진실호 진실로 그 사랑의 실천에 이 더럽고 얼룩져 때 묻은 손이라도 올려 놓을까 합니다. 두꺼운 얼음장 밑으로 물이 흐르듯, 차가운 흙 속에서도 봄을 향한 씨앗이 꿈을 꾸듯이, 얼음장보다 더한 제 가슴 냉기 속 깊은 곳에 모래알보다 더한 작은 믿음 하나 심으시어 뜨거운 회개의 눈물 한 방울 흘리게 하시고, 어머니 발 하래 설 자격도 없다면 어머님 곁이 아닌 먼발치서라도 어머님과 함께 사랑과 용서의 참된 기쁨을 맛보며 살아가게 해 주소서.
황용제(베드로)-당신과 함께.
나의 삶에서 당신을 만나, 너무도 행복합니다.
나의 가슴 속에 새겨진 당신의 흔적들은 이 세상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나의 삶의 길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그분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믿음과 희생의 길... 이 길은 내 마지막 숨을 몰아 쉴 때도, 내가 사랑하고 행복해 해야 할 길입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만난 가장 행복한 길... 늘... 가고 싶은 이 길은 당신과 함께
사랑하고 흠숭하는 그분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당신은 제 안에서 제가 편히 쉴 수 있는 심장이 되어 주십니다.
강재명(세례자 요한)-성모님께 올립니다.
얼마나 힘드셨을지...얼마나 아프셨을지...감히 상삳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뿐인 아들의 모진 고난과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을 곁에서 지켜보신 당신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귀하게 얻은 아들을 기꺼이 하느님께 내어드린 아브라함의 믿음처럼, 오로지 하느님 말씀에 순명하며 광야에서 삶을 마감한 모세의 믿음처럼, 성모님의 사랑, 믿음, 순명하는 삶은 마땅히 존경받아야함을 느낍니다. 시골처녀로 하느님께 선택되어 온 생을 주님의 뜻대로만 살아오신 성모 마리아님, 하늘나라에 가시어 천상 모후의 자리에 계시면 이제는 좀 편하게 계셔도 될텐데, 이천년이 넘도록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하느님께 전구하시니, 성모님은 단 한번이라도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의문을 가지는 저조차도 툭하면 성모님을 찾고 하느님께 빌어달라 청하니 제가 좀 이기적인 면이 있나봅니다. 그만큼 성모님이 포근하고 힘들때 편히 기댈 수 있고, 무엇보다 어떤 기도하도 흔쾌히 전구해 주셔서 그런가봐요. 제가 성모님 보시기에 좀 삐딱한 삶을 살려하면 혼도 내시고 벌도 주셔야 하는데, 늘 사랑으로 감싸 주시니, 성모님의 그 크신 사랑 때문에 이제는 주님을 벗어난 삶을 살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행복하고 감사한 삶인데 왜 그리도 어두운 곳에서만 살았었는지 새삼 후회가 됩니다. 성모님의 자애로우심으로 인해 이제는 주님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한 저 요한이지만 성모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며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제가 되겠습니다. 너무나 포근하여 만물이 소생하는 5월, 성모성월을 맞이하여 성모님께 무한한 감사와 사랑을 드립니다. 언제나 성모님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꼭 끝에는 기도를 드리네요.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성모님 사랑합니다.
성모님의 순명: 순박한 시골처녀, 결혼을 앞두고 예수님을 잉태하여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외아들이 받는 조롱과 멸시, 피땀 흘리심과 매 맞으심, 십자가 지심과 죽음 앞에서 얼마나 찢어지게 가슴이 아프셨을까? 두려움, 무서움, 가슴 아픔, 하느님께 순명함으로써 기도와 믿음으로 이겨냄으로써 저희는 성모님을 본받으려 합니다. 남의 눈을 의식하는 저희가, 편하게 살고 싶어하고 손해보지 않으려는 저희가, 성모님을 본받아 하느님께 순명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한승필(안토니오)-기도문
소유가 아닌 빈 마음으로 사랑하게 해 주세요.
받아서 채워지는 사랑보다, 나누어주는 사랑이 되게 하세요.
지금까지 해 왔던 제 사랑에 상처가 있다면 용서하시고,
옆으로 이어갈 내 생의 사랑은, 저 하늘의 별처럼 빛나게 해 주세요.
자연히 떨어지는 한 잎의 꽃일지라도 사랑으로 감싸 안으려 살게 하소서.
한지현(오네시모)-그분 & 본 고향
그분: 비우고 비운 깨끗한 마음 속에 찾아오시는 분, 나를 버리고 순복하였을 때 그분 찾아오시네.
힘들고 지친 마음 어루 만지시니, 내가 티끌이 되어 낮아질수록 나의 마음을 사랑으로 이끌어주시네.
찾는 자에게 문이 열리네, 축복의 문이 열리네.
본 고향: 허송세월 살다가 본 고향으로 돌아갈 때, 후회하지 않게 하소서.
흙 묻은 신발도 털지 못한채, 머리에는 빙물이 떨어지고 있는데, 가득가득 싸오신 구원의 보따리는 양손에 가득.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님을 모르는 손님처럼, 긴 시간을 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서 계시게 하였네.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게하소서, 님의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 저의 집 주인으로 모시렵니다.
그렇게 살다가 본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