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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산수화의 대가 池大雅(이케노타이카) 특별전이 京都國立博物館(쿄토코쿠리쯔하쿠부쯔칸) 전관에서 열린 것을 가서 보았다.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을 오래 기억한다. 전시한 작품이 160여 점이나 되고, 그만한 것을 교체해 전시한다고 했다. 작품을 많이 남긴 것이 놀랍고, 모아서 전시하는 성의가 대단하다.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열심히 보았다. 이런 점에서는 일본이 미술의 나라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서, 사진 촬영을 금지한 탓에 도판을 보여줄 수 없다고 한탄하고 양해를 구한다. 池大雅을 인터넷에 치면 그림을 많이 불 수 있어 다행이다. 그러나 여기서 거론하는 그림을 다 볼 수는 없다. 도록을 사면 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도판을 보지 못해도 쓴 글을 읽기 바란다. 글로 전개하는 논의가 더 소중하다. 그림을 이면까지 보고 하는 말이다.
池大雅는 능숙한 솜씨로 산수화를 그렸다. 거침없이 붓을 놀려 대담한 생략하고 생동하는 핵심을 살렸다. 그런 가운데 권위와는 거리가 먼 장난기가 나타나 있고, 인물을 만화처럼 그려 친근감을 준다. 정신의 깊이나 고결한 취향을 보여주지만, 고고한 체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몰려드는 관객을 맞이한다. 大雅(대아)가 大妙(대묘)이기도 하고 小雅(소아)이기도 하다.`
누구를 위한 그림이었던가? 京都의 武士는 물론 町人(쪼닌)들도 자기 직분을 감당하는 전문 지식 이상의 고전적인 품격을 갖추고 싶어 池大雅의 산수화를 사다가 걸었다. 江戶(에도)에서는 浮世繪(우키요에)가 유행할 때, 古都(고도)의 자부심을 이어오는 고객들은 마구 찍어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천박한 구경거리가 아닌 단 한 장뿐인 고결한 명품을 정중하게 모시고자 했다. 일본 그림보다 격이 높은 동아시아 그림을 원했다. 일본이 대단하다고 자랑하기만 하지 않고 동아시아는 위대하다고 해야 타락하지 않을 수 있다고 여겼다.
赤壁(적벽)이나 西湖(서호)를 그리고 한문 화제를 써넣어 중국인이 되고자 했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중국인인 척하고 중국에 환심을 사야 할 이유는 없었다. 중국에 휩쓸려 주체성을 상실했다고 여기는 것은 빗나간 생각이다. 중국에서 먼저 정립한 공동의 이상을 참신하게 구현하기 위해 池大雅가 정열을 쏟았다고 이해하는 것이 마땅하다. 근대 민족주의의 편견에서 벗어나 중세 보편주의를 온전하게 이해하고 평가해야 한다.
池大雅는 일본 각처를 여행하면서 실제로 보는 눈앞의 산수를 그리기도 했다. 제목에 “珍景”이 들어가 있는 것들은 일본의 어느 산수를 그렸는지 명시했다. (<兒島灣眞景圖>, <淺間山眞景圖>, <比叡山眞景圖> 같은 것들은 모두 여행의 산물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가벼운 필치로 그려 친근한 느낌을 준다. 일본의 경치를 자랑하려고 했다고 할 것은 아니다. 자랑의 요건인 과장은 찾아볼 수 없고, 채색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동아시아문명의 이상이나 품격이 가까운 곳에 있다고 알려주려고 했다.
그림을 하나 눈여겨보자. (<嵐峽泛査圖屛風>라는 것이다.) 대단한 그림이다. 살색에 가까운 느낌을 주는 네 폭 병풍에 부드럽게 굽이쳐 위로 솟구치는 강, 여기저기 소박한 자태로 서 있는 여윈 나무들, 뗏목을 타고 내려가는 사람의 보일 듯 말듯 한 자태, 이 모두를 흐릿하고 그윽하게 그려 大妙의 극치를 보여준다. 京都 근교의 일본 산수를 그렸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중국 산수를 상상해서 그린 그림의 좋은 본보기(<瀟湘勝槪圖屛風>)에서 池大雅가 혁신한 화풍이 더욱 높이 굽이친다. 강보다 나무가, 나무보다 바위가 더 돋보이게 하는 점층법으로, 보는 사람의 감흥이 단계적으로 고조되게 한다. 소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화풍 혁신이 작품을 빛낸다.
池大雅의 그림을 文人畵(문인화)라고 한다. 이 말이 타당한가? 文人畵는 문인의 그림이라고 하지 않고 문인의 정신을 나타낸 그림이라고 해야 타당하다. 문인이 그린 문인화는 중국에서 유래했으나, 한국에서 전형적인 작품을 잘 보여주었다. 池大雅는 농민 출신의 하급 町人이며, 文人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武士 가운데 일부가 칼을 찬 채로 文人의 기능을 수행했으나, 文人다운 문화 활동을 제대로 한 것은 아니다. 文人의 문화는 無主物(무주물)로 남아 있어 池大雅 같은 사람이 맡겠다고 나설 수 있었다.
文人畵를 그려서 팔아 町人의 업종 가운데 특이한 것을 개척했다. 알록달록한 사탕발림 浮世繪(우키요에)를 파는 것과 기본적으로 동일한 영업을 하면서, 물건은 많이 달랐다. 천박한 기풍의 신흥 도시 江戶(에도)에서는 천박한 구경거리 浮世繪를 선호하는 것과 거리를 두고,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京都에서는 町人들까지도 그 쪽을 얕보면서 품격 높은 南畵를 구매했다. 그런 전통이 있어 京都는 지금도 학문의 도시이다.
池大雅는 고객들보다 조금 위의 위치에서 앞으로 나아가면서 상품 가격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존경을 받았다고 생각된다. 화풍을 혁신을 조심스럽게 해서 너무 앞서지 않으려고 했다. 고독과 싸우는 불행한 예술가이기를 원하지 않았다. 불만을 품고 사회를 비판하고, 세상의 통념을 바꾸자는 주장을 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술주정을 일삼으며 미친 사람처럼 나돌아 다니다가 이따금 놀라운 그림을 그렸다는 일화를 남기지 않았다. 모범적인 가정생활을 했으며, 아내도 그림을 그리도록 해서 부부가 함께 화가로 활동한 것이 천고의 미담이다. 자기가 잘났다고 여기지 않고 누구나 대우하고 가까이 하는 평범한 이웃의 너그러움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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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산수화를 觀念山水畵(관념산수화) 또는 寫意山水畵(사의신수화)와 眞景山水畵(진경산수화)를 구분하는 것이 예사이다. 이런 용어를 사용하면 池大雅의 산수화는 어느 쪽인가? 대부분은 觀念(寫意)山水畵이고 “珍景”이라고 밝힌 몇 작품(<兒島灣眞景圖>, <淺間山眞景圖>, <比叡山眞景圖> 같은 것들)만 진경산수화라고 할 것인가? 아니다. 그런 논의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池大雅의 그림을 보고 깨달았다. 京都 유학을 며칠 하고 대단한 공부를 했다.
상상해서 그린 그림과 실제의 산수를 보고 그린 그림이 다르다고 하는 것은 소재주의이다. 그림에서 소재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엇을 그렸는가 하는 소재보다 어떻게 그렸는가 하는 화풍이 월등하게 소중하다. 화풍으로 나타내는 주제가 소중하다. 소재주의가 애국주의와 만나면 못난 자식이 태어날 수 있다.
자국의 진경산수를 그리면 훌륭하다는 것은 근대 애국주의의 옹졸한 발상이다. 그림의 소재가 “중국에서 벗어났다”고 하는 것을 대단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그림은 자연 모사가 아니고, 발상 창조이다. 자연 모사는 카메라가 좋으면 한 번에 잘 할 수 있지만, 발상 창조는 누적된다. “중국의 전례를 활용하면서 넘어서서 동아시아문명을 더욱 풍부하고 다채롭게 하는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평가해야 한다.
한국에서 鄭敾(정선)이 金剛山(금강산)을 그려 그림의 새로운 경지를 연 것은 자국의 산수를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고 화풍을 혁신했기 때문이다. 池大雅는 중국의 산수를 상상해서 그린 그림(<西湖圖>나 <瀟湘勝槪圖屛風>)에서 화풍을 혁신한 자기 나름대로의 성과를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동아시아 그림을 더욱 풍부하고 다채롭게 하는 데 鄭敾과 함께 대단한 기여를 했다. 鄭敾은 준엄한 기백을, 池大雅는 따뜻한 마음씨를 제시한 것이 대조가 된다.
관습을 따르는 낡은 그림과 혁신을 이룩한 새로운 그림을 무어라고 할 것인가? 기존의 용어를 폐기하고 다른 용어를 마련해야 한다.
山水理畵(산수리화)와 山水氣畵(산수기화)라는 말을 사용해본다. 觀念(寫意)山水畵라고 하던 것은 山水理畵라고 하고, 眞景山水畵라고 하던 것은 山水氣畵라고 해본다. 산수를 理로 이해해, 추구해야 할 이상을 현실을 넘어선 차원에서 보여주려는 그림이 山水理畵이다. 그 배경이 되는 철학은 理學(이학)이다. 山水는 氣임을 확인하고 보고 느끼는 바를 강렬하고 인상 깊게 응축해 나타내는 것을 그린 그림이 山水氣畵이다. 그 배경이 되는 철학은 氣學(기학)이다.
동아시아철학이 理學에서 氣學으로 나아가면서 山水理畵가 山水氣畵로 바뀌었다. 그림 그리는 사람은 철학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철학을 혁신하는 시대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그림으로 나타냈다. 동아시아 철학사와 문학사를 서로 관련시켜 함께 고찰하는 작업에 미술사도 포함시켜야 한다.
이원론 그림에서 일원론 그림으로 넘어온 것이 세계미술사의 공통된 전개이다. 이원론 시대에는 이원론 상위의 이상만 그림으로 그리고 하위의 현실은 제외했다. 동서양 모두 신화나 종교에서 내세우는 인물만 그렸다. 일원론 시대가 되자 예사 사람의 일상적인 삶을 핍진하게 그리고 그 나름대로의 이상을 찾게 되었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이다. 철학사ㆍ문학사ㆍ미술사를 함께 고찰하면서, 다른 것들을 더 보태 총체사를 이룩해 인류의 역사는 하나이고, 인류가 다 같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일본에 가서 池大雅의 산수화를 보다가 이런 생각을 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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池大雅는 성실한 탐구자이다. 무엇을 이룬 성과보다 무엇을 이루려고 노력한 자세가 더 큰 감명을 준다. 허무주의 술주정을 하지 않고서도 혁신을 하고, 같은 일을 오래 해도 나태해지지 않고 근면이 계속 생동한다.
일본인은 모두 어떻다고 나무라기 전에 池大雅를 보아야 한다. 한국 그림이 으뜸이라고 우기를 실수를 池大雅가 막아준다. 서양미술사가 세계문학사라고 하는 잘못을 하늘 높은 곳에서 소리를 높이지 않고, 땅 낮은 곳에서 나즈막하게 속삭이며 눈치채지 못하게 바로잡는다.
분수를 알고 지나친 것을 바라지 않아 탐구에 제한이 없다. 탐구의 경과나 결과를 직접 보여주어 오해나 억측이 생길 수 없게 한다. 차등론을 버리고 대등론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로 가르치지 않고 그림으로 알려주어 누구나 호감을 가지게 한다.
조동일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첫댓글 이원론 그림에서 일원론 그림으로 넘어온 것이 세계미술사의 공통된 전개이다. 이원론 시대에는 이원론 상위의 이상만 그림으로 그리고 하위의 현실은 제외했다. 동서양 모두 신화나 종교에서 내세우는 인물만 그렸다. 일원론 시대가 되자 예사 사람의 일상적인 삶을 핍진하게 그리고 그 나름대로의 이상을 찾게 되었다.
감사합니다